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화(13/207)
신성은 유전성이 강했고, 제국의 계급은 신전의 계급과 비슷했다.
황제인 할아버지는 신전에서 추기경급이었고, 황족인 고모나 삼촌들도 최소 상급 신관급은 됐다. 다들 뛰어난 권능을 가졌다는 뜻이다. 나야 무속성이어서 별 능력도 없이 아빠의 자리를 물려받아 교황이 되었지만…….
“그런데 파리엘 전하는 왜 성흔이 없는 건가요?”
마침 그 젊은 하인도 나와 비슷한 것을 궁금해했다. 유난히 앳되어 보인다 싶더니, 황궁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인 모양이었다.
“유명한 이야긴데, 몰라?”
“음, 자세히는요.”
“파리엘 전하의 어머니가 누군지는 알지?”
“앗, 누군지 밝혀졌어요? 전하를 몰래 황궁에 버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노숙한 하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밝혀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황제궁의 시녀 중 하나였으니까.”
‘황제궁의 시녀?’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파리엘이 사생아였다고 해서, 당연히 모친 쪽이 신분이 매우 낮거나 어떤 문제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황제궁의 시녀라니. 탄탄한 귀족가의 소생이라는 소리 아닌가?
게다가 황후 폐하께선 비올라 고모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파리엘은 고모보다도 나이가 적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을 하지 않았으니, 황후 자리도 비어 있을 시기인데.
“그런데 왜 사생아가 된 거예요?”
“쉿, 목소리 낮춰.”
노숙한 하인이 황급히 말하며 허겁지겁 문을 쳐다봤다. 바깥이 잠잠한 걸 확인하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전하의 어머니, 이비나 출신의 여자야.”
“그 서쪽 도시요? 그렇게 멀리서 여기는 왜.”
“뻔해, 가출한 거지.”
하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긴 젊은 여자가 살기에 너무 고리타분한 도시니까.”
신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폐하와 결혼을 하지. 왜 전하를 버리고 간 거예요?”
“이비나에선 외지인과의 결혼이 금지래.”
“하지만 폐하는 신성제국의 황제신데?”
“괜히 ‘제국은 소국의 위에 있지 않다’는 말이 있겠어?”
이야기를 엿듣던 나는 그 대목에서 작게 실소했다.
파리엘이 사생아라기에, 할아버지가 부적절한 관계라도 맺은 줄 알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비나는 연합국을 이루는 8개의 나라 중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다. 파리엘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가출하듯 집을 나온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략결혼이 싫었다든지 집안과 다툼이 있었다든지 뭔가가 있겠지.
그렇게 제국에 와서 황제궁의 시녀로 일하던 중, 할아버지와 눈이 맞은 것이다.
하인들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아마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비나의 반대에 부딪혔다.
신성제국의 황제는 전능한 자리가 아니다.
하인들이 조롱하는 ‘제국은 소국의 위에 있지 않다’라는 말의 원문은, ‘제국은 대륙의 위에 있지 않다’.
그건 신성연합국의 첫 번째 조약이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하나로 통일된 과정은 정복 전쟁 같은 걸 해서가 아니었다. 약 300년 전, 대륙 최북단의 도시 ‘나샤’에서 마수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샤가 있던 나라, 할스테리어에서 주변국에 구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대륙은 냉전 상태였다.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던 7개 국가는 당연하게도, 할스테리어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나샤의 몰락.
나샤의 모든 인간이 절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당시 나샤는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이 집을 짓고 땅을 일구며 힘차게 살아가던. 그곳의 인간을 모두 도륙한 마수들은 할스테리어의 접경 국가인 제나스까지 범람했고, 곧 대륙 전체로 뻗어 나갔다.
그제야 다른 나라들도 상황이 심각하단 것을 깨달았다. ‘대륙의 모든 인간은 성신의 자녀다.’라는 이념 아래 여덟 나라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샤를 완전히 구조할 때까지 국경을 무효화하는 통일 조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나샤는 300년 동안 구조되지 못했고, 그 조약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300년 전, 당시 대륙의 패권을 잡고 있던 예하드가 신성연합국의 수장이 되었다. 통일을 선포하던 해에, 예하드의 황제는 7개 국가에 그들의 문화와 법률을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
그래서 아무리 신성제국의 황제라도 이비나의 영주가 그들의 법률이라며 결혼을 반대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하드를 포함한 여덟 개의 주는 각각 하나의 국가처럼 고유의 법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다. 존중과 균형은 신성연합국을 이루는 기틀과도 같았다.
‘그게 아들을 사생아로 만드는 일이라도 말이지.’
아마 그쯤에서 파리엘의 엄마는 더 제국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겠지. 이비나로 돌아간 정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녀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마 고국에 도착한 뒤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혼자 황제의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황궁에 버리는 방식으로 의탁한 것이다. 그게 본인의 판단인지, 가문의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전하가 황궁에 왔을 때는 이미 2살이 넘은 나이였지.”
“영아 세례는 2살까지만 받을 수 있죠…….”
그래서 파리엘은 신성제국 황제의 아들이면서도 성흔이 없는 일개 신도가 되어버린 거구나.
계급과 신성력이 비례하는 이 나라에서, 성흔이 없는 황자라는 게 얼마나 미묘한 위치였을지.
그런 기분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안타깝네요.”
신입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노숙한 하인은 우습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안타깝긴 우리가 안타깝지. 지금 누굴 동정하니?”
“그건, 그래요…….”
다시 청소를 시작하는 하인들을 보면서, 난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그래. 내가 파리엘에게 동정을 느낄 처지는 아니지.’
파리엘이 알았다면 감히 마녀 따위가 저를 동정하는 거냐고 길길이 날뛸걸.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마력을 회복했다. 세피아를 구해서 마법진을 그릴 수 있다 치더라도, 마력이 없으면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성의를 다해 정신을 집중하자 마력 코어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길래 아빠가 왔나 했다. 반갑게 고개를 들었는데 아빠와 함께 조그만 여자애가 방에 들어왔다.
그녀를 발견한 나는 잠기운이 단박에 달아나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만간 만날 건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별일은 없었나?”
“네, 전하.”
아빠와 린다 유모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여자애가 아기침대로 다가왔다.
열한 살쯤 되었을까? 고운 백금발이 어깨에서 찰랑였고 머리 위에는 눈 색에 맞춰 새파란 리본을 단 인형처럼 예쁜 아이였다. 총총 걸어와 아기침대 난간을 잡은 여자애는 청량한 바다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
그리고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덧붙였다.
“내 이름은 비올라야.”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구김살 없이 밝고 사랑스러웠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위로해주었던, 그렇게 굳세고 슬픈 죽음을 맞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올라 고모.’
“세상에, 너무 귀여워…….”
고모는 날 칭찬하는 척 자기소개를 하면서 침대 난간에 팔을 얹고 내게 고개를 바짝 붙였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안아봐도 되나요?”
고모가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휙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유모와 이야기를 끝낸 아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글쎄…….”
아빠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힐끔 바라봤다.
“안 떨어뜨릴게요.”
“아기가 낯을 많이 가려서.”
고모가 아빠에게 존댓말을 썼구나. 남매 같아 보이지 않게 데면데면해 보이는 둘의 대화를 난 흥미롭게 지켜봤다.
“내가 처음 안았을 때도 자지러지게 울어서 달래느라 고초를 겪었지.”
‘고초…….’
난 그날을 떠올렸다. 아빠를 만나서 울음을 터뜨린 나를 안고 차분하게 등을 두드려주던 아빠의 손길을. 아기처럼 울어버린 건 약간 부끄럽지만, 아빠가 고초를 겪었다고 표현할 만큼 열심히 달래주었나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그냥 표정 없는 얼굴로 덤덤하게 날 안고 있기만 하신 것 같았는데.
“오라버니에게 안겨서 많이 울었었구나.”
고모가 나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오라버니를 안 닮고 순하게 생겨서 괜찮을 거예요.”
“…….”
아빠가 고모의 옆얼굴을 내려보았다.
작고 귀여운 열한 살의 황녀와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열여덟의 황자. 서로를 닮은 두 황족 아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두 사람 모두 내게는 소중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라, 이렇게 살아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읏차.”
그러는 사이 고모가 내게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을 겨드랑이 아래에 넣어 야무지게 안아 들었다.
“이쪽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주세요.”
고모는 유모의 코치를 받아서 날 안정적으로 품에 안았다. 이 순간이 너무 기쁘고 좋아서 방실방실 웃자, 고모의 얼굴이 기세등등해졌다.
“이것 보세요. 절 좋아하죠.”
“이럴 리 없는데…….”
그들의 말소리가 꿈결처럼 느리게 들렸다.
‘이 마법을 성공하면, 모두 없던 일이 되는 거야. 과거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야.’
고모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과거는 정말 없던 일이 되었고.
‘괜찮아, 이브엔나…… 넌 할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다는 말도, 진짜였다.
“도다어여.”
‘고마워요.’
혼잣말처럼 웅얼거리자, 고모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옹알이한다. 착한 사람을 알아보나 봐.”
“놓으라는 것 같은데.”
난 고모의 어깨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황녀에게 혼자만의 맹세를 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켜줄 거야.’
천진하고 맑은 눈동자가 피와 배신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어렵게 얻어냈기에 더더욱, 이 평온이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