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91)
너희들은 변호됐다-91화(91/641)
[조현석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3월……]화면이 빠르게 넘어가면서, 다음 뉴스가 흘러나왔다.
텔레비전 앞에 선 채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검찰 출석 포토 라인에서 있는 모습에서 그 반지가 찍혔으니, 분명히 인터넷 뉴스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포털에 뜬 이미지 중에서, 반지가 가장 잘 나온 사진들을 골랐다.
물론 그 사진들에서도 반지에 새겨진 글씨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본 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이다.
거기다 190이 넘는 신장, 건장한 체격까지.
심지어 조현석은 지금 민정수석에게 성상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다.
그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을 생각하면, 더욱 사리에 맞았다.
그렇다면 정영준이 기자들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양진 F&B 본사에 가서 인사 기록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이 몇 시지?’
6시 35분.
6시 30분에 본사 앞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미 본사에 들어갔을까.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연락 온 것은 없었다.
아직 들어서지 않은 걸까.
우선은 강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변호사님.
“강 변. 지금 어디야?”
-지금 본사 지하 주차장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뭐가?”
-여기도 기자들이 쫙 깔렸어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일단은 보안팀에 다시 전화해서 다른 루트를 모색하려고 하는데,
“다른 루트 모색하지 말고 그냥 돌아와.”
-네?
“인사 기록 확인할 필요 없어.”
나는 조현석에 관한 자료를 화면에 띄워 놓고 마우스 휠을 굴리며 말했다.
-왜요?
“카메라맨 찾았어.”
-정말요? 어떻게요? 누굽니까, 그게?
“일단 돌아와서 얘기해. 정영준 씨랑 사무실로 와.”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그들이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나는 미리 도착해, 지명호 성상납 건과 공개된 조현석의 정보를 자세 하게 알아보던 중이었다.
“변호사님.”
강민재 뒤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정영준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내가 전화 건 타이밍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기자들에게 시달린 기색은 아니었다.
“기자들한테 안 들키게 나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자들이 정영준 씨가 본사에 왔었다는 건 전혀 모르는 거야?”
“그럴 겁니다. 제 차도 처음 보는 차에 번호판도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요. 뭐, 직원 차라고 생각했겠죠. 대신, 차가 진입했다가 바로 빠지면 쫓아오는 놈들이 있을 것 같아서 잠깐 주차해 둔 척도 하고…… 그나저나, 카메라맨 신원 확인하셨다면서요. 누굽니까?”
정영준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 내가 보고 있던 노트북 화면을 그들을 향해 돌려 주었다.
그들은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모니터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식별하는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짠 것처럼 똑같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조현석 말씀입니까, 변호사님? 조현석이 제 비디오를 찍은 그 카메라맨 이라고요?”
“조현석의 공인된 키는 193입니다.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고 하죠. 지명호 민정수석과 몇몇 고위급 공무원에게 연예계 및 화류계 여성들을 상납해 온 혐의가 있고, 지금은 그들 외에 다른 정재계 고위급 인사들에게도 성상납을 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현석이라면 비디오 속의 그많은 여자도, 뭐 사람한테 이런 표현 쓰긴 그렇지만 융통하기 편했을 거고요.”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반지. 결정적입니다. 조현석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반지를 확대하여 보여 주었다.
기사 사진 속 반지는 국정원이 화질을 복구한 영상보다는 조금 더 선명했다.
그들이 오는 동안, 기자 사진에 찍힌 반지와 영상 속 반지가 서로 같은 게 맞는지 국정원에게 확인을 맡겼다.
그는 나에게 두 사진의 투명도를 낮추고 서로 각도를 맞춰 겹쳐 본 이미지를 보내 주었다.
아직도 무슨 글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문자들이 쓰인 위치가 정확히 일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현석의 싸이월드에 올라온 그의 설정 사진 몇 장이 더욱 그가 카메라맨임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한껏 폼 잡고 찍은 흑백 사진 밑에, 그 당시 유행하던 형식의 줄글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4시에도 신사동은 불야성이다.술에 취해 휘청이며 택시를 잡는사람들-
그들 모두 저마다의 고독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나는 갈 수 없다.
아직 이곳에 내가 할 일이 남아있기에…
Photo by. Hyun-woo
Camera. Panatech 718Q]
파나텍 718Q.
그가 정영준 동영상을 찍을 때 사용했던 그 카메라의 모델명이다.
심각한 일이었지만, 저 게시글을 처음 봤을 때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럴 때 새삼 내가 2009년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된다.
전형적인 싸이월드 감성의 글귀.
평범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흑역사로 끝날 일이지만, 조현석의 것은 냉소만 유발할 뿐이다.
사람을 착취하며 이득을 취하는 조현석 같은 인간이 고독 운운이라니.
정말 꼴값이었다.
“조현석이라니, 어떻게…….”
정영준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얼이 빠진 얼굴로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는, 가슴을 손으로 꾹꾹 눌러 댔다.
“그럼 김은하수 비서와 조현석이 내연 관계라는 겁니까?”
“그건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저희 쪽 영상 전문가가 기자 사진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첫 대문자가 N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은하수 이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자죠.”
“N이 들어가는 성이라면 나씨나 노씨…….”
강민재는 빠르게 말을 쏟아냈지만, 나는 지금 당장은 그 이름을 추론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태까지 그 레터링의 길이에 매달려 용의자를 찾아 헤맸다.
그 결과 우리가 그나마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김은하수 비서 부부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추론은 틀렸다.
이제 조현석이라는 인물이 카메라맨인 것으로 확정되었다.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풀어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현석은 현재 지명호 민정수석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정재계 인사에게도 성상납을 해 왔을 거라 의심받고 있습니다. 아마 대기업 임원이나 오너 일가 사람들도 그 대상이었겠죠.”
“네.”
“조현석이 양진 그룹과 연관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영준은 내 물음에 길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있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조현석이 양진 그룹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도 들어 보셨어요?”
모처럼 정영준에게서 나온 시원스러운 대답에, 강민재는 몹시 흥분했다.
정영준은 갑작스레 인성을 높이는 그를 보며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곧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연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기보다는……. 만난 적이있습니다. 만났다고 하기는 좀 그런가요. 인사 나눈 적이 있다고 하는게 좋겠군요.”
“그럼 혹시 그날 비디오가 찍힌 건,”
“그건 아닙니다. 그날은 양진 계열사 중 하나인 호텔 리버뷰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희 임직원들이 대부분 참여했고요.”
“그 자리에 조현석이 나타난 겁니까?”
“그건 아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 진아와 저, 그때 말씀드린 재무이사님, 그리고 다른 이사님 한 분 이렇게 해서 같이 호텔 루프탑 바에 갔었습니다. 조현석은 거기서 마주쳤습니다.”
“조현석을 먼저 알아본 건 누굽니까.”
“조현석이 먼저 인사했습니다. 특정한 누구한테만 한 건 아니었고요. 그냥 저희한테 오늘 양진 그룹 행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뒤풀이를 오셨나 봅니다, 하더니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저는 초면이었지만, 조현석이 먼저 알은 체를 해서 인사하게 됐습니다.”
기억을 더듬던 정영준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가 싶더니,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때가 양진 F&B에 계실 때고요?”
“네, 그렇죠. 그렇게 조현석하고는 지나쳐 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끼리 한잔하면서, 아까 그 사람은 누굽니까? 하고 물었더니, 재무이사님께서 조현석 모르냐고 물었습니다. 그 바닥에 알 사람은 다 아는 눈치였어요. 집에 오는 길에 진아는 알아서 좋을 것 없다고, 질 나쁜 사람이니까 어울리지 말라고만 했고요.”
지명호 성상납 사건은 술자리를 함께했던 모 여배우가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지명호와 측근들이 나눈 대화를 몰래 녹취해서 갖고 있었다.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접대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전자 물품을 소지했는지 확인 절차를 거쳤으나 자신은 어떻게 운이 좋아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휴대폰 속 녹취록이 지명호로 하여금 발뺌할 수 없게 만든 증거였다.
수사가 시작되자, 지명호는 혼자 죽고 싶지는 않았는지 자신과 함께 접대를 받았던 고위급 인사 몇의 이름을 누설했다.
그 과정에서, 조현석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지명호는 조현석에게 물으면 더 많은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인사가 그를 통해 성상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만일 조현석의 입을 열게 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흔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안에 재계 7위의 기업인 양진 그룹의 간부들이 포함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고상경 회장 또한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정리해 보면, 고상경 회장은 가장 강력한 범행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는 카메라맨인 조현석과 커넥션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고상경은 분명히 조현석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여성인 고진아가 정영준에게 조현석에 대해 표현한 것을 보면, 그녀 역시 조현석이 뭘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상경이 그 바닥 유명 인사인 조현석을 모른다?
말이 되지 않는다.
소설을 써 보자면, 고상경의 앓던 이가 정영준이라는 걸 알게 된 조현석이 자신이 처리해 주겠다며 비디오를 유포했을 수도 있다.
조현석은 그로 인해 고상경과의 커넥션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을 것이다.
그 외의 보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조현석이 카메라맨이라는 증거가 나왔으니까 이걸 검찰에 갖다 주면 어떨까요? 뉴스 보니까 지금 검찰에서 조현석을 엄청 캐고 있다고 하던데요. 이 동영상도 조현석이 만들어낸 거라고 하면,”
“그건 곤란합니다. 어느 채널에서든 말이 새면 정영준 씨도 조현석에게 성상납 받은 파렴치한으로 매도될 겁니다.”
내 말에 정영준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말해 준 것 외에도, 검찰에 가져가면 안 되는 이유는 더 있다.
이전 삶의 기억을 되짚어 보건대, 이 사건은 시원스럽게 해결되진 않았다.
물론 지명호는 책임을 피하지 못하고 재판 끝에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관련 인물 몇도 옷을 벗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디까지나 겉핥기식의 해결이었다.
사건이 장기화되고, 진행 도중에 다른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째로는 본 사건이 한참 뜨겁게 세상을 달구기 시작할 즈음, 정영준의 섹스 비디오가 뜨면서 그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둘째로는, 어느 채널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상납을 했던 연예인 리스트가 뜨면서 연예인들이 줄줄이 눈물의 기자 회견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조현석이 형량을 줄여 주면 성상납 받은 유명 인사들을 더 많이 알려 주겠다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검찰은 그와 딜을 보는것을 선택했다.
사건은 조현석에게 견인되는 꼴이 되어 버렸다.
결국 조현석은 죄질에 비해 적은 구형을 받았으며, 그마저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검찰이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영준 사건은 뒷전으로 미뤄 둘 공산이 컸다.
“우선 초점은 조현석 쪽으로 맞추고, 저희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정영준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러니 우선은 안심하시고 돌아가 쉬십시오. 강 변이 정영준 씨 부모님 댁으로 모셔다드릴 겁니다.”
내가 방법이 있다고 단호히 대답해 주어서일까.
정영준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 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
지명호 민정수석 성상납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 1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