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0)화(153/207)
툭, 투둑.
낮부터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하늘은, 여태 부슬비를 내리고 있었다. 눈의 여신을 숭배하는 테헤라 정교의 상징은 눈 결정. 애석하게도 몇 도의 기온 차이로 신의 상징이 되지 못한 빗방울이었으나, 교황의 피부에 맺힐 때는 성물 못지않게 신성해 보였다.
꿀꺽.
목울대가 작게 울렸다. 제국 정예군이 할스테리어에 있다면 혹시 아빠도 계신 게 아닐까 추측하긴 했지만, 정말로 맞닥뜨리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몇 달 만에 아빠를 만난 내 기분을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지…….
잠시간 얼이 나간 채 아빠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이시네. 안색도 나쁘지 않아 보이시고.’
아빠가 전쟁터에 나간 이후로 다시 만난 게 처음인지라 무심코 그런 것을 살피게 되었다. 그러다 내 시선이 서늘한 청회색 눈동자에 닿은 순간, 뒤늦게 놀라 고개를 숙였다.
‘타지에서 아빠를 만났다고 살갑게 인사할 때는, 아닌 것 같지…….’
나를 보는 아빠에 시선에는 늘 따뜻한 빛이 돌았다. 원래도 그러셨지만 특히 토벌을 나가기 직전에는 더 그랬다. 애틋하고 안쓰러운, 애정이 서려서 더 마음 아픈 눈빛.
엄마가 사라지고 난 후 아빠와 나의 사이는 전보다 약간 서먹해졌다. 아빠는 내 눈치를 보고 나는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도,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미래의 시간과 무엇이 다른지.
아빠는 황실을 떠나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러 나가면서 왜 내게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빠에게 어느 시대에서든 미안하고 안쓰러운 존재가 될 운명인가 보다. 성자의 딸로 태어나서 한 사람 몫도 못 하고 걱정만 끼치는, 못난 딸인데.
하지만 지금 나를 마주하는 아빠의 눈빛에는 애정도 안쓰러움도 없었다.
‘당연하지. 지금 나는 황실의 사랑받는 아기 성녀님이 아니라 신전에게 쫓기는 마녀니까.’
제국 최정예 기사들과 함께 나타난 아빠. 원래라면 국경 밖에 있으셔야 할 분이 할스테리어에 있는 건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할스테리어의 대사제가 사망했으니, 일단 나라를 지키는 성물을 유지할 사람이 필요했겠지. 아빠가 이곳에 온 이유는 죽은 대사제를 대신하여 할스테리어를 방어하는 것. 그리고…….
‘할스테리어를 위협하는 마녀를 제거하는 것.’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한다. 그건, 알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개구멍을 빠져나올 때 바닥에 쓸린 무릎이 따끔거린다. 낮 내내 달린 발바닥도 욱신욱신 아팠다.
호흡을 진정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고, 흐려진 하늘에선 비까지 내렸다. 사람들은 다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나를 욕하고. 이름 대신 마녀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고. 이렇게 약해진 몸으로, 성 에퀴테스에게서 도망치는 건 어차피 무리일 텐데.
또 나는, 이렇게 도망쳐도 몇 년 살지도 못할 건데.
얼마나 길게 살 거라고… 몇 달 만에 본 아빠한테서까지 달아나야 하나.
이미 나는 리벨리우스 삼촌의 칼날을 피해 시간선까지 넘어 도망 와 있는데.
“……너는.”
그때, 하얀 입김을 내뱉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청회색 눈동자가 어딘가 가늠하는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가늠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나의 아빠는 예리한 눈을 가졌고 나는 눈에 띄는 외양을 가졌다. 거리를 지나치면서 본 수배서의 몽타주도 질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는 대사제를 시해한 희대의 마녀를 마주친 교황 성하치고 행동이 시원시원하지 못했다.
정석대로라면 보자마자 때려눕히기부터 해야 하지 않나.
‘설마, 날 알아보신 건… 아니겠지?’
떠오른 추측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는 흘러내리던 널빤지를 급히 고쳐잡았다. 비를 먹어서 무거워진 널빤지가 내 정수리 위에 늘어졌다.
아빠는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살 떨리는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뜸 말했다.
“근방을 수색하다가, 소식이 끊겨서 와보았는데.”
“……네?”
“우리 기사들이 드문드문 묶여 있더군.”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네 작품이었나?”
“…….”
길거리에 기사들이 묶여 있다고?
문득 나를 쫓던 기사의 발소리가 끊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 소란을 피우면서 도망 다니는 동안 나를 쫓는 기사가 계속 한 명이었다는 사실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 난리를 쳤으면 소식을 들었든, 마을 사람들이 제보했든 기사들이 더 몰려올 만도 했는데.
‘누군가가 기사들을 포획하고 있는 걸까?’
왜? 설마 나를 도우려고 그럴 건 아닐 텐데.
나는 혼란스럽게 눈만 굴렸다. 내 침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빠는 거기에 대해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린제나 그레인저.”
아빠의 입에서 툭 던져진 엄마의 이름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반응과 상관없이 아빠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그 이름을 가진 마녀에 대해서, 알고 있나?”
“…….”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어떤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나가기 몇 달 전부터, 아빠는 더 이상 그 이름을 꺼내지도 내게서 무언가를 캐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엄마를 거의 잊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는 모두가 사랑하는 제국 최고의 기사고, 엄마와 만난 시간은 아주 짧고, 두 분 다 젊었으니까.
아예 잊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많이 흐려졌겠지. 매일 떠올리던 사람을 이제 한 달에 한 번, 한 계절에 한 번, 그렇게 점점 떠올리기 힘들게 되면. 그때쯤에는 내 존재도 함께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대사제를 죽였을지도 모를 마녀를 맞닥뜨리자마자 꺼내는 게 그 이름이리라곤.
이렇게 가까이 쥐고 있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저는…….”
나는 마주한 아빠의 얼굴을 보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사랑하는 딸이나 아주 가까운 친우 앞이 아니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단단한 얼굴이 살짝 무너져 있었다.
그리움, 그리고 옅은 고통스러움.
나는 아랫입술을 물다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요, 그런 이름은.”
“그래?”
아빠의 목소리가 낮게 내리깔렸다. 신이 지상에 내려주신 태양이자 대종교의 최고 통치자답게, 중압감을 주는 목소리다.
하지만 딸인 나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씁쓸함을 읽었다. 그게 내 마음을 따끔거리게 했다.
“그런 것치곤 닮은 것 같은데.”
그런데 그대로 침묵할 것 같던 아빠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자매라도 되는 것처럼.”
“…….”
자매가 아니라 모녀인데.
엄마와 내가 그렇게나 닮았구나. 조금 나이를 높이긴 했어도 이 얼굴은 내가 타임리프 하기 직전인 16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닮았나?
우리 엄마는 정말 아리따우신데, 닮아 보이나….
“그리고, 그 눈은…….”
그리고 이어지는 교황 성하의 말에 나는 흠칫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내가 엄마를 닮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저분의 딸을 더 닮았을 테다. 아무래도 본인이니까.
“뭐, 좋다. 네가 궁금해지는군.”
아빠가 담 위에서 훌쩍 내려왔다. 그러고는 내가 쓰고 있던 널빤지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순순히 투항한다면 무력을 행사하진 않겠다.”
“너그러운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성하께서 무력을 안 행사하셔도, 끌려가면 제 목이 날아가게 될 텐데요…….”
널빤지를 빼앗긴 나는 일어나서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혹시 내 정체를 눈치챌까 봐,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저는 대사제님을 살해하지 않았어요.”
“들은 바로는, 현행범이었다고 하던데.”
“죽이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을걸요. 그 직후 상황을 본 거지.”
“너는, 진짜 범인을 봤고?”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델리요.”
“이델리.”
내 말을 들은 아빠가 나지막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감옥을 빠져나간 뒤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죽었어요. 리하센 공작저에서.”
“네가 저지른 방화에 휩쓸렸던 공작가 말인가? 아니, 그 화재도 이델리가 일으켰다고 하겠군.”
“잘 뒤져보면 신원 불명의 유해가 하나 나올 거예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아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좋다, 이 이야기는 대신전에 가서 마저 하지.”
“…그러면 역시 목이 날아갈 텐데.”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대사제를 죽이진 않았어도, 마녀가 아니라곤 한마디도 안 했는데.
아빠는 나를 마녀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주었다. 그러고는 이런 약속도 했다.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어떤 범행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네 진술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대사제를 시해했다고 의심받는 마녀를, 성하께서 변호라도 해주시게요?”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세 발짝 물러나면, 아빠는 한 발짝 다가왔다. 큰 보폭으로 나를 따라오면서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마녀들에 대해서 듣고 싶은 내용도 있고 말이야.”
“…….”
설마…….
엄마를 추적하시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