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23)화(125/207)
추기경이라는 직위를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남자가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세드릭 형님.”
나는 반사적으로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세드릭 형님?’
저 친근하고 넉살 좋은 호칭은 또 뭘까. 친동생도 아니면서 추기경을 저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니르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양팔을 벌리며 오멘 후작을 덥석 안기까지 했다. 후작의 등을 두어 번 토닥거려주고는, 포옹을 푼 후에도 그의 손을 잡은 채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상심이 얼마나 크실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네요.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이런 때야말로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저게 누구지.
내가 오늘 저렇게 다정하고 사려 깊은 남자와 함께 왔던가?
반면, 오멘 후작의 마음은 봄날을 맞은 서리꽃처럼 녹아내린 듯했다. 그의 퀭한 눈매가 처음으로 온화한 호선을 그렸다.
“너는 늘 한결같구나. 고맙다, 니르겐.”
“…….”
보수적인 할스테리어 귀족 사회에서 후작 부인이 자살 기도를 했다는 소식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찾아와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도 드물었겠지.
니르겐의 따뜻한 말 몇 마디에 후작이 저렇게 고마워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괴로운 순간에 가까운 사람들이 건네주는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나에게도 그런 은인들이 있었다. 오멘 후작에게는 니르겐이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살갑게 웃는 니르겐의 옆얼굴을 보며 내심 그를 박하게 평가했던 것을 반성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분이었구나.’
그때, 문득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이쪽은…….”
“어?”
오멘 후작이 내게로 불쑥 손을 뻗었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뒤늦게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후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네? 아, 네?”
‘……대체, 무슨 말씀을?’
난 혼란에 빠진 채 분위기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니르겐을 오래 봐왔지만, 한 번도 주변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어요. 의리가 강하고 좋은 남자입니다.”
오멘 후작은 왜인지 내 앞에서 니르겐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대체 왜지?
“……드릭…….”
그때, 방 안쪽에서 오멘 후작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랗고 힘없는 목소리. 나는 그게 필시 지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후작 부인의 것임을 눈치챘다. 오멘 후작의 얼굴에서 작게나마 떠올랐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죄책감?’
“아직 누님을 뵐 타이밍이 아니었나 보네요.”
“아니야, 어젯밤에는 분명 호전되었었다. 그런데 아침에 다시……. 후, 잠깐 기다려줄 수 있겠니.”
“예, 저희는 괜찮으니까 얼른 들어가 보세요. 형님이 누님 곁을 지키셔야죠.”
“미안하다. 여기까지 와주었는데.”
“아니, 이 형님이 또 사람 섭섭하게 하시네. 우리는 전-혀 신경 쓸 것 없어요. 뭣하면 집사님께 저택 구경이라도 시켜달라고 할 테니까. 혹시나 도움 필요하면 부르시고.”
“……매번 고맙다, 니르겐.”
오멘 후작이 진심 어린 눈으로 감사를 전하고는 부인에게 돌아갔다. 이후 저택을 안내해주겠다는 집사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니르겐에게 속삭였다.
“저기요, 혹시…… 후작님께 저를 뭐라고 소개해두셨어요?”
“아아, 제 약혼녀요.”
“…….”
아.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흠, 제가 말 안 했습니까?”
안 했거든요.
“뭐, 그 정도는 알아서 예상하셨어야죠.”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내 황당한 반응에도 니르겐은 뻔뻔하게 코웃음만 쳤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제가 아무리 후작님과 친분이 있다지만.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 그래도 뒤숭숭한 후작가에 아무나 대동하고 온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결혼할 사람이라 동반자로 데려온다면 이해라도 하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따지면 맞는 말이지만…….
아니, 아니지. 그렇게 치면 양식 있는 사람이 안 그래도 뒤숭숭한 후작님한테 약혼자라고 거짓말하는 건 말이 되나.
“저, 저기요.”
“그런 호칭도 삐-삑.”
니르겐은 내 입에 검지를 대며 강경한 눈으로 말했다.
“지금 캔디 양은 제 약혼자라니까요. 약혼자를 ‘저기요’라고 부르다니 말이 됩니까?”
“그, 그러면 어떻게.”
“흐음.”
그는 고민하듯 턱을 쓸더니 아, 하고 입을 열었다.
“니르.”
“네?”
“단골 고객님 중에 친밀감을 담아서 저를 그렇게 부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애칭인 것 같은데, 한번 불러보시죠.”
이 남자가 뭐라는 걸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나 니르겐은 가정 교사처럼 단호한 턱짓으로 나를 재촉했다. 그 서슬에 나는 떠밀리듯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니, 니르.”
“두 분 참 보기 좋으십니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집사가 앳된 얼굴로 머쓱하게 웃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저희 주인 내외분을 보는 것 같아서 그만.”
“그, 그건…….”
“하하, 그렇습니까?”
당황해서 버벅거리는 나의 어깨를 니르겐이 감싸듯이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니르겐의 팔뚝에 머리를 박게 된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뻐끔거렸다. 그런 모습을 앞에 두고서도 집사는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네, 마님의 소식이 왔을 때도 주인님이 얼마나 놀라셨는지. 리하센 공작가에서 마님이 안정될 때까지 보살피겠다고 했는데, 저희 주인님이 기어코 신관들을 모아서 마님을 후작저로 모셔 오셨잖아요. 마님께서도 애타게 원하시긴 했지만. 뼈가 다 으스러진 마님을 안전하게 모셔 오려고 대인원이 투입되었으니까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우뚝 멈췄다.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친정에서 자살 기도를 했다는 후작 부인이 벌써 후작저로 돌아와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부상이 크지 않은 덕인 줄 알았는데. 뼈가 다 으스러진 와중에 후작이 강경히 원해서 이송한 것이었다니.
금실 좋은 건 좋지만, 그건 좀.
“위험한 게 아닐까요.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아무래도 그렇죠. 게다가 공작가도 치유 신관을 부를 여력은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주인님께선 그걸론 성에 안 차셨나 봐요. 당신 손으로 직접 부인을 치료해야만 안심이 되셨던 것 같아요.”
“그, 후작 부인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신 거겠죠? 애타게 돌아오길 원하셨다니…….”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도련님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도련님이요?”
내 반문에 어린 집사는 이마를 긁적이며 미소 지었다.
“우리 도련님이 자주 아프시거든요. 그렇다 보니 마님께서 마음이 힘드신 와중에도 도련님 걱정을 하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머니들은 그렇잖아요?”
“…….”
죽음을 꿈꾸고 뼈가 으스러지는 와중에도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 어머니는 그렇다라…….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가 나를 원망하시지는 않았을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엄마의 발목을 잡은 걸로도 모자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에 매몰시킨 딸.
그 존재를 증오하진 않았을까. 혐오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엄마도 나를 걱정했을까?
마법사들이 모두 사라진 땅. 마녀를 배척하는 신성제국의 황성에 홀로 남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순간까지. 당신의 삶을 무너뜨린 딸을 걱정하셨을까?
“캔디 양?”
“아.”
나는 니르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을…… 그, 그림이 참 멋지네요.”
나는 무안함에 괜히 벽에 걸린 그림을 칭찬했다. 어쭙잖게 말을 돌리려는 시도가 먹혀들었는지 집사가 미소를 띠었다.
“그렇죠? 지난달까지 저택에서 키우던 고양이였어요.”
“아… 이름이 뭐였나요?”
“이름이요? 음, 그게.”
집사는 약간 당황한 듯 허둥거리다가 지나가던 하녀를 붙잡고 고양이의 이름을 물었다. 어두운 얼굴의 하녀가 집사에게 무어라 중얼거리자, 집사가 우리를 돌아보며 밝게 말했다.
“체셔라고 하네요!”
“체셔.”
나는 집사의 말을 따라 하며 그의 앳된 얼굴을 새삼스럽게 관찰했다.
‘후작저에서 일한 기간이 길진 않은가 보네.’
하긴, 경력 같은 게 있을 만한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집사는 이후에도 우리를 수행하며 저택의 안팎을 구경시켜주었다. 중간에 길을 몇 번 잃어버리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후작의 명령을 수행했다. 나는 저택을 구경하며 식솔들의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다들 피곤하고 우울해 보여…….’
밝게 이야기를 나누는 집사와 니르겐이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