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93)
너희들은 변호됐다-93화(93/641)
“여기예요, 여기!”
테이블 위에 반찬을 놓는 종업원의 등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강민재는 벌떡 일어나 팔을 흔들었다.
“아, 좀 늦었지? 미안.”
“아닙니다. 선배님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뭘.”
이예진 검사는 맞은편에 앉으며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강 변과 내 주변에 있던 서류 가방까지 챙겨 그 위에 함께 겹쳐 두었다.
그로도 모자라, 그녀는 분주하게 꽉 찬 식당 내부를 둘러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 다른 테이블 손님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의자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의자를 자신의 옆에 놓은 그녀는, 그제야 우리에게 집중했다.
“얼굴 보기 참 힘들다, 그치?”
“누구 더 올 사람 있어요? 왜 의자를 더 가져오세요?”
강민재가 묻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어, 있어. 좀 이따가 올 거야.”
“누구신데요?”
“비밀.”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테이블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싶다.
안면이 있기도 하고, 얼마 전에 통화했을 때도 그의 이야기를 잠깐 하기도 했고.
“술 없어? 왜 안 시켰어.”
“아직 음식 주문도 안 했습니다.”
“아, 뭐야. 양대창 집에서는 양 2인분 대창 2인분, 부족하면 더 시키기. 몰라? 사장님, 여기 양하고 대창 2인분씩 주시고요. 소주하고 맥주 한 병씩 주세요!”
“소주 뭐로 드려요?”
“후레시요! 아, 잔은 네 개 주시고요.”
그녀는 설레는 표정으로 반찬 몇 가지를 입에 넣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여기 반찬 되게 맛있다. 아니, 차 변아. 서초에 이렇게 맛있는 집이 있었어? 왜 말 안 해 줬어.”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 사람 되게 많다. 장사 엄청 잘되나 봐. 사장이 아주 돈을 갈퀴로 쓸어 담겠는데?”
뭐, 그랬지만 나중에 아들들 때문에 전부 날려 먹는다.
작년에 한 번 조언을 주긴 했지만, 그가 들을지는 의문이다.
“여기 식사류도 다 잘합니다.”
“딱 그럴 것 같아. 반찬 먹어 보면 알지. 아, 기대된다.”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도 계속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식사 못 하셨어요?”
“점심을 컵라면하고 삼각김밥으로 겨우 때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명호 집에서 뭐가 발견됐다는 거야. 급하게 회의 있다고 호출 떠서 갔는데, 별거 아니더라. 허탕만 쳤어.”
“아, 지명호 사건 맡고 계셨었죠?”
강민재가 음흉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이예진은 반찬을 집어 먹는데 여념이 없어서, 그의 표정을 알아채진 못했다.
“그래. 아, 특수부 들어가자마자 맡은 사건이 지명호 사건. 웬일이니. 영찬이 하고 얘기 좀 해야겠어. 왜 갑자기 인사이동 시켰냐고, 나 싫어하냐고 진지하게 물어봐야지.”
“에이, 엘리트 코스 밟고 계시는구만.”
“민재야, 나는 엘리트 코스 안 밟아도 된단다. 가늘고 길게가 내 목표인 거 모르니?”
“그래도요. 진짜 축하드려요.”
“야, 무슨 축하야. 이거 제대로 못하면 논산지검 이런 데 갈지도 몰라. 거기 검사 4명밖에 없잖아. 엉엉. 25기 내 바로 윗 기수 이번에 전부 부부장 달았는데, 나는 내 동기들 곧 승진할 때 혼자 논산에서 군대 가는 까까머리들이나 보고 있어야겠지……. 아, 나도 승진은 하겠구나. 잘된 일인가? 논산지검에 부부장급이면 지검장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지검장이라니!”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울상이긴 했지만,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제대로 하시면 되죠. 선배님 워낙 잘하시니까.”
“아니, 이 사건을 어떻게 제대로 하냐고. 제대로 했다가는 윗분들 눈치 안 본다고 지랄하고,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면 일 못한다고 지랄하고.”
“윗분들 프레셔가 좀 있나 봅니다.”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는 종업업을 보며 내가 물었다.
“없겠니? 그런 좆같은 비리에 검찰 고위직이 안 끼면 섭하지. 2차장은 조현석 입에서 자기 이름 나올까 봐 무서운지, 심심할 때마다 취조실 들러서 확인한다니까? 들어 보니까 평소에는 쥐뿔 와 보지도 않는다던 양반이.”
“그렇게 자주 오면 소문나지 않아요?”
“괜히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니까 자기가 신경 쓰는 거라고 엇험엇험 거려. 얼마나 같잖은지. 진짜 가뜩이나 없는 머리 다 뽑아 버릴라.”
이예진은 종업원에게서 집게를 건네받은 후, 열심히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었다.
강민재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이예진은 그의 손등을 때리며 집게를 사수했다.
“너무 내 얘기만 했나? 두 사람은 뭐 어떻게 지내? 요즘 사건 하는 거 있나?”
“있죠. 저희 잘나가요.”
강민재는 그녀가 자신의 앞접시에 놓아 주는 고기를 부지런히 내 그릇 위로 옮기며 말했다.
“아, 차 변 거도 줄 거니까 너나 먹어. 누가 차 변 빠돌이 아니랄까 봐.”
“아니, 고기도 못 굽게 하시고 저 먼저 주시니까…….”
“원래 어른들 밥 먹을 땐 애기 밥 먼저 챙겨 주는 거야. 얼른 먹어라.”
“애기라뇨. 삼십 넘은 애기 보셨습니까?”
“요 있네. 삼십 넘은 애기 요 있네.”
강민재가 내 시보였던 시절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친했던가 싶다.
“하, 너희 참 젊고 파릇파릇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너희한테서 피톤치드가 나오는 것 같아. 나도 너희 사무실 들어갈까 봐. 나도 꽃밭에서 일하고 싶다.”
서른넷에 파릇파릇하단 소리는 또 처음이다.
“꽃밭은요, 무슨. 저희 엄청 바빠요.”
“네가 나보다 바쁘냐?”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조현석에 대해 자세하게 묻고 싶지만, 이예진과 강민재가 너무 즐겁게 대화하고 있어서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봤는데 본론부터 들어가면 예의가 아니기도 했고.
사실, 이예진이 내일 당장 단식 투쟁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처럼 전투적으로 먹어서 타이밍을 잡을 수 없기도 했다.
그렇게 불판을 갈고 새 주문을 했을 무렵.
“저 왔습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남자가 불쑥 이예진 옆에 앉았다.
“……계장님?”
오양훈 계장이었다.
올 사람이 있다는 이예진의 말에, 그녀의 남편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사님, 오랜만입니다. 이 검사님이 검사님 만난다고 하셔서, 저도 슬쩍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폐 끼친 건 아니죠?”
“폐일 리가요.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 검사님도 오랜만입니다.”
“계장님!”
이예진은 오 계장의 손에서 가방과 겉옷을 받아 빈 의자에 놓아 주며 말했다.
“계장님, 호칭 주의. 저만 검사예요. 이 두 명은 변호사고요.”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변호사님들.”
“아닙니다.”
이예진은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잔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1대 1의 비율로 섞어 각자의 앞에 놓았다.
“1대 1? 검사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일 조현석 취조 들어가야 하는데.”
조현석 취조?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그녀가 몸담은 특수 1부가 지명호 사건을 맡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조현석을 전담하는 줄은 몰랐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건질 수도 있겠는데.
“그럼요. 계장님에게 절대 폐 안끼칩니다.”
“아뇨, 제가 폐 끼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오 계장이 자신 없는 얼굴로 말했다.
이예진 검사는 그저 웃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차 변은 모르지? 지금 계장님 나랑 같이 계셔.”
“그렇습니까?”
“근데, 나도 계장님네 검산데 왠지 나를 보시는 눈빛이랑 차 변 보시는 눈빛이 좀 다른 것 같아.”
이예진의 말에, 오 계장이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검사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제가 검사님을 여자로 본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아니요? 그게 아니라, 차 변은 완전 사랑하는 눈빛으로 보시는데 저는 아닌 것 같아서 서운해서 그러죠.”
다소 민감해질 수 있는 이야기라 그랬을까.
어깨까지 들썩이며 소리치던 오 계장이 민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똑같은 검사님들이죠.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저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네, 네. 저도 집에 곰 같은 남편 놈이 있네요. 자, 케케묵은 건배사는 생략하고. 원샷입니다, 여러분. 짠.”
잊고 있었다.
이예진은 중앙지검에서 가장 술을 사랑하고, 가장 술이 센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대작에서 그녀를 이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으흐, 써.”
그렇게 몇 번 잔을 주고받았더니, 어느덧 테이블에는 소주와 맥주병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뒹굴고 있었다.
강민재는 이미 세 번쯤 나가서 토하고 왔고, 오 계장도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도 꽤 주량이 센 편이었지만, 몇번만 더 마셨다가는 취기가 오를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은 이예진뿐이었다.
“아니, 강 변 쟤는 왜 저렇게 술을 못 마셔?”
“못 마시다니요! 선배님이…… 말도 안 되게…… 술이 세신 거죠 !엉?! 저 술 세거든요? 그리고, 애기도 아니거든요!”
이예진이 강민재에게 애기라고 했던 것이 꽤 크게 마음에 남은 모양이다.
그는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목소리만 커졌다.
나는 그저 그의 머리를 살짝 밀어 벽에 기대게 해 주었다.
“어, 감사합니당……. 덕분에 세상이 좀 덜 어지럽네요……. 흐흐흐.”
이예진은 강민재를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민재랑 일하는 건 좀 어때? 잘 맞아?”
“똘똘합니다. 열의도 있고. 조금 관심이 고픈 스타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왠지 맡는 사건마다 스케일 크다 했더니, 강민재 초이스야?”
“유명하지 않은 건도 많이 합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죠.”
“그렇구만. 그래도 다행이야. 차 변처럼 일찍 개업해서 잘되는 사람 별로 없는데. 자리도 꽤 잡은 것 같고?”
“먹고살만합니다. 선배님하고 계장님은요. 서로 잘 맞으십니까?”
그 말에, 이예진과 오 계장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아, 나보단 계장님 의견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아니죠. 저보단 검사님 의견이 더중요하죠.”
오 계장이 철벽처럼 막아섰다.
그러자 이예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번 사건 하면서 얼마나 차 변 노래를 부르시는지 몰라. 계장님한테 나는 별로 유능한 검사가 아닌가 봐.”
“조현석 사건 말입니까?”
“그래. 만일 차주한 검사님이셨다면 이렇게 하셨을 겁니다, 저렇게 하셨을 겁니다. 그러신다니까? 내가차 변보다 선밴데!”
“아니, 검사님. 검사님이 먼저 차주한 검사님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냐고 물어보셨잖습니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티격태격하더니, 곧 서로 잔을 주고받으며 화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 계장은 내가 검찰청에 들어가기 전부터 근무했던 잔뼈 굵은 수사관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검찰에 미운털이 박혀 버렸으니 곤란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말이다.
“조현석 사건은 잘 풀리십니까?”
“조현석! 조현석 개애새끼…….”
내가 조현석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자는 줄 알았던 강민재가 갑자기 소리쳤다.
“뭐야, 쟤?”
“개새끼……. 쩝쩝. 개새끼…….”
“상당한 원한이 있나 본데?”
이예진은 강민재를 보며 작게 웃었다.
“잘 풀리긴. 위에서 프레셔 오지, 조현석은 입을 안 열지. 압색 결과도 암울해. 리스트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게 안 나오네. 지명호는 불건 다 분 것 같던데.”
이예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부 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거탐기는요.”
“해 봤지. 근데 표적 수사는 안 되니까. 대놓고 우신 그룹에 성상납했냐, 태성 그룹에 성상납 했냐 이렇게는 못 물어보잖아.”
이예진은 짧게 대답하며 자신의 앞접시에 담긴 남은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조현석은 양진 레인저스 농구팀 출신입니다. 양진 그룹 쪽에서도 상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을 텐데요.”
“음……. 뭐, 그건 내가 말할 수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이예진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차 변, 혹시 양진 그룹 관련해서 일 맡은 거 있어?”
시종일관 웃고 있던 이예진 검사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 실망해?”
나는 작게 웃었다.
정영준에게는 검찰에 그 비디오의 카메라맨이 조현석이라는 걸 밝히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예진 검사는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검찰 내부의 역학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검사로서의 본분은 잊지 않는다.
그녀가 후에 부장검사를 지내고 로펌에 들어갔을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검사로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허점도 없었다.
“제가 조현석에 대한 정보를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