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72)
너희들은 변호됐다-72화(72/641)
학생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 교실 앞문을 열려던 강민재 역시,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교실 가운데 앉아 있던 학생이 어정쩡하게 손을 들고 떨리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진철 떨어진 거……. 그거 이혁민 때문이에요.”
그 학생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그 누구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교탁 주변으로 돌아가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날, 그날……. 이혁민이, 박진철 실내화를 꼬챙이에 매달아서……. 창문 밖에 걸어 놓고, 실내화를 가져오라고 시켰어요!”
이미 진철의 진술로 알고 있던 사안이었지만, 이 순간은 꽤 의미 있었다.
둑이 터지는 것은, 거대한 자연 재해의 탓도 있지만 우연히 둑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구멍에서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나오며 구멍을 넓힌다.
구멍은 점점 넓어지고, 그 사이로 나오는 물은 언젠가는 거센 물살이된다.
결국, 그 물살을 견디지 못하면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 구멍이 뚫리는 순간을 보고 있다.
“저도 봤어요.”
그때, 뿔테 안경을 쓴 더벅머리 학생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여기 있는 애들 다 봤어요.”
더벅머리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로 오가는 말을 일일이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지금은 말해야 하지 않겠냐는 문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때는 늦을지도 모르니까.
이미 밀고자가 나와 상황이 뒤집힌 마당이라면, 얼른 밀고자의 편이 되는 쪽이 낫다.
나는 가급적이면 학생들의 양심을 믿고 싶지만, 사람은 나이가 많고 어리고를 떠나서 자신을 그나마 무결한 상태로 만들려는 본능을 따른다.
이혁민이 학교에서 쫓겨났음에도 아직도 이혁민의 그림자가 두려운 학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선택을 잘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방조한 졸렬한 인간으로 남은 1년을 보내야 한다.
그러한 불안감은, 이 정글 같은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학생들의 입을 움직이리라.
“이혁민 때문에 그랬어요. 이혁민이…… 죽인다고 했어요. 자기는 사람을 자살하고 싶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협박했어요.”
“1학년 때 이혁민이랑 같은 반이었는데, 개가 따 시키던 애 전학 보내고 샘들도 다 걔 편 드는 거 보고…… 저도 그렇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혁민이 그간 어떤 학생이었으며, 어떻게 학생들을 협박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이혁민을 싸고 도는 학교와 부유한 집안 사정,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한다는 점은 학생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쥐 죽은 듯이 서 있던 교사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녀는 TV장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아이들의 외침을 외면했다.
완전한 정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은 비단 교장뿐만이 아니다.
이 모든 비리를 방조한 교사들, 아버지가 교육감이고 교장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이혁민의 편의를 봐 주었던 교사들 모두가 처벌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들 역시, 이 학생들과 같을 것이다.
교육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 전에 그들도 사립 장명고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직장인들이다.
만일 이곳이 공립 학교라면 5년 뒤 전출 가면 그만이겠지만, 그들도 정년이 될 때까지 이 학교에서 발뻗고 살아남으려면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는 하지만…….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다.
아니, 싫다.
“이혁민 쓰레기 같은 놈이에요. 그동안 그 자식 눈치 보느라 진짜 힘들었는데. 이제 이렇게 되네. 잘됐다.”
“그러게. 진짜 개새끼, 그동안 박진철 괴롭히는 거 보고 저게 사람 새낀가 싶을 때 많았는데.”
시끄러운 폭로의 한가운데서, 교탁과 가까이 앉아 있는 학생들의 대화소리가 튕겨져 나왔다.
나는 그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등학생 그 자체였다.
저렇게 이혁민을 욕하면서도, 이혁민이 이 학교에 있을 때는 그의 비위를 맞췄을 것이다.
밉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익명으로 그날의 진실을 써내라는 담임의 말에도 이미 합의된 거짓을 써내렸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누구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밀고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나는 진철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진철이 흐느끼는 소리는, 이혁민을 욕하느라 난리통이 된 이 교실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강 변.”
“네, 변호사님.”
“재판에 출석해서 증언해 줄 수 있는 학생 있는지 확인하고, 반 학생들 전체 대상으로 진술서도 확보해. 나 이만 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마무리하고갈게요.”
나는 교실을 나섰다.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자,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내가 이전 삶에서 발버둥 치던 모든 순간이 시끄러웠다.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력자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었다.
그들 역시 우신 그룹이 건재하는 한, 그 회사의 일원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회사의 하청을 받기 위해서는, 그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선뜻 진실을 말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우신 그룹에서 시킨 대로 거짓 증언을 해서 재판을 망쳤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전부 이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마저 이 나라의 국민이었고, 사람이었고, 당연히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었으니까.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몇 사람이 실종되고, 죽고, 폐인이 되었지만 나와 그들은 계속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2학년 5반 학생들 같은 과거가 있지 않았을까.
그 학생들에게서 보였던 그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 *
“변호사님, 저 왔습니다.”
강민재가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는 내가 지시한 대로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는 학생이 있는지 체크하고, 또 학생들의 진술을 취합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고 말했다.
다행히 학교 측에서 방학식이 끝나 빈 교실이 많다며, 그곳에서 계속 작업해도 좋다고 하여 학교에서 얼추 작업을 진행하고 돌아온 듯했다.
자세하게 그날 일과 그간 이혁민이 저지른 악행들을 진술할 수 있는 학생을 선별해서, 햄버거를 사 주며 진술을 녹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료 정리 다 하고 나서 올려 드릴게요. 대상이 좀 많다 보니 자료가 좀 산만해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오기 전부터 보고 있던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험 문제제로 시끄러웠던 2주가 지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사그라진 상황이었다.
시험지 유출 건으로 교육감과 교장, 그리고 김학성이 삼자대면을 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짤막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호사님. 저 배고픈데 저녁은 뭐 먹을까요. 저번에 순두부 집 거기 괜찮던데. 거기 갈까요?”
“그러든가.”
“아니면, 저기 순대국밥 집 새로 생겼던데. 거긴 어때요?”
“그러든가.”
“아! 아니다, 저번에 우리 중국집 거기 가기로 했잖아요. 제가 그분 따님 이혼 관련해서 조언 조금 해드렸더니 고맙다고 한번 오면 깐풍기랑 그런 거 서비스해 준다고 그랬어요. 거기로 가요. 가서 빼갈도 한 잔?”
“그러든가.”
사실, 나에게는 저녁 메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학교에서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회의감에 붙잡혀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전 삶에서 보았던 인간 군상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진철을 구하는 일이었기에 드디어 증언이 나왔을 때는 나도 몹시 기뻤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들은 나에게 자꾸 과거를 상기시켰다.
어차피 사람은 그런 존재인데, 그런 존재들을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목숨까지 걸어야 할까.
이미 과거에도 나는 여러 번 그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 왔다.
결국 나를 움직인 동력은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우신 그룹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이렇게 새 삶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살아 계신데, 내가 또 그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이미 투자 가치 높은 곳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할 돈은 생겼다.
그러면, 그냥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편하게 두 번째 삶을 누려도 되는 것은 아닐까.
“변호사님. 왜 그러시는데요.”
“뭐가.”
“계속 그러든가, 그러든가, 그러든가. 메뉴 셋 다 마음에 안 드세요?”
“그건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예요. 정의를 구현한 이 좋은 날에, 왜 저기압입니까?”
“정의를 구현한 좋은 날?”
“네. 그렇잖아요. 물론, 이혁민이 퇴학당하고 교장이랑 애비랑, 김학성이랑 다 잡혀간 날 어쩌면 정의는 구현됐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애들도 입을 열었고, 사과했잖아요.”
나는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사과?”
“아, 변호사님 가신 다음이라 못 보셨구나. 애들이 이혁민 욕하고 막 그러다가, 잠깐 조용해진 순간이 있었는데요. 그때 진철이가 울고 있는걸 누가 봤어요.”
“그래서?”
“애들이 다 숙연해졌죠. 그리고 애들이 전부 진철이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우는 애도 있었고. 뭐 그랬어요.”
“진철이는?”
“진철이는 처음엔 애들이 사과해도 듣고 싶지 않다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사과 다 받아 줬어요. 얼굴 새빨개져서는 눈물 고인 눈으로 웃는데, 아.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그걸 변호사님도 보셨어야 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떠드는 강민재는 퍽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도 사실, 처음에 애들이 다 짜고 익명 조사에서 거짓말 써낸 거보고 되게 애들 미웠거든요. 근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려고 하잖아요. 그 애들도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진철이를 외면했을 거고요. 사실, 오늘도 그래요. 본인들이 이미 거짓말을 해 버렸고,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양심에는 찔릴지언정 거짓말쟁이, 이혁민이 무서워서 쫀 애, 이런 건 안 됐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근데, 이혁민이 없으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서 사과하고, 같이 울고, 그랬잖아요. 그걸 보면……. 어쨌든 사람이 원래 못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 학생들은 이제 이혁민도 없으니 상황이 뒤집혀서 그런 걸지도 몰라.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 다 봤다는 학생 말 못 들었어? 그 말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비열하게 거짓말 한 사람으로 남으니까 입을 열었을지도 모르잖아. 성선설이야, 갑자기?”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너무 삐딱하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 애들은 진철이한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혁민이 무서워서 아무도 편을 못 들었을 뿐이죠. 상황이 뒤집혔으니까 애들이 자기 안의 진심을 말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전 그걸 보고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저런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강민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님 말에 따르면, 그 학생 두 명 말고는 그 당시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데, 정말 악의가 있었다면 너도 나도 털어놓기보다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 두 학생을 거짓말한 걸로 몰았겠죠.”
“저런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뭔데.”
“뭐겠어요? 바로 변호사님이랑 저죠.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 흐흐흐. 정의의 사도. 파워레인저처럼요. 변호사님이 레드 하세요. 제가 블루 할게요. 레드 양보합니다.”
그의 너스레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이전 삶에서 내가 죽지 않았다면.
황영찬이 나를 배반할 것을 예측하고, 미리 그에게 손을 써 놓았더라면.
조금 더 조심해서 우신의 손에 죽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재판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신 그룹이라는 거대 악을 이혁민처럼 제거했더라면, 나도 강민재가 보았던 풍경을 보았을까.
“아직 표정 계속 안 풀리시네. 아, 그 상황을 보셨어야 했다니까.”
그걸 보았다면 나도 저렇게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 풍경을 보지 않았던 나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처럼 편하게 사는 게 좀 좋았나 봐.”
나는 강 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뭐가 편해요. 한번 사건 들어가면 머리 굴리느라 골 아프고, 잠도 못 자고 힘들어 죽겠는데.”
처음 이 삶으로 돌아왔을 때는, 우신 그룹 고상준이 천사의 집에 기부하는 보도와 부모님을 보고 본능처럼 다시 우신 그룹에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날을 위해 그러한 생각에서 멀어진 채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있었고, 이전 삶을 살아낸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사건들을 마주하며 편하게 해결하곤 했다.
어쩌면, 내가 그 교실에서 하나둘씩 이혁민의 악행을 폭로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껴야 했던 것은 그런 회의감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나라면 거대악을 제거한 뒤, 비로소 정의가 찾아온 풍경에 만족했겠지.
편한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은 나도 몰랐던 본능이, 나에게 회의감을 느끼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 생긴 순대국밥 집 가자.”
“아, 왜요. 깐풍기에 빼갈 먹자니까요.”
“안 땡겨. 순대국밥 집 가.”
“아, 진짜 짜증 납니다. 아시죠? 본인 되게 짜증 나는 거.”
“몰라.”
강민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을 챙겼다.
외투를 걸치고, 그에게 말했다.
“순대국밥 집 어느 쪽이지? 차 타고 가야 하나?”
“……이제 퇴근할 거면 차 가지고 가야죠.”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차 키를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럼 차 빼 놔. 밖에 추우니까 이따가 나가게.”
“……진짜 성격, 아오.”
강민재는 어렵사리 차 키를 받고는 구시렁대며 사무실 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은근히 쓸 만하네,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