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96)
너희들은 변호됐다-96화(96/641)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정영준이 먼저 고진아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리는 없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태광에서 연락을 받기 전에 나에게 먼저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진아 쪽에서 알아낸 정보라는 것인데, 의뢰인이 원치 않는 상황에 쉽게 긍정해도 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차주한 변호사님. 벌써 5월이 다 돼 갑니다. 정영준 씨 비디오 터지고 나서 거의 두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영준 씨가 언제부터 의뢰 맡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화는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충분히 정영준 씨를 기다려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신의를 저버리는 바람에 배신감으로 고통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적인 피해까지 보고 있는 저희 의뢰인 입장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강민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태식 역시 성내던 것을 잊었는지 마찬가지로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외람되지만, 아직 정영준 씨 측에서 변호사 선임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저희 사무실로 연락 주셨습니까.”
-정영준 씨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만 하고 계시니, 먼저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의뢰인과 상의하고 다시 연락드리죠. 이 번호로 다시 연락드리면 되겠습니까?”
-네. 부디 빠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고진아 씨가 굉장히 오래 기다리셨다는 것만은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화가 끊어지고, 강민재는 내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지금 이거 무슨 상황입니까? 태광이에요?”
“애석하게도 그렇네. 어디서 샌 것 같은데. 정영준 씨가 우리 선임한 거.”
“……정영준 씨가 말한 건가?”
고진아 입장에서는 정영준이 대단히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그것을 이용하여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비디오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굳이 제대로 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만나 손해를 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진아 측에서 정영준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논의를 피할 명분이 없었다.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지더라도, 만나기는 해야 한다.
“태식아.”
“네?”
“정영준 오늘까지 접촉한 사람 없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아직 정영준을 살피고 있는 상길로부터 오늘 치 보고를 받기 전이었다.
누군가를 접촉했다면 그 즉시 연락했겠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야한다.
태식은 휴대폰을 들고 잠시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집이랍니다.”
“……일단 강 변. 정영준 씨한테 전화해 봐. 정영준 씨가 있는 집에서 사건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가족이 있으니까. 강 변이 사무실로 데려와야겠는데.”
“알겠습니다.”
2시간 뒤, 정영준은 강민재와 함께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고진아에게 변호사 선임 사실을 알린 것 같진 않았다.
“오시면서 강 변에게 설명 들으셨겠지만, 고진아 씨 측에서 정영준 씨가 저희를 선임했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네. 아니, 대체 어떻게…….”
강 변이 그를 데리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영준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우리가 반쯤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을 정영준에게 계속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정영준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함구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
“아무래도 정영준 씨가 강 변과 함께 양진 F&B 본사에 가셨을 때 확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때 저희는 기자들이 있는 걸 확인하고 돌아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 진아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기자들에게도 들키지 않았고요. 진아도 계속 체크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네, 하지만 계속 체크하지 않은 건 아닐 겁니다.”
내 말에 정영준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사실, 그때 출발하기 전에 고진아 씨에게 본사에 방문하겠다고 알렸을 때. 고진아 씨가 기자들에게 들켜서 본인에게 페 끼치지 말라며 다소 강하게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십니까.”
“네, 그럼요. 그때 본사 지하 주차장에서 그냥 나와서 전화했을 때도 진아는 제가 도착한 줄 몰랐다고, 어쨌든 기자들한테 안 들켜서 다행이라고 했었는데요…….”
그런 말을 한 줄은 몰랐다.
굉장히 뻔뻔한 태도였다.
“정영준 씨가 기자들에게 노출되는게 본인에게 폐가 될까 봐 몹시 꺼리는 사람이, 정영준 씨가 진입하기로 한 지하 주차장에 기자들이 있는지 없는지 계속 보고 받지 않았다는 게 이상합니다.”
“……그건,”
“만약에 고진아 씨의 말대로 계속 확인하지 않았다면 정영준 씨가 기자들에게 노출되는 게 본인에게 리스크가 된다는 생각을 안 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영준 씨에게 그렇게 말할 이유도 없죠. 보안팀에게 말해 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정영준 씨에게 도움 줄 생각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
“게다가 기자들이 잠복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대놓고 있는데, 보안팀에서 고진아 씨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부러 정영준 씨한테 말하지 않은 겁니다. 설령 뒤늦게 알았더라도, 정영준 씨에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오지 말라고 연락하는 게 맞고요.”
“…….”
“고진아 씨는 계속 주차장 입구에 정영준 씨가 탄 차가 들어오는지 확인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낯선 번호판을 단 차가 약속된 시간에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보고 확인했겠죠. 그 안에 정영준 씨와 강 변이 타고 있었으니, 당연히 저희 쪽에 사건을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정영준은 내 말을 들은 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진아가 일부러 저를 기자들에게 노출시키려고 했다는 겁니까?”
“저희 생각은 그렇습니다.”
“대체 왜요? 대체 왜……. 설마, 기자들한테 노출되면 제가 그 스트레스를 못 버틸 걸 알아서? 그러면…… 이혼해 줄 것 같아서?”
“아마 그렇겠죠.”
“지, 진아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변호사님,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변호사님이 진아를 안 좋게 보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억측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정영준은 도리어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정영준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급히 강 변을 바라보았다.
저 변호사 말하는 꼴 보라고,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강 변은 고개를 숙였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정영준 씨.”
“대체 왜요? 왜, ”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희는 아무래도 고진아 씨가 그 비디오가 고상경 회장의 짓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매우 커요.”
강민재가 몹시 완곡하게 말했다.
정영준은 혼란스럽게 시선을 굴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목덜미가 뻘겋게 달아오른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다른 이유도 있으신 거죠? 아, 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그 상황 하나 가지고 그렇게 판단하는 건 좀 이른 것 같은데…….”
“고진아 씨가 정영준 씨와의 통화해서 협의 이혼 조건으로 제시하신 재산 분할 금액 150억 원 역시 과도하게 책정된 수치입니다. 정영준씨가 재산 분할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제기할 것을 염려해서, 협의 단계에서 빠르게 끝내려고 일부러 손해를 감수하고 높은 금액을 부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영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짚었다.
강민재는 정영준을 몹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그는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고진아 씨는 소송을 과도하게 피하고 있습니다. 이혼을 빠르게 마무리하려는 강한 의지가 읽힙니다. 아마도 소송이 시작되고 정영준 씨가 3심까지 재판을 이어 가는 경우,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면 그 비디오가 고상경 회장의 짓이라는 게 밝혀질 가능성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
“부모의 과실을 덮기 위해,”
“그만, 그만하세요.”
정영준은 귀를 막았다.
그리고 고개를 매우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그렇게까지 저를…….”
어느덧 정영준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얼굴은 금세 젖어버렸다.
강민재는 그에게 티슈를 건넸지만, 정영준은 받지 않았다.
“진아가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저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는 한참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다, 결국 울부짖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강민재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작은 약봉지를 꺼내 쥐었다.
그 봉지 위에는 ‘필요시(진정)’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약을 정영준이 아닌 강민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가족 중 한 명이 챙겨 준 게 아닌가 싶었다.
강민재는 허리를 숙이고 소리 내어우는 정영준의 등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나 역시 달리 방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정영준도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 사건에서 정영준이 원하는 대로 가정을 지키는 결말은 있을 수 없다.
고진아는 이미 억울하고 불쌍한 남편 대신 악독한 부모를 선택했다.
정영준은 설령 모든 게 밝혀져 억울함이 풀리더라도, 고진아를 잃게 될 것이다.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없는 그에게, 지금이라도 천천히 고진아에게서 정을 뗄 수 있게 해 주어야 했다.
“하…….”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처음 대화를 시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달라진 점은 정영준이 울음을 그쳤다는 것, 그리고 강민재가 가지고 있던 약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좀 이해가 가긴 합니다.”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정영준이었다.
그는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몹시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사실, 진아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한 적도 많았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좀 있었는데…….”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입술을 깨물었다.
“변호사님들 말씀대로라면 다 이해되네요.”
“정영준 씨…….”
“가정을 지킨다는 건……. 그냥 저 혼자만의 바람이었네요. 진아가 정말 제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혼하겠다고 하는 거라면…….”
정영준은 쓰게 웃었다.
“이혼해야겠네요, 그러면…….”
그는 흐흐흐, 웃음을 흘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몹시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고진아의 조건대로 얌전히 이혼해 주겠다고 말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조금도 믿어 주지 않았던 그녀를 원망하기보다는 이해하려던 사람이니까.
“정영준 씨.”
“네.”
“아직 무언가를 결정 내리기에는 이릅니다. 우선 댁으로 돌아가셔서 심사숙고하시고, 다시 연락 주시죠.”
“……알겠습니다.”
정영준 역시 선선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강민재는 차 키를 집으며 입 모양으로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는 맥없이 일어나는 정영준을 부축하여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