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42)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39)화(142/207)
내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것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됐어요.”
등이 기묘하리만치 축축했다. 그러나 불안감에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당신의 모습이… 변한 것도 그때부터였나요?”
“그래,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발끝부터 썩어 들어가는 주박.”
숨이 막혔다. 이델리에게서 후회나 슬픔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더더욱. 그녀는 오히려 열에 들뜬 목소리로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의 껍질을 뒤집어쓸 수 있는 수혜기도 했지.”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의… 껍질?”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가진 존재. …어느 순간부터는, 분홍색이었지만.”
‘아니야.’
그건 단순히 분홍 머리가 된 게 아니라 린제나 그레인저가 된 것이었다. 나는 떠오르는 추측을 억누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악마의 껍질을 뒤집어썼는데, 엄마의 모습이 되었다.
‘마치 엄마가 악마인 것처럼……. 설마 그 악마가 이걸 노리고 사칭한 건가? 하지만, 뭘 위해서?’
“아아악!”
잔해를 뛰어넘던 나는 날카로운 고통에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에 달구어진 송곳이 신발을 뚫고 들어왔다. 발판이 되어줘야 할 빙결 마법이 발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낭패감이 엄습했다.
‘이런, 멍청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델리의 이야기에 동요하느라 마력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실책이었다.
이델리는 무척 가벼웠지만 나보다 키가 컸다. 그런데도 그녀를 업고 뛰어올 수 있었던 건, 마력의 보조가 있었던 덕분이다.
애써 걸음을 옮겼지만, 순수한 근력만으로 업고 가려니 다친 발이 후들후들 떨리고 몸이 굼떠졌다. 절뚝거리는 나를 보고 이델리가 말했다.
“네 힘도 다했구나.”
“아니에요.”
“나를 버리고 가.”
“…그럴 순 없어요.”
“나를 살려준다고 더 이야기를 털어놓진 않을 거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이델리를 업은 팔에 힘을 주었다.
“괜찮아요.”
이델리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지만, 그게 그녀를 살릴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당신이 이렇게 된 건 저 때문이잖아요.”
원래의 미래에서 이델리는 후작 부부를 죽였다. 이델리의 선택이 달라진 건, 나의 간섭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델리가 죽는다면 그 또한 내 탓이었다.
“너에게는 이미 은혜를 입었다. 누명을 벗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만나 아주 오랜만에 외롭지 않았어.”
고마움이 담긴 말에 되레 죄책감이 느껴졌다.
누명을 벗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할 당시에 나는 대사제와 후작가의 일에 정신이 팔려 이델리를 후순위에 두었었다.
이델리는 늘 감옥에 갇혀 있었고 목숨이 위태롭지도 않으니까. 다른 이들을 구한 이후에 도와도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 한참 늦어버린 것을 모르고.
“읏……!”
그때 한 차례 더 진동이 일었다. 두 번째 붕괴의 전조.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다리가 뜻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를, 내려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나는 스스로를 달래듯 말했다.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층계가 거의 무너져 있었다. 나는 남은 마력을 다 짜내서 쌓인 잔해 더미 위를 간신히 기어올랐다.
바닥을 확인하고 아래로 뛰어내리는 순간.
쿠구구구구구구구.
머리 위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한 번씩 들리던 천장이 어그러지는 소리. 그건 붕괴의 전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조에서 끝나지 않았다.
“피해!”
이델리가 외쳤다. 나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몸이 허공에 있어.’
높이를 봤을 때, 천장이 무너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초.
그 짧은 시간 내에 이 건물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다면, 숨을 곳은…….’
나는 내 머리 위에서부터 금이 갈라져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바라봤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력.
마력 고갈로 쓰러지며 경험치가 쌓일 때마다 나는 그 최소치를 유지하는 능력이 생겼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내야 해!’
마력 코어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이 머리 위에 검은 진을 만들었다. 모든 걸 뽑아낸 게 아니라 이걸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믿고 발을 내디뎠다.
“윽……!”
다친 발바닥엔 감각이 없고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뻣뻣한 발목을 억지로 끌어당겨 바닥을 박찼다.
와지끈!
위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보호벽을 이룬 마력이 지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캔디 양!”
상황에 맞지 않는 깜찍한 호칭과 함께, 몸이 휙 끌어당겨졌다. 푹신한 감촉이 등과 어깨에 맞물렸다.
‘잘못 들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 호칭과 목소리는 익숙했지만, 여기서 들려선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을 배신하고, 눈을 떴을 때 보인 얼굴은 니르겐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구하러 왔습니다, 나의 피앙세.”
“니르가 대체 여기 왜 있어요?”
쿠우웅!
니르겐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저택이 불타고 있었다. 그는 급한 대로 나를 안아 위로 올렸다.
…위로 올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올라탄 것을 확인했다.
“헉.”
검은… 새?
그건 몸길이가 2미터는 넘는 괴물 새였다. 나는 그제야 내 등을 덮고 있던 푹신한 감촉이 그 새의 날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델리까지 태운 후, 니르겐은 새의 고삐를 잡았다.
잠깐만, 고삐가 있다고?
“이, 이게 뭐예요?”
“바스타드란 녀석입니다. 흔히 잡종이라고 부르는, 마수와의 혼성체죠.”
“마, 마수를, 탄다고요?”
“정보 길드장에겐 이 정돈 기본입니다. 꽉 잡으십시오.”
“헉!”
니르겐의 경고와 함께, 괴물 새가 날아올랐다.
쿠구구구구!
무너지는 지붕 틈새로 몸을 비틀어, 희뿌연 연기 속을 빠져나간다. 공작저를 불태우고 씹어 삼키는 화마는 도망치는 먹잇감이 아쉽다는 듯 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치솟는 불길은 날아오르는 새를 따라잡지 못했다.
나는 불타는 공작저를 내려다보며 숨을 돌리다가, 흠칫 놀라 팔을 뻗었다. 내 손이 이델리의 로브를 잡아챘다.
“괘, 괜찮아요?!”
새의 등에서 떨어질 뻔한 이델리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걱정 마세요. 지금 올려드릴 테니까….”
“놓아라.”
이델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뒤늦게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녀의 피부가 다시 맑은 상앗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걸.
이델리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피부가 녹색으로 썩어 들어가는 건 악마의 명령을 거부할 때다. 그녀는 이미 후작 부부를 죽이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그런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건…….
“그가 새로운 명령을 내렸나요?”
불안감이 느껴졌다. 쉼 없이 자괴감에 시달리던 후작 부인의 모습이 이델리의 위로 겹쳐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가, 당신에게 죽으라고 하던가요?”
이델리는 대답 대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휘날리는 금발 사이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함부로 진창에 처박아도 되는, 시궁쥐만치 미천한 출신이라지만 은원은 안다.”
노을 녘마저 사라진 밤하늘 아래, 불타는 공작저만이 태양처럼 홀로 밝았다. 그 불구덩이를 등진 이델리의 얼굴은 해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로브 반대편을 쥐며 입을 열었다.
“원수를 갚았으니, 이젠 은혜도 갚아야지.”
“안 돼, 안 돼요.”
“비록 남은 것은 보잘것없는 목숨뿐이지만.”
이델리의 손이 내가 붙잡은 로브를 죽 찢었다.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자수정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 만면에 그득히 들어찬 자색의 환희가.
나는 악을 질렀으나 작정하고 불 속에 몸을 던지는 이델리를 잡을 힘은 없었다. 아래로 딸려 가려는 나를, 니르겐이 끌어안아 저지했다.
한번 놓쳤던 먹잇감을 환영하듯 화마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졌다. 그 속으로 떨어지며 이델리가 커다랗게 눈을 떴다.
“헤일로를 위하여!”
선전포고와도 같은 유언.
그에 공명하듯 대저택에 최후의 불길이 치솟았다.
비명 같은 폭발음과 함께, 리하센 공작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