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22)화(124/207)
이후로는 끝없는 탐독의 과정이었다.
전염병은 보통 나샤로 보내진 파병군이나 사제들, 혹은 나샤의 난민들을 통해 들어왔다. 신문에서 전자는 나라와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자들로, 후자는 감히 연합국으로 기어들어 와 질병을 퍼뜨리는 기생충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민으로 인해 퍼지는 전염병보다 파병군이나 사제를 통해 퍼지는 전염병의 정보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통계는 나샤에 파견되었다 돌아온 사제를 통해 전염병이 퍼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보여주었다.
“선파사라…….”
나샤의 접경지, 일명 ‘방벽’이라 불리는 3국에서는 옛날부터 나샤에 사제와 물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떠맡고 있었다. ‘선파사’라고 불리는 이 사제들은 나샤에 형성된 마을을 찾아 그곳에서 체류했다. 국경 밖 사람들을 치료하고 음식을 나눠주고, 마녀가 아닌 것을 검증하여 국내로 데려오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나라를 잃고 떠도는 나샤민들을 구하기 위해 질병과 마수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 밖으로 나가는 사도들.
사제 사이에서도 선파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헌신과 봉사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다.
설령 국내에 전염병이 퍼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책망할 악인은 없을 것이다.
“나샤에서 발병…… 선파사를 통해 방벽 3국에 유입……. 그다음이 퀴에스, 메디움을 거쳐 제국에 퍼지고…… 보수적인 아비나, 섬이 많은 폰투스는 마지막에…….”
나는 중얼거리며 노트 위로 전염병들의 전반적인 전염 경로를 지도로 그렸다. 전체 틀을 대충 이해하고, 8개국에 퍼진 피부병들의 특징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료들이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책상에 엎드렸다.
“하아…….”
창밖은 어느새 한밤의 어둠에 완연히 잠식되어 있었다.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마력이 매분 매초 닳고 있다.
어른 모습을 유지하는 변신 마법은 의외로 마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았다. 사실 원래 내 모습에 더 가까우니까, 이미지가 뚜렷해서 그런 듯했다. 문제는 황성의 분신을 유지하는 유희 마법이었다.
상급 마법으로 만들어낸 분신은 황성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일 만큼 완벽했으나 진짜는 아니었다. 영원히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본체와 비교해 무척 약했다. 그래서 빨리 일을 해결하려고 식사도 거르고 파헤쳤는데…….
니르겐에게 피부병에 대한 정보를 의뢰하면서 내가 기대한 건 이델리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마녀가 아니라 피부병에 걸린 환자일 뿐이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전 대륙의 전염병과 피부병 자료를 다 뒤져도 이델리와 유사한 병세를 보인 사례는 없는 듯했다.
‘아니, 사실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
인정하기 싫지만 가장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 기록된 마녀에 대한 설화 정도였다. 하지만 마녀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벌로 추하게 썩어 들어갔다는 이야기 같은 걸, 대마녀 린제나의 딸 된 이로서 믿을 수는 없었다.
‘실마리 정도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를 날려버렸으니 이제 어떡하지? 이델리 쪽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니, 이제는 죽은 신관들을 파헤쳐봐야 하나? 하지만 대신관이나 오멘 후작 부부가 나를 만나줄 리가 없어. 근래에 뒤숭숭한 일도 있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숨을 쉬며 문을 나서자,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직 있었습니까?”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니르겐이었다.
“조용하길래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 쩌다 보니…….”
오랫동안 입을 안 열었더니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니르겐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래서, 하루 동안 열중한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니르겐은 하루 만에 그렇게 많은 자료를 취합해 주었는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털어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 고백을 들은 니르겐이 상큼한 미소로 화답했다.
“잘됐군요.”
“네?”
“아, 고객님이 성과가 없으셔서 다행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뜻으로밖에 안 들리는데.
황당함에 잠이 약간 달아났다. 하지만 니르겐은 내 조용한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어쩐지 들뜬 얼굴로 손짓을 했다.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오멘 후작저에 갑시다.”
“……네?”
방금까지 떠올리고 있던 이름이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제안에 귀를 의심하며 되묻자, 니르겐이 어깨를 으쓱했다.
“후작저에 들어갈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것도 공짜로.”
그러고는 작게 덧붙였다.
“대신, 고객님도 어떻게 후작가에 일어날 우환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공유해주시는 겁니다.”
모두가 퇴근한 건물에서 굳이 귓속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소리 없이 입술만 벙긋거리자 니르겐이 한 발짝 물러서며 씩 웃었다. 내가 이 일에 흥미를 보일 것을 이미 다 안다는 듯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
‘정말로 와버렸어.’
나는 소파에 얌전히 앉아 찻잔을 생명줄처럼 쥐었다. 색안경 아래로 도르륵 눈을 굴리자, 반대편에 앉아 평온하게 차를 마시는 니르겐이 보였다.
여기는 오멘 후작저의 응접실.
후작 부인의 변고를 예측한 방법을 공유해달란 조건은 마음에 걸렸으나, 후작저에 발을 들이게 해준다는데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따라왔는데. 니르겐을 대동하고 오자 정말로 손쉽게 저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오멘 후작은 현재 할스테리어 대신전에서 추기경직을 지내고 있으며, 대사제가 아끼는 수제자이기까지 하다. 미래에서도 불미스러운 죽음을 맞지만 않았다면 대사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촉망받는 고위 사제였다.
게다가 근래에 그런 사고가 있었으니 경계가 심해졌을 텐데, 이 와중에 초대를 받다니. 이런 일은 단순히 작위가 높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나는 의심스럽게 니르겐을 살폈다. 하지만 니르겐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마치 이 응접실이 제집인 양 소파 위에 몸을 늘어뜨리고, 테이블 위의 쿠키를 집어 오독오독 씹고 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픽 웃으며 말한다.
“눈을 떼기가 힘듭니까?”
“네?”
“이해는 합니다. 이런 미남은 좀처럼 본 적이 없으셨을 테니.”
“…….”
나는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좀처럼 본 적이 없긴 했다. 황궁에 발을 들이는 귀족 중에 저렇게 자화자찬을 하는 신사분은 없었으니까.
적당한 반응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리는데, 때마침 등 뒤에서 요란스러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검은 정장을 입은 소년이 황급히 달려오며 니르겐을 환영했다. 부들거리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시동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며 찻잔을 내렸다. 그런데 니르겐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닙니다, 집사님.”
‘지, 집사님?’
나는 황급히 니르겐을 따라 일어났다. 버벅거리며 인사하자, 집사가 활짝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주인님께 미리 말씀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니르겐과 함께 집사를 따라가는 동안 복도를 오가는 하인들과 몇 번 마주쳤다. 공손히 묵례하고 지나가는 하인들의 그늘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분위기가…….’
오멘 후작가는 저택의 크기에 비해 사용인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나치는 하인들의 얼굴이 모두 피로에 절어 있고,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보였다.
‘후작 부인의 사고 때문일까.’
하긴, 오멘 후작 부인은 친오빠가 사망한 후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 시도를 한 것이라고 했다. 모시는 안주인이 그런 고통을 앓고 있다면, 온 저택이 비탄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여깁니다.”
집사는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노크한 후,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집사는 방문을 닫지 않았다. 그 탓에 열린 문틈으로 나지막한 말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피로감에 물든 탁한 중저음. 나는 무심코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시선을 주었다.
조명을 켜두지 않아 은은한 햇살만 들고 있는 방이 눈이 들어왔다. 높은 캐노피와 상아색 침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오멘 후작 부인.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오랜만이다, 니르겐.”
그때, 방문이 활짝 열렸다.
잿빛 머리칼에 그늘진 연회색 눈동자. 마른 체구에 커다란 키. 셔츠 위에 새겨진 눈송이 문양. 목걸이에 달린 새하얀 성물……. 세드릭 오멘이었다.
‘현 대사제의 수제자이자 추기경 중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