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2)화(135/207)
“……따님?”
니르겐이 헛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깐 길드원을 주시하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하 직원 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봅니다. 별 저급한 추문에 다 넘어가는군요. 고객님이 이런 약혼자를 두고 부정 따위를 저지를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저한테 온 거 맞을 거예요.”
“예?”
니르겐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딸이, 있으셨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 니르겐은 진심으로 충격받은 듯 입을 벌렸다.
“저를 늘 놀라게 하시는군요. 미리 귀띔해주셨더라면 좋은 새아버지가 될 마음가짐을 마련해두었을 텐데.”
…충격받은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니르겐은 전보를 받아 오겠다며 방을 나섰다. 나는 혼자 남아 고민했다.
‘그간 황성에 신경을 못 쓰긴 했지.’
길드원이 전한, ‘따님에게서 전보가 왔다’라는 말.
당연하지만 내게는 딸이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딸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이 밤부스의 숲에 ‘코튼 캔디’라는 이름으로 의뢰를 맡겼다는 사실을 말한 적 없다. 그러니 길드 편으로 전보를 보내면 내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또한 없었다.
나 자신을 제외하면.
‘그러니까 전보를 보낸 자칭 ‘따님’은 나 자신. 즉, 황성에 있는 나의 분신일 거야.’
유희 마법을 통해 만들어낸 나의 분신은 모든 능력이 나보다 떨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내게 전보를 보낼 정도면, 꽤 급한 일이 터진 걸 테다.
할스테리어에 오고 나서는 황성에 설치해둔 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마법이 이어지는 범위를 벗어나 버린 듯했다.
‘중간에 한 번 돌아가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할스테리어에서 언제 일이 터질지 몰라 계속 미뤄왔다. 공간 이동 마법은 규모가 커서 한두 번만 써도 금방 마력이 바닥나 버리니까.
그 평화로운 황성에서 전보를 보낼 정도의 일이라면 뭘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유희 마법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내 분신은 겉보기엔 나와 똑같지만 나 자체는 아니다. 모든 힘이 나의 십분의 일 수준이며, 내구성도 극히 떨어진다. 또한 생명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타격을 받으면 본체처럼 피가 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그대로 연기가 되어서 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세례를 내려달라고 부탁해서 성녀의 입지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혹은 큰 타격을 받아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걸까.’
사람들 앞에서 연기가 되어서 사라지면 혼란의 소용돌이가 펼쳐질 것이다. 황성으로 돌아가서 마법을 보강해주어야 했다.
‘으음, 일단 전보를 보고 결정하자.’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니르겐을 기다렸다.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걸린 건 그때였다.
-…너는.
나는 한 박자 늦게 그것이 염탐 마법에서 흘러 들어온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귀를 곤두세웠다.
대사제의 당황한 듯한 침음. 그리고 그 뒤로, 함께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아빠.
나는 잠깐 호흡을 멈췄다.
내가 들었던 것보다 훨씬 높고 명랑하지만, 이 목소리는 분명…….
“…이델리?”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신도가 오가고 나라에서 가장 강한 성기사들이 상주하는 곳이 바로 대신전이다.
그 대신전에서도 대사제가 기거하는 공간은 각별히 엄중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이델리가 침입했을 리 없다. 그녀는 어제까지도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묶여 있지 않았나. 대신전에 숨어들기는커녕, 숟가락을 들기도 어려운 몸 상태인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 상식적인 판단들이 나의 즉각적인 대처를 저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얼어붙은 나의 귀로, 대사제의 날카로운 고함이 파고들어 왔다.
-네가 어느 안전이라고 여기를!
뒤이어 울리는 기묘한 파열음. 대사제의 옅은 신음.
그럴 리가 없는데, 더 망설이다간 늦어버릴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했다.
***
차원의 틈을 넘어서 대사제의 방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핏방울 사이로 너울지는 금색 머리카락이었다.
대사제의 책상 뒤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선 여자.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미, 미안하다. 나는 정말로 몰랐어. 그렇게 될 줄은…….”
대사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공간을 넘어오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대화가 오갔던 걸까.
“레이나의 일은…….”
“닥쳐.”
일순간 저 여자가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더러운 감옥 안에서 봤을 때와는 말투도 겉모습도 딴판이었으니까.
이델리는 팔과 넥라인을 타고 여러 색으로 반짝이는 비즈가 수놓아진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목덜미와 팔은 수포가 일어나고 변색된 녹색 피부 대신, 깨끗하고 건강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떨리고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또박또박한 어투로 뇌까린다.
“그 더러운 입으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지 마.”
나는 불현듯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던졌다.
그러면서 보았다. 이델리가 주먹 쥔 손을 펴자 새까만 칼이 솟아나는 모습을.
마탑에서 엄마에게 가르침을 받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단다.’
그러니까, 마도구, 마법진, 강화, 구현화, 실체화. 저것은 마력을 실체화하여 만들어낸 칼이다. 그 말인즉슨.
‘이델리는 마법사야.’
그녀의 몸에서 이전에는 감지되지 않았던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사제가 품에 찬 칼을 빼 들었다.
대사제 게릴 젠트스는 파괴의 권능을 타고난 기사였다. 서리를 깎아 만든 듯한 독특한 질감 때문에 서리검이라는 이름이 붙은 새하얀 검은 할스테리어에 내려오는 성물 중 하나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 이 장면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안 돼!”
대사제가 검을 쥐었다. 하지만 이델리는 그러지 않았다.
마력은 마법사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마력으로 실체화한 물건은 틀이 없다. 이델리의 마력검은 휘어지며 대사제의 검을 비껴 나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헉…….”
내가 방어막을 쳐서 이델리의 검을 파괴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의 입에서 울컥거리며 피가 흘러나왔다.
“대, 대사제님.”
나는 상처 위로 손을 얹고 치유의 권능을 발휘했다.
무의미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빠를 살리려고 아무리 수련해 보아도, 끝내 가벼운 감기 하나 낫게 하지 못했으니까.
이델리의 검은 정확히 심장을 노렸다. 급소를 관통했으니 내 조그만 성력으로는 죽음을 더디게 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사제의 복식과 성검의 모양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없다.
하얀 정복에 수놓아진 고귀한 눈 결정 위로 핏물이 드리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폐하!’
‘아, 아빠……?’
바닥으로 무너지는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고 겁이 많던 어린 시절의 나는 쓰러지는 그를 받아주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기억은 들불처럼 번져 내 시야를 새빨갛게 불태웠다. 그 불길은 곧 진원지를 향해 돌아갔다.
“이델리……!”
나는 화가 들끓는 목소리로 외치며 이델리를 돌아봤다.
그리고 일순간 굳어버렸다.
거기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봄꽃처럼 사랑스러운 분홍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힘 있게 웃는 엄마가 아니라, 시체처럼 파리하게 말라붙은 엄마가.
불거진 광대와 움푹 팬 퀭한 눈동자엔 생기가 없었다. 지푸라기처럼 뻣뻣한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목에는 밧줄에 짓눌린 듯한 붉은 자국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배 속이 뒤틀렸다.
아무리 엄마가 보고 싶었대도,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이, 건…….”
만들어낸 환상.
거기에 생각이 미치는 데까지 몇 초나 걸렸을까.
이델리가 등을 돌려서 창문을 넘어갔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그녀의 뒤를 쫓았다. 창틀을 잡고 이델리의 모습을 찾았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대, 대사제님! 대사제님이!”
“침입자다!”
“침입자가 대사제님을 시해했다!”
문 앞을 지키던 성기사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나는 소요를 등진 채 잠시간 눈으로 이델리의 뒤를 좇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할스테리어 대사제 살인 사건에서, 이델리가 대사제를 살해한 뒤 순차적으로 노렸던 대상이 떠올랐다.
‘오멘 후작가는 안 돼.’
더는 늦을 수 없다. 나는 또 한 번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했다.
***
성기사들은 빠르게 판단했다.
바닥에 쓰러진 대사제는 눈을 뜬 채 움직임이 없었다. 테헤라의 새하얀 정복은 새어 나온 선혈을 뚜렷하게 드러내주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서리검은 그가 싸운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대사제를 제외하고 한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오늘 이 방에 손님을 들인 적은 없는데도.
성기사는 힘껏 외쳤다.
“침입자가 대사제님을 시해했다!”
사제들이 외침을 듣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파괴의 권능을 가진 대사제는 강하다. 게릴 젠트스는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으나, 여전히 강한 성기사였다. 머뭇거리면 침입자가 창문을 뛰어넘어 도주할지도 모른다. 창문 아래에는 높은 창살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에 침입한 자라면 평범한 인간이 아닐 테니까.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채 검을 빼 들었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범인은, 겉보기에는 결 좋은 백금발을 휘날리는 여리고 아름다운 여자애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파렴치한 침입자는 대사제의 시체를 등지고 서서 기사들의 말도 무시한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마녀.’
성기사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는…….”
“순순히 투항해라!”
방에 들어온 기사들은 창문 너머에 검은 틈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했다.
누가 봐도 마녀들이 부리는 사특한 주술의 모습이다.
대사제님을 시해하고 도주하려는 셈인가! 용맹한 기사들은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중 가장 빠른 성기사의 검이 침입자에게 닿았다.
“읏!”
그 순간 그녀가 기사를 돌아보았다.
휘날리는 백금발 사이로 보이는, 서로 색이 다른 눈동자.
눈이 마주친 직후 검은 마력이 뻗어 나왔다. 침입자는 사특한 힘으로 기사의 검을 쳐내고, 검은 틈새로 몸을 던졌다.
스친 검은 뺨에 작은 생채기를 내고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잘라내는 정도밖에 해내지 못했다.
침입자는 기사들을 놀리듯 유유히 대신전을 빠져나갔다.
“크윽…….”
“비상사태, 비상사태다!”
“빨리 기사들을 소집해서 주변을 수색하도록 해!”
침입자에게 가장 가까이 닿았던 성기사는 검에 묻은 피를 확인하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그리고 백금색의 머리칼이 분홍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녀가, 대사제님을 시해했다.”
“잠깐만요.”
그때 한 성기사가 손을 들었다. 기사들의 날 선 시선이 그를 향했다.
“제, 제가 범인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예.”
기사가 긴장된 얼굴로 대답했다.
“니르겐 펠멋의 약혼녀, 코튼 캔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