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76)
너희들은 변호됐다-76화(76/641)
“……저기, 그러니까.”
강민재는 지금 얼어붙어 있다.
“정영준 씨 본인 맞으시죠? 저희에게 그러니까, 사건을 의뢰하러 오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일단 들어오시죠.”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오빠, 얼른 들어가자.”
정영준은 여동생에게 붙들린 채 어기적어기적 사무실로 들어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결혼 생활 동안, 그가 가 보았던 변호사 사무실이라고는 거대 로펌뿐일 것이다.
그는 작은 변호사 사무실이 신기하다는 듯 소파에 앉아서도 한참을 둘러 보았다.
그에 반해, 정영준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처럼 보이는 그의 동생은 오히려 확신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미심쩍게 사무실을 살펴보고 있는 정영준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여기, 일단 음료 좀 드시죠.”
알로에 주스를 그들에게 내준 강민재는, 평소보다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 비디오 때문에 온 거겠죠?”
“조용히 해.”
비디오도 비디오지만, 아마 그는 우리에게 이혼 소송을 맡기러 왔을 것이다.
아직 정영준이나 양진 그룹 측에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이 비디오는 결국 정영준을 돌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적수공권인 돌싱.
사실 정영준은 ‘변태적인’ 섹스 비디오가 세간에 퍼지며 아내를 비롯한 처가의 얼굴에 크게 먹칠을 한 댓가로 완전히 복구 불능의 상황에 직면했다.
내가 알기로는 양진 그룹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이혼만 해 주기를 바랐고, 정영준은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그는 결국 언론과 국민에게 욕만 먹고 합의 이혼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21세기 들어 거의 처음으로 국민이 재벌의 편을 들었던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웬만하면 고씨 일가의 편을 들지 않으려는 내가 보기에도, 정영준은 소송 생각 따위는 하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재벌과 이혼하는데 재산 분할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곱게 내쫓을 때 조용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황 같은데.
“변호사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혼 소송은 하신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정영준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양진 그룹과 제대로 척을 질 생각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거대 로펌은 정영준을 변호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고상경 회장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서민 출신 사위를 들였더니 변태적인 섹스 비디오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꼴이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서 보복해도 모자란데, 정영준이 유명 로펌의 도움으로 이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꼴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빠, 개업한 지 이제 1년 됐는데 경험이 많을 리는 없잖아.”
“……인아야, 내 말이 그 말이잖아.”
“지금 오빠가 가릴 처지야?”
“알아, 나도 아는데…….”
동생에게 억지로 끌려 왔을 뿐, 별로 나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은 눈치는 아니다.
나는 강민재에게 베란다를 향해 눈짓했다.
“저, 두 분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잠깐 자리를 비켜 드릴까요?”
“아, 저희가 나가서 얘기하는 게 예의 같은데…….”
정영준이 대단히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얼버무리자, 강민재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시고, 말씀 끝나시면 알려 주세요.”
나와 강민재는 베란다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베란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자세를 낮추고 귀를 문에 붙였다.
“뭐해?”
“무슨 얘기하는지 엿들으려고요.”
강민재가 속삭였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나눠 문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강민재는 팔짱을 끼고 서서 중얼거렸다.
“동생 쪽이 오빠를 여기로 끌고 온 것 같죠?”
“아무래도.”
“동생은 우리 사무실이 어쨌든 유명하니까 데려온 것 같은데, 정영준은 좀 큰 로펌에 맡기고 싶은 눈치고.”
“큰 로펌에서 까이고 까여서 여기로 온 거겠지, 결국.”
“……그렇겠죠? 그 비디오 얘기 풀린 지가 언젠데 지금까지 양진 그룹에서 손 안 쓰는 거 보면, 아무래도 양진 그룹에서 정영준을 버린 것 같은데. 아니, 버리다 못해 어디 좆 돼 봐라 하는 입장 같기도 하고요.”
강민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경력 짧은 변호사도 아는 사실이다.
대형 로펌 중에서는 정영준을 받아줄 곳이 없다.
인터넷에서는 지명호 민정수석의 성상납 사건을 묻기 위해 서민 출신 재벌가 사위인 정영준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화제성이 높았다.
다들 지명호 사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영준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변호사님, 저희 얘기 끝났어요.
곧, 안쪽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와 강민재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해요. 저희가 실례했죠?”
동생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빠, 오빠가 얼른 얘기해.”
정영준은 결국 동생의 설득에 넘어간 건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음,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저는 정영준이라고 합니다. 양진 그룹 고상경 회장의 딸, 고진아 씨의 남편이고요. 아실 것 같긴 하지만 말씀드리자면……. 최근에 제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어서 화제였습니다. 내용이 다소 자극적이라, 변태라는 오명도 썼습니다.”
정영준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동생은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처가 쪽에서는 이혼을 요구하고 있고,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왜냐면……. 저는 아직 아내를 사랑합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자의로 다른 여성과 관계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비디오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안 믿기실 거 아는데요. 정말, 저는…….”
[진실]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글자에 나는 조금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결혼한 이후 다른 여성과 관계한 적이 없다면, 대체 그 비디오는 뭐란 말인가.
“그럼 그 비디오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동영상 속의 그 인물이 저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너무 저 같으니까요. 그런데……. 언제 찍힌 건지 모르겠어요. 전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전 그런 취미도 없고, 변태도 아닙니다!”
정영준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는 진실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고 말이다.
아마 이전 삶에서 결국 합의 이혼했던 그도, 이번처럼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다니며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나, 믿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변변찮은 변호사였던 모양이다.
결국은 그런 취미를 가진 변태라고 낙인찍힌 채로 그는 이혼 후 종적을 감추지 않았던가.
“……안 믿기시죠? 이해합니다. 솔직히, 여태까지 제 사건 수임하겠다고 한 변호사는 몇몇 있었지만 절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자기들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서 그냥 협의 이혼하자고 구슬리는 사람이 더 많았죠. 그래서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정영준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방금 한 번도 자의로는 아내분 외 여성과 관계를 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타의로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영준이 양진 그룹 외동딸의 사위가 된 이후, 그는 양진 그룹의 계열사인 양진 F&B의 상무이사가 되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분명히 접대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만일 그 접대 자리에서, 원치 않게 2차를 나갔다고 가정한다면 스스로는 그것을 타의에 의한 관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강제로 관계를 ‘당하는’ 것, 즉 강간 혹은 성폭행 및 성추행만이 타의에 의한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언어의 쓰임이 다르면, 내가 묻는 바와 그가 대답하는 바에 차이가 생겨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어쨌든, 내 능력은 발화자가 생각하는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니까.
“타의라는 게, 그 비디오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어요. 그 안에 저는 제가 맞는데, 저는 도저히 저런 기억이 없거든요. 정말 단 한 번도요.”
“그럼 주취 상태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 못 하시는 겁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술을 안 먹진 않으니까요. 완전히 기억이 끊길 때까지 마신 적도 많고. 하지만 저 맹세코 단 한 번도 술 취했다고 해서 저런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
“없는데, 저런 비디오는 남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상한 일이네요.”
내 말에, 정영준은 입을 꽉 닫았다
무릎을 쥔 그의 손에 힘줄이 돋아났다.
“변호사님도 저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닙니다.”
“상투적인 말씀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정영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솔직히 작년 살인 사건, 변호사님이 맡으신 거요. 아무도 그 입양된 동생을 믿지 않았지만, 변호사님만 그 입양된 동생 믿어 주시고 그 사건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기사에서 읽었어요. 그래서, 조금 기대해 봤는데…….”
그는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의 팔을 붙잡았다.
동생이 당황한 듯 그를 올려다보자, 정영준은 그 팔을 잡아당겼다.
“일어나. 다른 데 가자.”
“오빠…….”
강민재는 다소 흥분한 듯한 정영준에게 다급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달래려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흥분하지 마시고……. 저희 변호사님이 조금 직설적이십니다. 그러니까, ”
“정영준 씨.”
그가 어디서 화가 났는지는 알 만했다.
내가 ‘이상한 일이네요’라고 덧붙인 것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의미 그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것인데, 그는 굳이 비꼬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물론, 그의 날카로운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랜 시간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얼굴은 전 국민이 알아보게 되었다.
‘국민 변태’라며 조롱까지 당하고있는 마당이고, 여태까지 만났던 수많은 변호사 중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정영준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동생은 계속 정영준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고 진정하라고 했고, 강 변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는 정영준 씨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
“그럼에도 비디오가 남아 있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한 건 정영준 씨의 주장을 비꼰 게 아니었습니다. 정영준 씨의 주장이 맞는데, 왜 그런 비디오가 남았을까 의문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럼…….”
“사실 저는 정영준 씨의 말씀을 듣고 합성일 가능성을 가장 먼저 생각했는데, 그 말씀을 안 하시는 걸 보면 합성이 아니라는 건 이미 확인하신 것 같고요.”
“…….”
“그렇다면 누군가 정영준 씨를 음해하기 위해 일부러 주취 상태인 정영준 씨를 데려다가 그런 영상을 남겼을 가능성도 생각해야겠군요.”
내 말에 정영준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제 말을 믿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냥 하는 말씀이 아니라?”
“정영준 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제가 믿지 않을 까닭이 있습니까?”
내가 되묻자, 이번에는 강민재가 기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섣불리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가 빠르게 내 옆자리로 와서 슬쩍 허리를 쿡쿡 찔렀다.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뜻 같은데, 하나도 이르지 않다.
“어째서요? ……어째서 제 말을 믿어 주십니까?”
“제가 정영준 씨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을 땐 저를 비난하시더니, 이번에는 왜 믿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정영준은 맥이 풀린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렇네요. 그러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정영준은 달아오른 숨을 가라앉히며 알로에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제가 정영준 씨를 믿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다는 게 중요하죠.”
“……네.”
“원하시는 바가 가정을 지키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혼을 원하는 아내분께서는 소송을 하시겠군요.”
정영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처음부터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으니, 어쩌면 건수를 잡아서 잘됐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고……. 아내는, 아내는 잘 모르겠네요…….”
그는 착잡한 얼굴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인지, 빨갛게 충혈된 눈이 이제야 보였다.
사실, 정말 괜찮은 변호사라면 의뢰인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알맞은 화법으로 대화를 진행하겠지만…….
내가 그게 가능했다면 처음부터 강민재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무례하다고 느낀다면 부정할 생각은 없다.
평생 무례하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운 수준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결례를 보상할 방법은 알고 있다.
“사건 수임하겠습니다. 아, 물론 정영준 씨가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바로,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