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0)
너희들은 변호됐다-80화(80/641)
비디오의 내용은 긴말할 것 없이 가관이었다.
이전 삶에서 잠깐 보았던 것만으로도 평범한 섹스 비디오가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영준이 말한 대로, 비디오 속 장소는 호텔이나 레지던스 같았다.
물론 난장판이었기에 제대로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생활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동영상은 비단 눈만이 아니라, 귀까지도 어지럽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빠른 비트의 음악이 울렸다.
시끄럽게 소리지르고, 떠들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얼추 세어 보아도 열은 되어 보이는 수의 사람들이 그 비디오 안에 있었다.
내가 이 비디오가 가장 악의적이라고 느낀 지점은, 그 모든 등장인물 얼굴에 전부 모자이크 처리를 했으면서 정영준만은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그의 나신마저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역시 신이 났는지 가끔 환호성을 지르고 손을 흔들며 그들의 행위를 더욱 종용했다.
단정치 못한 차림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정영준은 그의 말대로, 확실히 제정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도구들로 맞는 모습은 흡사 고문과 비슷해 보였다.
심지어 그럴 때마다 신음을 내는 것만이 그가 취하는 액션의 전부였다.
가끔 ‘흐흐흐’ 하는 웃음소리를 내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내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단순히 만취한 상태라고만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성행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의 정영준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복용한 약 때문인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전혀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섹스 비디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이미 이 비디오 속 행위에 정영준의 의지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데에서 성폭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마약을 먹인 후에 저지른 성폭행.
그러니까, 스너프 필름이다.
“이거 그냥 주취 상태가 아니라 마약을 먹은 것 같아요.”
나와 함께 비디오를 전부 시청한 강민재 역시도 같은 의견이었다.
사실 어려운 추측은 아니었다.
비디오를 보았다던 네티즌 중에서도 마약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물론, 그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도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영준이 그러한 행위를 할 때 마약도 함께 복용하여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게 분명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내 생각도 그래.”
정영준도 아마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술을 마신 뒤 필름이 끊겼다고 해도, 자신이 평소 어느 정도까지 망가지는지는 알 것 아닌가.
게다가 마약한 것 같다는 댓글을 접하지 않았을 리도 없다.
처음 며칠 동안은 댓글을 찾아보았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정영준이 우리에게 마약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그것마저 사실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에게 어느 정도 회피 성향이 있다는 것은 오늘의 대화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카메라로 찍은 사람, 그 사람이 아마 범인이겠죠? 웃음소리가 아주 크던데.”
“노이즈하고 음악 때문에 웃음소리도 제대로 들리진 않았어.”
“맞아요. 화질도 뭐 딱히 좋지는 않고……. 그런데 찍는 사람이 정영준 씨한테 가까이 다가가서 카메라를 얼굴에 들이대고, 몸을 훑고 하는 걸 보면 처음부터 이 비디오를 공개할 생각으로 찍은 것 같네요. 재미로 찍은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고요.”
“재미로 찍은 것처럼 보이게 연출한 느낌이 더 크지. 마치 파티를 즐기는 것처럼 해 놨잖아. 평소에도 이런 파티를 하는 것처럼, 그 수많은 날 중 하루를 카메라에 담아본 것처럼. 정영준 씨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게.”
비디오 속의 다른 것들은 화질과 조명 탓으로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에는 정영준만은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창문에 비치는 것이나, 그 장소에 놓인 물건들로 무언가를 유추해 볼 생각이었지만 그조차도 마땅치 않았다.
스탠드와 간접 조명만 켜 둔 채, 다소 컴컴한 데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더욱 화질이 나빴다.
“이거는 잡으려면 경찰이 진짜 이 악물고 찾아 줘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강민재의 말을 들으며 팔짱을 끼었다.
이전 삶에서, 정영준은 결국 고진아가 바라던 대로 협의 이혼을 한다.
그 과정에서도, 그 이후로도 정영준의 섹스 비디오를 유포한 사람을 잡았다는 소식은 접한 적이 없다.
특히나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 오 계장도 별말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 맞을 것이다.
그의 처가 양진 그룹에서 경찰에 묘한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일을 벌인 사람이 처가든, 경쟁 기업이든,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주변인이든, 양진 그룹 입장에서는 정영준이 불쌍해지는 상황을 원치 않을 테니까.
이미 버린 정영준이 사실은 억울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역풍을 맞지 않겠는가.
남편을, 사위를 믿지 못하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팽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설마 그 정도까지 하겠느냐는 의문이 있을 만도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재계 7위인 양진 그룹의 고상경 회장이 그 정도 입김도 넣지 않는다면 그가 공들여 쌓은 재계 서열 타이틀이 운다.
“동영상에 발코니도 있고, 테이블에 유리도 있고. 비치는 데가 없는 건 아니니까 화질만 좋았다면 찍는 사람 실루엣이라도 건졌을 것 같은데.”
“기술이 이렇게 발달한 2009년에 이따위 화질이라니. 일부러 화질을 뭉겠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정영준 씨 얼굴만 제대로 나오면 되고, 그건 클로즈업하면 화질이 구려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위험하게 유추할 수 있는 화질로 동영상 올렸다가 들키면 곤란하잖아요.”
나는 문득, 몇 년만 지나면 드라마 주인공 모공 갯수까지 헤아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2009년의 카메라 화소로는 기술 발달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해 주고 싶어졌다.
뭐, 어쨌든 그 비디오 화질이 2009년 기준으로도 매우 나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에 대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건 그의 웃음소리와 손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노이즈와 화질 문제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정영준 씨가 저 비디오를 찍은 사람을 찾는 데에만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제대로 수사망도 좁히지 못한 걸 보면 저 동영상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누군지 잘 모르겠는 모양이야.”
“그렇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는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열등감을 느낀 주변 사람 이야기도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솔직히 많을 것 같은데. 사람이 살다 보면 남하고 척을 지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런데 그 척 진 놈이 갑자기 재벌가에 장가가서 대기업 이사 됐다고 하면 눈 돌아갈 만하죠.”
내가 양진 그룹을 가장 의심하는 것처럼, 강민재는 주변 사람을 가장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와 나의 생각이 합치되지 않는 것은 나쁜 징조가 아니다.
시야를 좁게 가지는 것보단 넓게 가지는 것이 나으니까.
“아, 그렇지. 정영준 씨가 결혼하기 전에 운영했다던 양식당 말이야.”
“네.”
“거기 아는 형하고 동업했다고 했었지?”
“네, 그랬죠.”
“그럼 그쪽부터 파 보는 게 좋겠는데.”
사람이 사람과 척 지는 데에 이유가 특별히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의적인 비디오를 찍어 유포할 정도라면 보통 원수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런 원수는 돈 때문에 생긴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도 돈 때문에 평생 얼굴 안 보고 사는 일이 허다한 세상이다.
단순히 꿔간 돈을 안 갚기만 해도 발생하지만, 더욱 빈번히 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사업이다.
함께 동업했다면 작게라도 분명히 돈 문제가 얽혀 있었을 것이다.
고용 형태가 아니기에, 최소한 사업의 방향성 때문에라도 다퉜을 터.
그런 게 하나둘 쌓이다 보면, 동업자에서 원수 되는 것은 흔한 사례다.
거기에 열등감까지 더해진다면?
나쁜 의미로 금상첨화였다.
“음, 그렇네요. 확실히.”
강민재는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보기 전까진 단정할 순 없고. 그 사람 연락처 확인되는지 정영준 씨한테 물어봐.”
“근데 우리가 만나서 물어본다 치면, 그쪽에서 거짓말할 확률도 있잖습니까. 정영준 씨한테 원한이 있는데 없다고 한다거나.”
“그러니까 만나기 전에 조사 먼저 해야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방금 생각해 봤는데. 정영준 씨 치정 관계도 한 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뭐, 결혼한 지 7년이나 되긴 했지만, 결혼 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 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 여자 친구랑 사귀다가, 갑자기 재벌 상속녀한테 넘어가서 앙심을 품었다거나?”
수사는 상황에 맞는 ‘소설 쓰기’로부터 시작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지만, 강민재의 상상력은 내 생각보다 과도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정영준 씨의 전 애인들에 대해서는 화제 나온 게 없지만, 뭐. 알아봐서 나쁠 건 없지.”
“음, 그럼 일단 전 정영준 씨하고 약속을 한 번 더 잡아 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좀 자세히 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당장은 안 잡는 게 나을 텐데. 오늘 상태 봤잖아.”
강민재는 내 말에 동의했다.
오늘 신경정신과 상담을 권하며 피해 입증에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으니, 정영준도 빠른 시일 내에 정신과를 방문할 것이다.
제대로 사고하지 못해 의심 가는 목록 하나 제대로 읊을 수 없는 정영준이다.
텀도 없이 만난다면 자신의 의지보다는 변호사가 제시하는 가정에 따라가기 급급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검사 시절에도, 지금도 여러 피해자와 참고인들에게서 자주 접한 모습이다.
그들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들의 일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난처하기 짝이 없다.
“그래야겠네요. 일단 동업자분 이야기는 유선상으로 물어보려고요. 그 후에 좀 안정됐다 싶으면 만나서 주변 사람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봐야죠. 변호사님도 확인 못 하신 거 있으시면 제가 전화로 같이 물어볼게요.”
의뢰인 입장에서도, 자신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변호사 두 명이 번갈아가며 자꾸 전화하면 귀찮고 성가실 것이다.
하지만 당장 정영준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를 얻어 내는 것은 힘들 거라 여겨진다.
지금 정영준은 변호사가 조사할 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직은 없어.”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넵. 아, 그리고 이번에 태식 씨 찬스 좀 써야 할 것 같은데요.”
강민재의 말에, 나는 방금 연 휴대폰에 입력하고 있던 태식의 번호를 보여 주었다.
나도 마침, 장태식 찬스를 쓰려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