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0)화(133/207)
니르겐의 절절한 연기는 대신관님께 감명을 드린 것 같았다. 니르겐이 의뢰를 위해 노력해주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 사람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하지만 그다지 얻어낸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을 보니 젊었을 때 생각이 나는군. 나도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괜히 대사제님의 연애담만 한참 듣고 온 것이다.
대사제님이 젊은 시절 나샤로 파견 간 선파사였다기에 니르겐이 자세히 캐보려고 했으나, 그때 부인이 정성스럽게 기다려주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다.
부인은 대사제님이 나샤에 파견을 가 죽을지도 모르는 몇 년 동안 매일 대사제님을 위해 기도하며 기다려주셨다고 한다.
참고로 대사제님은 어릴 적 꼬마 사제일 때 만난 부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지금은 슬하에 딸이 하나 있으며, 그분이 현재 할스테리어의 왕자비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딱히 듣지 못했지만, 대사제님의 집무실에 염탐 마법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대사제님과 헤어진 후에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대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사람들을 만났다. 니르겐이 일부러 의식이 있는 날을 고르긴 했지만, 그는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랜만입니다, 길… 니르겐님!”
대신전의 경호 기사씩이나 되는 사람들도 니르겐에게는 무척 공손했다.
그게 약간 이상한 점이었다. 할스테리어는 분명 보수적인 계급 사회일 텐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나의 혼란을 모르는 니르겐은 태연하게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약혼녀십니다.”
“니르겐님의 약혼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정말 고우시군요.”
벌써 소문씩이나 난 걸까?
신전에서는 마도구인 안경을 쓸 수 없어서 하얀 로브를 푹 눌러썼다. 그런데도 곱다고 말해주는 데서 기사의 사회성을 알 수 있었다.
기사는 니르겐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며 한참 그의 인성을 칭찬했다. 나는 니르겐을 흘끔 돌아봤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다녔길래 만나는 사람마다 ‘신세’ 타령일까.
니르겐은 기사의 말을 적당히 끊고 본론을 물었다.
“혹시 일하면서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은 없었습니까?”
“대신전이 워낙 경비가 삼엄하고 저는 일개 기사일 뿐이라…….”
그는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한 일보다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죠. 대신전이 개방된 공간이다 보니 부랑자들도 오가고, 마음 약한 사제들을 붙잡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들도 있고.”
기사는 쌓인 게 많은 듯 그간 경험한 황당한 일들을 하나하나 꼽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처음 부임한 해에는, 자기가 대사제님의 딸이라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사제님의 따님은 왕자비님 한 분뿐이지 않나?”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거죠, 이거.”
기사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미친 사람이라는 시늉을 했다.
“제가 대신전에 처음 입성했을 때인데, 인수인계 때문에 단장님 곁에 있다가 갑자기 나샤민이 침입해서는. 어휴, 고생 많이 하겠구나 싶었죠.”
“나샤민이요…….”
국경을 따라 높은 방벽이 생긴 지도 수백 년, 나샤 출신들은 이미 국경 안의 사람들과 말투며 외모에서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갖게 되었다.
나는 대부분이 나샤 출신이던 마탑을 떠올리다가, 문득 물었다.
“혹시 그게 언제 일이죠?”
“제가 기사 서임을 받은 게 67년도니까… 벌써 16년 전이군요. 그게.”
“16년 전…….”
그때, 니르겐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캔디 양, 저분이 슈아겐 로만 경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하얀 정복을 입은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 20년가량 젊은 할스테리어 대사제의 얼굴이다.
“로만 경은 금방 자리를 뜰 겁니다. 지금 이야기를 나눠보시겠습니까?”
나는 다소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
이로써 ‘할스테리어 대사제 살인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은 모두 만나보았다.
하지만 대신전에서는 후작저에서 발견했던 마력의 흔적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길드의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쌓은 자료가 많아지자 부길드장님이 친절하게도 공실 하나를 내주었다.
책상에 앉아서 정리해놓은 서류를 펼치자 친근한 목소리가 말을 붙였다.
“또 자료 취합하세요?”
니르겐이 내게 붙여줬던 길드원과 길드 문턱이 닳도록 다니면서 안면을 익힌 몇몇 정보원들이었다.
“아, 네.”
“도와드릴까요?”
싹싹한 길드원은 웃는 낯으로 다가와 수북이 쌓인 서류의 산을 가리키며 살펴봐도 되냐고 물었다. 길드에서 제공한 자료인데 거절하기도 이상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흐트러진 자료들을 취합해서 척척 정리하더니 예쁘게 묶어주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길드원들의 도움을 받은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가, 감사합니다. 늘 신세만 지고…….”
“이게 우리 일인데 신세라뇨.”
“맞아요, 게다가 고객님은 나중에 우리가 모시는 분이 될지도 모르니까! 미리 잘 보여둬야죠.”
“…네?”
니르겐의 스카우트 제안 이야기일까? 그건 거절한 지 오래인데.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자, 길드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키득거렸다.
“아이, 다 아시면서.”
“길드장님이 고객님을 각별하게 생각하시잖아요.”
“네, 네?!”
나는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설마 사교계에 퍼졌다는 니르겐의 약혼 소문을 길드원들까지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에요. 그런 거. 니르가 약혼녀라고 하는 건 그냥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아, 아하, 니르씨가 그러셨구나.”
웃음을 참으며 호응하는 길드원을 보고, 뒤늦게 내가 그를 지나치게 친근하게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니르겐이 완벽한 사기는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애칭을 강요해서, 밖에서는 니르라고 불렀던 게 입에 붙어서 그만….
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길드원들이 웃음을 억누르는 소리가 더 커졌다.
길드원들은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끊임없이 자료를 보강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확인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도무지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을 때였다.
“다들 여기서 뭐 합니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 어슬렁거리는 니르겐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등장… 아, 아니, 이건 무례한 생각이야.’
하지만 대신전에서의 반듯한 영식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유독 품격 없어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얼굴을 휙휙 바꾸는 걸까.
“아직도 계셨습니까?”
니르겐이 설렁설렁 걸어와 고개를 기울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냥, 찾아볼 게 있어서요.”
“흠…….”
니르겐의 시선이 지저분한 책상 위를 훑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이라도 된 듯 심장이 졸아들었다. 다행히 그는 곧 시선을 거두고 방을 빠져나갈 것처럼 문으로 다가서더니 문을 탕탕 쳤다.
“괜히 고객님 방해하지 말고 다들 나와.”
나는 흠칫 놀라서 부정했다.
“바, 방해라뇨, 아니에요.”
“아니라고 하시잖아요. 길드장님은 이게 방해하는 모습처럼 보이세요?”
“열심히 도와드리고 있었거든요!”
“이것들이 길드장님 말씀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빨리 안 나와?”
“우우우!”
길드원들은 야유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괜히 야속한 마음에 니르겐을 노려보자, 그가 희미하게 고개를 까딱했다.
“편하게 하십시오.”
“……?”
탁, 하고 문이 닫혔다.
니르겐이 모든 길드원을 몰고 나간 공실엔 나와 자료만 남게 되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쓸쓸한 기분이 몰려오는 것과 동시에, 머리가 차분해졌다.
나는 문득 길드에 들어서면서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기억해냈다.
“아, 대신전 자료.”
길드원들이 수북이 쌓아준 교구들의 자료를 걷어내자 대신전의 지하 수용소에 대한 자료가 나왔다. 나는 자료를 들고 파라락 넘겼다.
“있다.”
이델리가 지하 수용소에 들어간 건 3년 전, 대사제 살인 미수 사건이 있던 해였다.
그러다 이델리의 이력이 눈에 띄었다.
“살인 미수 이전에 범죄 경력이 있었다고?”
이력을 보고 할스테리어의 수감 기록을 파헤쳐보았다. 그러자 다른 수용소에서 이델리가 13년이나 복역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총합하면 16년 전.
‘제가 처음 부임한 해에는, 자기가 대사제님의 딸이라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사 서임을 받은 게 67년도니까… 벌써 16년 전이군요. 그게.’
우연히도 나샤 출신 여자가 대사제의 사생아라고 찾아왔던 기간과 이델리의 수감일이 겹쳤다.
‘정말 우연일까.’
이델리는 나쁜 사제에게 폭행당한 후 마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고 말했다. 그때는 어쩌다 폭행을 당했는지 몰랐지만, 이 이유에 ‘대사제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를 넣는다면 꽤 자연스러워졌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이델리라면 그럴 수 있다. 그녀는 척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대사제가 왜 그런 짓을 벌였냐는 의문이 남는다.
능멸죄라는 죄명을 보더라도 사람을 13년이나 감옥에 가둔다는 건 너무 과했다. 게다가 폭력까지 사용했다는 건, 신전의 규율에도 맞지 않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나샤 난민이 대신전을 찾아와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대사제씩이나 되시는 분이 보복성 처벌을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델리가 정말 대사제의 사생아라도 되는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