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98)
너희들은 변호됐다-98화(98/641)
“아, 제가 태광 사무실에 또 발을 들이는 날이 다 오네요.”
강민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괜히 넥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평소처럼 슈트 차림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늘따라 굉장히 힘을 주고 왔다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안내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에게 간단히 내 이름과 고진아 측 변호인단 대표 변호사 이름을 말하자, 지체 없이 안내해 주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정신없이 업무를 보며 뛰어다니던 변호사들이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강민재 변호사. 오랜만이네?”
그러다, 우리는 별안간 들려온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김윤희 변호사였다.
지금의 나와는 안면이 없지만, 이전 삶에서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태광의 공공연한 2인자.
처음 윤원형이 태광을 차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원년 멤버였다.
윤원형과는 달리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강민재는 김윤희가 내민 손을 맞잡아 악수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래, 그래. 할아버님은 잘 계시지?”
“……아, 예.”
강민재는 굉장히 불편한 듯 대답했다.
껄껄 웃던 김윤희의 시선은 곧 나로 옮겨 왔다.
“이게 누구신가. 그 유명한 차주한 변호사구만. 반가워.”
“처음 뵙겠습니다. 차주한입니다.”
“그래, 그래. 자네가 연수원 몇 기지?”
“29기입니다.”
“그래? 내 10기 아래 후배로구만. 젊어 보이는데, 시험에는 일찍 패스한 모양이야. 어디 보자, 자네가 중앙지검 형사부에 있었던가? 몇 부였지?”
“3부입니다.”
“아, 그럼 황영찬 부장 밑에 있었겠구만.”
19기라면 황영찬과는 동기다.
아마 알면서 물었을 것이다.
황영찬은 언제나 온갖 모임에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동기 모임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태광 2인자 김윤희가 자신과 친하다고 자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김윤희는 몇 년 뒤 태광을 떠나 독자적으로 사무실을 차리기 때문에 나에게 딱히 거슬리는 존재는 아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는데, 공연히 김윤희에게 발목이 잡혔다.
“아, 이런. 용건이 있어서 왔을 텐데 내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나? 얼른 가 봐.”
김윤희는 웃으며 말하고는 우리를지나쳐 갔다.
그가 멀리 사라지자, 강민재는 가슴을 쓸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휴.”
“왜.”
“저 태광에 있을 때 김윤희 변호사님 밑에 있었거든요.”
“그래? 겨우 검사 1년 차였는데 김윤희 같은 거물 밑에 있었다니, 대단한데.”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는데, 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른 가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 습니다. 사무실 지리에는 무척 밝거든요, 제가. 그리고 저 여기 주변 맛집도 엄청 잘 알아요. 이따가 끝나고 거기나 들르시죠.”
이럴 때마다 어색하게 구는 것은 여전하다.
“아직 아무도 없네요.”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강민재는 유리 벽 너머를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 도착했다는 연락받았을 텐데. 일부러 기다리게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는 씩씩대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래도 회의실 조명은 켜 둔 채였다.
이쪽 책상에는 생수 두 병, 반대편 책상 위에는 생수 네 병이 놓여 있었다.
아마 이쪽이 우리의 자리인 모양이었다.
나는 내 자리에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김윤희에게 시간을 빼앗긴 것치고는, 아직 5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강 변. 잠깐 손 좀 씻고 올게.”
“네.”
회의실을 나서려는데, 강민재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붙잡았다.
“요 앞 화장실 말고, 회의실 끼고 왼쪽으로 돌면 나오는 화장실로 가세요. 거기가 파트너 변호사들 사무실 있는 쪽이라서 더 좋아요.”
“그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더 가까운 데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화장실 주변이 꽤 붐볐다.
칫솔 세트를 든 채 서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그 안은 이 닦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강민재가 알려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네. 네. 그렇습니다.”
복도에 진입하여 몇 걸음 떼기도 전이었다.
맞은편에서 어떤 여성이 어깨에 휴대폰을 끼운 채 통화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소 정신없이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네, 회장님. 이제 논의 들어간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대로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통화와 가방에 정신이 팔려 나와 가까워지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앗!”
살짝 피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내 쪽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닌 그녀였다.
그녀가 열심히 뒤적이던 가방을 놓치면서, 그 안에서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아, 회장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바로 땅에 떨어진 내용물을 줍기 시작했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사과하는 나에게 대답조차 없었다.
그냥 지나치기 뭣해서, 나도 함께 내용물을 주워 주었다.
필통, 클리어 파일, 립스틱, 안경집 따위를 주워 그녀의 가방에 넣어 주던 나는,
“…….”
바닥에 떨어진 작은 반지를 발견했다.
가운데 푸른색 보석이 박힌 은색 반지.
옆면에는 길게 레터링이 되어 있었다.
조현석의 반지였다.
아니, 정확히는 조현석의 것과 완전히 디자인이 같은 반지였다.
나는 그녀가 다른 것을 줍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그 반지를 집어들었다.
직접 만져 보니 확실히 알겠다.
내가 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는 키가 193에 달하는 최현석도 마찬가지일 테니, 분명 여자 몫으로 제작된 반지였다.
내가 반지를 들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채기 전에, 빠르게 반지에 새겨진 글자로 눈을 옮겼다.
[Naci Para Conocerte]라틴어 글귀였다.
사랑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혹시 모르니 짧은 문장을 외워 두었다.
안타깝게도, 그 반지에 새겨진 것은 우리가 애타게 찾던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었지만 건진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름을 알아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주 높은 확률로, 이 여자가 그 반지의 주인일 것이므로.
“뭐 하시는 겁니까, 남의 물건을.”
그때였다.
여성이 내 손에서 반지를 빠르게 낚아채 갔다.
어느덧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전부 주운 뒤였다.
“주워 드리려다가. 실례했습니다. 소중한 물건인가 봅니다.”
내가 묻자, 그녀는 그제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그녀는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기는 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다.
“말씀드릴 이유, 없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혹시나 싶어 능력을 사용해 보긴했지만,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대답은 아닌지라 별 성과는 없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그녀는 기존에 향하던 방향과 정반대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곳에 멈춰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았다.
원래 오던 길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나와 마주친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전화도 받지 못하고, 가방도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였다는 것은 다른 데서 급한 볼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전화를 받으면서 상대한테 회장님이라고 했었지.’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눈에 띄게 움직이는 그녀에게 신경이 쓰여 귓가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말이었다.
‘이제 논의에 들어갈 것 같다.’
‘들어가는 대로 바로 보고 드리겠다.’
의미 있는 말은 이 두 가지뿐이었다.
지금 태광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논의하기 위해 온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녀가 지칭하는 대상이 굳이 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회장님’이라고 불린 상대방, 나를 알아본 것이 명백한 눈빛, 조현석과 맞춘 커플 반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어떤가.
그녀가 지칭하는 대상은 분명, 나다.
‘조현석의 애인이다.’
조현석의 애인이라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모든 것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회장님’의 정체까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면 사실, 모든 사건이 한 큐에 해결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현석 – 조현석의 애인 – 고상경
이 셋의 커넥션을 밝히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목표였으니까.
곁에 놓인 커피 자판기에 기댄 채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그녀의 자취를 눈으로 좇던 나는, 그녀가 코너를 도는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코너를 돌기도 전부터 따라갔다가, 감시받는 듯한 인상을 주면 곤란하기 때문에, 몹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녀가 복도 안쪽까지 다다랐을 즈음, 나 역시 코너로 몸을 옮기고 복도 쪽을 잠깐 확인했다.
아직 그 여자가 복도에 서 있었다.
[대표 이사]라는 펫말이 붙은 방앞에.“…….”
그녀는 대표 이사실 문을 열기 전에 갑자기 주변을 살폈다.
나는 다시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목적지가 대표 이사실이라면, 고상경 회장이 윤원형에게 그녀를 보냈다는 뜻일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외동딸이 이혼하는 일이니, 당연히 신경 쓸 법도 하다.
똑똑똑.
그때, 복도 쪽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녀가 대표 이사실 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나는 복도 쪽으로 고개를 조금 빼고 그녀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 안에는 분명 대표 이사인 윤원형이 있겠지만, 그 외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심산이었다.
‘……이런.’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만큼 열린 문은,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닫혀 버렸다.
아쉬운 일이었으나, 도리가 없다.
여기서 계속 진을 치고 앉아 살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회의실 쪽으로 돌아갔다.
아마 반지의 주인은 고상경 회장의 수족일 것이다.
그녀가 대표 이사실로 향한 까닭 역시, 우리의 논의가 오늘 얼마나 진척되는지 확인하고 빠르게 고상경 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을 터.
나는 우선 회의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따로 돌아가 알아봐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