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2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27)화(129/207)
그냥 상상해보자.
슈아겐 로만을 주동자에 놓으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완성된다.
‘주교회의 찬성파 세력이 로만을 대사제로 올리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몄다.’
그들은 쌍둥이 오빠의 죽음으로 후작 부인의 마음이 병든 사이, 후작가가 고용한 유모에게 외동아들을 공격하라는 지령을 보내 후작 부인의 병을 부추겼다.
후작가의 식솔들에게 외부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머릿수가 적은 데다가, 새로 고용된 사용인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뿐이었으니까. 그건 아마도 후작가에서 일하려는 이들이 그런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지.
로만은 후작가를 괴롭히기 위해서, 심지어 고양이까지 없애버렸다.
후작 부인의 아버지인 리하센 공작이 찬성파의 일원이었으니 후작가를 속속들이 파악하기도 쉬웠겠지.
그런 방식으로 오멘 후작가를 고립시킨 그들은, 대사제를 시해하려다 마녀로 몰린 이델리를 잔인하게 이용했다.
이델리를 풀어서 대사제의 앞으로 인도한 것이다.
‘니르겐이 내게 이델리를 만나게 해준 걸 보면, 주교회 세력이 이델리를 몰래 풀어주는 건 일도 아니겠지.’
왜 그들이 대사제까지 죽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대사제가 자신의 수제자인 후작을 내심 지지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대사제를 제거한 후, 오멘 후작가에 미리 심어둔 사용인을 이용해서 후작 부부도 연달아 살해한다.
그 뒤에는 후작가에 마녀의 표식을 남기고 마녀의 저주 탓이라고 덮어씌우면 사건 종결.
슈아겐 로만은 정적을 제거하고 대사제에 오르면서, 동시에 마녀법 개정을 지지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하며 성공적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대사제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하게도 마녀 이델리 사형.
세 방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로만은 할스테리어에서 신처럼 군림했었다.
……정말로 그럴듯한 이야기다. 동기도 방식도 현실적이고 확실한.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어.’
후작 부인의 눈에 씌어 있던 검은 마력. 그, 저주.
하나의 모순이 모든 것을 새롭게 되짚게 만든다.
왜 이델리는 악귀처럼 대사제 게릴에게 이를 갈고 있는가?
후작가에 감돌던 그 우울한 공기는 뭐지?
성신을 모신다는 사제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정말 그런 짓까지 할까?
‘……내가 만약 할스테리어의 사제였다면, 이게 마녀의 짓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는 마탑에서 저주를 거는 건 마법사가 아니라 마수의 능력이라는 지식을 배웠다. 하지만 그걸 몰랐다면, 나 또한 마녀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사실, 마법사들이 전부 저주 마법을 못 쓰는 것도 아니었다.
‘대마녀, 린제나 그레인저.’
순간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는 아빠에게 저주를 거는 엄마의 모습을 빠르게 지워냈다.
“우리 엄마는 살인 따위 안 해.”
…그야 당연하지. 그딴 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 십수 년간 삼촌의 아래에서 신전의 가르침을 배우며 살았다. 그렇기에 마녀같이 생각하기보다, 사제같이 생각하는 방식이 더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엄마처럼 타인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리고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모든 일을 모순 없이 해낼 수 있지 않은지.
이델리를 홀려서 대사제를 죽이게 만들고.
후작가에 고용된 유모들을 조종해 엘리엇을 공격하게 만들고.
후작 부인에게 죽은 쌍둥이 오빠의 환상을 보여줘서 자살로 이끌고.
마지막으로, 오멘 후작을 저주해서…….
“아니야.”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그토록 봐놓고서, 엄마의 딸인 나까지 그들을 의심할 순 없었다.
이델리와 오멘 후작가, 사건의 주요 인물 셋을 만났는데 머리는 더 복잡해지기만 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이델리에게 죽은 대사제.’
그를 만나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
…하지만 대사제께선 신원도 불분명한 여자애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셨다.
길이 막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번에도 유능한 정보 길드장님이었다.
‘점점 깊게 엮이는 것 같은데. 이래도 괜찮을까.’
더는 새로운 친분을 만들지 않기로 했는데.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별수 없이 니르겐의 행방을 물었다.
“길드장님은 지금 자택에 계세요.”
“혹시 언제 돌아오실까요?”
“음, 그게…….”
길드원이 고민하며 눈살을 찌푸리는데, 문득 등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직접 찾아가는 게 더 빠를걸요. ”
“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싱글거리며 눈인사를 하는 갈색 고수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밤부스의 숲 부길드장, 레온이었다.
‘니르겐이 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난 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레온은 내 긴장을 눈치채지 못한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원체 예정 없이 움직이는 녀석이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아, 아니. 그럴 것까진.”
당장 채비할 기세로 등을 돌리는 부길드장의 반응에 당황하며 손을 젓자, 그가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괜찮아요. 고객님이 원하면 언제든지 자택으로 모셔 오라고 한 게 길드장님 본인이니까.”
“……니르겐님이요?”
그가 “그렇다니까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귀한 분이니 시간 낭비하게 만들지 말고 뭐든 재깍재깍 들어달라고도 하셨죠.”
“귀한 분이라니, 그런.”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또 그런 말을. 그 의뢰 비용이 그렇게 큰돈이었던가.
방금까지 니르겐과 깊이 연관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꼈던 터라, 그의 배려가 평소보다 불안하게 닿아왔다.
……그저 귀족 도련님의 흥미가 잠시간 동한 거겠지.
나는 잠깐 망설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이 니르겐의 뒤통수를 쳤다는 게 확실하지도 않고.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레온은 잡다한 이야기를 걸어왔다.
“저희 길드장님이 머물 곳을 따로 소개해주시지 않았나요? 지내시는 곳은 귀족 영애분께는 불편함이 클 텐데요.”
“제안은 받았지만 그, 그다지… 지금 있는 곳도 나쁘지 않아서요.”
“세상에, 정말 너그러운 성품을 가지셨군요.”
마치 우리 황실 식구들처럼 추어올려 주는 레온의 목소리에 뺨이 뜨거워졌다. 애꿎은 원피스 자락을 쥐어뜯으며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 귀족처럼 보이는지.”
“네?”
“수, 숙소도 평범한 곳으로 잡았고 옷도 시장에서 샀는데. 다들 귀족 영애로만 보셔서…….”
“어머.”
내가 고심 끝에 꺼낸 질문을 듣고 레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자, 그가 손을 휘저어대며 애써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턱을 괴고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고객님은 피부가 너무 고우세요.”
“네, 에?”
나는 당황해서 뺨에 손을 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몸은 일단 4살인 데다, 태양궁 식구들의 정성스러운 관리를 듬뿍 받았으니까. 미래에서의 육신과 비교도 안 되게 튼튼하고 생기가 넘쳤다. 내 반응에 레온이 작게 웃었다.
“자각하지 못하신 것 같지만, 단어 선택도 무척 고상하시죠. 발음도 전형적인 제국 귀족식이고요. 움직임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발음은 몰라도, 움직임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귀족 같다고? 음침하고 병든 정신이상자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그간 여러 사람을 겪으며 성격이 봐줄 만하게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그땐 어린애였고……. 평범한 귀족 영애를 연기하기엔 부족함이 많을 텐데.
“무엇보다, 그 색안경.”
레온이 손을 뻗어 내 안경다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괴물뱀의 비늘로 만든 제품이죠? 다시 보니 알겠네.”
“…….”
레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는 동안,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끌어 내렸다.
“이, 이게요? 저, 저는, 몰랐…….”
“아니 아니, 그렇게 놀라실 필요 없어요.”
레온이 나를 달래듯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마수의 부산물로 만든 생활용품 정도야 흔히들 쓰는걸요? 사제 중에서도 극히 결벽적인 분들이나 금지하시죠.”
“그, 그래도.”
이런 건 마도구 축에도 못 낀다는 레온의 열띤 설득에 나는 간신히 안경에서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놀란 심장이 진정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수 부산물로 만들어낸 물건이란 걸 알았으면 결단코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다니까요. 희소해서 값도 비싸고. 다들 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데.”
“이, 이런 게 비싼가요…….”
“금화 3개 정도는 하지 않았나요?”
금화 3개가 그렇게 비싼 걸까. 이렇게 세상 물정에 깜깜해서야 앞일이 걱정이었다.
‘그래도 니르겐이 왜 첫눈에 나를 부자로 봤는지는 알게 됐네.’
잡담하는 동안에도 마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바깥을 내다봤다가, 나는 이미 마차가 저택 부지를 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택 앞에 내려서자 머리가 희끗한 집사가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레온님. 이쪽은…….”
“아, 길드장님의 손님입니다.”
“…이곳에서 그 호칭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그가 푸른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경고했다. 하긴, 니르겐은 척 봐도 지체 높은 귀족집 도련님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그의 가문도 대대로 고위 사제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 분이 길드 운영같이 세속적인 일을 한다는 사실은 집안에서도 쉬쉬할 거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긴, 펠멋 준남작님께서 아시면 건강이 악화되시겠죠.”
“……?”
잘못 들었나?
우리를 안내해주는 집사를 뒤따라가면서 나는 레온에게 작게 물었다.
“혹시 방금 말씀하신, 펠멋 준남작님이란…….”
“아, 니르겐의 아버지세요.”
“……?”
나는 혼란스럽게 머리를 굴렸다.
내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제왕학을 배우긴 했고……. 각국의 계급 제도에 대해서도 얼추 아는데, 북부에서 준남작은 세습조차 되지 않는 단승작위였다. 그렇단 말은, 니르겐이…….
“아, 오셨습니까.”
때마침 우리의 방문 소식을 들은 니르겐이 얼굴을 드러냈다. 깔끔하게 넘긴 새까만 머리칼, 신성제국의 황제만큼이나 시선을 모을 듯한 수려한 얼굴의 남자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외모만 훤칠한 게 아니라, 몸에 두른 양장과 구두, 크라바트와 장식된 보석마저 황실을 방문하는 어떤 귀족들보다 비싼 태가 나는 것이었다.
그림에나 나올 듯한 부유한 귀족 도련님의 표본이다. 유력한 차기 대사제이신 오멘 후작님과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인 데다, 대신전 지하 감옥에까지도 연줄이 있지 않았나.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매사에 여유롭고, 사람을 부리는 게 몸에 밴 오만한 태도까지. 내 눈길에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는 도련님을 보며, 나는 질문을 삼켰다.
‘그러니까 저 남자가…… 평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