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6)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24)화(126/207)
낮 동안 이어지던 정원 산책은 소낙비가 내리며 끝났다. 어쩔 수 없이 저택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집사는 저녁 식사를 권했다. 그러나 주인도 없이 밥을 먹기도 이상하고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우리의 거절에 집사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덜렁거리면서도 시종 명랑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였으나, 이제는 레퍼토리가 떨어져버린 듯했다.
“그러면 이제…….”
집사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는 사이, 나는 계단 위에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위에.”
“네?”
“아기방이 있나 봐요.”
“아! 도련님이 깨셨나 보네요.”
“여기까지 왔는데 엘리엇을 안 만날 수 없지. 그새 얼마나 컸는지 볼까?”
이야기를 들은 니르겐이 반갑게 말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나는 걱정스럽게 집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집사는 손님들의 시간을 죽일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는 것이 마냥 기쁜 듯했다. 그는 유모에게 양해를 구한 후 우리를 아기방에 들여주었다.
“엘리엇 도련님이세요.”
방 안에는 젊은 유모와 그녀의 품속에 선물처럼 안겨 있는 아기가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에 연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울었던 건 배가 고파서였는지, 아기는 열심히 젖병을 빨고 있었다.
“엘리엇이 이제 6개월이던가?”
“네, 정확히 아시네요.”
6개월. 나는 신기한 눈으로 밥을 먹는 아기를 구경했다.
‘나도 3년 전엔 이렇게 작았을까……?’
“엘리엇, 여기 봐라. 이제 말은 좀 알아듣나?”
“아직 귀여운 옹알이밖엔 못 하신답니다.”
“그래? 아기가 원래 그렇게 느리게 성장하는 건가?”
“나, 남자아이가 좀 느리기도 하고.”
유모가 뻘뻘거리며 엘리엇을 옹호했다.
그 대화를 듣자 3년 전 일이 생각났다. 나도 아이들의 발달 속도를 모르고 누워만 있다가 황성 식구들의 걱정을 샀었는데…….
‘처음으로 아빠라고 말했을 때, 아빠가 참 좋아하셨지.’
나는 아기를 보며 혼자 추억을 되새겼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쏟아지는 묘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니르겐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요?”
“아기를 좋아하나 보네.”
“그야, 귀여우니까…….”
“그러면 구경만 하지 말고 한번 안아보지 그래?”
“네?”
남의 집 귀한 도련님을 두고 외부인이 그런 어투로 말하는 건 좀 무례하지 않나?
나는 걱정스럽게 유모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유모는 내 시선을 다르게 읽은 듯, 내게 제안했다.
“안아보시겠어요?”
“아, 저, 네.”
유모님이 그렇게 내켜 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나는 속으로 니르겐을 욕하며,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 품에 들어오는 무게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따뜻해.’
아기에게선 좋은 냄새가 났다.
유모의 조언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아기를 받쳐 안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난 뒤늦게 내가 아기를 안아본 게 처음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품속에 가볍게 들어오는 이 생명이, 아주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 이럴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는 것도 병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엄마 생각을 멈추기 힘들었다.
‘…이 저택 때문인가.’
사실 처음 오멘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고위 사제인 후작,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 시도를 한 후작 부인,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까지.
딱 내가 엄마를 잃을 때쯤의 모습과 같았으니까.
‘기록에 따르면 오멘 후작 부부가 죽은 후, 외동아들은 리하센 공작가에서 데려갔다고 했지.’
외조부모의 손에 키워졌으면 나보다는 순탄하게 자랐으려나?
그랬어야 할 텐데.
“으부우…….”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져 있자 엘리엇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를 고쳐 안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아기 팔이 왜 이런가요?”
소매가 올라가며 드러난 아이의 팔에, 옅은 멍이 보였다.
유모는 울먹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어하듯 아이를 안았다. 유모는 내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게…….”
“오,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랜디 유모의 탓이 아닙니다.”
상황을 보던 집사가 유모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게 사실… 유모님이 들어오신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거든요.”
“일주일이요?”
“네, 이전 유모가 도련님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더라고요.”
집사의 말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급히 사과하며 유모에게 아기를 넘겨주었다.
“죄, 죄송해요. 제대로 사정도 모르면서…….”
“아니에요.”
유모는 소중히 아기를 안고는 수줍게 웃었다.
“잘못한 건 전 유모죠. 이렇게 작은 도련님을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마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지…….”
“그 유모는 어떻게 됐지?”
니르겐의 물음에, 나는 무심코 흥분해서 말했다.
“당연히 엄벌을 받았겠죠.”
학대라는 말을 듣자 반사적으로 요한의 얼굴이 떠오른 탓이다. 전 교황 성하가 돌아가신 후, 제 편이라곤 없는 탄닌가에서 묵묵히 괴롭힘을 견뎌야 했던 강하고 가엾은 아이. 하지만 엘리엇은 제대로 된 부모도 있으니, 잘 해결되었겠지.
그런데 집사와 유모의 표정이 미묘했다.
“사실,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냥 저택에서 내쫓는 게 다였죠.”
“네? 대체 왜요?”
“그 유모가 첫 번째가 아니었으니까.”
니르겐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흠, 그 유모가 몇 번째였지?”
“……세 번째요.”
“뭐라고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반문했다. 집사는 착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기에 자꾸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니까. 이상한 소문이 샐까 봐 주인님이 참으신 거겠죠.”
“그런…….”
아무리 그래도 아이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을 그냥 내쫓고 끝내는 건, 좀.
‘아니, 아니야. 후작님도 정신이 없으시겠지. 부인께서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시고……. 그나저나 후작님은 소문이 샐까 봐 유모를 처벌도 안 했는데, 집사가 외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해도 되는 걸까?’
내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집사는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랜디 유모가 와주셔서 안심이에요. 이분은 절대 그런 짓을 하실 분이 아니거든요.”
집사의 칭찬에 유모가 기쁘게 미소 지었다. 나도 얼결에 따라 웃었다. 그래도 이분들은 좋은 사람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게 아닐까 해서.
그래서 화제를 돌리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혹시, 오멘 후작가에 앙심을 품을 만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아.”
하지만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을 보니 넌지시 묻는 데는 실패한 듯했다.
“그,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면…….”
당황해서 손을 내젓는데, 니르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 약혼녀께서 소식 없는 후작님께 슬슬 앙심이 생기시려나 본데.”
“아차!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가 없이.”
그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렸다. 집사가 내게 굽신거리며 사과하자, 니르겐은 내 기분을 풀 만한 주전부리라도 가져다주라고 했다.
‘요령이 정말 좋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니르겐을 돌아봤다. 때마침 눈이 마주치자, 니르겐이 내게 윙크하며 입 모양만으로 속삭였다.
‘나중에.’
역시, 뭔가 있구나. 집사도 말하기 힘든 오멘가의 뒤 사정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얌전히 아기방에 앉아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창밖이 어두워질 때가 되자 집사가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나도 슬슬 후작님이 손님의 존재를 잊은 게 아닐까 불안하던 차였다.
혼자 다녀오겠다는 집사에게 니르겐이 아득바득 따라붙었다. 집사는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대동하고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조용히 방을 나온 후작이 우리를 발견하고 사과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레이디.”
“아, 아니에요. 부인께서 아프셔서 그런 건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빌, 손님들께서 시장하실 텐데 얼른 저녁 식사 준비를 하지.”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후작과 합류하여 다이닝 룸으로 향할 때였다.
“세드릭, 어디 있어……!”
침실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