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화(15/207)
‘……눈 감으니까 졸려.’
마침 낮잠 시간이었다. 어차피 교황의 품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그대로 잠이 들려는 찰나, 어디선가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찜찜한 기분에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교황의 팔 너머로 날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거기에 서 있는 건 작은 소년이었다. 어린이라기엔 너무 작고, 아기라기엔 너무 바닥을 딛고 선 양발이 굳건했다. 결 좋은 까만 머리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꽤 섬세하고 모양이 잘 잡혀 있었지만 예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안에 들어찬 표정이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것처럼 근엄했기 때문이다.
‘흑발에 붉은 눈…….’
모두 신전에서는 드문 특성이었다. 마녀들은 머리가 검고 마수들은 눈이 붉다고들 하니까. 특히 미래에선 흑발을 타고난 사람들은 모조리 머리칼을 염색해서 본연의 머리 색을 숨기고 다녔다.
‘그런데 얘는 누구지.’
이 시대에 저 나이대면 나와 나이 차이도 크지 않을 거다. 게다가 저렇게 튀는 외양인데, 전혀 모르는 게 이상했다. 하급 사제의 자식인가? 그렇게 치기에는 조그만 몸에 걸친 흰 셔츠와 멜빵 바지가 꽤 고급품으로 보이는데…….
난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다가도, 똑바로 나를 직시하는 시선에 흠칫 놀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날 너무 뚫어지게 보고 있어서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눈을 마주치게 됐다.
‘왜, 왜 저렇게 보는 거야.’
활잡이 앞의 과녁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진짜 왜 저러는 걸까? 난 안절부절못하며 어른들을 돌아봤다. 눈썰미가 빠르고 감각이 예민한 성기사들, 아빠는 분명 아이의 존재를 눈치챘을 텐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에게 이 아이가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인 듯했다.
“……우으.”
그런데 왜 나한테만 저러는 건데?
이쯤 되자 오기가 솟았다. 내가 아무리 사람들과 시선 맞추길 무서워한대도 외간 꼬맹이에게 질 순 없지. 난 용기를 그러모아 눈을 부릅떠서 녀석을 마주 노려봐줬다.
“……!”
그러자 당황한 듯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난 미묘한 승리감을 느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아, 요한.”
그때 뒤늦게 아이를 발견한 교황이 뒤를 돌아보느라 그의 품에 안긴 내 몸도 위로 들렸다. 덕분에 첨예하게 대립하던 우리의 눈싸움도 끝이 났다.
“성녀님이 궁금한가 보구나. 신전엔 또래가 없으니까.”
난 교황에게 안긴 채 눈을 깜빡였다.
쟤랑 내가 또래라고?
“다행히 많이 나아졌나 보군요.”
“그래, 하나뿐인 손주를 잃을까 어찌나 노심초사했는지.”
‘교황의 손주?’
전대 교황에게 손주가 있었단 건 몰랐다. 핏줄은 남기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어디가 아팠던 건가.
“세례는 받았습니까?”
“상태가 계속 안 좋아서 미뤘네. 오늘은 받아야지. 다음 달이면 두 살이니까.”
‘……두 살?’
잠깐, 저 애가 두 살이라고? 그 말은 지금, 내가 두 살짜리와 눈싸움했다는 거야?
‘이브엔나, 성인식까지 치러놓고 제법 한심해…….’
난 잠깐 얼어붙었다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서 그 조그만 두 살배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른답게 인자하고 따스한 미소를 보내줬다.
“에헤헤헤.”
“…….”
나를 주시하던 붉은 눈이 찌푸려졌다.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녀석은 심통이 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 집요한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난 마음속으로 ‘두 살배기’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의연히 흘려넘겼다.
***
‘낮잠 시간인데 저 꼬맹이가 신경 쓰여서 잠도 못 자겠다’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일어나자 그새 시간이 꽤 흘렀던 건지, 교황이 날 유모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후우음…….”
유모의 품에 안긴 난 하품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아빠와 성기사들은 물론, 교황까지 목장을 들고 어딘가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는 걸까 했는데, 유모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님, 이제부터 함께 세례를 보러 갈 거예요.”
난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세례라니, 갑자기 무슨?
어른들은 말없이 문을 나서서 복도를 가로지르더니 대신전의 중앙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층 홀을 거쳐 지하로 내려갈 때쯤 나는 이 세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교황의 품에 안긴 요한이 새하얀 의식용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다음 달에 두 살이 된다고 했으니, 영영 성흔을 못 얻게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와아…….”
지하에 도착하자, 유모가 조용히 감탄했다. 나도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의식의 장소가 되는 대신전의 지하는 유독 새하얬다. 높은 천장이나 물결무늬 기둥들이 모두 신성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사제들의 복식도 모조리 하얘서, 교황의 품에 파묻힌 요한의 검은 머리칼이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영아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대신전은 대륙에 딱 다섯 군데뿐이었다. 늘 대기열이 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오늘처럼 지하를 개방하지 않는 날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건 교황의 손자쯤이나 가능할 것이다.
‘혈통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요한.’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아치형 문을 통과하자 중앙 침례실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보이는 정면에는 테헤라 정교를 상징하는 성신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섬세한 세공과 압도적인 규모 덕분에, 정말로 거대한 테헤라 신이 눈으로 만든 성검을 들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우리를 맞이해주는 것 같았다. 난 무심결에 시선을 피하며 유모의 품에 파고들었다.
“저게 성물 ‘노바’란다.”
그때 교황이 말했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바닥 한가운데에 마치 거대한 욕탕처럼 움푹 파진 공간이 보였다. 교황은 요한을 내려놓고 목장으로 그 공간을 쿵 찍었다.
‘저거 좋았지…….’
눈송이 모양 성물이 달린 새하얀 목장은 신성력을 부풀려주고 잘 운용할 수 있게 도와줘서 내가 교황일 때도 괜찮게 썼다. 교황이 신성을 불어넣자, 목장이 곧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느낀 유모가 몇 발짝 다가가면서, 움푹 파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우와…….’
움푹 꺼진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아주 거대한 성물이었다.
세례를 내리는 성물, ‘노바’는 대신전 지하에 바위처럼 박혀 있었다.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성물.
‘지름이 12m라고 했나.’
나는 신기한 눈으로 노바를 바라봤다. 무채색의 돌은 넘친 신성으로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교황은 목장을 통해 신성을 불어넣다가, 아빠를 돌아봤다. 그러자 아빠가 다가와 목장을 건네받고 잠깐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세례를 내릴 때 신성력을 불어넣는 것은, 축성의 의미가 있었다. 노바에 아주 호화로운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고 나자, 교황이 요한의 등을 밀었다.
“자, 들어가거라.”
“…….”
“겁낼 것 없어. 성신이 널 축복하실 거다.”
교황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요한이 갑자기 내 쪽을 돌아봤다.
“……!”
난 반사적으로 눈을 피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돌아보자, 요한은 내게서 등을 돌려 노바 위로 내려가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의복을 입은 아이의 다리로 곧 새하얀 빛이 물처럼 차오르더니, 곧 새까만 정수리 끝까지 삼키어졌다.
정말 기이한 모습이었다.
요한의 머리 색이 검어서일까? 아이에게 성흔이 발현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불안한 느낌에 현란하게 반짝이는 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빛은 점점 작게 응축되더니, 일순 황금빛의 기하학무늬를 띠었다.
‘저건…….’
열 개의 빗금이 사선으로 엉켜 있는 모양이었다. 그 빛의 문양은 점차 축소되다가 아이의 이마 위로 마치 스미듯 사라졌다.
“오오.”
사람들은 경탄이 어린 얼굴로 요한을 바라봤다. 교황은 빛이 사그라든 성물 위로 성큼성큼 걸어가, 주머니에서 흰 천 뭉치를 꺼냈다. 흰 천을 풀자 그 안에서 마른 꽃이 나왔다. 교황은 꽃에 손을 대지 않고, 흰 천을 요한에게 내밀었다. 요한이 꽃을 손에 쥐자, 그것이 하얗게 빛나더니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해졌다.
‘아우리오.’
신전의 근처에만 자라는 꽃, 아우리오는 신성력을 흡수하여 생명력을 얻기에 사제를 구분하는 척도로 쓰였다. 교황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요한을 번쩍 안아 들었다.
“사제가 된 것을 축하한다, 요한.”
교황이 싱글벙글 웃으며 요한을 데리고 나오자, 아빠와 다른 사제들도 한마디씩 축하를 거들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요한은 그토록 신비한 의식을 치르고도 변함없이 불퉁한 얼굴이었다. 몹시 신난 교황이 그를 대신하여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무덤덤한 요한을 잠깐 바라보다가, 성물로 시선을 옮겼다.
가득 찬 신성력을 버티기 힘든 듯 웅웅거리던 성물은 무채색의 돌로 돌아와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
깊은 밤, 난 언제나처럼 비밀통로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 앞에 섰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벽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다가, 신성력을 모아서 황제의 문양을 그렸다. 그러자 평소와 같이 벽이 스르르 밀려나 통로 입구가 드러났다.
문득 아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문양은 누구에게도 알려주어선 안 돼.’
내가 이 통로에 발을 들인 건 매우 어릴 때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이니까, 고작 서너 살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일 같았다. 신성력을 모아서 특정한 문양을 만들면 문이 열린다는 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황제와 그 후계자들뿐이니까, 현시대에는 할아버지와 나만 아는 비밀인 거다.
난 마력으로 몸을 두둥실 떠올려 입구에 들어서면서 고민했다.
‘왜 신성력으로 문양을 만들면 입구가 열리는 걸까?’
아니, 좀 더 근본적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왜 신성력으로 문양을 만드는 걸까? 그런 걸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력과 달리 신성력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강하게 응축되었을 때야, 마치 빛처럼 반짝거리는 흔적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신성으로 문양을 만들 때는 신성력을 쏟아붓듯 사용해야 했다.
난 빛에 감싸여 있던 요한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례를 받는 건 처음 봐서, 그 장면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생각에 잠긴 채 평소처럼 엄마의 마법서를 촤라락 넘기던 내 손이 어느 부근에서 우뚝 멈췄다.
몇 번이고 읽어내린 책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북해에 사는 대왕오징어의 먹물에는 마력을 응집시키는 성질이 있다.]순간 내 어깨가 움찔했다.
“아?”
잠깐, 이건 혹시…….
알아낸 건가? 마법 잉크인 세피아 없이 마법을 쓸 방법.
‘그리고 어쩌면, 소피아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내려준 원리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