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88)
너희들은 변호됐다-88화(88/641)
“저는……. 삶을 이어 갈 동력이 없습니다. 변호사님이 제 상황이 안되어 보셔서 그래요. 복수 같은 걸 생각할 틈이 없어요. 잃은 걸 되찾을 생각만 해도 버거운데,”
“저는 복수하려고 삽니다.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귀신이 되어서라도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복수하려고 삽니다. 정영준 씨. 지금 이렇게 죽는 건 개죽음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정영준의 다리를 고쳐 안으며 말했다.
정영준이 지금 하려는 것은 자살이 아니다.
재벌에게 스스로 살해당하는 것이다.
설령 그의 비디오를 제작하고 유포한 것이 양진의 짓이 아니더라도, 그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자연인 정영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전 그의 인간관계는 깨끗했다.
정영준이 이렇게 궁지에 몰린 까닭은, 오로지 그가 양진 그룹의 사위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헉, 정영준 씨!”
그때, 나와 정영준이 있는 방으로 강민재가 뛰어 들어왔다.
강 변은 몹시 충격받은 듯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가 한가롭게 놀랄 시간 따위를 허락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강 변. 바닥에 가위 있어. 의자 밟고 올라가서 호스 잘라.”
바닥에는 정영준이 이곳에서 호스를 커튼 봉에 묶으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위가 놓여 있었다.
강민재는 접싸게 바닥에 놓인 가위를 집어 들고, 의자를 세운 뒤 밟고 올라갔다.
그리고 호스를 자르자, 정영준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 역시, 그가 내 위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변호사님! 정영준 씨!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119라도 부를까요? 네?”
나는 정영준의 아래에서 빠져나와 그의 목 주변을 살폈다.
호흡은 내가 그의 다리를 들고 있는 동안 되찾은 것 같았고, 목 주변에 호스 자국이 남은 것 빼고는 괜찮아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그를 바라보았다.
“병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저. 목맨 지 얼마 안됐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 가 보셔야죠.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강민재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는 정영준을 부축하며 말했다.
하지만 정영준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병원 가면 저 자살 기도했다고 기사 쫙 퍼질 겁니다. 사실 저, 변호사님이 현관문 따고 들어오실 때까지도, 아니, 이 방 문 열려고 하실 때까지도 계속 망설이고 있었어요.”
정영준은 이마를 짚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근데 변호사님이 문밖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빨리 의자를 차지 않으면 죽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제야 의자 찬 겁니다. 하지만 변호사님은 곧바로 문을 차고 들어오셨잖습니까. 그러니까, 고작 몇 초 매달려 있었을 겁니다…….”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강민재에게 눈짓했다.
“물 좀 가져다 드려.”
“네.”
강민재가 방을 떠나고, 여전히 이마를 짚은 채 바닥만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어야 할 것 같았어요.”
“…….”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이런 큰 사건이 있었던 연예인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막 했는데……. 루머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선택한 연예인 이야기만 잔뜩이더군요. 홀린 듯이 그 글들을 봤어요. 그 연예인들 장례식장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있었습니다. 보니까, 평소에 방송에서 잠깐잠깐 만났을 뿐, 얼굴만 알고 지내던 연예인들도 와서 조문하더라고요.”
정영준은 한숨을 쉬며 붉은 기가 맴도는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때 심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파경을 맞았던 연예인이었는데……. 죽음을 택한 것은 다른 이유였지만, 전 남편도 침통한 얼굴로 조문 왔더라고요.”
정영준의 목소리에서 다시 눈물이 배어났다.
혈색을 찾았던 그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불거지고, 정영준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걸 보니까 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르겠어요, 저도. 저는 그 사람들처럼 제가 죽었다는 소식에 대성통곡해 줄 팬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뚝뚝 흐르는 눈물과는 달리, 애써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아 보려는 듯 그의 목소리는 꽉 막혀 있었다.
“저도 죽으면, 흐흑, 아무리 정이 떨어졌어도…… 진아가, 와 주지 않을까? 그래도, 7년을 살 맞대고 살았는데, 진아가, 울어 주지, 않을까? 어흑, 제가, 저는 비디오 속의, 크흑,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유서를 남기고 죽으면, 흑, 사람들도 믿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복수요? 하아……. 저는 복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해요. 왜냐면, 흑, 멍청하고 띨띨하거든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집안에 적응도 하지 못했고, 장인, 장모 마음 한 자락도 얻지 못했어요. 흐으……. 심지어는, 변호사님들한테 뭐 하나 제대로 된 단서마저 못 줘요. 맨날 징징대기나 하죠. 그런 제가, 어떻게 감히 복수를 꿈꿉니까?”
정영준은 눈물을 닦으며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변호사님처럼 유능하고 강한 사람이나 복수를 꿈꿀 수 있는 겁니다. 전, 무능하고 약해 빠져서, 그런거……. 그런 거 못 합니다.”
“설령 무능하고 약해 빠졌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게 있잖습니까.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저는 정영준 씨가 무능하고 약해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황이 정영준 씨를 잠깐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삶에서, 나는 술한 실패를 경험했다.
우신 그룹 특검이 시작되기까지, 그들의 권력에 맥도 추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적도 많았다.
동료들이 실종되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나도 정영준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그냥 전부 놓아 버리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까지 하나.
이미 나는 저들의 눈 밖에 났고, 내가 어딜 가든 검은 차가 내 뒤에 따라붙으니,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부모님과 동료들의 곁으로 가서 편해지자.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화를 내면서, 또 때로는 달래면서.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던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전 삶에서의 나는 시멘트에 버무려져 죽은 게 아니라 정영준처럼 어딘가에 목을 매고 죽었을 것이다.
“……동생이 하던 말이네요.”
내 말을 곰곰이 듣던 정영준은 피식 웃었다.
“동생도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그런 병신 같은 인간이 아니라, 저를 둘러싼 환경이 저를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거라고요.”
정영준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한낮의 하늘을 눈에 담았다.
“진아가 없으면 저는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세상은 처가에 집어삼켜졌다.
결혼 후, 그는 더 이상 정영준이 아니었다.
고진아 남편, 혹은 양진 F&B 상무이사로 살아야 했다.
그러니 아내가 떠나면, 자신의 세상이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합니다. 지금은 변호사님과 얘기하고 있으니 제가 한 선택이 참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언제 생각이 바뀔지 잘 모르겠어요.”
“정영준 씨.”
“……네.”
“양친과 동생분이 계신 댁으로 들어가십시오. 거기서 지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 변호사 사무실에 왔을 때도, 그는 동생과 함께였다.
오늘 이 집 문을 열기 위해 동생에게 전화했을 때도, 그녀는 정영준을 몹시 걱정했다.
적어도 그의 가족들은 그를 진심으로 염려한다.
지금의 정영준은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하아.”
정영준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적어도 아내분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은 안 드실 겁니다.”
처가에서 지냈던 7년은, 그에게서 자존감을 빼앗아 갔다.
오로지 고진아에게만 의존하며 지냈던 세월은, 그를 고진아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실, 나는 이 사건 의뢰를 맡은 시점부터 고진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정영준이 두려워하던 대로, 설령이 모든 일이 장인, 장모의 음해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고진아가 알게되더라도 그녀가 부모 대신 정영준을 선택할 것 같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는 그녀가 그 오만한 재벌가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난 돌연변이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정영준에게는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는 말했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더라도, 그가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 이 상태라면, 정영준은 고진아와 재결합할 수 없다면 다시 목숨을 끊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사후 책임까지 져야 할 의무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재벌의 손에 직간접적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나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더욱.
“저기, 물 가져왔는데요.”
침묵을 틈타,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치 문밖에 서서 자신이 등장할 타이밍을 기다린 듯했다.
물 떠오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리도 없고.
“감사합니다.”
정영준은 그에게서 컵을 받아들었다.
강민재는 그가 물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변호사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부모님 댁에 들어가 지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번번이 폐를 끼치네요. 조사에 도움도 못 드리는 주제에 남이 자살하는 거나 보게 만들고…….”
“어휴, 그런 말씀 마세요.”
강민재가 손사래를 쳤다.
나는 강민재에게 다가가, 그가 바닥에 내팽개친 서류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홀더를 꺼냈다.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신다면, 이거. 보신 적 있는지 최선을 다해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안에는 오늘 국정원의 노래주점에서 인쇄해 왔던 반지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게 뭡니까?”
“정영준 씨 비디오를 찍은 카메라맨이 끼고 있던 반지입니다. 맞춤디자인인 것 같습니다.”
“비디오에 이런 게 찍혀 있었습니까?”
“화질 복원과 밝기 조절을 하니 보이더군요.”
강민재는 그 반지에 대해 우리가 추측했던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비디오를 보며 내었던 의견들을 전부 그에게 전달했다.
“이 반지, 보신 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