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5)화(138/207)
충격적인 진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나약하게 옛 기억을 헤매는 동안에도, 후작은 응당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딸에게까지 이러십니까. 설마 장인어른도 데런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던 디아나의 말에 마음이 동하신 겁니까? 그래서 딸에게 위협을 가합니까! 실수하신 겁니다! 자식 잃은 슬픔을 제가 감히 헤아리겠냐마는, 디아나도 당신들의 자식이지 않습니까!”
후작은 당연하게도 이 사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 의무감에 나는 무너져가는 난간을 잡았다.
“데런은 죽지 않았어요, 후작님!”
“……뭐?”
“사술을 써서 멀쩡히 살아 있는 데런을 유령처럼 보이게 한 거예요! 리하센 가문이 다 같이 작당해서 부인을 미치광이로 만든 거였어요! 부인이 죄책감 속에서 삭아가게 하려고!”
후작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그 잠깐의 동요를 놓치지 않고 공작이 칼을 찔러 넣었다. 후작은 공작을 억누르느라 날카롭게 찔러 드는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 그는 물러나는 대신 손을 뻗어 검을 잡았다. 손을 파고든 칼날을 타고 붉은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후작님!”
“큭…….”
하지만 후작은 멈추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도 곧장 공작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공작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려 피했으나 칼날이 공작의 머리칼과 귓바퀴를 스쳤다.
사위와 장인이 대치하며 섰을 때, 그들은 상처를 하나씩 주고받은 셈이 되었다. 후작은 손에, 공작은 귓바퀴에. 사제들이 사랑하는 새하얀 의복 위로 피가 묻은 것은 같았지만, 후작의 상처가 더 깊고 치명적으로 보였다. 공작 또한 그것을 파악했는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오멘, 네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치유 신관. 기사에게 검으로 대항하는 건 우매한 짓이었다.”
“…….”
“이곳에서 본 것을 함구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캔디 양의 말을 부정하지 않으시는군요.”
하지만 후작은 검을 물리지 않았다. 그는 공작과 거리를 벌리며 다친 손바닥을 펼쳤다. 새하얀 빛과 함께 치유의 권능이 상처를 감쌌다.
순식간에 새 살이 돋아나는 손바닥을 보며 공작이 눈썹을 꿈틀했다. 이제 부상자는 공작뿐이었다.
“성기사처럼 파괴력은 없지만, 치유 신관도 나름대로 전술이 있습니다.”
오멘이 양손으로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뼈를 내주고 살을 깎는 전법’. 치명상을 감수하며 부상을 입혀도 결국 이기는 건 이쪽이니까. 우리는 전투에서 몸을 사릴 필요가 없죠. 뒤에 숨어 비열한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기꾼에게 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인어른.”
“하! 우습구나, 즉사하면 치료도 못 한다는 걸 알려주마!”
공작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오멘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어떻게든 공격을 피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치유 신관의 몸으로 최전방에서 싸운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공작씩이나 되는 기사와 호각으로 겨루는 후작을 보며 나는 무심코 혀를 내둘렀다.
‘괜히 할스테리어의 차기 대사제가 아니구나.’
하지만 그래도 치유 신관은 신관. 전투원이 아닌 그가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뒤엉켜 싸우는 장인과 사위를 보며 초조하게 몸을 일으켰다. 오멘 후작 부부가 얼른 여기를 벗어나게 해야 했다. 대사제를 죽인 이델리가 언제 이곳으로 올지 몰랐다. 후작 부인을 돌아본 나는 흠칫 놀랐다.
끼이익.
공작이 날린 검기는 나와 부인을 해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이층을 견디는 바닥과 천장을 반파시켜 놓을 만큼은 파괴적이었다.
검기는 바닥을 갈라 나와 부인 사이의 연결을 끊어 놓았다. 그리고 천장의 기물이 아래로 쏟아져서, 사이에 비죽비죽한 벽을 만들어 놓았다. 틈새로 부인의 모습은 보였지만 당장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법으로 파괴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자칫 바닥이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무리해서 없는 마력을 짜내 벽을 없애고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될 것이다.
“읏…….”
설상가상으로 바닥 상태도 위태로웠다. 나는 아래를 흘긋 살폈다. 비스듬히 떨어진 곳에 침대가 있었다. 이 복층은 꽤 높았지만 쿠션만 있다면 크게 다칠 높이는 아니었다. 여기서 뛰어내린 다음 떨어지기 직전에만 마력을 써서 몸을 받쳐주면 부상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작이 공작을 잡아두고 있는 틈을 이용해 뛰어내린 후, 침대를 살짝 옮겨서 부인이 침대 위로 뛰어내리면 될 듯했다. 만약 상처를 입는대도 후작 부부가 치유의 권능을 쓸 수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나는 이 계획을 부인과 공유하기 위해 운을 뗐다.
“부인, 다친 곳은 없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바람 소리뿐이었다.
무너진 잔해가 바람결에 나부끼며 위험한 무기가 되고 있었다. 의아함을 느낀 나는 왼팔로 바람을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기물 벽 틈으로 후작 부인의 모습을 확인한 내 눈이 커졌다.
“머, 멈춰요!”
“…….”
후작 부인은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두 다리로 제대로 서서, 위태로운 바닥을 밟으며 열린 창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갈색 머리칼 사이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저주의 흔적이 보였다.
“디아나 오멘!”
내 숨이 거칠어졌다. 저 속도로 걸어간다면 무슨 마법을 써도 늦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녀의 발을 멈추기 위해 냅다 외쳤다.
“정신 차려요! 데, 데런 경은 유령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잡아서 밀어버리는 거 못 보셨어요? 쌍둥이 오빠의 죽음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요! 거짓말쟁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요!”
“…….”
“에, 엘리엇과 미래를 함께하기로 했잖아요!”
급해진 나는 부인과 나누었던 약속을 들먹였다.
그제야 창으로 향하던 부인의 발이 멈췄다.
겨우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다급히 말을 이었다.
“엘리엇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견뎌내 본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다 거짓이었나요?”
“네가 뭘 알아?”
부인의 서늘한 목소리가 거친 바람 새로 날아왔다.
“그 애를 위해서야. 데런은 유령이 아닐지라도…… 분명 뭔가가, 누군가가 있어! 데런을 마주하면 느껴져. 그 뒤에 있는 인간 같지 않은 힘이.”
화를 내는 것처럼 외치던 목소리는 이내 겁먹은 듯 떨렸다.
“그게 무엇이든, 내 죽음을 바라고 있어.”
심장이 덜컹했다.
부인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는, 인간 같지 않은 힘. 나는 그녀가 지난 몇 달간 당한 모든 일을 떠올렸다.
가족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으나 가족과 연을 끊어야 했고, 그사이에 쌍둥이 오빠가 죽었다. 그녀는 그게 자신의 탓이라고 느꼈다. 힘든 와중에 믿었던 집사와 오래 함께한 식솔들마저 돌변했다. 그 탓에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지고 하나뿐인 자식이 학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믿었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새로 고용했으나, 같은 일이 반복됐다.
디아나 오멘은 과민증과 불면증을 얻었고 죽은 오빠가 귀신이 되어 찾아와 아들을 인질로 잡고 죽음을 종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 말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제 와 오빠가 죽은 게 아니라 친정이 합심하고 그녀를 속여 미치광이로 만들려 한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일을 한 번에 겪는다면, 온 세상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죽어야 이 모든 게 끝나.”
굳이 저주에 걸리지 않았어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리라.
“모두가 원하는 게 내 죽음이라면, 차라리 여기에서 끝내야 해. 그게 엘리엇을 지키는…….”
그렇게 말하는 후작 부인의 기분을 감히 짐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인이 죽으면 엘리엇도 죽어요.”
“……뭐?”
나는 손톱에 손바닥이 패도록 주먹을 쥐었다. 마음을 강하게 먹는 데 고통은 도움이 되었다.
“생각해보세요. 리하센 공작 내외는 디아나님을 훌륭하게 키우셨어요. 돌변한 건 오멘가의 일원이 된 이후죠. 그들이 증오하는 건 디아나님이 아니라 오멘이에요. 하지만 디아나님께선 이미 아들을 낳으셨죠. 데런 경은 몸이 약해서 언제 엘리엇이 리하센가의 후계자가 될지 모르는데, 그런 위험을 놔두겠어요?”
창으로 향하던 후작 부인의 몸이 바람에 걸린 나뭇가지처럼 떨렸다.
“그러면.”
“디아나님.”
“그러면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질문보단 차라리 비탄에 가까웠다.
나는 던지듯 진심을 뱉었다.
“살아요.”
성탑의 꼭대기에서 가장 잔인한 작별 인사를 듣고 상처를 받아야 했던 나의 엄마.
그날 나는 엄마에게 마녀들과 엮였다가 훗날 문제가 될지도 모르니 발목 잡지 말고 사라져달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엄마를 마침내 만나서 모진 말로 뿌리쳤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진심은.
“당신과 엘리엇 중 누구 하나가 살아야 한다면, 그건 당신이 되어야 해요.”
“…….”
“부모는 자식 없이 살아도, 자식은 부모 없이 못 사니까.”
“캔디 양.”
서서히 나를 돌아보는 녹색 눈동자에 슬픔과 혼란, 공포가 섞여 들었다.
그녀의 위로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 엄마도 죽음을 결정하는 순간, 이렇게 두려우셨을까.
그래도 용기를 내서 목에 밧줄을 걸었을까.
그 모습을 상상하자 심장이 아리도록 절박해졌다.
“당신은 살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