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7)
너희들은 변호됐다-87화(87/641)
“변호사님 말씀대로 이름이 긴 사람이라고 가정하면, 좀 더 찾기 편할 것 같아요. 다행이다.”
“양진 그룹으로 범인을 특정하면, 양진 그룹 내에서 이름이 긴 사람을 찾아내면 되니까.”
“아, 근데 생각해 보니 커플링에는 보통 서로의 이름을 새기는데. 카메라맨 본인이 아니라 애인 이름일 것 같아요. 어쩌면 이름이 아닐 수도 있어요. 사랑에 대한 영어 글귀나 라틴어 문구 새기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래?”
노래주점에서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가면서도 계속 그 동영상 이야기가 이어졌다.
반지 디자인과 카메라 맨의 키가 190정도 된다는 정보를 얻은 것은 꽤 큰 성과였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키가 175cm인 것을 감안하면, 190cm는 매우 눈에 띄는 수치다.
농구 선수 중에도 180대가 많지 않은가.
“일단 정영준 씨한테 그 반지 본 적 있냐고 물어보고, 키 190 정도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냐고도 물어보면 될 것 같아요.”
강 변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뭐가 됐든 제발 찾았으면 좋겠네요. 우린 사무실로 갈까요?”
큰길로 들어선 강민재가 물었다.
나는 그러자고 대답한 뒤, 휴대폰 꺼냈다.
어제 정영준의 상태가 불안정했던만큼, 의미 있는 단서가 나왔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하지만 정영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30분.
평범한 사회인은 이미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각이지만, 어쩌면 정영준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속 전화 안 받아요?”
“그렇네.”
나는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 때라, 번화가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식당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는, 잠시 어제 생각을 했다.
“어제 정영준 씨를 만난 게 오전 10시잖아. 강 변이 만날 수 있냐고 전화했을 때가 9시 좀 안 돼서였는데 그때 7시에 일어났다고 했고.”
“그랬죠? 보통 7시에 일어나니까 그 시간 이후로는 아무 때나 연락달라고 하던데요. 평생 아침에 일어나 버릇해서 그런지, 완전히 아침형 인간이라고. 푹 자고 싶어도 그게 안 된다고 했는데.”
불안한 징조였다.
여태까지 정영준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항상 통화 연결음이 세 번 이어지기 전에 받았다.
마치 휴대폰을 늘 지척에 두고 지내는 사람처럼 말이다.
차라리 자고 있어서 못 받은 거면 좋겠는데.
“진짜 자는데 전화했다가 괜히 오랜만에 푹 자는 거 방해하는 건 아닐까요?”
내가 다시 정영준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띄우는 것을 본 강민재가 물었다.
나는 휴대폰을 귀로 가져가며 대꾸했다.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혹시 모르잖아. 이게 어떤 징조일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가 놓치는 것보단 낫지.”
그 뒤로 전화를 12번 정도 더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느덧 차는 강남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강민재에게 말했다.
“정영준 씨 오피스텔로 가자.”
“네? 전화 안 받아서요?”
“혹시 모르니까.”
어제 헤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영준에게서 단 한 통의 메시지도 없었다.
그간 꽤 자주 ‘고생이 많으십니다’. ‘너무 불안하네요. 좋은 결과가 있겠죠?’, 같은 메시지를 보내곤 했던 그인데 말이다.
게다가 우리와 만난 뒤, 헤어지고 나면 꼭 ‘도움도 못 되고 늘 약한 모습만 보여서 죄송합니다. 두 분은 정말 열심히 해 주시는데. 저도 마음 잘 잡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떠난 뒤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본 뒤 후회하고 다짐하며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개 그를 안심시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어제는, 그에게서 문자도 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가 봐.”
불안감이 일었다.
근거 없는 불안감은 아니었다.
정영준이 하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차 대 놓고 정영준 씨 집으로 와.”
나는 오피스텔 입구에서 내린 뒤, 그의 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오늘따라 느리게 내려오는 듯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몇 번 더 확인했다.
혹시나 내가 뛰는 동안 벨소리를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정영준이 머무는 19층에 도달하여 나를 뱉어 내었다.
나는 그의 현관문 앞에 다다라 초인종을 눌렀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초인종을 몇 번 더 연속해서 눌렀다.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정영준은 초인종 소리가 너무 크다며 불평했다.
그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이 정도라면 자던 사람도 벌떡 일어날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초인종을 이렇게나 많이, 오랫동안 눌렀는데 자고 있었던 거라면 지금쯤 깨서 문을 열어 주었어야 한다.
‘외출했나.’
아니다.
그는 외출하지 못 한다.
아무리 꽁꽁 싸매고 다녀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정영준은 마치 나가면 전염병이라도 옮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편집증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오피스텔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만일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동생에게 부탁했을 텐데.
“정영준 씨!”
현관문을 두드리며 초인종을 더 눌러 봤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나는 다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전에 그와 함께 사무실을 방문했던 그의 동생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녀는 정영준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혹시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 달라며 알려 준 번호였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자고 있었는지,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동생의 목소리는 깊이 잠겨 있었다.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정영준 씨 변호 맡은.”
-차주한…… 아, 변호사님. 죄송해요.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오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혹시 정영준 씨 오피스텔 비밀번호 아십니까?”
-네? 오빠 오피스텔 비밀번호요? 그건 왜……. 오빠한테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잠기운이 서려 있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녀는 몹시 빠르게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비밀번호 먼저 알려 주십시오. 급한 상황이라, 나중에 차차 설명 드리겠습니다.”
-어, 어, 잘 모르겠는데……. 어, 아! 새언니 생일일 거예요. 오빠 통장 비밀번호도 새언니 생일이라…….
“고진아 씨 생일이 언제죠?”
-제가 지금 검색해 볼게요. 아, 찾았다! 0730!
나는 어깨로 전화기를 옮기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렸다.
-변호사님, 여신 건가요?
“나중에 연락드리죠.”
나중에 강민재가 들어와야 하니, 현관문은 스토퍼를 내려 열어 두었다.
그리고 나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한눈에 정영준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잠시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거실에서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드레스룸인 듯했다.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곳에서 빠져나와 옆방 문을 열었다.
‘여긴 화장실이고……’
복도를 따라 조금 걸으니, 가장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방 문고리를 잡았을 때,
콰다당!
안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 안에 정영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문고리를 아래로 내렸지만, 무언가에 걸린 듯 뻑뻑하기만 했다.
문을 잠근 것이다.
문고리를 잡고 앞뒤로 흔들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나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있는 힘껏 체중을 실어 발로 문을 걷어찼다.
“커억, 크큭, 윽…….”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커튼 봉에 묶인 호스에 목을 맨 정영준이었다.
그의 발밑에는 의자가 쓰러져 있었다.
내가 문 앞에서 들은 소리는 정영준이 저 의자를 발로 차는 소리였으리라.
“정영준 씨!”
나는 그에게 달려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두 다리를 안았다.
그리고 그의 목이 호스에 눌리지 않도록 들어 올렸다.
“크윽, 흑, 윽.”
머리 위에서 정영준의 신음이 들려왔다.
“정영준 씨. 정신 차리세요. 정영준 씨!”
“흐윽, 흐…… 허억, 허억!”
여전히 그의 두 다리 안아 든 채 나는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오른 정영준이 쉬지 않고 기침을 토해 냈다.
너무 기침이 오래 이어져, 혹시 내가 그를 충분히 들어 올리지 않아 아직도 목이 압박되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정영준 씨, 괜찮습니까?”
“허억, 크극, 변, 변호사님, 헉, 허!”
다행이다.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눌려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만일 그가 건장한 체격이었다면, 의자를 차기 무섭게 목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가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상황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어쨌든 빨리 그의 목에 건 줄을 잘라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호스가 다시 그의 목을 있는 힘껏 짓누르고 조일 것이다.
-정영준 씨! 변호사님!
그때였다.
방 밖에서 강 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쪽 가장 끝 방이야!”
내가 소리치자, 그의 발소리가 이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허억, 변호사님, 놔, 헉, 놔 주세요.”
“정영준 씨, 무슨 말씀이십니까.”
“놔, 주세요, 제발…….”
그는 아주 간절하게 말했다.
그를 달래야 할까.
나는 허공에서 팔을 휘젓는 정영준을 바라보며 그 짧은 시간 깊이 갈등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저, 허흑, 저 죽고 싶어요.”
“저희는 고생하는데, 정영준 씨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죠.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흑, 흐흑. 흑.”
머리 위에서 그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흑, 놔 주시라고요……. 저 같은 인간 살아 봤자……. 흐윽, 살아 봤자…….”
“정영준 씨는 언제나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시고는, 하나도 진심이 아니었군요.”
“아니, 흑, 아닙니다. 변호사님한테는 늘 죄송…….”
“그런데, 저를 의뢰인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서 자살하게 만든 변호인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그가 다리를 놓아달라며 발버둥치지 않았지만,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서 내가 이 다리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는 다시 호스에 목이 매이게 된다.
다소 그를 원망하는 듯한 말이라고 해도, 계속 대화를 이어 가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 나을 듯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그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더 살 자신이 없습니다. 흑.”
“정영준 씨.”
“…….”
“정영준 씨는, 정영준 씨를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진 않으십니까.”
“…….”
“누가 정영준 씨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는지는 몰라도, 그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인간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영준 씨한테 그런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정영준 씨는 아무 잘못도 없잖습니까.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잘못한 사람이어야죠. 그런데 대체, 왜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