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4)화(14/207)
모두가 잠든 밤, 난 어김없이 비밀통로에 숨어들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데 필요한 마도구, 세피아를 구하는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난 야심 차게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다시 보자.’
엄마의 책에 세피아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북해에 사는 대왕오징어의 먹물에는 마력을 응집시키는 성질이 있다. 이 먹물로는 마법진을 그리는 잉크 세피아를 만들 수 있고, 마력석 등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등 마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치명적인 독이나 무기를 만드는 데 유용해 암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난 통로 바닥에 엎드린 채 진지하게 책을 읽어나갔다.
“후움.”
‘응집시키는 성질, 이게 중요한 건가?’
한참 동안 조용히 책과 눈싸움을 하던 나는 책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우으…….”
‘집중이 안 되네.’
실마리가 안 보이기도 하거니와, 낮에 고모를 만나서 정신이 산만하기도 했다.
‘소풍 갔다 와서 흥분한 애도 아니고.’
고모를 보니까 마음이 푹 놓이면서, 정말 모든 게 되돌아왔다는 느낌이 났다. ‘너무 귀여워.’ 그렇게 남발하던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자기가 훨씬 귀여우면서.
‘파리엘 때문에 많이 놀랐지.’
그리고 마지막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그런 말을 하기도 했지.
‘내가 대신 사과할게. 지금 좀 불안해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야. 걔가 태양궁에서 지냈던 이유도…….’
나는 고모의 말을 떠올리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내 처지에 파리엘을 동정하지 말자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다짐했으면서.
‘엄청 신경 쓰이네…….’
차기 교황이 머무는, 귀한 성물을 여럿 지닌 태양궁은 황실에서 가장 신성이 가득한 장소일 것이다. 덕분에 나도 신성력을 회복하기가 수월했지.
파리엘은 아빠와 시종장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종종 태양궁에 머물렀다고 한다.
‘신성이 가득한 곳에서 수련하다가 성흔이 생겼다는 기록이 있대.’
그래서 파리엘은 여기에서 수련하면 자기도 성흔이 발현할 거라고 믿었단다. 전례가 있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사람들도 파리엘이 밤에 몰래 내 방에 접근했다는 말을 믿은 것 같다. 성녀에게 축복을 받으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들 하니까. 그런 거 미신일 뿐인데.
‘아니, 소피아의 경우엔 미신이 아니었지.’
소피아 이노센트,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기적의 성녀. 그녀는 못 하는 일이 없었다. 2살이 넘은 사람에게 세례를 내리는 것까지도.
소피아의 사제들.
평민, 몰락 귀족의 자식, 혹은 어릴 적에 너무 몸이 약해 세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성흔을 얻게 된 사람들은, 신보다 소피아를 더 믿고 따르면서 완전한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소피아는 어떻게 세례를 내릴 수 있었지?’
원래 영아 세례는 사람이 내리는 게 아니다. 대신전에서 보유한 성물 위에 2살이 되지 않은 아기를 눕히면, 성신께서 아기에게 세례를 내려주는 거다. 내 의문에 답하듯, 소피아의 말버릇이 귀에 울렸다.
‘왜냐하면, 소피는 신의 아기니까!’
아, 하긴. 신의 아이가 성신의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나는 납득하며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렸다. 자꾸 딴생각이 드는 걸 보니 오늘도 건질 건 없을 것 같다.
***
그렇게 신성력과 마력만 회복하면서 성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나는 꽁꽁 둘러싼 속싸개 안에서 빼꼼 얼굴을 빼내 정경을 확인했다.
눈 결정 문양이 여기저기 새겨진 새하얀 신전은 햇빛을 받아 성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테헤라 정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건물을 보면 한눈에 신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 외관이었다. 수도의 대신전은 교황청과 붙어 있어서 규모가 거대했고, 그래서 더욱 웅장한 느낌이 더해졌다.
“앗, 이런.”
날 안고 있던 유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봤다.
“아기님이 떨고 계세요. 추운가 봐요.”
“춥다고?”
아빠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쨍한 햇살에 노출된 내 분홍색 머리칼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외출한다고 아빠가 목에 걸어준 값비싼 성물이 몸을 보호해주었다. 옷도 약간 과할 정도로 둘둘 싸매 놓았는데 더운 것도 아니고 춥다니 이상한 것 같다.
사실 춥지는 않았는데, 다른 게 문제였다.
아빠와 유모, 그리고 우리를 위시한 새하얀 정복을 입은 성기사들이 양옆과 뒤에 포진해 있었다. 그 화려한 인선에, 신전 입구에서부터 신도와 사제들의 시선이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로 몰렸다.
시선은, 무섭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고 나면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게 신전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 장소엔 좋은 기억이 없었다. 잘게 몸을 떨던 나는, 문득 혀 차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아빠가 별세계 생물을 보는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탈스럽군.”
그의 시선이 날 공처럼 둘둘 에워싼 옷과 성물을 향했다. 이렇게 완전 무장을 시켜줬는데 추워하다니 뭘 더 해줘야 하냐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난 지금 아기인데.
‘확실히 다르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병을 앓고 계셨다. 맞춤 제작했을 옷들은 나날이 품이 커졌고 팔랑거리는 팔다리엔 힘이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애써 웃음 짓던 인상이 어렴풋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원래 아빠는 강한 분이셨다. 15살에 스승을 꺾은 이후 누구와의 대련에서도 백전백승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약해본 적 없는 아빠는 약한 존재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나중에 내가 아빠 딸이라고 말한대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란 걱정마저 들었다. 분명 그 혈통을 물려받았을 텐데 왜 난…….
“우?”
갑작스러운 부유감에 내 생각이 끊겼다. 고개를 들자 나를 단단히 안아 든 아빠가 나지막이 말했다.
“서두르지, 시간 없으니까.”
“예!”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힘있게 대답했다.
얼떨떨하게 아빠에게 안겨 눈을 깜빡이던 나는, 한 박자 늦게 떨림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늘한 공포가 사라진 곳에는 단단한 품이 남았다.
‘따뜻해…….’
난 고개를 폭 파묻었다. 이 품에 안긴 동안은 무서울 게 없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눈앞이 보였다. 신전의 신도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 일을 하다가도, 우리가 지나가면 한 번씩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아빠를 발견하고 경외를 띠며 고개를 숙이려던 그들은, 그의 품에 안긴 나를 발견할 때마다 당황스럽게 흐트러졌다. 개중에는 인사를 하는 것도 잊고 멍하니 나를 구경하다 뒤늦게 사과하며 후다닥 물러나는 사람도 있었다.
놀란 얼굴의 신도들을 보는 건 부끄러웠지만 재미있었다.
홍해처럼 갈라지는 사람들 사이로 걷다 보니 곧 목적지에 다다랐다. 대신전의 가장 높은 층, 가장 안쪽 방. 멀리서부터 우리를 발견한 사제가 문을 활짝 열어줘서 막힘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눈이 아플 정도로 새하얀 방 가운데 앉아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이 보였다.
“어서 오게.”
그는 희끗희끗한 백발을 늘어뜨린 온화한 얼굴의 노신사였다.
테헤라 정교 특유의 발목까지 오는 새하얀 정복. 성신의 상징인 새하얀 눈송이가 달린 목장. 저렇게 화려한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노신사는 신전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전전대 교황, 셀라디온 탄닌.’
이 시대에서는 현 교황이겠다. 탄닌님에 대해선 타임리프를 하기 전에 역사서를 달달 외워서 알고 있을 뿐,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90세가 넘으셨으니, 천수를 누리고 가신 셈이었다.
이상하게도 고위 사제들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이 사랑하는 이를 곁으로 거둬가시는 것이란 낭설이 있을 정도다. 탄닌님은 드물게도 그런 징크스를 피해서 장수하신 편이었다.
아빠와 유모, 성기사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를 숙였다. 신전의 수장에게 보내는 깍듯한 인사 후에, 아빠는 특유의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주 뵙는군요.”
“그래서 불만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있지 않았나. 신전에서 후견인 허가를 내려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 엄청 하시던데.
아빠 반응이 재밌는 건지, 교황은 껄껄 웃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야에 아빠 품에서 고개를 내민 내가 걸렸다.
“신의 아이님.”
교황이 내게로 손을 뻗자, 아빠는 살짝 주저하다가 나를 넘겨주었다. 교황의 품은 의외로 편안했다. 아기 다루는 데 익숙한 느낌이랄까.
“이제야 만나 뵙는군요.”
아빠는 교황에게 넘겨진 나를 빤히 내려보다가, 내가 몸을 늘어뜨리자 반대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렇게 만나봤으니 이제 승인해주시는 겁니다.”
아빠의 말에 난 귀를 쫑긋하고 교황을 올려봤다.
“누가 들으면 내가 아기를 만나고 싶어서 후견인 허가를 안 내려주고 버틴 줄 알겠구나.”
“맞잖습니까.”
“어허, 내가 명색이 교황인데 그리 속이 좁은 줄 아느냐.”
“예.”
“헛, 참.”
교황이 다시 즐겁게 웃었다. 두 분은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그 대화를 통해 나는 교황이 아빠를 내 후견인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내건 조건이, 나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랫동안 허락을 안 내려준 것치고는 꽤 소박한 조건이었다. 날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다니, 실컷 보여드려야지.
“꺄아.”
난 교황을 보며 꺄륵거리며 아기답게 웃어주었다. 무심코 시선을 내린 교황은, 내 얼굴을 보더니 흠칫 굳었다.
“이 아이, 신의 아이가 아닌 것 같다.”
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걸 어, 어떻게…….’
역시 교황쯤 되면 무언가 보이는 걸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은 시선 속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요정이다.”
“…….”
“확실해.”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난 머쓱해져서 그냥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라고, 우리 작은고모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