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3)
너희들은 변호됐다-83화(83/641)
“변호사님, 계십니까아.”
태식에게 일을 맡긴 지 사흘이 지나고, 그는 또다시 연락 없이 사무실을 찾아 왔다.
“태식 씨!”
때마침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강민재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칼퇴근을 방해한 존재를 저렇게까지 환영해 주는 것을 보니, 강 변에게도 일 중독 증세가 보이는 듯하다.
“막 퇴근할 참이었는데, 조금만 늦으셨어도 빈 사무실일 뻔했어요.”
강 변은 실실 웃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 앉는 태식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내 용건은 국정원에게 있으니, 아마 임형오에 대한 조사 결과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시선으로 좇으며 실실 웃는 것이, 마치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임형오 찾았어?”
“당연하죠. 근데 좀 상태가 메롱이던데요.”
태식은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강민재는 재빨리 서류 봉투 안의 내용물을 탈탈 털어 냈다.
그 안에는 임형오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와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인적 사항이야 이미 알 만큼 아니 넘어가더라도, 사진은 그럴 수가 없었다.
상태가 나쁘다는 태식의 말처럼, 사진 속 그는 일전에 사진으로 접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도박 중독이에요. 강원랜드 죽돌이.”
“허어, 정영준 씨한테 듣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요.”
정영준은 우리가 임형오를 의심한다는 것을 안 뒤로, 이따금 전화를 걸어서 임형오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곤 했다.
아마 그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의 마지노선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었다.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정영준의 목소리에서는 처절함마저 비쳤다.
“성실하고, 돈 욕심 없고, 성격 좋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강원랜드에 죽치고 있다니. 갭이 너무 큰데.”
나는 정영준이 말한 임형오의 성품을 떠올려 보았다.
태식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다.
성실하고 성격 좋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돈 욕심 없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었다니.
조금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지금 소재지는?”
“강원랜드 주변 모텔이요. 오늘 낮에 전당포에 시계를 맡기던데요. 전당포 주인 말로는 아주 단골 중의 단골이랍니다. 얼마 전에는 맡길 게 없었는지 자기 오리털 잠바 20만원 주고 산 건데 그건 안되냐고 했답니다.”
사진 속의 임형오는 퀭한 눈에 머리는 산발을 한 채였다.
취식한 지 오래된 사람처럼, 비쩍 마른 몸은 마치 해골을 연상시켰다.
“모텔에 달세 내고 지낸다는데, 지금 그 달세도 이제 못 내나 봐요. 모텔 주인이 아는 사람이면 달세 대신 내고 좀 데려가라고 합니다. 참나.”
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강원랜드 붙박이가 된 건데?”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보니, 가장 오래 봤다는 사람이 일 년 봤답니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더라고요. 그리고 빠빠 파스타인가? 같이 하던 식당은 정영준 나가고 2년쯤 뒤에 문 닫았다네요.”
“비바 파스타요.”
“빠빠나 파스타.”
정영준은 임형오가 자신이 나간 뒤에도 대출을 받아 장사를 계속했다고 했다.
반씩 투자해서 하던 장사였으니, 어쩌면 갑작스레 그 반이 대출로 전환되자 유지하기 버거워 장사를 접었을 수도 있겠다.
한국대 앞이면 상권이 크게 발달한 곳이고, 그만큼 임대료도 높을 테니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정영준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재벌집 사위가 되어 더는 동업할 수 없게 된 정영준이 원망스러을 수는 있겠지만, 섹스 비디오를 제작해 유포할 정도의 원한이 쌓일 일은 아닐 듯하다.
무엇보다, 정영준이 결혼한 후 2년 뒤에 장사를 접었다고 하고, 비디오가 유포된 것은 결혼한 후 7년이 지나서다.
5년이라는 세월은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 충분한 시간이다.
아닐 수도 있겠는데.
“아, 제일 중요한 건데 말씀을 안드렸네요. 임형오가 정영준 욕을 겁나 하고 다닌답니다.”
“정영준 욕?”
“네. 얼마나 정영준 욕을 하는지, 전당포 할배하고 강원랜드 딜러도 알더라니까요. 근데 아무도 주의 깊게 들은 것 같진 않아요. 뭐라고 욕하냐고 물었더니 돈 어쩌고저쩌고 한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래?”
“네. 아, 그리고 뭐 당연하겠지만 사채도 좀 썼더라고요. 원금은 오천이고, 지금은 1억쯤 되던데요.”
정영준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사건이 없었다고 말했고, 유선상으로 오간 대화라 능력을 쓸 순 없었지만 거짓인 것 같지 않았다.
만일 사건이 있었다면 정영준이 이를 숨길 리도 없거니와,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평가가 후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종의 이유로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정영준은 모르는 임형오만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사채까지 쓰면서 빈곤하게 사는 그가 그런 대인원을 동원해서 비디오를 찍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어찌 됐든 만나 봐야겠네.”
“모텔 주소 거기 서류에 있습니다.”
“강 변.”
“네?”
“퇴근 취소. 강원도 가자.”
* * *
“강원도 하니까 막국수하고 감자전이 딱 생각나네요. 우리 내려가기 전에 막국수 어때요?”
“그러든지.”
태식이 알려 준 모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카운터에 앉아있는 노인은 텔레비전을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임형오와 아는 사이면 밀린 달세를 내고 가라고 했다던 태식의 말이 떠올라서, 굳이 말을 붙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어쩌면 임형오는 지금 카지노에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사북의 밤거리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선 문을 두드렸다.
“아무 말도 없는데요. 여기 오면서 전화 계속 걸었는데 안 받았잖아요.”
임형오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부재중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태식의 직원들이 오늘 낮까지 그를 사북에서 보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그에게는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도 충분히 있었다.
지금 상당한 강도의 빚 독촉을 받고 있을 것이다.
임형오가 오리털 파카까지 전당포에 맡기려 했다는 것을 보면, 마른 걸레 쥐어짜듯 어떻게든 돈을 융통하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일수꾼이나, 주변 지인들에게도 손을 벌렸을 테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가 올 것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꺼 놓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흠, 반응 없네요. 다른 소리도 안 들리고.”
문에 귀도 대 보고, 기다려도 봤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미 카지노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카운터 할아버지한테 나가는 거 보셨냐고 물어보고 올까요.”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져 있던 노인이 알까 싶긴 했지만, 달세가 밀린 요주의 인물이니 감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어보고 와.”
강민재가 1층으로 내려간 지 10분쯤 지났을까.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층계 아래서 강민재와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노인은 굉장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아까 흘긋 보았을 때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는데, 그사이 기분 좋은 일이 있었을까.
“변호사님, 할아버지가 문 따 주신대요!”
강민재가 내 옆에 서며 말했다.
노인은 열쇠 꾸러미를 한참 동안 뒤졌다.
그러다, 마침내 찾은 열쇠를 구멍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암, 밀린 달세 다 내줬는데 뭔들 못 따 줘! 그냥 하늘의 별도 따다주지.”
“아, 할아버지.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요…….”
이런.
강민재가 노인의 가장 큰 근심을 덜어 준 대가인 모양이다.
돈을 쉽게 쓰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다소 경솔한 행동이었다.
“강 변. 그런 방법을 쓰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게, 할아버지가 저를 빚쟁이로 아시고 달세 먼저 받기 전까지는 못 알려 준다고 하셔서요. 어쩔 수 없이…….”
“아, 당연히 빚쟁이로 알지! 여태까지 그 방 문 따 달라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는 줄 알아? 싹 다 빚쟁이였다고. 만약에 그놈이 카지노서 딴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 빚쟁이한테 홀랑 갚아 버리면 어떡해? 밀린 달세 먼저 갚아야 하는데!”
노인은 강민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문을 열어젖혔다.
“야, 이 호로잡놈의 새끼야! 너 또 장롱에 숨어 있냐?”
노인은 불이 꺼진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더니, 불을 켜고 장롱을 부술 기세로 열었다.
그러자 쌓인 이불과 함께 비쩍 마른 임형오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몇 달은 빨지 않았을 것 같은 퀴퀴한 이불 냄새는 덤이었다.
“이렇게 찾았으니 된 거잖아요. 돈 쓰길 잘했죠?”
강민재는 임형오를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모텔비 낸 거 영수증 받아 놔.”
“그냥 제 사비로 할게요. 변호사님 허락받은 것도 아니니까.”
“영수증 받아 놔.”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며, 임형오에게 다가갔다.
밀린 달세를 다 받았어도 임형오를 향한 괘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지, 노인은 그를 향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우선 노인을 내보냈다.
그리고,
“씨발, 돈 없다고 개새끼들아!”
그 틈을 타 잽싸게 도망치려는 임형오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여줘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뭐? 내 통장 잔고 여쭤보러 왔냐? 없다고! 한 푼도 없다고! 근데 처음 보는 새끼들인데, 어디서 왔어? 뉴 페이스 보내면 누가 모를 줄 아냐? 누굴 바보 등신으로 아나.”
비쩍 마른 그는 강민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빚 받으러 온 건 아니고, 여쭤볼게 있어서 왔습니다.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아, 백 사장이 결국 나 고소했나 보네? 야, 어쩌냐. 나 이미 파산 신청했는데? 메롱메롱이다, 이 새끼들아.”
“임형오 씨.”
“뭐!”
“저희는 정영준 씨에 대해서 여줘보러 왔습니다. 임형오 씨 빚에는 관심 없고요.”
혀를 날름거리며 ‘메롱’을 연사하던 임형오는, 정영준이라는 말에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누, 누구?”
“정영준 씨. 양진 그룹 정영준 씨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