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
너희들은 변호됐다-8화(8/641)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아메리카노 한 잔 맞으시죠?”
“네.”
“사무실 정리는 다 끝나셨어요?”
“네, 이제는 업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무실 1층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카페.
요 며칠 사무실을 바쁘게 오가면서 아침마다 들렀더니,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알아보고 살갑게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제 한번 참고인으로 검찰에 왔었던 걸까.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서비스로 사이즈 업 해 드렸어요.”
“고마워요.”
“어, 차 변호사! 오늘 출근이야?”
“사장님, 일찍 나오셨네요.”
“응, 오늘 새 기계 들어오는 날이라.”
이 카페의 사장은 건물 주인인데, 직접 일을 하지는 않고 가끔 매장을 둘러보며 운영하고 있다.
내가 2층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거라는 말을 듣고,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찾아가면 되겠다고 기뻐했었다.
오지랖이 조금 넓은 성격이라, 사무실에 가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슬쩍 와서 이것저것 훈수를 두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자식처럼 챙겨 주는 모양이었다.
“사무실 잘됐으면 좋겠네. 돈 많이 되는 큼직큼직한 사건 많이 맡고 말이야. 하하.”
“감사합니다.”
왠지 계속 받아 주다가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적당히 하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사무실은 썩 마음에 든다.
공인중개사의 말대로 가격 대비 괜찮은 곳이었다.
“흐음.”
깨끗한 책상 앞에 앉아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한동안은 변호사로서 덕망을 쌓는 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수입이 안정되면 프로보노도 진행하고, 남들 기피하는 사건들도 맡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름을 떨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사건도 필요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우신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보다는 변호사협회에 신뢰를 쌓으며 청렴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것.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지겠지.’
훗날 변협의 추천을 받아 우신 특검으로 선발되려면, 지금부터 초석을 다져 놔야 한다.
우선 첫 사건부터 맡아야 뭐든 할 수 있는 거니까.
사무실 전화기를 들고 어젯밤 리스트를 정리했던 NGO단체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프로보노 사건이라도 하나씩 맡아야 홍보가 되지.
* * *
만원 지하철을 경험한 이후로, 대중교통 통근을 포기한 나는 오늘도 이른 아침 운전석에 앉았다.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꽉 막히는 도로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일, 배우 김철환 씨와 배우자인 유명 의사 여희숙 씨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되어 큰 충격을 준 가운데…….]‘이 사건이 이맘때였나.’
지난 4월 1일에 벌어진 사건이라면, 보름 전이다.
한동안 바쁘게 사느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지냈다.
이 나라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살해당하지만, 이 사건만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내가 몸 담았던 형사 3부 담당이라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유명 배우인 김철환과 건강 프로그램에 의학 전문가로 자주 나왔던 여희숙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수사를 진행하느라, 당시 형사 3부 검사들이 진을 뺐었지.
내 담당은 아니어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다만 범인이 몹시 명확했던 것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에 커피를 사려고 1층 카페에 들렀다.
“어떤 거로 주문하시겠어요?”
늘 이 시간에는 ‘변호사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맞으시죠? ’라고 묻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보름째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만둔 모양이다.
계속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쯤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네, 바로 옆에서 준비해 드릴게요.”
커피를 기다리는데,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김철환 여희숙 사건 있잖아. 자살도 아니고 살인이라는 게 진짜 말이 돼?”
“와, 나 그거 아직도 안 믿기잖아. 연예인 살해당했다는 건 또 처음이야.”
김철환 부부 살인 사건은 종결되는 그날까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김철환은 소외 계층 아동들을 위해 오랜 기간 봉사해 왔고, 직접 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하며 입양을 독려했다.
그 아내인 여희숙은 유명한 의사로서 오랫동안 가난한 노인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해 왔고.
‘이맘때쯤 텔레비전만 틀면 김철환 여희숙 이야기들뿐이었지.’
범인은 김철환 부부가 입양해서 키운 양아들이었다.
평소 친아들과 대놓고 차별받았고, 그 때문에 여러 번 부모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이웃 주민과 친형의 증언이 이어졌고, 결국 양아들은 이를 인정하고 1심 선고를 받아들여 징역을 살게 된다.
“여기 커피 나왔습니다.”
“수고하세요.”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더니, 문 앞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사장님?”
“아, 차 변호사. 출근했네.”
“예.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아니, 내가…… 도움이 좀 필요해서.”
“사장님이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보안키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 불을 켰다.
차를 주려고 했더니, 필요 없다며 얼른 상담이나 하자며 성화였다.
어지간히 급한 일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저기 그 탤런트 김철환 부부 살인 사건 얘기는 들었지?”
“아, 네. 보름 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거 용의자로 연준이가 체포됐는데, 차 변호사가 좀 도와줄 수 있나 해서.”
“연준이가 누굽니까?”
“그, 매일 아침 만났던 우리 카페 아르바이트생 말이야.”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트릴 뻔했다.
왠지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그 아르바이트생이 그 집 양아들이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 사건 피고인 이름이 김연준이었지.
“그 친구가 김철환 부부의 양아들입니까?”
“그래. 근데 걔는 그럴 애가 아니야. 정말이야.”
사장까지 나서서 도와 달라고 할 정도면 어지간히도 싹싹하게 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김연준이 자백까지 하는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아무리 건물주 부탁이라고 해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걸 사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뭐?”
“그 김연준이라는 친구가 사장님께 잘 보인 모양인데,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변호사 입장에서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연준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봤던 친구야. 내가 보육원에 봉사활동 다니면서 알던 놈인데, 심성이 워낙 착해서 보육원 동생들이 얼마나 따랐다고. 수녀님도 천사 같은 애라면서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선문답이다.
마음속에 칼을 숨기고 겉으로는 신망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러다가 김철환이 입양해 간다고 했을 때, 착한 놈이라 호의호식하며 살겠구나 싶어 얼마나 기뻤다고. 내 자식 같은 놈이야.”
건물주는 급기야는 눈물까지 찍어냈다.
“그놈, 부모님이 가진 게 많아도 폐 끼칠 수 없다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던 놈이야. 하는 짓이 예뻐서 시급도 올려 주고 그랬었는데……. 차 변호사가 한번 만나 주기라도 하면 안 될까? 응? 그놈 모은 돈도 얼마 안 돼서 변변찮은 변호사도 못 구하고 있어. 국선 변호사라는 놈은 이상한 소리나 찍찍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지 않던가.
이미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건물주의 말을 딱 잘라 거절하기가 난감하다.
“수임료가 문제면, 내가 보증할게. 어차피 연준이 놈 풀려 나면, 그 집 유산도 있을 거고……. 그래, 내가 반절이라도 대신 낼 테니까. 응?”
다 내겠다는 소리는 않더라도, 반절은 부담하겠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생돈 나가는데 저렇게 나설 줄은 몰랐다.
“수임료 문제가 아니라…….”
“만나라도 줘. 만나라도. 응? 차 변호사 유능한 변호사잖아. 조진태 사건도 미궁에 빠진 거 해결도 했고.”
갖다 준 휴지 티슈가 테이블 위에 너저분하게 쌓여 갔다.
눈물 콧물 쏟아내며 사정하는 걸 이대로 넘길 수도 없고.
“알겠습니다. 만나 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고마워, 고마워, 차 변호사!”
* * *
김연준의 공판 기일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로 잡혀 있었다.
접견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도 끊임없이 김철환, 여희숙 부부의 이야기가 나왔다.
내 사건이 아니었기에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이미지가 좋았던 두 사람을 죽인 패륜아에 대한 여론이 몹시 나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만은 똑똑히 떠오른다.
“차주한 씨, 이쪽으로 오세요.”
건물주의 말에 따르면, 국선 변호인은 김연준에게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국선 변호인은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나, 김연준처럼 이미 자신을 입양해 준 부모님을 살인한 패륜아에게 선입견을 가졌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뭐, 나 역시도 찝찝하게 등 떠밀려 접견 온 케이스지만 말이다.
“어, 변호사님…….”
수의를 입고 접견실로 나온 김연준은 며칠 사이에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사장님이 한번 만나라도 봐 달라고 부탁하셔서요.”
“아…….”
사장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김연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장님은 잘 계시죠?”
“김연준 씨 걱정 많이 하십니다.”
“하아. 면목 없네요.”
“간단하게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매일 아침 싹싹하게 커피를 건네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이렇게 막상 마주하니 그 청년이 자신을 입양해 준 부모를 살해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 그지없었다.
“정말 김철환 씨와 여희숙 씨를 살해하셨습니까?”
“…….”
“김연준 씨.”
김연준이 원망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 질문을 하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해한다.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았을 테니까.
“난 경찰도 검사도 아닙니다. 변호사예요. 나한테 무슨 대답을 한다고 해도 김연준 씨한테 불이익은 없습니다.”
내 말에 김연준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나는 저런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 표정이다.
“네, 제가 죽였어요.”
진실일까?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