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1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17)화(119/207)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깜빡이자, 니르겐이 문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 혹시 내가 돈 대신 다른 걸 요구한다는 소문이라도 들은 겁니까.”
“대신 뭘 요구하시는데요?”
“그야, 당연히…….”
니르겐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시선을 받았을 뿐인데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내가 작게 떨며 몸을 움츠리자, 그가 픽 웃었다.
“일손이죠.”
“일손…이요?”
“직원 수는 많지만, 난도 높은 의뢰를 맡아줄 길드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서 말이죠. 늘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단순 업무를 맡을 직원은 넘치는데 고급 인재는 부족하다라. 그런 거라면 더 많은 검증을 거쳐서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나. 어째서 방금 만난 나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을 텐데.
‘역시 저분, 술이 덜 깨신 것 같아.’
나는 내심 결론 짓고 말했다.
“그냥 돈으로 치르고 싶은, 데요.”
“아쉽지만 별수 없군요.”
일손을 돕지 않으면 의뢰를 안 맡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니르겐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요구한 보수 또한 의뢰의 난이도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선수금도 없이 의뢰가 성공한 후에 대가를 달라고 해서 이 어린 길드장이 어디서 뒤통수를 맞으면 어쩌나 잠깐 걱정했을 정도다. 니르겐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사로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 성함이 공란인데요.”
시행 일자와 만날 장소를 정하고 계약서를 살피던 니르겐이 지적했다.
밤부스의 숲처럼 불법적인 길드에서는 개인정보를 남기기 싫어하는 귀족들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작은고모도 본명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공란으로 두었는데,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실명을 말하는 건 곤란한데.
“이름은, 비밀로 하고 싶은데요. 그, 적당히 써주시면 안 될지…….”
의뢰는 패기가 생명이라고 했는데. 당황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크흡.”
웃음소리?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자 니르겐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자 니르겐이 간신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암묵적으로 가명을 대시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대놓고 이름을 비밀로 하고 싶으시다는 분은 오래간만에 뵙는군요. 게다가 제게 작명을 청하신 분은, 정말 처음인데.”
니르겐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명을 쓴다는 걸 서로 알면서도 묵인해주는 게 비밀 길드의 방식인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솔직하게 불어버린 거였다.
능숙하고 여유로운 의뢰인은 못 되더라도 기본은 하고 싶었는데.
이 젊고 능력 있는 길드장에게 내가 얼마나 어리숙하게 보였을까?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계약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 제가 적을게요.”
“아닙니다. 저를 믿고 친히 작명을 의뢰해주셨는데, 귀한 신뢰를 저버린다면 길드장으로서 면이 서질 않죠.”
니르겐은 내가 잡지 못하도록 계약서를 휙 당기더니 귀족적인 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예리한 눈으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신중하게 펜을 움직여 이름 옆에 ‘코튼 캔디’라고 썼다.
‘솜사탕?’
나는 입술을 씰룩했다. 코튼 캔디는 남부 말로 솜사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이 작명 솜씨가 그가 말한 ‘귀한 신뢰’에 대한 답변이자 ‘길드장으로서의 면’을 세울 방법이라는 걸까?
지금은 분홍 머리도 아닌데 내 어디가 솜사탕 같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니르겐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언제까지고 수많은 이름 후보를 읊어댈 기세였다.
하긴, 본명만 숨길 수 있으면 가명이야 뭐든 상관없지. 나는 어른스럽게 수긍했다.
“마음에, 들어요…….”
니르겐이 만족스럽게 계약서를 쓰고는 나머지 한 장을 넘겨주었다. 나는 체념하곤 계약서를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자, 그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럼, 다른 의뢰는 없으십니까?”
나는 잠깐 니르겐의 얼굴을 살폈다.
마도구를 운용하는 것도 그렇고. 대신전에 숨어들어 마녀를 만나게 해달라는 의뢰도 받아준 걸 보면, 그가 신실한 사제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또한, 마도구를 유통하는 걸 보면 마법사와도 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 의뢰도 해볼까.
“마탑에 대해, 아시나요?”
“…잘은, 모릅니다만.”
니르겐은 주저하며 답했다. 내가 그의 입에서 들은 것 중 가장 확신 없는 목소리였다.
“마녀들의 본거지에 대해서라면, 소문만 무성하고 확인된 사항은 별로 없죠.”
“그, 소문 중에서… 마탑에 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 있나요? 아니면, 마탑의 마녀를 만나는 방법이라든가…….”
엄마가 황성에 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나 또한 마탑에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연히 소식도 전혀 듣지 못했다. 엄마가 잘 지내는지, 마탑 식구들은 안전한지, 혹시 누군가가, 이주 계획을 방해할 일은 없을지…….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검증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 길드가 마탑에 갈 루트를 찾지 못한다면, 아마 다른 길드들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탑에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마탑의 마녀를 만날 방법이라면 그와 관련된 소문이 있는데.”
“어떤 소문인데요?”
“글쎄, 이게 뜬소문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 년 중 어떤 날만 되면, 그 마녀가 나샤의 어떤 마을에 나타난다더군.”
“그 마녀라면.”
“대마녀, 린제나 그레인저.”
하마터면 의자에서 튀어 오를 뻔했다. 밤부스의 숲에서, 길드장의 입으로 갑자기 들을 줄은 몰랐던 이름이었다.
“신성연합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나샤에서는 꽤 유명한 마녀죠.”
……그렇겠지. 우리 엄마는 나샤에서 자랐고, 마탑주인 데다, 자신의 정체를 열심히 숨기는 분도 아니니까.
나는 니르겐의 손에 금화를 밀어내다시피 건네며 물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 거죠?”
“……으음.”
태연을 가장하거나, 니르겐의 반응을 살필 여력도 없었다. 다행히 그는 잠깐 뜸을 들였을 뿐 선선히 금화를 받아주었다.
“소문에 따르면 5월 초경인데, 마침 곧이군요. 정확한 장소는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옛날 할스테리어의 땅이었던 나샤의 남반구입니다.”
“그 마녀가, 왜 거기에 나타나는 걸까요?”
‘그 마녀’라는 호칭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모래처럼 까끌거렸다.
“글쎄요. 개인적인 기념일일지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우리 엄마 결혼 안 했거든요.
불쾌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자, 이것저것 가설을 세우던 니르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니면, 추모?”
“추모, 라면.”
“그때가 누군가의 기일일지도 모르죠.”
결혼기념일과 생일보다는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생각을 되짚는 듯 니르겐의 붉은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가다가, 불현듯 시선을 맞닥뜨렸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만나러 갈 겁니까?”
나는 습관처럼 목걸이에 달린 로켓을 잡았다. 무심코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보 길드에 엄마에 대한 소문이 돈다는데. 마탑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증이, 불안하게 느껴져야 마땅한데.
하지만 나샤의 마을이라면 내 정체를 숨기지 않더라도 갈 수 있었다. 어쩌면 내 몸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엄마를…….
‘제발, 내 발목 잡지 말아요.’
불현듯 떠오른 목소리에 심장이 덜컹했다.
“흡.”
“고객님?”
가쁘게 숨을 들이켜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니르겐이 보였다.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흠, 린제나 그레인저의 소문에 대해서도 찾아볼까요?”
“……그건.”
막연한 희망으로 두근거리던 마음이,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엄마를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모진 말로 엄마를 뿌리쳐놓고, 태평하게 무슨 욕심을 부리는 거야.
“다음에요.”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는 못하고 나는 의뢰를 유예했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핑계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행히 밤부스의 숲 길드장은 별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 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첫 번째 의뢰 계약서만 받는 것으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니르겐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이번에도 다소 어색한 움직임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 주, 할스테리어에서 만납시다.”
흐트러진 머리칼 아래로 반쯤 가려진 붉은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 의뢰를 맡은 길드장보다는, 재미있는 소동을 앞둔 악동에 가까운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