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11)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09)화(111/207)
‘혹시, 나 때문에?’
문득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기억 속에 묻어뒀던 사실들이 떠올랐다.
아빠의 결혼 발표가 갑작스러웠다는 것. 그리고 내가 칠삭둥이였다는 것.
‘고모는 두 분이 결혼 전에 나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말했지.’
결혼 전에 사고 친 젊은 연인들이 제때 태어난 아이를 칠삭둥이라고 속이곤 한다면서.
만약 그야말로 내가…… 사고 같은 아이였다면?
가벼운 농담처럼 던졌던 고모의 말이 갑자기 잔혹한 무게로 나를 덮쳤다.
“이브!”
그때 문이 열리더니 당차게 들어오는 반디와 에코, 알비스, 샤샤, 번지의 모습이 보였다.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했다며?”
“드디어 성공했구나.”
[내가 다 말해줬어.]그들이 우르르 나를 둘러싸고 축하와 칭찬을 번갈아 해주었다.
스르르 고개를 들자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던 반디가 움찔하며 팔짱을 꼈다.
“흐, 흥. 그래봤자 우리 언니한테는 한참 못 미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얼굴을 향해 들고 있던 펜을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써서 그것을 쳐내려고 했다. 그런데 어쩐지 마력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늦었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펜이 내 얼굴 앞에서 멈춰 섰다.
“역시. 마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지? 기존의 특질을 바꿔버려서 그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특질 훔치기’로 내가 가진 마력 코어의 특질이 공간 이동 능력으로 바뀐 거니까.
‘자기통제’의 높은 마력 운용력이 사라져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던 마력들이 내 통제를 벗어나 버린 거구나.
“반디, 아가를 놀라게 하지 마.”
엄마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반디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해요. 난 그냥 조언해주려고.”
“그러면 대마녀님두 못 써요?”
내가 묻자, 마법사들이 재밌는 물음을 들은 것처럼 낄낄거렸다. 엄마가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아니, 나는…….”
“이브, 넌 모르지? 언니는 마력 코어가 두 개인 특이 체질이야.”
반디가 자기 자랑을 하듯 말했다.
“그래서 특질도 두 개까지 가질 수 있고, 마력도 남들의 두 배지.”
“아…….”
그 말을 듣자 반사적으로 엄마의 마법서가 떠올랐다. 완벽하게 마탑의 마법들을 총망라해두었던 그 책을.
특이 체질로 타고난 두 개의 마력 코어와 엄청난 마력량 덕분에, 이렇게 젊은 나이에 그 엄청난 마법들을 다 익히고 마법서까지 만들 수 있었던 거구나.
‘나도 알아,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나는 엄마에 대한 애정을 기탄없이 내보이는 반디의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반디, 아까 하려던 말이 이거여써요?”
“응?”
나는 의아하게 나를 보는 반디의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가깝게 하려던 내 노력을 알아챈 반디가 경고하던 뒷말을, 이제 알 거 같았다.
“그래봐짜 우리는 어차피, 떠나니까.”
반디는 엄마와 아빠가 사랑에 빠지든 연애를 하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내내 발랄하던 반디의 얼굴에 처음으로 그림자가 졌다.
“아, 그거…… 이미 말했구나.”
차라리 뻔뻔하게 답하기를 바랐는데, 미안해하는 듯한 얼굴에 더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째서 마탑의 모두가 마녀를 향한 편견을 깨는 일에 그토록 미온적이었는지.
그들은 마녀들을 향한 편견을 깨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고 있었다. 신성연합국의 편견에 맞추어 마녀로서 나설 때는 늘 검은 로브와 검은 머리로 치장했다.
마녀 복장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나쁜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치만 거짓말은, 들키자나요. 대마녀니 조은 사람인데…… 솔직히 말하며는 안 되나요?’
그 말에 엄마가 대답했던 말이 기억난다.
‘으음, 같이 살아가려면 그래야겠지만…….’
마법사들은 애초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같이 살아가지 않을 거니까.
이 시간대에서, 엄마는 아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마음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왜, 미래에선…….’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법사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브, 이브!”
등 뒤로 나를 쫓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엄마는 손쉽게 나를 앞지를 수 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나는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에야 멈춰 서서 엄마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엄마는 눈꼬리가 처진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 미안해. 많이 놀랐지? 우리는 그냥,”
“집에 갈래요.”
나는 엄마의 말을 잘라버리고 말했다.
엄마는 무릎을 접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엄마의 예쁜 분홍색 눈동자가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이브, 너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몰라. 이 계획을 처음 세운 건 나와 사비나가 13살 때였어…….”
엄마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왜 그들이 이 세계를 버리고 중간계로 떠나기로 했는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나샤에서는 마녀를 향한 편견이 별로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왜 마수가 들끓는 땅에 버려져 있는지 알게 되었고, 신전에 대한 악감정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마법사들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각지에서 마법사들을 만나며 포섭했다. 강한 마법사들과는 동맹을 맺었고, 약한 마법사는 마탑으로 데려와 보호했다.
그러다 알비스를 만나고, 공간 이동을 연습하던 중 중간계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중간계에 떨어지면 혼자 힘으로는 못 나와. 바깥에서 다른 공간 이동 능력자가 끌어줘야 하지.”
중간계에서는 에코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건도 소환되지 않았다. 알비스가 엄마를 구해내려고 노력했지만, 중간계의 통로는 공간 이동을 쓸 때마다 랜덤으로 열리는 것이라서 엄마를 구하는 데까지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한 달 동안, 엄마는 중간계를 헤매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살던 지적 생명체의 흔적들. 그들이 살던 집과 그곳에 그려진 벽화들을.
인간과 비슷한 외형에 뾰족한 귀를 가진 종족들. 혹은 조그만 몸에 날개를 가진 종족들.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전설의 신수, 드래곤의 흔적까지도.
“전쟁이라도 일어났던 것처럼 모든 게 파괴되어서 지적 생명체는 아무도 남지 않았지만, 자연은 다시 복구되고 있었지.”
공기가 독성을 머금고 있었으나 마녀에겐 위해를 끼치지 못했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후, 엄마는 마법사들에게 자신이 본 놀라운 광경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을 미워하는 인간과 위험한 마수들이 들끓는 이 세계를 버리고 중간계로 떠나기로.
“…….”
엄마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파묻고 있었다.
이야기를 끝낸 엄마는 말 없는 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비밀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브.”
“…….”
“네가 원한다면… 난 이 세계에 남을 수도 있어.”
그 말에 나는 화를 낼 수도, 기뻐할 수도 없었다.
‘아아…….’
그저 울고 싶은 기분만 들었다.
엄마가 죽은 건, 아빠가 내가 태어나는 날까지 미뤄두었던 전쟁에 나가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엄마는 황후궁의 침실에서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목을 매서 죽었다.
하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한낮의 황성, 그 모두에게 마치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이.
세간의 지식에 따르면, 마녀는 목을 매는 것으로는 죽지 않는다. 그 미래에 광장에서 이루어진 마녀의 사형도 전부 화형으로 이루어졌으니까.
덕분에 내가 본격적으로 마녀의 편을 들며 원성을 사기 전에는, 나를 마녀의 딸이라 욕하는 자들이 많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나는 주먹을 꾹 쥔 채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대마녀님이 왜 그래야 되는데요?”
장장 몇 년을 준비한 계획을, 고작 두 달 전에 만난 꼬마 때문에 깨뜨리겠다고.
이해가 안 되잖아.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지금은 마탑이 불안하지만, 중간계로 보내고 나면 안전해질 테니까. 이브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남겠다는 마법사들도 몇 명 있거든. 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마법사들도 있을 거고…… 그들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래요?”
엄마는 나를 달래려고 하는 말 같은데, 어쩐지 목소리가 삐딱하게 나갔다.
“참 바쁘시네요.”
마탑도 보호해야 하고, 땅에 있는 마법사들도 구해야 하고. 두 달 전에 만난 수상한 혼혈 꼬마도 지켜줘야 하고.
그러면 내 엄마는 누가 지켜줘?
“……이브?”
“돼써요. 이제 돌려보내 주세요.”
나는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피곤했다.
“집에 가고 시퍼…….”
“그, 그래.”
엄마는 내 안색을 살피며 공간 이동진을 만들었다. 나를 돌려 보내주기 전에, 엄마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맞아,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네?”
“할 말이 있으니 황성에 일찍 돌아가자고 했잖아.”
“……아.”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한숨처럼 말했다.
“아니, 별거 아니었어요.”
***
“오늘은 혼자 돌아온 건가.”
“제가 오느른 대마녀님 오지 말라구 해써요.”
“이브?”
“이부 피곤해. 성아 안녕히 주무떼요.”
나는 황성에 돌아오자마자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 방으로 향했다. 아빠의 시선이 뒤따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오늘은 아빠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침실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았다.
‘내 목표는, 과거로 가서 부모님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 그리고 부모님께 미래의 역사를 알려주어 앞으로 일어날 온갖 참사를 막도록 돕는 것.’
엄마가 자살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완벽한 엄마의 약점은 마법사라는 부분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목숨을 구하려면 마녀들을 향한 편견을 깨부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탑주인 엄마가 황후가 되고 나면, 다른 마법사들을 보호하기도 쉬워질 테니까.
하지만 엄마와 마법사들이 이 세계를 버릴 예정이라면, 마녀를 향한 편견을 부술 필요가 없었다.
중간계로 이주하겠다는 마탑의 계획은 파격적이지만 훌륭했다.
마법사들과 함께 이 세계를 떠난다면 엄마는 죽지 않는다.
엄마가 죽지 않는다면 아빠도 그토록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 제국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성 황제를 잃을 일도 없을 것이다. 아빠만 있다면 앞으로 일어날 온갖 참사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 아빠가 함께해야 할 이유가 뭐지?
‘……내 존재, 그거 말고는 뭐가 있지…….’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나 외에는 엄마 아빠가 함께해야 할 이유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자 타임리프의 날이 보였다.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난무하는 고함과 비명, 진동하는 피비린내. 나를 지키다 하나씩 쓰러져가던, 소중한 사람들이.
‘사람들이 날 위해서 희생하는 건 정말 싫어, 정말 끔찍해…….’
어쩌면 우리 엄마도, 그들 중 하나였을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를 향한 온갖 멸시와 조롱들, 소피아의 동화책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것들이 끔찍하게 싫었다. 어떤 것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궁리하면서, 나는 늘 우리 엄마를 못살게 군 것들은 전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젠 그게,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