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99)
너희들은 변호됐다-99화(99/641)
태광에서 이루어진 상대측 변호인단과의 논의는 그리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정영준이 무고하다는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만 했고, 그쪽은 답답해하며 왜 협의 이혼을 해야만 하는지 나를 설득했다.
애초부터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건 들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넘겼을 뿐이었다.
자리가 파한 것은, 내가 ‘정 이혼이 급하면 소장을 접수하라’고 말을 한 다음이었다.
그 말에 상대측 변호인단은 몹시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마 우리가 태광 사무실을 떠난 뒤, 윤원형에게 어지간히 말이 안통하는 인간이라며 흉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는 길에 정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만났던 그 반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빠르게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정영준은 마침 집이 비었으니 집에서 이야기하자고 했고, 우리는 그길로 바로 정영준의 집으로 갔다.
“안경을 끼고, 어깨쯤 오는 웨이브 머리에, 목소리는 하이톤이고, 키는 이만 하고……. 또 뭐라고 하셨죠?”
“입가에 큰 점이 있었습니다.”
점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정영준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진아 비서네요. 주민지 비서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 외의 것이었다.
고진아의 비서라니.
조현석의 애인이자, 그 동영상을 촬영할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그 여자가 고상경의 수족이 아니라, 고진아의 수족이라고?
“고진아 씨의 비서란 말씀이십니까? 고상경 회장의 비서가 아니라?”
“예, 진아 비서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민지 비서는 왜…….”
정영준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우선 대답하지 않았다.
주민지가 고진아의 비서라면, 생각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지극히 나쁜 쪽으로.
“그, 장인 비서냐고 물으셔서 생각난 건데, 원래는 회장 비서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진아 수행 비서가 퇴사하게 되어서 새 비서를 구했는데, 장인이 쓸 만한 사람이라면서 주 비서를 진아에게 보냈습니다. 장인 밑에서 6년인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정영준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일그러진 강민재의 표정에서 주민지가 고상경과 연관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눈치를 보는 정영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고상경 회장이 주민지 비서를 쓸만한 사람이라고 하셨다고요.”
“네. 주 비서를 진아에게 소개하는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주 비서가 고진아 씨의 수행 비서 일을 시작한 후 고진아 씨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음, 처음에 진아는 주 비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진아는 장인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주 비서를 붙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죠.”
“고진아 씨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주민지 비서가 진아의 일거수일투족을 장인에게 보고하다가 한 번 걸렸습니다. 진아는 몹시 불쾌해했고요. 음, 하루는 장인과 끝장을 보겠다며 장인의 서재로 달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에 돌아와서는 어떻게 잘 얘기를 끝냈다고 했던 것 이 기억납니다.”
“그때 이후로는 계속 주민지 비서가 고진아 씨를 수행했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진아가 계속 주 비서를 장인의 프락치라고 표현한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 미팅은 미리 당사자는 제외하고 변호사끼리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진아와 정영준은 태광에 오지 않았다.
주민지가 그곳에 있었던 까닭은, 고진아가 상황을 빠르게 확인하고 보고하라고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어야 할 고진아의 수행 비서가 홀로 태광에 왔다면, 그녀의 허락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때 주민지가 보고하던 대상은 고진아가 아닌 고상경이었는데.
“강 변.”
“네?”
“내가 손 씻고 오겠다고 나간 뒤에, 상대 변호인단이 언제쯤 회의실에 도착했지?”
“변호사님 나가고 얼마 안 지나서요. 한 2분?”
내가 회의실에서 나가, 주민지와 부딪혔을 때가 아마 그즈음일 것이다.
그때, 주민지는 상대방을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이제 논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대충 시간을 맞춰 보면, 내가 들은 것은 변호인단이 회의실로 출발한 직후에 건 전화라는 뜻이다.
그녀는 고진아보다 고상경에게 먼저 보고했다.
‘고진아보다는 고상경의 수족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고진아가 주민지에게 정영준의 섹스 비디오 촬영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고진아보다는 고상경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추측이 조금 더 타당해 보인다.
고진아가 단순히 이혼을 원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
정영준이 지금 이렇게 이혼을 거부하는 것은 고진아의 오해를 풀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고진아가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는 것이었다면 길게 매달리지 않고 곱게 이혼해 줬을 공산이 컸다.
“변호사님, 주 비서가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침묵을 견디지 못한 정영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무언가 확실해지거나,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 확실하게 손에 들어온 증거는 두 가지다.
그 비디오의 촬영자가 조현석과 주민지라는 것.
그리고 주민지가 고상경 회장의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주민지가 고상경으로부터 정영준을 모함하라는 미션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주민지를 만나서 능력을 사용한다면 내 개인의 궁금증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증거였다.
만일, 조현석과 주민지가 예전부터 정영준과는 그런 섹스 파티를 즐겨왔었다고 거짓 증언을 한다면 모든 것이 소용없어진다.
정영준은 그저 아내의 비서와 놀아난 사람이 될 뿐이었다.
주민지가 고상경에게 명령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 증거를 찾을 가장 빠른 방법은…….
“압수수색.”
“예?”
옆에서 가만히 운전에 집중하던 강민재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민지 압수수색 해야 해.”
“……우리가 검찰도 아닌데, 어떻게 압수수색을 해요.”
“검찰이 있잖아.”
나는 휴대폰에서 이예진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 전화 연결음이 이어졌다.
-이예진 검사님 휴대폰입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오 계장이었다.
“계장님, 저 차주한입니다.”
-네, 변호사님. 그렇지 않아도 검사님이 부재중이셔서 그냥 두려다가, 변호사님 전화라서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선배님하고 같이 뵈었으면 하는데요.”
-지금이요? 급한 일이십니까?
“저도 급하지만, 아마 두 분께 더 급한 일일 겁니다.”
-……조현석에 관한 일입니까?
“네.”
-뭔가 알아내신 모양이로군요.
오 계장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뜬 것처럼 느껴졌다.
-어……. 지금 검사님이 취조 들어가셔서요. 일단 변호사님 메시지 전달하겠습니다.
“중요한 취조 들어가셨으면, 촌각을 다투는 일까지는 아니니 일정 소화하신 뒤에 만나자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주민지는 자신이 의심받는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증거라면, 내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증거를 인멸할 거라면 이미 오래전에 해야 했다.
당장 이예진을 만난다고 해서 바로 압수수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급할 것은 없었다.
“지금 변호사님 생각은 조현석 애인이 고진아 비서라는 점을 이예진 선배하고 공유해서, 조현석이 양진 그룹과도 연관이 있다는 걸 공론화 하시려는 거죠? 그래서 압색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주민지 압수수색 영장이 나올까요?”
“지금 조현석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나쁘고, 가택 압수수색 결과로 제대로 된 걸 못 건진 상황이잖아. 그런데 검찰청에 출두해서는 돈 자랑을 늘어놨다는 게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단 말이지.”
“그랬죠?”
“그제 기사 보니까, 조현석은 지금 확정된 범죄자 신분으로, 한가롭게 명품이나 사 나르겠다는 말을 해서 공분을 산 상태야. 또, 검찰이 이미 알려진 애인에 대해서 참고인 조사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는 것도 공개됐어. 그래서 검찰 수사력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고.”
“봤어요. 이예진 선배님 진짜 얌체예요. 우리한테 좋은 정보 받아 놓고 공개하기로 결정된 얘기만 해 줬더라고요. 얄밉게.”
사실이다.
이예진과 우리 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얘기해 준 정보가 전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내부에서만 굴리는 정보는 하나도 주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조현석이 명품 가방을 애인에게 주려고 했다는 정보를 빠르게 얻었으니, 썩 아쉬울 것은 없었다.
이미 반지를 통해 조현석의 애인을 찾아낸 이 상황에서, 그 정보가 유의미하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검찰은 참고인으로 불렀던 그 대학생이 조현석의 진짜 애인인 줄 알고 있잖아.”
“네, 그쵸.”
“그 애인은 연막이었다는 걸 이제 내가 알려 줄 거란 말이지.”
“아. 그러면, 연막을 쳐 가면서까지 애인을 숨겼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 확 수상해지네요.”
“그렇지. 근데 그 숨겨 둔 애인이 마침 양진 그룹 오너 일가의 수족이란 말이지. 냄새가 나잖아. 내사는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압색 영장이 안 나온다고 해도, 휴대폰이나 하드디스크 임의 제출은 시킬 수 있겠지. 근데 지금 검찰이 욕을 너무 많이 먹는 상황이라서, 어떻게든 압색 영장 받아 낼 것 같은데.”
2011년, 압수수색에 관한 법률은 일부 개정된 바가 있다.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2009년이다.
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우, 판사가 발부한 영장만 있으면 압수수색을 진행할 수 있다.
압수수색의 조건이 보다 널널하다.
이예진이 판사를 잘 설득하기만 하면 압수수색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