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3)화(157/207)
“하지만 이브엔나님은 신이 보내 주신 분이시고.”
신탁이 내려온 날, 황실에 나타난 아기.
세례를 받은 기록도 없는데 성흔을 가지고, 기어 다니기도 전에 권능을 발휘하신 기적의 성녀. 그야말로 신이 보내주신 그분의 아이.
“성녀님의 강림과 괴한의 침입을 비교할 수는 없지.”
“물론 성녀님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괴한 역시 인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때 한 기사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마녀, 라든가.”
“……!”
평소였으면 흘려 넘겼을지도 몰랐지만, 귀한 황녀님이 위협을 받으신 후다. 성기사들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그들의 손이 일제히 검을 쥐었다.
이후 성기사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복도를 달려서 각자 동문과 서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궁을 휘돌아 황녀님의 방문 아래 지점까지 달렸다. 황녀님의 말대로 창문을 뛰어넘었다면 흩어진 기사 중 한 무리는 괴한을 만나게 될 동선이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괴한 대신 반대쪽으로 달려 나갔던 다른 기사 무리와 먼저 마주쳤다. 서로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얼굴에 경각심이 서렸다.
“전 황실 기사단을 불러 모아라. 황실에 마녀가 침입했을지도 모른다. 황족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즉시 움직여라!”
***
한설궁에 소동이 일어났을 때, 이브엔나…의 분신은 연무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산책에 동행한 것은 이브의 작은 호위 기사 아실과 히룬 웨니아라는 이름의 불청객이었다.
“성녀님, 오늘은 아비나에서 수입한 목걸이를 가지고 왔어요.”
따뜻한 갈색 눈동자에 군청색 머리칼을 지닌 이 사근사근한 영식은 몇 개월 전 이브엔나에게 세례를 받은 웨니아 백작가의 장남이었다.
약하게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했던 히룬은 12세가 되어 권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또래들 속에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남인데도 아무런 기대를 받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가문을 물려받는 것도 그의 동생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성녀님의 세례를 받고 나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히룬은 성흔을 얻은 이후로 완전히 이브엔나의 추종자가 되어 틈만 나면 황실에 들러 선물을 바쳐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선물 공세를 받는 이브엔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브엔나에게 세례를 받은 사제들이 그녀의 숭배자가 되는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히룬이 쏟는 애정은 유독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피아의 추종자.’
히룬을 볼 때마다 이브엔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칭호였다.
그녀가 아는 미래에, 히룬에게 세례를 내려준 건 소피아였다. 그 시대에서도 히룬은 자신을 구원한 성녀를 성신보다 숭배했다. 소피아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했다. 그리고 소피아가 싫어하는 것 중에는 이브엔나도 있었다.
‘신성 제국 통치자의 자리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이가 누구인지는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소피아의 추종자들은, 이브엔나에게 ‘폐하’라고 부르는 것을 꺼렸다. 히룬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가 퍼부은 멸시와 모욕을 기억했다.
“이, 이것도 성녀님의 취향이 아닌지요.”
그래서 이렇게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눈치를 살피는 이 시대의 히룬을 보아도, 적당히 받아주기가 힘들었다.
‘히룬의 잘못은 아닌데.’
히룬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신성 제국 통치자의 자리는, 당연히 마녀 혼혈보다는 신의 아이가 차지하는 것이 옳다.
이브엔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히룬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히룬을 밀어내는 게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차피 사라질 테니까, 더 이상 새로 관계를 만들지 말자. 히룬에게도 이게 나을 거야.’
이브엔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히룬에게 대답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와 이별한 후 애써 터득한 사람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성녀님!”
그때 아실이 이브엔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브엔나는 의아한 얼굴로 앞을 돌아보았다가 흠칫 굳었다.
“헉, 헉.”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남자가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황실 기사단의 제복과 비슷해 보였지만, 휘장의 위치며 색이 묘하게 달랐다. 군청색 앞머리가 흘러내린 이마는 땀범벅이었고 갈색 눈동자는 초점이 흐릿했다. 게다가, 목 부근에 불거진 핏줄이 심하게 두드러져 마치 온 피부가 녹빛으로 보였다.
녹색 피부.
녹색 피부가 마녀의 특징이라는 것은 상식처럼 퍼진 속설이었다. 신성연합국의 국민이라면 본능적으로 꺼릴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남자의 시선이 문득 이브엔나에게 고정되었다.
‘살기……!’
흐릿하던 눈동자가 이브엔나를 발견하는 순간 살의를 담고 예리하게 번뜩였다. 남자가 이브엔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물결 모양의 흉터가 난 두꺼운 손이 다가오는 것을 본 이브엔나는 무의식중에 숨을 삼켰다. 그녀의 호위 기사들이 재빨리 다가왔으나, 남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피하세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히룬이 맨몸으로 이브엔나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이브엔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그녀에게 손을 뻗는 남자의 모습도, 제 앞으로 몸을 던지는 소년의 모습도 느리게만 보였다. 남자와 소년이 한데 공존하는 눈앞의 광경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히룬 웨니아.’
다가오는 남자와 그녀의 앞을 막아선 소년은 같은 사람이었다.
성녀 소피아가 칭송받던 시대, 히룬은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저 중년 남자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미래의 히룬보다 서른 살쯤 더 많아 보였으나… 분명히 동일 인물이었다. 이브엔나는 장성한 히룬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 손에 난 특이한 흉터는 미래에서 히룬이 소피아를 지키려다 난 상처니 틀림없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
그 추론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주 우연히 같은 흉터가 있는, 닮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 했다. 이브엔나가 부정하는 순간.
“윽……!”
그녀의 생각을 반증하려는 듯, 다가오던 남자와 막아서던 히룬의 몸이 부딪혔다. 히룬과 맞부딪힌 부위부터 남자의 몸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
남자의 갈색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이브엔나를 향해 뻗어온 커다란 손도 허물어진다. 부서지는 남자의 몸이 빛을 받은 듯 반짝거렸다. 원자 단위로 분해된 육체가 꺼져가는 불씨처럼 발광하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이브엔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
“이, 이건…….”
나는 핀이 박힌 듯 그 자리에 굳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중년의 히룬이 살기 어린 눈으로 서 있던 곳을. 그리고 모래성처럼 무너졌던 곳을.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마탑에 있는 엄마의 서재에서, 내가 미래에서 가져온 엄마의 마법서가 과거의 것과 가까워지던 순간에.
‘타임 패러독스.’
내 손안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졌던, 엄마의 유품.
그 남자, 히룬 웨니아가 사라지던 모습은… 미래의 마법서가 사라지던 모습과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눈앞이 핑 돌았다.
“흐윽…….”
“성녀님!”
아실이 재빨리 나를 부축해 주어서, 바닥으로 볼썽사납게 쓰러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눈두덩이를 눌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상황이 정리가 안 되었다.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났다는 건, 저 남자가 정말로 미래에서 온 히룬이라는 뜻인가? 미래에서 히룬이 타임리프를 사용했다고?
그 남자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건가? 그대로…….’
“서, 성녀님. 이제 괜찮아요.”
“이브님? 진정하고 숨을 천천히 내쉬세요.”
나는 시종들과 아실의 목소리를 듣고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 그래. 진정해야 한다.
‘어차피 알고 있었잖아.’
<시간 여행자의 법칙 2. 시간 여행자가 과거의 자신과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사라진다.>
나는 그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시험했고, 확인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충격이 달랐다.
‘역시, 사람도 사라지는 거구나. 엄마의 마법서처럼. 흔적도 없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것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시끄럽게 뛰는 심장 소리가 정신을 어수선하게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