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6)
너희들은 변호됐다-86화(86/641)
“칼같이 오셨네요. 아니, 오후에 나오시지 아침부터 오셨어요? 잠도 못잤는데.”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국정원이 머무는 노래주점으로 찾아갔다.
우리를 맞이하는 국정원은 꼬질꼬질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얼른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가 청소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노래주점은 놀랍게도 일주일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더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청소 좀 하시면 안 될까요. 진짜 비위 상하네요.”
노래주점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바깔에 내놓은 짜장면 그릇을 밟은 강민재가 참다못해 말했다.
국정원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걸 어떻게 청소해요.”
“업체 쓰세요! 이사 청소 업체!”
“이건 특수 청소시켜야 할걸.”
내가 덧붙이자, 국정원이 허허 웃었다.
“딱 알아보시네. 이사 청소 업체가 견적 보더니 못 하겠다고 나갔어요.”
“근데 국정원 씨는 왜 노래주점에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강민재는 바닥에 깔린 쓰레기를 밟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있는 집 자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련님이 따로 없다.
“가정용 전기로는 내가 쓰는 전기가 워낙 많아서 전기세 감당이 안 되고. 또 여기 임대료가 워낙 싸게 나온 것도 있고요. 봐요. 여기 주변에 사람도 안 다니는데, 장사가 되겠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노래방은 뭔가 간판에 불이 안 들어와 있으면 들어가 보기 꺼려지기도 하고.”
“처음엔 리모델링을 좀 할까 싶었는데, 돈도 아깝고. 어차피 방도 많이 필요한데 마침 방도 잔뜩 있고. 좋잖아요.”
“방이 왜 많이 필요합니까?”
“장비가 많아서. 하여튼 이리 들어오세요. 저번에 하도 기겁하셔서 조금 치워 놓긴 했는데.”
국정원이 VIP룸 문을 열자, 강민재는 조금 기대를 했는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치워 놓은 거 맞아요?”
“셋이 앉을 정돈 되잖아요.”
그는 당당히 벽에 붙어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기다란 노래방 소파는 저번에 봤을 땐 쓰레기가 가득해서 한 명 앉기도 버거워 보였는데, 그의 말대로 어떻게든 좁혀 앉으면 셋이 들어갈 공간은 생겨 있었다.
“일단 밝기 조정도 하고, 화질도 복원해 보긴 했는데요. 만족하실 만큼인진 모르겠네요. 일단 옆에 있을 테니까 군데군데 뭔가 더 밝게 보고싶다든가 한 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올려 드릴 테니까.”
국정원은 온갖 폴더로 뒤덮인 바탕화면 한구석에서, 동영상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
“오. 확실히 낫네요, 진짜.”
첫 장면이 나오기가 무섭게 강민재는 감탄했다.
어두운 곳에서 찍은 탓에 깨져 보였던 부분들이 확연히 선명해졌다.
게다가 프레임이 끊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곳들도 매끄럽게 수정되었다.
“이게 재생, 이게 뒤로 감기, 이게 앞으로 감기. 빨리 보기, 천천히 보기, 일시 정지.”
국정원은 빠르게 사용법을 설명해주고는 쓰레기가 가득한 소파 위에 대충 담요를 깔고 앉았다.
“남자 셋이 버글버글 앉아서 야동보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는 괜히 머쓱해졌는지 중얼거리고는 드러누웠다.
저 담요도 빨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전염병이 걸릴지도 모른다.
빨리 동영상을 확인하고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방금 거기, 4분 53초. 발코니 창문 맞는데?”
“아, 그러네요.”
이미 여러 번 보았던 동영상이라, 몇 분쯤에 어떤 장면이 나오는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국정원에게 동영상을 맡긴 후 집중적으로 살펴볼 구간들을 메모해 둔 상태였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체크했던 부분은 얼핏 중간중간 보였던 발코니 문 앞이었다.
발코니 쪽으로는 통창이 나 있어서, 카메라맨이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근데 자세히는 안 보이네요. 그냥 까맣게 인영으로만 보여요. 다행히 실루엣은 좀 구체적이긴 하네요.”
“창에 비친 카메라 크기로 봐선, DSLR로 촬영한 것 같은데. 카메라가 꽤 커.”
“아! DSLR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다. 그 동영상 파나텍 DSLR로 촬영됐어요. 을해 나온 새삥 같아요. 그 모델 최장 동영상 촬영 시간이 23분 59초거든요. 그래서 그 동영상도 23분 59초에서 끝나요.”
“파나텍이면, 뭐 누구나 들고 다니는 카메라네요.”
“그렇죠.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나온 지 얼마 안 된 거라도 다 들고 다니니까. 그 시리즈 한국에서만 2만 대는 팔렸을걸요. 기자들이 들고 다니는 카메라도 다 파나텍 거잖아요.”
“DSLR치고는 원본 화질이 너무 구린데, 일부러 뭉갠 거죠?”
“네. 인코딩하면서 전체적으로 품질을 낮춘 것 같은데요.”
DSLR 대비 인영의 크기가 매우 크다.
덩치가 좋은 남자일 듯하다.
“렌즈를 얼마나 긴 걸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비율 맞춰 봐도 키는 아주 크겠는데.”
“그 이상일 것 같네요. 바디랑 렌즈 길이랑 봤을 때, 발코니 창이 약하게 위아래로 납작해 보이는 왜곡이있거든요? 그걸 감안하면 180은 무조건 넘을 것 같은데. 저는 190 이상으로 봅니다. 키 큰 멸치과도 아니고, 건장한 체격일 것 같고.”
국정원은 아예 나와 강민재 사이로 끼어들어 제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유심히 보던 장면을 캡처했다.
“여기서 카메라가 위아래로 계속 움직여서 많이 흔들려 보여요. 정영준 씨하고 여자들이 몰려 있는 침대 근처인데. 혹시 저기가 호텔이면 침대에 호텔 로고라도 인쇄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강민재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국정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부분을 확대했다.
이미 침구는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지만, 침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놓인 콘솔 같은 데에 어메니티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카메라맨 새끼가 음악 틀어놓고 신나서 자꾸 춤을 춰 가지고 흔들리는 거예요.”
중간중간 ‘훠어!’ 하는 카메라맨의 환호성도 들렸으니, 확실히 신나 보이기는 했다.
“혹시 성문 분석도 할 줄 알아?”
“그건 못하는데요. 지금 저 남자 환호성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럼 성문 분석해도 못 찾아요.”
“왜?”
“목소리를 조금 변조해 놨어요. 티 안 나게. 그래서 틀어 놓은 배경 음악이 중간중간 플랫되는 것처럼 잠깐 낮아지잖아요. 그게 노이즈 낀 게 아니라 중간중간 자기 목소리 들어가는 데마다 목소리 필터를 껴 놔서 그래요.”
“음소거 하는 게 나을 텐데, 왜 굳이 소리를 넣어 놨을까요?”
“중간중간 음소거 하면 사람들이 흥미를 잃거든요. 그래서 그, 할리우드 스타 섹스 비디오도 보면, 그 관계하는 소리를 계속 반복시켜 놓은 영상들이 많아요. 영상 길이에 비해 따놓은 사운드가 짧아서.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중간에 사운드가 비면 보는 사람이 짜증 나니까.”
“와, 그런 계산이 있을 수가 있군요. 치밀하네요, 나쁜 놈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카메라맨도 소리 안 지르고 조용히 있거든요? 아마, 누군가 주의 줘서 그런 것 같아요. 사운드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국정원이 신나게 설명하는 동안, 강민재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을 받고 있던 국정원은 문득 신경 쓰였는지,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야동 쪽으로 되게 해박하시네요.”
“아니……. 무슨 소리예요, 이 사람아.”
이 동영상을 단순히 고발 매체보다는 정말 포르노로 소비하길 바랐다면, 국정원의 말대로 음소거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영준의 이미지를 정말 바닥에 처박으려는 계산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발 매체 속 주인공이 아닌, 정말로 변태적인 행위를 즐기는 존재 그 자체로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범인은 이 동영상 하나에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다.
“아, 됐다. 확대했어요. 이게 한계네요.”
구시렁거리면서도 손으로는 바쁘게 작업을 이어 가던 국정원은, 침대 주변을 확대하여 화면에 띄웠다.
무늬 없이 흰 침구라 숙박업소일 확률이 크다고 보았는데,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이 정도 크기의 방이라면 웬만하면 침대 옆에 조명 마스터 버튼이 있을 텐데,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스탠드 아래 놓인 무선 전화기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기종이 아니었다.
가정용 무선 전화기다.
“저 무선 전화기 액정까진 확인 못하나?”
“그건 좀. 더 확대해도 안 보여요.”
액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다.
“장면 넘겨 봐.”
중간중간 단서가 나을 것 같은 부분들은 죄다 멈추고 확대해서 살피는 식으로 작업을 계속했지만, 별다른 단서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양진 그룹을 용의자로 상정하고 살피는 상황이라, 뭐라도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애초에, 동영상을 찍기 전에도 자신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꽤 공을 들였을 것이다.
“23분으로 가 봐. 원본 동영상 끝 쯤에서 침대 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뭔가 신호하는 것처럼 손을 저었던 것 같거든. 거기 좀 확인해야겠어.”
“손이요? 손이 나왔었어요?”
강민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빠르게 지나가서 긴가민가했는데, 맞는 것 같아.”
“그런 게 있었나? 흠, 근데 손이라고 하더라도 뭐 엄청난 흉터나 문신 이런 거 있지 않은 한 뭐 건지기 힘들 텐데요. 지문 같은 거 보일 정도로 화질 높이는 건,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못 해요. 태식이 새끼한테 들으니까 변호사님은 검사 하다가 관두시고 개업하신 거라던데. 이제 검사가 아니니까 지문 조회도 못 하시잖아요.”
“그만 떠들고 해 봐. 뭐라도 봐야하니까.”
“넵. 닥치겠습니다. 음, 이쯤이죠?”
“거기서 느리게 재생해 봐. 최대한 느리게.”
정영준과 여성들이 모인 침대를 찍던 렌즈의 방향이, 이제 촬영을 끝내려는 듯 아래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카메라맨의 손이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처음 접했던 원본에서는 화질이 워낙 나빠서 아무런 특징 없는 손으로만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이거…….
건진 게 없진 않은데.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하얗고 긴 거. 저거 반지 같아.”
연속 사진을 빠르게 돌려 본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천천히 돌아가는 동영상을 보던 내가 말했다.
“어? 그러네요. 마지막 부분이라 변호사님 오시기 직전까지 만져서 제대로 못 봤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20만 원 깎지 마세요.”
“반지나 확대해 봐.”
“넵.”
“저 반지 무조건 자세하게 화질 복원해 봐.”
“네, 네. 알겠습니다요.”
국정원은 성의 없이 대답한 것과는 달리, 꽤 몰두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아까 침구 주변을 확대한 것보다 더 많은 작업을 요하는지, 그는 동영상 프레임을 나누어 돌려보며 한참 동안 몰두했다.
“아, 진짜 최선입니다. 이게 끝.”
국정원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뻗으며 말했다.
나와 강민재는 화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커플링처럼 생겼네요. 반지 낀 위치도 딱 커플링 자리고. 남자가 혼자 액세서리용으로 낄 것 같은 디자인도 아니에요.”
강민재가 말했다.
커플링과 액세서리용 반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꽤 큰 도움이었다.
“레터링한 것 같은데요?”
강민재는 마우스 포인터로 반지를 둘러싼 거뭇거뭇한 무늬를 가리켰다.
“국정원 씨, 화질 더 좋게 안 됩니까? 이름으로 레터링 했을 수도 있는데.”
“안 돼요. 진짜 한계예요.”
국정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픽 기절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강민재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흐음……. 어디 보자. 무늬가 일정 하지 않은 거 보면 백 프로 레터링이고, 여기, 여기, 여기. 무늬가 큰거 보면 여기 세 군데가 대문자 같아요. 근데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긴 한데.”
그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내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름이 긴 사람일 수도 있지. 남궁, 제갈, 독고 같은 긴 성이나 이름이 세 글자 이상이든가.”
“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그리고 가운데 보석인지, 큐빅인지. 이거 파란색 같은데.”
“파란색이면 이상한가?”
“커플링으로 흔하진 않죠. 그리고 레터링도 들어가 있는 거 보면……. 이거 맞춤 디자인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