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0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06)화(108/207)
반디 파블로바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마탑에 들어온 후 그녀의 성격은 많이 달라졌으나 그 거만한 성정을 완전히 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그녀가 존댓말을 쓰는 상대는 딱 두 분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린제나였고 다른 하나는 린제나가 존댓말을 쓰라고 말한 마탑의 어른들이었다.
반디는 린제나와 그녀의 마탑을 좋아했다. 그리고 린제나와 마탑에 위험이 되는 것들을 싫어했다.
반디의 정의는 딱 두 분류로 나누어진다. 마탑에 이득이 되는 건, 좋은 것. 마탑에 해를 끼치는 건, 나쁜 것.
그게 반디가 이브엔나를 싫어했던 이유였다.
“이제 옛날 일이 되었지만 말이지, 에휴.”
반디는 복도를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운 숨이 마탑의 선선한 공기 속에 빠르게 섞여들었다.
마녀들이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은 누가 퍼뜨린 헛소리인지. 이 마탑 사람들은 죄 물러터졌다. 마법사 꼬마가 황실과 마탑을 오가는 걸 허락해주다니. 멋모르는 어린애가 마탑의 정보를 술술 불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부모 없이 제국에서 크는 어린애가 불쌍하단 이유만으로 오가는 걸 허락해주다니.
반디는 불쾌한 얼굴로 고민의 원흉을 떠올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눈치 빠르고 순한, 늘 떨고 있는 이브엔나를.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반디는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했다. 아니, 이게 아니잖아. 그녀는 도로 빠르게 얼굴을 굳혔다.
‘그 꼬마…… 마탑을 위험하게 만들진 않을지 몰라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건 분명해.’
반디는 심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꼬마가 무슨 작당을 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니가 그렇게 이상해질 리가 없어.’
그랬다. 반디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린제나는, 요즘 상태가 이상했다.
반디는 이브엔나가 마탑을 오가던 근 두 달간 린제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렸다.
***
좋아하는 사람에게 장미를 주는 어느 기념일, 붉은 장미를 들고 도서관으로 모여든 여자들을 보며 린제나가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군. 다들 저런 게 뭐가 좋다는 거야?”
반디는 고백의 대상이 된 남자를 한 번 훑어보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얼핏 보면 도서관과 책이 잘 어울리는 차분한 미남처럼 보였다. 그러니 마탑의 여자들이 그의 겉모습에 속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브엔나도 요즘 그를 알아보지 못하며 낯선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남자, 번지는 늘 기르던 수염을 깎고 청순가련한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연구를 시작하면 외모를 방치할 테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릴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옆에 있던 다른 마법사가 홀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요? 잘생겼잖아요. 저 우수에 찬 눈 좀 봐요. 사연 있어 보이고. 막 지켜주고 싶고. 어쩐지 모성애를 자극한달까요?”
“애도 없는 게 무슨 모성애.”
린제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할 일이 없어서 다 큰 남자를 지켜주고 앉았어. 에휴, 저렇게 비리비리해선 못 써먹어.”
“어디다 써드시려고요……. 탑주님은 어떤 남자가 좋은데요?”
“흠, 자고로 남자는 듬직해야지. 듬직하단 건, 삼두근과 흉근이 발달한 몸이라는 뜻이야. 물론 키도 커야겠지. 음,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얼굴도 잘생겨야.”
“순수하게 외모만 보시네요.”
“껍데기라도 볼만해야지. 어차피 속은 거기서 거기…… 뭐, 이왕이면 진중한 남자가 좋긴 해. 난 뭐든 가벼운 것보다는 무게감 있는 편이 좋거든.”
“그면 우리 아빠는 어때요?”
불쑥 끼어든 앳된 목소리에 마법사들은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이브엔나가 서로 색이 다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가. 언제 왔니?”
“우리 성아, 징중하신데.”
수줍음 많은 아이의 조그만 목소리에 린제나가 눈에 띄게 안도했다. ‘거기까지만 들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였다.
그때, 아이가 우물거리며 속삭였다.
“자, 잘생기시기두 해꾸…….”
“헉, 거기까지 들었어?”
“키, 키도 크구, 운동도 많이 하셨는데….”
“…그냥 다 들었구나.”
린제나가 당황한 얼굴로 진땀을 빼는 모습을, 반디는 흥미롭게 관람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브엔나는 린제나에게 그런 말을 자주 했다.
“대마녀니, 우리 성아 어때요?”
“대마녀니는 어떤 남자 조아하세요?”
“겨론 생각 진짜루 업떠요?”
당시에는 같은 맥락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심지어 이브는 반디에게 이런 말도 한 적 있었다.
“대마녀님은 진짜 아기 안 나아?”
“그러믄 안 되는데…….”
“대마녀님은 아가를 왜 안 낳는대요?”
난들 알겠냐, 라고 대답하면 이브엔나는 기운 없고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었다.
아이를 계속해서 지켜본 반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어리고 간절한 뚜쟁이는 처음 보는군…….’
이브엔나의 두 가지 행동을 조합해보면, 그 아이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성하랑 결혼해서 아기 낳아줘요>
‘왜?’
반디는 의문스러웠다. 대체 왜 이브엔나는 마녀들의 수장이 교황과 아이를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이브엔나가 그런 이상한 목적을 갖게 된 연유는 알 수 없었으나, 아무튼 아이의 행동은 일관적이었다.
덕분에 린제나도 이브엔나의 목적을 쉽사리 눈치채버렸다.
그녀는 아이의 기행을 이렇게 평가했었다.
“오지랖 넓은 친척 어른이 생긴 기분이야…….”
린제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이브는 내가 귀찮은 걸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니.”
반디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이가 언니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고요.”
“그렇지?”
듣고 싶은 말이었던지, 린제나가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이내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브는 왜 자꾸 내게 다른 아기들이 귀엽지 않냐고 물어보지?”
반디는 린제나를 향한 깊은 경애로 헛웃음을 참아냈다. 그러곤 인내심을 발휘해 물었다.
“언니가 귀찮아서 다른 아기랑 놀라고 밀어내는 게 아니라, 언니의 아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요?”
“내 아기?”
린제나가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브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왜 아기를 안 낳느냐고. 아가는 날 엄마처럼 여기니까, 어쩌면 동생이 갖고 싶은 마음이려나…….”
그녀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 보통 아기들은 좋아하면 독점하고 싶어 하지 않나?”
“전 이해 되는데요.”
린제나가 돌아보자, 반디가 수줍은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가 낳은 아기면, 엄청 예쁠 거 같아. 언니 닮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곤 은근히 린제나를 흘끔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언니가 아이 낳으면 나 진짜 맨날 업고 다닐 자신 있는데.”
“흐응, 필요 없거든.”
린제나의 무심한 대답에 반디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나 곧 다른 궁금증을 떠올려냈다.
“말이 나오니 궁금하긴 하네요. 왜 아이를 안 낳는다는 거예요?”
“글쎄…….”
린제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망받기 싫어서?”
툭 던지듯 나온 답이었지만, 반디는 그게 그녀의 진심이라는 걸 단박에 눈치챘다.
반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에이, 그게 뭐예요. 난 언니같이 예쁘고 멋진 엄마 있으면 기분 엄청…….”
그런 실없는 위로를 주워섬기며 금세 다른 화제로 돌아갔던 것 같다.
***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반디는 불유쾌한 기분으로 린제나의 방문을 땄다.
나름 잠금장치가 되어 있긴 하지만, 이 마탑에서 자물쇠가 맡은 역할은 무용지물이었다. 반디는 제 방처럼 편하게 발을 들여 연구실과 연결된 안쪽 침실과 서재를 살폈다. 하지만 린제나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쏘다니는 거야…….”
벌써 일주일째였다. 린제나가 밤마다 마탑을 빠져나간 게.
아무리 마탑주라도 마력은 한정되어 있다. 공간 이동은 꽤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마법인데, 이렇게 자주 사용했다간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교황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야.’
린제나에게 교황이 죽었단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건 반디였다.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이나 반문하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
솔직히 잘됐다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린제나의 모습을 보고 반디는 확신했다. 린제나와 마탑에 위험이 될 수 있는 교황이 죽어서 잘됐다고.
그가 그녀에게 완전히 침투해서 뿌리 뽑기 힘들어지기 전에.
‘그런데 살아 있었다니…….’
교황이 죽었단 소식은 에코의 가벼운 목소리를 타고 전 마탑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이브가 교황이 살아 있다고 해명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마법사들은 모두 놀랐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벌써 만난 건가?’
역시 린제나는 근 일주일 동안 황성에 갔던 거였다. 그곳에서 교황을 만났기에 미리 안 것이다. 그가 살아 있었다는 걸.
반디는 손톱 끝을 잘근 씹었다.
그때, 허공이 돌연 찢어지더니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린제나가 바닥에 발을 디디는 모습이 반디의 시선에 맺혔다.
딱히 손질하지 않아도 늘 윤기가 흐르는 분홍색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어쩐지 땀을 흘린 것처럼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고, 새하얗던 뺨 위에는 홍조가 드리웠다. 사랑스럽던 분홍색 입술은 이상하게도 살짝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눈앞에 반디를 놓고도 린제나는 바로 인식을 못 했다. 기쁨과 호기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그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버린 건 그녀가 드디어 반디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어.”
“…….”
린제나의 냉정한 모습을 보며 반디는 섭섭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선선히 물었다.
“어디 갔다 오세요?”
린제나는 고개를 돌리며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시즐란드에. 신입 관련 처리할 게 남아서.”
‘거짓말.’
반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방긋 웃었다.
“그랬구나, 고생 많으셨어요.”
“너는 내 방에 왜 온 거야?”
“그냥, 잠이 안 와서요.”
“그래도 주인 없는 방에 막 들어오면 안 되지. 빨리 나가.”
린제나는 축객령을 내리는 동시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욕실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침착한데 걸음은 약간 성급했다.
반디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니, 교황은 어때요?”
“……뭐?”
린제나가 멈칫하며 돌아보자, 반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는 연회 때 자세히 못 봤으니까요. 궁금해서. 대단한 인물이잖아요. 성자 태생 교황이고. 어때요, 실제로 보면 뭔가 달라요?”
“어…….”
린제나가 약간 당황한 듯 말꼬리를 늘였다. 그러다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성자, 별거 없어. 그냥 평범한 인간이야. 우리랑 똑같이 밤 되면 잠들고, 눈물은 짜고.”
그러면서 욕실로 휙 들어가 버렸다.
반디 또한 방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린제나가 숨기는 동안은 굳이 들쑤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린제나의 마음이 어떤 것이든, 그녀가 직접 말해주지 않는 건 묻어버릴 계획이란 뜻이니까. 생각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어련히 알아서 정리하겠지.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고?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으면서, 은근히 교황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려는 것 같기도 해서… 짜증 나네.’
게다가 뒷말도 조금 거슬렸다.
눈물이 짜다는 건 무슨 말인가.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