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16)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14)화(116/207)
‘…어디서 만난 사람이었던가?’
그간 내가 만난 사람은 대신전과 황실의 점잖은 귀족들뿐이라, 이런 곳에서 마주칠 사람은 없을 텐데.
‘기분 탓이겠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금방 그 의문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저녁을 먹으면서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관찰했다.
“아이, 벌써 가는 거야?”
“동틀 때까지 달려야지!”
그때, 안쪽 테이블에서 또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다. 무심코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뜨겠다고 한 모양이다. 손님들의 야유와 웃음소리가 내 자리까지 왁자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나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얼굴을 보고 그 누군가가 테이블 가운데 주인공처럼 앉아 있던 붉은 눈의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빛 아래에 섰는데도 남자의 머리 색은 새까맸다.
헐렁한 옷, 건달처럼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 진동하는 술 냄새.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붉은 눈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나는 눈이 마주치기 전에 후다닥 고개를 돌렸다. 음료를 마시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남자가 어쩐지 이 방향으로 계속 다가왔다.
“……?!”
‘문은 뒤쪽인데. 왜, 왜 여기로 오는 거지?’
당황한 사이 술 냄새가 훅 가까워졌다.
나는 벽에 몸을 파묻듯이 기댔다. 그러자 남자가 내 옆자리 바에 기대더니 바텐더를 불렀다.
둘은 바를 사이에 두고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남자의 발음이 부정확해서 잘 들리지는 않았는데, 동전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팁을 주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을 느낀 건 남자가 등을 돌려 나갈 때.
그의 로브 자락이 내 팔을 스치는 순간이었다.
‘……?!’
잠깐 얼어 있던 나는 뒤늦게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문 사이로 빠져나가는 검은 뒤통수만이 눈에 잡혔다.
덜컹, 하고 문이 닫혔다.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마력?”
남자와 닿은 순간, 잠깐이었지만 똑똑히 느꼈다. 그건 마법사의 기운이었다.
멍해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편견 하나가 있었다.
‘마녀는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졌다.’
미래에서는 두 외모적 특성을 가진 여자들을 마녀라고 단정 짓고 인민재판을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났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검은 머리에 잠옷을 입고 있던 소년. 최초의 마녀에게서 파생된 편견일 뿐. 내가 실제로 마탑에서 마주한 마법사들은, 제각기 다양한 머리 색과 눈 색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건…….’
“어, 들어가시게요?”
나는 바텐더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가게를 뛰쳐나왔다. 너무 늦게 나왔나 싶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타깃의 뒷모습이 보였다.
‘술에 취해서 걸음이 느려졌나 보네.’
휘청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알아보기도 쉬웠다.
“달아~ 달아~ 둥근 달아~”
게다가 노래를 부르며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확인시켜주니…….
미행을 처음 하는 사람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편안한 타깃이었다.
시간이 늦었음에도 달이 밝아서,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안경을 추어올리고 로브를 단단히 여미면서 남자의 뒤를 쫓았다.
‘이런 곳에 왜 마법사가 있지?’
마탑의 위원회실에서, 마법사 지부를 표시해둔 지도를 본 적이 있다. 대륙에 넓게 분포한 마법사 지부는 신성연합국 내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지도에도 예하드 제국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제국은 신성연합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니, 마법사들이 활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 증거로 나는 이 시대와 내 시대, 20년 인생을 통틀어 제국에서 엄마가 아닌 마법사와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마법사가 맞나?’
내가 감지한 남자의 마력은 아주 옅었다. 직접 부딪히기 전에는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게다가 지금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정도 기운이면 일회성 마도구 같은 걸 몸에 지닌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담…….
‘밤부스 숲의 정보 길드원인가?’
“후에취!”
머리를 굴리던 순간, 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재채기를 하며 크게 휘청거리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넘어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벽을 짚더니, 뭐가 재밌는지 실실거리고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달까지 데려가 줘~”
……그리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취객답게 흥은 많은데 발음이 어눌하고 박자도 엉망이어서 다른 행인들이 귀를 막고 급히 지나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미행해야 했기 때문에 귀를 막을 수 없었다.
남자의 머리 색과 눈 색 때문에 나는 잠깐 대신전에 있는 나의 작은 친구, 요한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저 취객은 그 어리지만 침착하고 의젓한 아이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그 작태를 보고 남자가 밤부스 숲의 정보 길드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밤부스 숲의… 단골손님 정도겠지.’
그래도 정보 길드의 위치는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도구를 유통하는 곳은 많지 않으니까.
그러면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걸어야 하려나. 하지만 마도구 같은 걸 유통하는 불법 길드를 물어본다고 알려줄까?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남자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 길은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길헬름의 거리는 수도에 비해 한적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골목 어귀로 들어오자 내가 이제까지 걸었던 길은 그나마 번화가에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보이던 행인도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고요한 거리에 술렁거리는 바람 소리, 먼 곳에서 짐승 우짖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남자의 엉망인 노랫소리가 달갑게 들릴 지경이다. 밤이 깊어 쌀쌀해진 공기가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이제 거리 위에는 남자와 나밖에 없었다.
등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발을 질질 끄는 남자는 취객 주제에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었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는데 불안하게 휘청거리면서도 다행히 한 번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남자가 외진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그를 따라 길을 꺾었다.
“……어?”
그러나 골목길 안쪽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막다른 길이었다.
‘어디로 사라졌지?’
분명 여기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그러고 보니 남자의 노랫소리도 뚝 하고 끊겼다. 완전히 증발해버린 것이다.
여기 어딘가, 개구멍 같은 거라도 있나?
때마침 구름이 달을 가려, 시야가 어두컴컴했다. 나는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골목으로 들어왔다. 눈을 찌푸리며 안쪽을 살피는 순간, 옆에서 하얀 손이 훅하고 다가왔다.
“윽……!”
억센 손에 이끌려 등이 벽에 부딪혔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방금까지 내가 미행하고 있던 남자가 달을 등지고 나를 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 아래로 비치는 붉은 눈동자에는 취기라곤 없었다.
음정이 틀린 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걷던 그 취객과 동일 인물은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설마, 일부러 나를 유인한 건가?’
적당한 말로 주의라도 끌어보고 싶었으나, 위기 상황이라고 없던 말주변이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었다. 몸은 망부석처럼 굳은 채, 사선을 넘으며 예리해진 직감만이 수선스럽게 경보음을 울렸다.
그 순간, 남자가 내 머리로 손을 뻗었다.
나는 무심코 어깨를 움츠렸다. 질끈 감은 눈 위로, 머리를 가리던 후드가 스르르 내려갔다.
“어…….”
그 순간 달을 가리던 구름이 흘러가며 이마 위로 달빛이 드리웠다.
문득 코 위가 허전했다. 나는 그제야 벽에 등을 부딪칠 때 안경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가 손을 뻗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눈을 떴다.
“…너는.”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귓가에 웅성거리는 바람 소리. 미래의 어느 날에는 신성모독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붉은 눈에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가 성신의 상징인 빛을 등지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전대 교황 성하의 장례식에서 진짜 마수를 맞닥뜨렸을 때, 혹은 마법사들의 왕을 앞에 뒀을 때도 느낀 적 없던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쳤다.
신성제국의 숱한 신도들이 악마의 것이라 믿는 상징들을 몸에 두른 남자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제야 아귀가 맞네.”
건조한 목소리가 텅 빈 거리 위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