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77)
너희들은 변호됐다-77화(77/641)
사건의 전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정영준은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그 비디오가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기사화되기 전에 이미 아내 고진아는 그 비디오를 접했다.
고진아는 그 비디오를 본 뒤, 바로 정영준에게 비디오 속 인물이 네가 맞느냐며 따졌고, 정영준은 패닉에 빠졌다.
고진아에게는 절대 자신이 아니라며, 합성일 것이 분명하니 전문가에게 맡겨 확인해 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 결과, 동영상은 합성이 아니었다.
고진아는 더욱 불같이 화를 내며 동영상을 친정 식구들, 즉 양진 그룹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고상경 회장은 정영준을 따로 불러 따귀를 때리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이혼하라고 말했다.
정영준이 아무리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분명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는 것이라 해명해도 소용없었다.
정영준은 일단 동영상이 퍼지는 것만은 막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장인과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집안 망신인 것 같아 퍼지는 것은 막아 주려 했지만, 반성하기는커녕 아니라고 잡아떼는 꼴이 괘씸하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동영상이 기사화되고 나서, 고진아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이혼을 요구했다.
특히, ‘네가 우리 집에 장가와서 번 돈 말고는 한 푼도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 위자료는 됐고 그냥 합의 이혼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상황이 악화되기만 하니, 정영준은 우선 시간을 갖자고 말하고 별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음해라는 증거를 찾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빌었다고 하는데 그게 통한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진아의 법률 대리인이 그에게 이혼 소송을 준비 하라는 연락을 취해 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누구 짓인지도 모르겠고, 목적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을 모르겠다는 것을 보면, 누군가 정영준을 그 비디오로 협박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정영준에게 직접 바라는 것 없이 그냥 비디오를 유포했다면, 높은 확률로 정영준의 평판이나 신뢰를 잃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텐데.
“사업상의 이유로 척을 진 사람은 없습니까? 척을 지지 않았더라도, 정영준 씨가 반대한 일을 강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든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사실, 이름만 상무일 뿐 실권이 없어서 제가 반대하더라도 진행될 일은 되었을 겁니다. 만일 제가 궁극적인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짓을 한 거라면 정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말씀드린 겁니다. 흥분하지 마십시오.”
“……네. 하지만 제일 속상한 건 와이프가 제 말을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겁니다……. 솔직히, 비디오 때문에 너무 창피해서 얼굴도 들고다니지 못하겠지만, 저는 가정을 지킬 수만 있다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진아만 옆에 있어 주면…….”
정영준은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그의 비극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나도 이혼당한 입장인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들은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정영준은 가정에도 충실했고 이혼당할 이유가 없지만, 나에게는 있었다.
일에 쫓겨 집에 들어가지 않은 적도 부지기수였고, 심지어는 전처와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가 와이프가 이미 외도 중인 것을 알았음에도 협의 이혼을 해 주었던 것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의 외도는 나로 인한 것이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와이프를 잡을 방법은 없었고, 나 또한 잡을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정영준은 아니다.
지금 정영준은 섹스 비디오 그 하나로 인해 모든 신뢰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 비디오에 대한 오해만 풀린다면 법정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업무에 관련된 사람은 배제하고, 그렇다면 심증 가는 사람은 전혀 없으신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가늠이 잘되지 않습니다. 동영상을 찍은 사람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 누구인지 모르겠고요.”
정영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수의 이성과 관계하는 내용인 듯한데.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게 아니었습니까?”
“아뇨, 누군가 찍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동영상은 음, 마치…… 파티 같은 걸 하는 느낌이었고요. 큰 방에서……. 하, 차라리 직접 보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정영준은 귀 끝이 빨갛게 되어 한숨을 쉬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동영상은 접하지 못했습니다. 동영상을 저희가 봐도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정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노트북에 동영상 파일이 있어요. 다음에 뵐 때 동영상이 담긴 USB를 드리겠습니다. 그 밖에 필요한 서류 같은 게 있다면 그것도 같이요.”
그 말에 강민재가 벌떡 일어나 서랍 안에서 안내문을 가지고 왔다.
안내문에는 필요한 서류와 절차 따위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언제 저런 것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민재는 그 위에 나와 강민재의 명함을 클립으로 끼워서 홀더에 넣었다.
그리고 정영준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상담비는 오늘 결제하시면 되고, 댁으로 돌아가신 후에 저희보다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면, 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아, 혹시 제 사건이 조금…… 부담스러우십니까.”
정영준이 홀더를 받아 들며 물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런데 보통 저희 사무실에 오신 분들은 저희에게 맡길 생각을 하고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정영준 씨는 조금 긴가민가한 상태로 오셨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맡기고 싶으실지도 모르지만, 혹시 댁으로 돌아가시면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부담 갖지 마시고 연락 주시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강민재가 다급히 말을 다다다 쏟아내며 변명하자, 정영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 네. 사려 깊으시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이나 모레쯤 연락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정영준과 동생이 나란히 일어났고, 강민재는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처음 정영준의 섹스 비디오가 막 화제가 되었을 때 이후로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쯤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강민재는 책상 앞으로 다가와 내가 방금 펼친 노트북을 접어버렸다.
“그런데 변호사님, 이 사건 진짜 하실 거예요?”
“그런 질문 하는 거 좀 지겹지 않아? 나는 한다고 하면 하는 편인데. 아직 캐릭터 파악이 잘 안 됐나 보네.”
“아니, 아는데요. 변호사님 진짜 정영준 말 믿으시는 겁니까? 이 사건을 하시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강민재는 기가 찬 표정이었다.
사실, 정영준 사건 그 자체의 성격을 보면 나에게 썩 구미가 당기는 사건이 아니기는 하다.
내 전문 분야도 아니거니와, 이런 치정에 얽힌 문제는 특히 그쪽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내게는 어렵기도 할 테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강 변과 상의 한마디 없이 사건을 수임하겠다고 한 까닭은 단 하나였다.
상대가 양진 그룹, 즉 우신 그룹의 방계 기업이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양진 그룹의 유일한 상속자, 고진아의 남편이다.
이전 삶에서 정영준은 아무 조건 없이 이혼을 받아들였기에 별다른 이슈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
관련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재산을 분할하는 과정에서라도 무언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변호사님 너무 아무나 덥석 덥석 믿으시는 것 같아요, 이제 보니까.”
“무슨 소리야.”
“아니, 김연준 씨랑 카페 사장님한테도 들으니까 변호사님이 김연준 씨 만나자마자 바로 김연준 씨한테 무죄인 거 안다고 했다면서요.”
“그런데. 그건 강 변도 나한테 다짜고짜 찾아와서 김연준 씨가 무죄인 것 같으니 끼워 달라고 했잖아.”
“저는 2차 부검 결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겁니다. 하지만 변호사님은 2차 부검 결과 보기도 전에 그렇게 판단하신 거잖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정영준 씨, 뭐. 얘기 들어 보니 억울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걸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변호사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눈 한 번 깜짝 안 하고 저작권 소송 해 본 적 있다고 거짓말했던 강 변처럼 말이지?”
“아니, 왜 갑자기 그 얘기가 나옵니까. 어쨌든. 대체 그 판단의 기준이 뭡니까?”
사실 나는 상대방이 거짓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어.
라고는 말 못 하겠고.
“그냥 감이야.”
“변호사님이, 감이요?”
“나도 가끔은 감 따라 움직여.”
“허어…….”
강민재는 할 말을 잃었는지, 작게 탄식만 내뱉었다.
“이 사건 하기 싫어?”
“싫다기보단, 정영준 씨가 정말 무고하다면 돕고 싶죠. 하지만 정말 저렇게 난잡하게 노는 사람이라면 변호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저 죄지은 인간들 변호하기 싫어서 태광 나왔어요.”
“그래? 그럼 언제나 내가 하는 말이 뭔지 기억하지?”
강민재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럼 빠지라고요?”
“훌륭하네. 기억도 잘하고.”
“아니, 진짜! 아!”
강민재는 발을 광쾅 구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는 턱을 괸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내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 웬만하면 발설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내가 왜 상대방의 말이 진실이라 판단했는지 근거를 마련해두는 게 좋겠다.
이번은 어쩔 수 없지만.
“강 변.”
“왜요.”
“나 믿는다며. 나한테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그랬죠.”
“그럼 내 감도 믿어.”
강민재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생각하는 순간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잠깐 생각 좀 하고 올게요. 이거는 진짜 중요한 거잖아요. 법조인들은 우리 싫어하지만, 다 질투하는 걸 거고. 어쨌든 우리는 굉장히 정의로운 이미지란 말이죠. 근데 갑자기 국민 변태 변호한다고 나서면 한순간에 이미지 나가리예요.”
“하고 와.”
강민재는 쿵쿵대며 베란다로 나갔고, 나는 그가 닫은 노트북을 다시 폈다.
우리에게 맡길지 생각해 보라는 강민재의 말에 정영준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수임하겠다고 했을 때 눈에 띄게 안심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니 그는 내일 다시 연락할 것이다.
그때까지 적어도 이 상황이 일어나게 된 원인 중 몇 가지 가능성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이면지를 앞에 두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적어 내리려는 순간.
“저 생각 다 했어요!”
“이제 3분 지난 것 같은데.”
“……그거밖에 안 됐어요?”
강민재는 머쓱한 듯 뺨을 긁적였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만약에 이거 정말 우리가 정영준 씨 무고하다는 거 밝혀내면 대박인데, 그 대박을 변호사님 혼자 독식하게 두는 건 좀 바보짓 같아요.”
약간은 토라진 듯한 강 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 그냥.”
“아, 아아. 그래요. 맞아요. 변호사님한테 배우겠다고 울고불고 매달려서 들어온 주제에 제가 변호사님 판단을 안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그 감이라는 것도 제가 변호사님한테 배워야 하는 거겠지, 싶었어요! 변호사님은 틀리신 적이 없으니까! 됐습니까?”
강 변이 울고불고 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헛웃음과 ‘아니, 그냥’이라는 말로 강민재의 숨겨진 본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다시 놓았던 펜을 잡았다.
그리고 이면지 위에 펜을 굴리려는 순간, 아주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다.
“강 변.”
“네?”
“그 동영상을 도덕적인 문제 없이 보고 싶어서 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
“아, 아, 아닌데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