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4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7)화(140/207)
저택 내부의 상태는 탈출하던 시점보다 훨씬 참혹했다. 후작이 나를 업은 채 불을 피해 탈출했던 루트조차 그새 무너진 장식으로 막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딛는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가정의 평화를 비는 기도문, 성신을 상징하는 눈송이 모양 장식물이 화염을 두르고 거세게 날아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양팔로 머리를 감쌌다.
“읏……!”
쨍그랑! 금속판이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몸을 버티고 선 발끝이 밀렸다. 고막과 머리에 쩡쩡거리는 울림이 잔향처럼 남았다.
귀를 막고 한쪽 눈을 굴리자 허공에 고정된 파편들이 보였다. 불에 그슬린 날카로운 조각들은 간발의 차로 내 몸에 닿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핑핑 돌고 있었다.
“바, 방패.”
무심코 손바닥을 쫙 펼치자, 내 의지에 감응한 마력이 머리 위에 핀처럼 박힌 파편들을 떨쳐냈다. 나는 그 빈자리를 마력으로 채웠다. 마력이 실체화되자 머리 위를 중심으로 작은 보호벽이 생겨났다.
벽이 화기를 막아주어 호흡이 수월해졌다. 나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무너져가는 내부를 살폈다. 겉이 죄 타버려 뼈대가 드러난 계단, 불타는 샹들리에와 가구들, 불 속에 달구어져 숫제 고문 도구가 되어버린 금속 장식들.
밟아서 안전한 루트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흐읍.”
하지만 나는 마법사의 딸. 그것도 현존하는 마법사 중 가장 뛰어난 마탑주의 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주신 마법서와 뛰어난 마력이 내 안에 있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프리징.”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상급 마법 하나를 허공에 그려냈다.
마탑의 마법은 대체로 무해했다. 그래서 엄마는 원소 마법을 만들었다.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녹스산 위에서 불을 지피고 온갖 화학 물질을 부어가며 원하는 마석을 발굴할 때까지 문자 그대로 삽질을 하셨다. 이것이 그렇게 얻어낸…….
“눈꽃.”
파지직!
완성된 마법진이 번쩍 빛나자 바닥이 얼어붙었다. 나는 마법이 화기를 걷어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쿵!
화기 속에서 마법으로 피워낸 눈꽃은 아주 작았고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이미 마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라 이 이상을 사용했다간 이델리를 만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이다. 덕분에 최소한의 마력만 사용하고 있었지만, 발끝이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아, 설마.’
추정 나이 만 6개월의 시절, 오로지 마력을 이용해 미숙한 몸을 지탱하여 길고 긴 비밀통로를 아장아장 걸어갔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단련된 건가?
‘그때는 직립보행도 못 했으니까……. 역시 어른의 삶이 쉬워.’
얼음 마법은 나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갔다. 열의 차이를 이용해 위험한 장애물을 파괴하고 화기를 식혔다. 눈꽃의 보호 위에서 나는 무너져가는 디딤바닥을 박찼다.
파직, 파직!
사특한 마력이 빛나는 곳마다 새하얀 눈꽃이 피어난다.
대륙이 섬기는 성신 테헤라는 빛과 눈의 신. 신전이 악으로 규정한 마녀의 술법이 성신의 상징을 피워내는 모습은 모순적으로 보였다. 마치 마녀 이델리가 대신관 게릴의 딸이라는 주장처럼.
눈꽃이 녹기 전에 발을 옮겼더니 자연히 속도가 빨라졌다. 멀게 느껴지던 마력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허물어져 가는 천장 아래, 불타는 바닥 가운데에 그 힘의 근원이 서 있었다.
마침내 나타난 인영에 나는 덜컥 멈춰 섰다.
“……!”
모순. 할스테리어에 와서 맞닥뜨린 모든 일이 그러했지만, 지금만큼 나를 겁먹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엄마?”
푸석푸석한 분홍색 머리가 스르르 고개를 돌린다. 빛바랜 눈동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매주 불의 날에 데리러 갈게.’
화염 속에 휩싸인 엄마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죽은 엄마의 형상이 버석한 입술을 열었다.
“……왜 돌아왔지.”
메마른 손이 스르르 들어 올려진다. 그녀에게 복종하는 불꽃의 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눈을 의심하게 될 만큼 강력한 화력. 양옆은 불과 날카로운 잔해들로 막혀 있다. 나의 마력이 파도처럼 밀려 나와 내 앞에 벽을 세웠다.
쿵!
마력의 벽에 부딪혀 두 갈래로 갈라진 불길이 내 옷깃을 스쳐 가며 팔과 어깨에 화상을 남긴다. 피부가 짓무르는 고통보다 이 생생함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이것이 꿈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 불타는 공작저가 내가 떨어진 지옥이 된 듯했다.
“나가라, 이브엔나.”
환상이어야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걸었던 저주처럼, 단지 내가 두려워하는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했다. 이 시대의 엄마는 나를 만나지 못하고 영원히 행복할 테니까. 저 모습은 머릿속 상상으로만 존재하다가 내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이름 정도를 아는 게 뭐가 문제지.”
“나는 이곳에 와서 한 번도 본명을 쓴 적이 없어.”
후작 부인이 저 모습을 봤다는 건, 그녀가 환상이 아니거나 최소 변신술을 쓰고 있다는 거다.
누가 감히 돌아가신 황후의 마지막 모습을 흉내 내는가.
“넌 누구야.”
“가!”
화르륵! 그녀의 양옆으로 화염이 맺힌다.
화르륵, 화르륵! 한두 개가 아니다. 위협적인 화구가 한 번에 다양한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막을 수 없어.’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사각을 찾았다.
‘위가 비었어.’
마력을 계단처럼 밟고 위로 핑그르르 날아올랐다. 남은 마력을 활용하느라 못처럼 위태로운 층계가 되어버렸으나, 오랜 연습으로 단련된 나의 균형 감각은 가뿐히 나를 지탱했다.
하지만 한 박자 늦게, 산발적으로 날아오는 불꽃에 가려졌던 화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에서 위로 휘어지는 불의 구.
“헉……!”
나는 재빨리 몸을 뒤로 돌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새까만 지옥 불이 나를 덮쳤다.
***
저택을 빼곡히 덮은 검은 연기에 한 치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델리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 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는 걸.
‘이걸로…….’
바닥을 버티고 선 다리가 휘청였다.
그때, 연기 사이에서 검은 인영이 훅하고 가까워졌다.
“이델리!”
쿵! 연기를 헤치고 나타난 이브엔나가 이델리를 덮쳤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이델리를 붙잡고 외쳤다.
“왜 공격을 멈췄지?”
허공에서 화구를 맞닥뜨렸을 때, 이브엔나는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물렸지만 공격 마법이 더 빨랐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어.’
이브엔나의 몸에 닿기 직전, 화구가 사그라들었다.
시전자가 마력을 회수한 것이다.
이미 발동한 공격 마법을 회수하면, 그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에게도 반동이 있을 텐데. 그런 것까지 감수해가면서.
“내가 쓰러졌을 때도 죽이지 않았어. 왜 그랬지?”
“나는…….”
그때, 이델리의 형상이 흔들렸다.
린제나 그레인저의 모습이었다가, 본인의 모습이었다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모습을 바꾸던 이델리는 결국 가장 처음 만났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기저기 흉이 생긴 초록색 피부에 더러운 죄수복, 부러질 듯이 메마른 모습의 작은 여자로.
“게릴을 죽이는 것은 내 오랜 원이었다.”
“당신…….”
“그 원을 이루도록 도와준 은인을 위해서는 뭐든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브엔나의 손등을 수포로 가득한 녹색 손이 덮었다.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
“아…….”
“이 꼴이 된 뒤 너만큼 길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브엔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렇게 차분한 투로 말하는 이델리는 처음 봤다.
그녀는 늘 괴로운 소음 속에서 말하는 사람처럼 악을 쓰고, 이상한 단어를 썼는데.
이브엔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델리의 모습은 나아졌다기보단, 죽음의 문턱에 닿은 사람들이 반짝 정신을 차리는 마지막 순간처럼 보였다.
“그간 네가 많은 걸 물었는데, 제대로 된 답을 주었던 적이 없었지.”
“이델리, 억지로 말 안 해도 돼요.”
“아니, 들려주고 싶다.”
강경한 목소리에 이브엔나는 괴롭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델리는 가만히 말을 이었다.
“나는 삼십여 년 전 나샤에서 태어났다.”
모녀가 살기에 나샤는 거친 땅이었다.
매일 밤 사람들을 잡아가는 마수, 공포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끝없는 기근과 혹독한 추위. 사람의 목숨이 파리처럼 가벼운 땅.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희망과 악착같은 노력은 모녀를 끝내 국경 앞까지 오게 했다.
하지만 국경 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신성한 땅에 병자를 들일 수는 없다.’
몇 곡절의 사지를 넘어 도착한 땅이었다. 살뜰한 보호를 받은 이델리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마수의 독에 당해 죽어가고 있었다.
검사관에게 울며불며 사정했으나 괜히 매만 얻어맞았다. 어머니는 이델리를 말리며 그녀에게 물건 하나를 쥐여주었다.
‘이델리, 이 편지는 네 아버지가 주신 거다.’
지옥 같은 나샤를 횡단하는 동안에도 내내 소중히 지니고 다녔던 편지.
거기에 담긴 것은 어머니를 향한 애정 가득한 연시였다.
마지막 문단에 적힌 이름은 게릴 젠트스.
‘국경 안에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해, 우리가 왔다는 걸 알면 저버리시지 않을 거야.’
이델리는 수비대에 끌려가다시피 하며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꼭 아버지와 함께 돌아올게요!’
흰 사막에 덩그러니 남겨진 어머니는 작게만 보였다.
이곳까지 오느라 가진 재산을 모두 써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해져버린 옷과 노쇠하고 병든 몸뿐.
국경 밖의 밤은 춥고 위험하다. 언제 모래바람과 마수가 사람을 물어갈지 몰랐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국경 안으로 들어가는 딸을 향해 끝까지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게 이델리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