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1)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19)화(121/207)
나는 무심코 남자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명문가 귀족 같아 보이는 저 남자가,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슬렁거리던 그 주정뱅이라고?
검은 머리와 붉은 눈, ‘레이디 캔디’라는 호칭을 듣는 순간 니르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심지어 얼굴과 체형도 달라 보이는데? 니르겐은 이 남자보다 마르고 작았던 것 같은데. 단순히 구부정하게 있다가 허리를 펴서 그런가? 아니면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이 달라서? 하지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으니까 그만해줄래요? 나도 상처받을 줄 아는데.”
“헉, 죄송해요.”
무심코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에, 나는 지레 찔려 사과했다. 니르겐의 표정은 사과를 받고 나서 더욱 꺼림직하게 변했다.
“……농담이었는데. 진짜였나 보네.”
그는 헛웃음을 치면서 내 반대편에 앉았다. 나는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뭡니까. 날 빤히 보길래 알아본 줄 알았더니.”
“그, 그게, 앗, 음식이 오네요.”
당신을 보면서 내 아빠를 떠올리고 있었단 말을 어떻게 해!
당황해서 버벅거리는데 때마침 고마우신 점원분이 요리를 들고 다가왔다. 메뉴판에 있는 게 죄다 처음 보는 이름이라 아무렇게나 시켰는데 내 앞에 놓여진 것을 보니 따끈따끈하게 김이 나는 붉은 스튜였다. 나는 배가 심하게 고팠다고 짐짓 반가워하면서 스튜를 한입 떠먹었다.
“……!”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매, 매워.’
뭐지 이 음식, 너무 매워.
“뭘 시킨 겁니까? 냄새만 맡아도 매운데.”
니르겐이 나를 향해 물잔을 내밀었다. 나는 헐떡이면서 물을 받아 마셨다. 혀가 아프고 입 안이 뜨거웠다. 비겁하게 말을 돌리려고 한 벌을 받는 걸까.
니르겐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매운 걸 잘 먹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걸 시켰어요?”
“……새, 새로운 도전을…….”
혼자 음식점에서 요리를 주문하는 것부터가 오늘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 말에 니르겐은 한 차례 더 헛웃음을 흘리더니 점원을 불러서 기묘하게 이름이 긴 요리들을 시켰다. 또 이상한 음식이 오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는데, 평범한 스테이크와 구운 아스파라거스가 나왔다.
“할스테리어 국민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니까, 음식을 시킬 때 조심해야 합니다.”
“네, 네에…….”
그는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썰어서 내게 밀어주었다. 나는 포크로 음식을 찍어 먹으며 눈앞의 남자를 흘끔 살폈다.
정보 길드에서 본 니르겐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던 머리칼이 눈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발을 질질 끌면서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에 주머니에 꽂은 손. 의자에 앉아도 자세가 구부정해서 앉은키가 지금보다 20센티는 작아 보였고, 행동거지는 가볍고 말투는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에게선 그런 모습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상황이 달라도 그렇지, 이렇게 걸음걸이며 사소한 습관까지 갑자기 변할 수는 없지 않나? 역시 그때는 술에 취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왜 혼자 다니고 있었던 겁니까? 미리 말했으면 에스코트해드렸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니르겐이 그다운 말을 했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이렇게 유들유들한 남자는 처음 본다. 이런 외모에 이런 성격이니 술집에서도 그렇게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거겠지.
‘아빠가 이런 남자를 조심하라고 하셨어.’
친절은 고맙지만, 조금 경계심이 들었다. 게다가…….
“부인분과 따님에게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같이 식사 중이셨잖아요.”
내 말에 니르겐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뒤늦게 깨달은 듯 물었다.
“내가 저만한 애가 있을 나이로 보입니까?”
아니었구나. 나는 좀 머쓱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나 참.”
니르겐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갑자기 상체를 가까이 기울였다. 당황해서 고개를 뒤로 빼려는데,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착실히 의뢰를 수행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말입니다만, 어떻게 안 겁니까? 이런 일이 터질 줄.”
“이런 일이라니요?”
“고객님이 찾아보라고 한 타깃 중 하나가 어제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자살 시도. 무거운 단어에 나는 잠깐 얼어붙었다.
내가 니르겐에게 찾아보라고 한 사람은 셋이었다. 현 대사제, 대사제의 수제자인 추기경, 그리고 그의 아내인 고위 신관. 훗날 이델리의 희생자가 될, 세 사람.
“자살 시도라면, 누가?”
“디아나 오멘.”
디아나 오멘은 추기경의 아내이자, 전쟁에 여러 번 차출된 상급 신관이었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디아나는 이델리에게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소문에 따르면, 그녀의 오빠가 석 달 전에 죽었다더군요.”
니르겐은 빈 잔에 물을 따라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쌍둥이 오빠라고 하니 유대감이 깊었겠죠. 그 충격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어제저녁, 창문에서 뛰어내렸답니다. 다행히 2층 높이에다 화단으로 떨어져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 같지만요.”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에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다행이다, 큰 사고는 아니었구나.’
혹시나 내가 이 시대에 와서 한 행동들이 나비 효과가 되어 그녀의 죽음을 재촉한 게 아닐까, 순간 등골이 섬뜩했었다.
긴장을 풀고 나자 머리가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는 니르겐의 말을 빠르게 정리해보았다.
디아나 오멘의 정보들.
쌍둥이 오빠의 사망, 우울증. ……자살 시도.
자살, 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환한 대낮에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나의 엄마.
“뭐, 이 사건만 두고 보자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만.”
여상한 목소리가 상념에 빠져 있던 나를 깨웠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그가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오해하지 마세요. 사건 자체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없단 겁니다. 가까운 가족이 죽어서 우울증을 앓고, 그 때문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상한 건 당신이죠.”
니르겐이 테이블에 팔을 괴며 내게 고개를 가까이했다.
“저는 나름대로 대륙 각지에서 정보 상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고가 나기 전까진 후작가의 문제를 전혀 몰랐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북쪽 방벽의 귀족들은 자기 집안일이 새어나가면 목이라도 떨어지는 사람들처럼 굴거든요. 게다가 당신은 할스테리어를 방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방문도 이번이 처음, 이라고 말하면서 니르겐이 옆에 치워진 붉은 스튜를 눈짓했다. 그는 유려하게 나를 코너에 몰아놓고는 빙긋 웃으며 재차 채근했다.
“어떻게 예측한 겁니까?”
그렇게 묻는 붉은 눈동자는 오롯한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등받이를 뚫고 나갈 것처럼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런다고 바로 앞에 있는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보 길드장이어서, 이상함을 느낀 걸까?’
갑자기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보 상인, 이라고 했으면서.”
“예?”
“의뢰인에게 정보를 파는 게 아니라 앗아 가는 게 어디 있어요. 그건 정보 상인이 아니라 정보 강도지.”
나는 애써 고객의 신분을 꺼내 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말을 뱉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켕기는 게 많아서일까. 나는 흘끗 눈을 들어 니르겐의 얼굴을 살폈다.
나와 눈을 마주친 니르겐은 천천히 손을 들더니, 자신의 입을 가렸다.
“흡.”
……왜지? 또 웃음 참는 소리 같은데.
“왜, 왜요.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크흡… 네, 맞습니다. 하늘 같은 고객님 앞에서 제가 감히 주제넘은 질문을.”
니르겐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공손히 고개를 숙여왔다.
“그, 그렇게, 까지는.”
나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젓다가 머쓱하게 변명했다.
“그냥 우연이에요, 우연.”
“아하, 우연이었구나.”
호응해주는 니르겐의 어투가 무척 익숙했다. 아기 성녀를 대하는 우리 황성 식구들의 말투 같달까.
‘……왜?’
나는 무심코 의문을 가졌다가 고개를 저었다.
휙휙 바뀌는 니르겐의 태도는 의미를 알기가 어렵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긴, 첫 만남부터 많은 여자분에게 둘러싸여 있던 사람이다. 얼마나 사람 대하는 게 능숙하겠어.
나처럼 황성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던 우물 안 개구리가 읽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그에게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말했다.
“그보다, 내일이 약속한 날짜인데요. 계획에 차질은 없겠죠?”
“그야 물론이죠. 어떤 분의 의뢰인데요.”
니르겐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내일 저녁이면 고대하시던 분을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고대하던, 마녀 이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