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0)화(10/207)
‘……섰다!’
“움마!”
경쾌하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내 머리가 스르르 앞으로 기울어졌다.
“……!”
난 손을 붕붕 돌리며 마력으로 정수리를 밀었다. 그러자 무게중심이 다시 뒤로 기우뚱했다. 황급히 마력으로 허리를 받치자, 다시 몸이 바로 섰다.
“우아.”
제대로 서려면 하체뿐만 아니라 허리까지 붙잡아 줘야 하는구나. 고민하다가 허리 주변으로 마력을 빙 둘러서 중심을 다시 잡았다. 동그란 받침대를 잡고 걷는 것처럼.
그러자 안정성도 생겼고, 마력만으로 몸을 띄울 때보다 훨씬 마력 소모량도 줄어들었다.
마력만으로 날아서 이동하는 것보다 발로 체중을 분산하고 마력으로 보조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란 내 예측이 맞았다. 그래서 틈틈이 계속 연습해왔는데, 이렇게 훌륭히 성공하다니.
“아다다다.”
‘직립보행은 위대하다.’
지표면을 디딘 발을 타고 찌르르한 감동이 올라왔다. 난 약간 울컥한 채 양발의 감각을 느꼈다. 배를 밀어가며 책을 숨기고 바닥을 기고 땀범벅이 되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어른들은 포복을 군사훈련으로 한다지. 아기의 삶이란 매 순간이 치열한 전장이다. 어른들은 인생을 쉽게 산다.
“아나, 두우.”
‘하나, 둘.’
난 걸음을 세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디뎠다. 빨리 커야 한다는 압박감에 분유를 너무 열심히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 린다가 하얀 양말을 신겨준 발은, 아기 특유의 비율 때문인지 통통한 몸에 비해 너무나 작았다. 저 작은 발로 비교적 커다란 몸을 버티게 도와주려면 아주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했다.
‘발목이 삐었을 때나 하던 걸 이렇게 써먹네.’
당시엔 살려고 발버둥 친 거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상황이 나빠지곤 했으니까.
적이 우글거리는 황궁에서 마력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힘이 결국 날 이렇게 과거로 데려와 주기까지 했으니. 마녀라서 여러 수모를 당했는데, 마녀라서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백 하나, 백 둘.’
내 걸음은 그야말로 아장아장했다. 다리가 짧아서 보폭이 좁고 성인의 한 걸음을 걸으려면 서너 걸음은 걸어야 하는 것 같다. 짧아진 보폭에 눈물이 났지만 속으로 걸음 수를 세면서 열심히 나아갔다.
체력이 닳는다 싶으면 치유의 권능을 이용했다. 치유 속성을 타고난 신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능력이지만, 그래도 체력 회복이나 작은 상처를 치료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닳은 체력은 신성력으로 회복하고, 부족한 피지컬은 마력으로 커버한다. 그렇게 아침이 밝기 전까지 마법서를 회수해온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순조로운지도?’
내 몸을 휘감은 마력을, 나는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난 고모의 휴양기간인 일주일이 끝나기 전에 얼른 마법서를 회수해야 한단 생각에 초조했었다. 그래서 고모 방과 내 방의 왕복 거리와 필요한 마력량을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열심히 계산했고, 그동안 성실히 모았다. 그래서 딱, 7일째 되는 날 목표치를 채우고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유 있는 기분이다.
옛날에는 마력을 쓰면 술술 샜는데, 이제는 써도 날아가지 않는 기분?
‘타임리프 덕택인가……?’
왜, 전사가 전쟁을 겪을 때마다 강해지는 것처럼. 나도 대형 마법을 시전하며 마녀로서 성장했다거나?
나 이외의 마녀는 본 적이 없어서 마녀들이 보통 어떻게 성장하는지는 모르지만, 가능성 있었다.
‘오천오백, 오천오백하나…….’
그렇게 한두 시간쯤 갔을까.
드디어 고모의 방과 통하는 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통의 아기였으면 벌써 녹초가 됐겠지만, 신성의 도움을 받아 난 그다지 지치지 않았다.
‘오천오백이십!’
“꺄!”
벽 앞에 도착한 나는 작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스스로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성공적이야.’
난 설레는 마음으로 벽에 귀를 댔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벽에 손을 대고 밀자,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부드럽게 벽이 밀렸다.
곧 눈앞에 익숙한 공간이 펼쳐졌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커다란 달이 어둠을 밝혀주어서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고모 방이다.’
나는 벽을 탁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빼서 양옆을 둘러봤다. 확실히 아무도 없는 것 같자 후다닥 달려, 나오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네.
아쉬운 대로 아장아장 걸어 나와서 침대 밑을 뒤졌다.
‘마법서, 마법서.’
베드 스커트를 걷고 바닥을 더듬거리자 곧 손끝에 닿는 것이 있었다. 나는 마력의 보조를 받으며 그것을 꽉 붙잡고 힘껏 당겼다. 침대 밑에서 튀어나온 것은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엄마의 마법서였다.
해냈다!
“꺄…!”
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가 흠칫 놀랐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내 시선이 잠깐 문가를 살폈다. 진땀을 흘리며 굳어 있다가, 아무런 낌새가 없자 겨우겨우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브엔나, 너 진짜 바보야?’
난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 앞에선 오열하더니 이젠 뒷공작 중에 감탄을. 진짜 아기가 되더니 신경줄이 짧아진 건가?
난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양손으로 마법서를 들고 조심스럽게 비밀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발밑에 러그가 밟혀서 일부러 힘껏 지르밟아줬다.
러그야, 이것 봐라.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란다.
배밀이만 할 땐 저걸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마력 덕분이라곤 해도 걸어 다니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이족보행 만만세다.
뒤뚱뒤뚱 걸어서 통로로 도착한 나는, 닫힌 벽을 등지고 책을 안은 채 작게 헐떡였다. 잠깐이었지만 누가 들어올까 봐 짧은 몸뚱이를 후다닥 움직였더니 숨이 다 찼다. 목표도 달성했으니 잠깐의 휴식은 해도 되겠지. 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돌리는 내 시야에 큼직한 에메랄드가 박힌 녹색 마법서가 보였다.
“히…….”
난 작게 웃으며 마법서를 쓰다듬었다. 이로써 내가 마녀라는 증거는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엄마의 마법서.’
처음 봤을 땐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저 책은 내 손에 들어온 엄마의 유일한 유품이었다. 이 책은 작년, 그러니까 15살에 책장 뒤에 숨겨진 걸 우연히 발견했다. 처음엔 마법서란 것도 몰랐다. 고모가 펼쳐보려 했는데 펼쳐지지 않아서 마법서란 걸 알았지.
이걸 삼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이 책에는 아주 간단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마지막에 책을 덮은 사람만 책을 열 수 있는 마법.
게다가 웬만한 충격에는 찢어지지도, 해지지도 않았다. 펼쳐보면 전부 빈 종이인데 약간의 마력을 넣으면 안의 내용이 드러났다. 이 비밀스러운 마법서에는, 엄마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 안에서 타임리프도 찾았지…….’
덕분에 시간을 되돌려서 이렇게 살아 있지 않나. 내겐 엄마와 마법서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쳤다. 아무것도 없는 베이지색 종이 위로, 손바닥에 마력을 모아서 가볍게 쓸자 페이지가 드러났다.
엄마의 필체로 적힌 술식들, 마법진. 그리고 심심하셨는지 모퉁이에는 조그맣게 호랑이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둥글고 삐뚤빼뚤한, 못생긴 호랑이다. 이로써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엄마는 그림을 못 그리셨다.
“헤헤.”
난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바닥에 엎드려 책에 얼굴을 묻었다.
귀족들의 입방아나 신전에서 낸 동화책, 혹은 친척들의 이야기 속에서나 엿볼 수 있었던 엄마.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그분의 흔적이, 이 책에 남아 있었다. 흉포하지도, 비참하지도, 추하거나 교활하지도 않은 엄마가.
나는 문득 고개를 들고 책을 빤히 내려다봤다.
‘타임리프를 쓸 수 있었던 걸 보면, 다른 마법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유용한 게 꽤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약간 혹해서 책장을 넘겼다.
‘마녀의 물건을 가까이하면 영혼이 타락해. 성신께 버림받을 것이다.’
그러자 조건 반사처럼 삼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나는 살짝 떨리는 손을 바닥에 꾹 눌렀다. 시원한 돌바닥이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엄마의 유품을 발견했을 때도 삼촌의 말이 생각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방치했다.
‘……옛날이었다면 이런 일은 엄두도 못 냈겠지.’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삼촌의 말을 최선을 다해 따랐다. 웃으라면 웃고, 반성하라면 하고, 지장을 찍으라면 찍고, 서류에 사인하라면 뭔지도 모르면서 사인했다. 시키는 것만 하고, 하고 싶은 건 안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쉽게 되었구나, 이브엔나.’
많은 사람의 죽음과 내게 내려진 즉결심판.
나는 이도 안 난 입을 꽉 앙다물었다.
‘이러나저러나 즉결심판이라면, 오히려 뭘 해도 된다는 뜻 아닌가?’
책을 내려다보는 내 눈이 오기로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