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2)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20)화(122/207)
이델리는 디아나 오멘을 포함하여 고위 신관 셋을 죽인 사상 최악의 범죄자다.
하지만 사실 디아나 오멘의 사인은 마녀의 저주가 아니라 자살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성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건 신이 버린 인간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마녀 다음으로 치명적인 오명이다. 그런 추문을 방어적인 북부 귀족가가 가만히 새어 나가게 놔둘 리가 없겠지. 그러니 사건을 조작하는 건 더 쉬웠을 것이다.
‘신전은 디아나 오멘의 자살을 이델리의 짓으로 덮어씌웠다.’
기록에 따르면 디아나 오멘과 그의 남편인 세드릭 오멘의 시체에서는 마녀의 상징인 육망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체에 육망성을 새기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다.
‘마탑 식구들의 생각이 맞았어.’
이델리가 마녀라는 것도 가짜. 고위 사제들이 저주를 받고 죽었다는 것도 가짜.
신전은 왜 그렇게까지 마녀를 박해하려고 한 걸까?
‘공통의 적을 만들어서 위세를 키우기 위해? 하지만 이미 모두가 신전을 떠받들고 있는데…….’
가뜩이나 할스테리어는 신전의 권위가 큰 곳인데, 무엇을 위해 모두를 속여가며 이런 더러운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두 가지. 그들 때문에 마법사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졌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마녀로 몰려 죽었다는 거다.
대체 얼마나 썩어버린 거야.
“괜찮습니까?”
니르겐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죄송해요.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답했다.
“으음, 그럼 정확한 루트는 내일 알려주시나요?”
“루트?”
“……그, 그곳에 숨어드는 루트요.”
“아.”
‘대신전 지하 감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는 없어서 나는 대충 뭉뚱그렸다.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니르겐이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 귀하신 고객님을 빈집털이범처럼 숨어드시게 만들 수는 없죠.”
“네?”
니르겐이 밝게 미소 지었다. 깔끔하게 넘긴 검은 머리에 비싼 원단과 보석으로 장식된 정복. 곧은 자세와 오만한 표정에서 귀한 태가 줄줄 흐르는 저 남자는 길헬름에서 만난 길드장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하지만 저 모험을 앞둔 소년 같은 미소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고객님은 정정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게 되실 겁니다.”
***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넉살 좋게 간수와 인사를 나누는 니르겐을 곁눈질로 보며 생각했다.
‘정정당당히 정문으로, 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를 범죄자 신분으로 집어넣는 것은 아닐까 못내 걱정했다.
하지만 니르겐이 내게 해준 것은 취업 알선이었다.
……나는 지금 간수들이 입는 카키색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는 곤봉을 쥔 채였다. 하나로 묶은 백금색 머리칼이 각진 모자 아래로 찰랑거렸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살펴보십시오.”
내 선임이신 간수분이 니르겐에게 연신 굽신거렸다. 니르겐은 활짝 웃는 낯으로 내 옆에 섰다.
나는 니르겐과 함께 간수의 뒤를 따라가며 몰래 속삭였다.
“이게 다 뭔가요?”
“뭐긴요, 하늘 같은 고객님의 명령을 따라 제 소임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니르겐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길헬름의 뒷골목 주정뱅이와는 전혀 연이 없어 보이는, 수려하고 신뢰 가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했던 ‘어떻게 철옹의 대신전 지하 감옥 간수 직책을 덜컥 얻어온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전혀 얻어낼 수 없었다.
소득 없는 대화를 관두고 나는 니르겐의 겉모습을 살폈다.
‘아주 지체 높은 귀족가의 도련님이려나?’
말은 하늘 같은 고객님, 이라고 하지만 묘하게 사람을 낮춰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의 눈에선 그다지 존경심이 보이지 않았다.
밤부스의 숲 길드에서 그를 만났을 때는 사실 그게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황성에서 처음 외출했을 때부터, 나는 여러 정보 길드를 들렀다. 그리고 심하게 깍듯한 길드장들의 태도에 쩔쩔매야 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평민이 아니라는 걸 전혀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르겐은 나를 돈깨나 있는 집안의 귀족 영애라고 파악했으면서도 평민이 흔히 귀족을 대할 때 보이는 긴장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편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니르겐이 술에 취해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만약 고위 귀족이라면 모든 게 설명이 됐다.
‘어디 귀한 집 도련님이 취미로 정보 길드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취미 활동의 규모가 너무 커진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유명한 정보 길드인데.
하지만 정보라는 건 귀한 자산이니까. 어쩌면 가문을 등에 업고 정보 길드를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할스테리어까지 손을 뻗칠 수 있는 것도 다 설명이 되었다.
‘그래도 이건 좀 선을 넘은 게 아닌가?’
간수는 니르겐의 얼굴을 아는 것 같은데! 신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대신전 지하 감옥 간수로 영입해주다니.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계약서에 적은 대금은 500만 골드가량. 내 소유의 보석을 몰래몰래 팔아치워 마련한 자금의 대부분을 투자했으니 큰돈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일이 들통났을 때 불어닥칠 역풍을 상상해보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금액이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할스테리어의 지하 감옥은 깊고 복잡했다. 몇 걸음 간격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 했다. 그 철저한 방비를 넘어 더 깊숙이 발을 디딜 때마다, 죄책감과 걱정이 깊어졌다.
‘외국을 처음 나와본 나보다는 니르겐이 어련히 더 잘 알겠지만…….’
니르겐은 정보 길드장이고 나는 평생 황성에만 갇혀 살던 우물 안 개구리니까. 아마 수지에 맞는 장사인 거겠지…… 나는 애써 납득하며 죄책감을 털어냈다.
“여기입니다.”
그때, 우리를 안내하던 간수가 말했다.
퍼뜩 고개를 들자 감옥의 가장 안쪽, 회색 문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이 지하 감옥에는 철창도 없이 그저 회색 벽만 이어지고 있었다. 지하니까 문 안쪽에 창문 하나 없겠지.
‘살아 있기는 한 걸까.’
조용한 문을 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지는 않나?”
간수를 보내기 전에, 니르겐이 물었다. 그가 살갑게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슈르칸의 안정성은 대륙 최고입니다.”
간수에게 받은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들이닥친 것은 끔찍한 악취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안쪽을 살핀 나는, 목도한 광경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강마른 여자가 1m가량의 족갑을 차고 있었다. 그녀의 양손은 30cm 정도의 수갑으로 묶여 있어 양손을 자유롭게 뻗을 수도 없었다. 하얀 죄수복은 자해인지 고문인지 모를 여파로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입에는 재갈을 차고 눈은 하얀 안대로 가려진 채였다.
“끄, 으으윽.”
자극이 사라진 방에 갇혀서 작은 경첩 소리에도 발작하듯이 놀라 몸을 웅크리는 여자.
그게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훗날 역사서에 사상 최악의 범죄자라 기록될 마녀 이델리의 모습이었다.
“캔디 양?”
“아.”
나는 이 눅눅한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깜찍한 칭호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캔디 양 같은 호칭을 부르면서도 니르겐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할 말이 있어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네.”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이델리에게 다가갔다.
‘……마력은 조금도 안 느껴져.’
고위 사제를 셋이나 잡아먹었다는 마녀 이델리. 대륙에서 가장 이름난 마녀였던 그녀는, 정말로 마녀가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이다, 다만.
‘피부가 초록색이야.’
가까이 다가가자 늘어뜨린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옆얼굴이 초록색이었다. 잘 보니 손등이나 팔에도 듬성듬성 초록색 반점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것 봐, 너희 엄마도 피부가 초록색이었어?’
마녀의 피부는 초록색.
나는 홀린 듯이 이델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을 뻗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변색된 피부 위로 크고 작은 수포가 부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피부병?
수포가 터져서 생긴 흉이 듬성듬성 있었고, 더러는 썩어가는 듯이 보였다. 상처를 자세히 보려 하자 웅크리고 있던 이델리가 잘게 몸을 떨었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고 보니 소피아가 준 동화의 삽화도 이런 식이었다. 그냥 매끈한 초록색 피부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게 고름이 뒤덮여 있고 주변에는 파리가 날아다녔다.
마탑에서 최초의 마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원전이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것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나빴다. 아픈 사람을 이용해 마녀에 대한 루머를 퍼뜨리다니. 이런 끔찍한 소문을 퍼뜨린 게 대체 누구지.
‘마녀 이야기가 신전의 통치에 힘을 더해줬으니까요. 더불어 귀찮은 나샤민들을 내칠 명분으로도 적격이고, 정적을 제거할 수단으로도 딱이었던, 읍!’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역시 마탑 위원회의 추측대로, 신전의 수작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