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9)
너희들은 변호됐다-69화(69/641)
포털에 게시한 동영상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우리가 따로 댓글 여론을 몰지 않아도, 네티즌은 알아서 동영상에 얼핏 나온 출석부를 보고 범행이 벌어진 곳이 장명 고등학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는 글들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대개는 장명고에 다니는 학생을 자식, 조카로 두었다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수가 꽤 되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적절히 윤세연 기자가 움직였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명문, 장명 고등학교에서 2008년 2학기 기말고사 시험지가 유출되는 현장이 담긴 동영상이 포털에 올라와 화제다.동영상 속의 인물은 모자이크로 가려져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늦은 밤 홀로 교무실에 들어가 캐비닛을 열고 시험지를 열람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험지와 답안지를 전부 사진으로 찍기까지 했다.
이에 분개한 누리꾼들은 해당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고, 교육청에서는 조사를 통해 사실을 밝히고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징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던 사실이 유력 신문사 지면에 기사화되자, 사태는 더욱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영상을 PC방에서 IP를 우회하여 비로그인 상태로 게재했기 때문에, 당국은 최초 게시자를 찾지는 못하였다.
때문에 교육감이 조사하겠다는 말로 대중의 이목을 흐리고 상황을 흐지부지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모자이크 없는 동영상을 교육청 직통 메일로 전송하게 했다.
일단은 이렇게 처리했다가 제대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다시 한번 포털에 모자이크 없는 동영상을 게재할 심산이었다.
“변호사님, 전화 옵니다.”
그리고 해당 동영상이 화제 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나에게 강민재가 내 휴대폰을 내밀었다.
[윤세연 기자]학면에 뜬 발신인 저장명을 보며, 나는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검사 시절에는 윤세연 기자에게 전화가 오면 지겹다는 생각부터 들었는데, 아군이 되니 든든하다.
“차주한입니…….”
-차 변호사님? 저예요! 윤세연.
“압니다.”
-아, 제 번호 저장 안 했을까 싶어서요. 하하.
“그럼 여태까지 어떻게 연락했겠습니까?”
-그러네요. 아, 몇 년간 차 변호사님한테 전화 씹힌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제가 쌓인 게 많았나 봐요. 호호호.
“그건 그렇고, 무슨 일입니까?”
-뭐, 생각해 보니 사건의 배후인 변호사님한테 새로울 건 없을 것 같긴 한데.
“누가 사건의 배후입니까? 난 그냥 일개 제보자일 뿐입니다.”
윤세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조간신문 1면을 차지할 만한 기삿거리를 얻었으니, 들뜨지 않았을 리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조간신문을 구독하는 사람 중 다수는 교육에 관심을 두고있다.
부모가 직접 교육 전문가가 되어야만 하는 나이의 자식을 슬하에 두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건이 조간신문 1면을 차지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교육청에 메일이 왔대요. 그 동영상 모자이크 벗긴 원본이요. 아마 ‘차’로 시작해서 ‘한’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냈겠죠?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차지한이라든지, 차종한이라든지.”
-하하, 그렇게 발뺌 안 하셔도 되는데. 저 제보자 익명성은 또 귀신같이 지키는 그런 기자거든요.
“본론만 말씀하시죠.”
-그 동영상 속 범인이 장명고 교장이었다나 봐요. 그래서 바로 교장 직무 정지했고, 구속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일단 감사부터 나갈 예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장명고는 다음 주에 바로 1, 2학년 기말고사 재시험을 본다고 하네요.
“그렇군요.”
-교장은 지금 유출할 목적은 아니었고 단순히 시험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개소리하고 있네, 뭐 이런 분위기예요.
“누가 봐도 그렇겠군요.”
내 덤덤한 대답에 윤세연은 한참을 웃었다.
나는 달리 대답하지 않고 윤세연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 눈물 나 진짜. 연기 왜 이렇게 잘해요? 배우 해도 되겠어요?
“이 사건에 공범이나 종범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처리한답니까?”
-종범이나 공범은 교장을 털어서 알아낼 생각이라는데. 좀 걱정이네요. 그사이에 공범이 도망갈지도 모르고.
“음……. 그렇군요.”
-혹시 종범이나 공범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려나요? 아, 물론 변호사님한테 질문한 건 아니고요. 혹시 그 제보자분이 아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님은 어떤 의견이실지 혼잣말해 본 거랍니다.
윤세연이 너스레를 떨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제 감입니다만.”
-아, 정말요? 그럼 튀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시험지 유출하면서 돈 좀 벌었을 텐데, 그대로 날라 버릴 수도 있잖아요.
“제보자가 설마 그런 장치도 없이 일을 벌였겠습니까.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 같은데, 아마 그 부분까지 잘 생각해서 처리했겠죠.”
-자화자찬도 그 정도면 병이네요.
윤세연 기자는 까르르 웃었다.
“어쨌든, 교장이 직무 정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학교 내에 공범이나 종범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까지 뿌리를 뽑고 나서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데요.”
-네, 안 그래도 어디 기자가 그 질문을 하긴 했어요. 다시 출제한 시험지는 교육청 감시하에 보관할 방침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교육청 감시 아래라면, 교육감인 이혁민 아버지의 입김이 충분히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재시험에서 이혁민의 성적이 뚝 떨어져야 설령 교장이 끝까지 입을 다문다고 해도 이혁민의 부정을 터트릴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시험지가 유출된다면, 이혁민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기자님, 여론을 좀 모아야겠습니다.”
-여론이요?
“교육청 감시하에 재시험이 진행되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교장이 교육감과 커넥션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 이런. 그런 고급 정보를 이제야 말씀하시다니요. 잠깐만요. 수첩 좀 가져을게요.
수화기 너머로 쿵광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헉헉거리는 윤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져 왔어요.
“대단히 메모해야 하는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육감이 교장과 친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이 장명고 동기입니다.”
-오, 그래요? 이거, 좀 냄새가 나네요.
“그리고 교육감의 아들이 지금 장명고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아하. 이거, 냄새가 너무 진동을 해서 코가 아프네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전화기 너머로 눈을 빛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럼, 일단 이 사실을 풀게요. 그리고 교육청을 믿을 수 없으니 경찰이나 다른 수사 기관에서 시험지 보안을 맡는 것이 낫겠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 볼게요.
“네, 그게 좋겠습니다.”
-교육감 아들이 장명고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네요.
윤세연은 사각사각 연필을 바쁘게 움직이며 메모하는 듯했다.
-일단 말씀하신 대로 여론 조성해 보겠습니다. 저희가 검증한 뒤에 단독으로 터트리면 그다음에 다른 언론사에서 우후죽순 터트리겠죠. 그정도 독점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얼마든지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변호사님. 잘 메이드해서 사건 제대로 파 볼게요.
“고맙습니다.”
내 말에 윤세연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지. 내가 천하의 FM 로봇한테 고맙다는 소리를 다 듣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요. 이번 일은 윤 기자님의 공로가 컸습니다.”
-아, 너무 사건의 배후 같은 말씀하신다. 아닌 척 하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아닌 척이 아니라 아닙니다.”
-네에, 알겠어요. 또 다른 소식 들리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중에 한번 뵐까요? 제가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
“사건이 바빠서, 당분간은 힘들겠습니다.”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죠.
“사생활에 대해서 훈수 듣고 싶진 않은데.”
-네,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말씀 감사하고 이만 끊겠습니다. 편집장님한테 검수도 받아야 해서.
“수고하십시오.”
그대로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교육감의 아들이 장명고에 다니는 학생이며, 그가 교장과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이혁민은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뭔가 저희 맡는 사건마다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기분이네요.”
나와 윤세연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강민재가 뿌듯한 얼굴로 거들먹거렸다.
나는 그를 흘긋 을려다보았다.
“바라는 바 아니었어?”
그러자, 강민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사무실의 번창을 위해선데요.”
사무실의 번창을 위해서인지, 그의 관심종자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상 위에 산적한 파일들을 뒤져,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예요? 음? 이건 김학성 간통 사진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아,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이거, 이거. 정산할 때가 되어서 연락 주신 겁니까? 잊지 않으셨죠? 교육 쪽 브로커한테 돈 많이 주고 정보 얻어 왔다는 거. 잘 쳐 주셔야 합니다.
여유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의 태식이 뺀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을 단칼에 끊어 냈다.
“그건 아니고.”
-쳇, 그럼 뭔데요.
“김학성이 도망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저번에 확보해 둔 불륜 사진 있잖아.”
-아, 그 학원 조교랑 부적절한 관계, 그거요?
“그래.”
-그거 뭐요?
“그걸 증거로 일단 고발해. 일단 간통죄로 잡아넣어 놔야 어디 못 도망갈 것 같으니까.”
내 말에 태식은 헛웃음에 가까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진짜 징하다, 변호사님.
“시끄럽고,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예엡, 그럼요. 누구 엄명이신데요.
태식과의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등받이에 깊게 기댔다.
아직 간통죄가 위헌 판결 나기 전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