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5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5)화(159/207)
***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정원을 돌 때까지만 해도, 그날은 다른 날들과 똑같이 흘러갔다. 사흘 전 괴한의 침입으로 호위 기사가 더 붙고 유모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따뜻한 바람이 불고 서리새가 지저귀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마치 사흘 전에 목격했던 기현상이 까마득한 꿈이었던 것처럼.
첫 번째 이변은, 저녁 무렵 시녀들 사이에서 도는 묘한 소문이었다.
“그 애가 자기가 신의 아이라고 말했다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흠칫 놀라 멈춰 섰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멋모르는 아이가 하는 말 때문에 황성이 이렇게 난리가 난 거야?”
“아니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 아이가….”
시녀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을.”
사후경직이 일어나 뻣뻣하게 굳었던 서리새가, 아이가 일으킨 권능에 힘입어 생명을 되찾아 날갯짓하던 모습. 시녀의 입에서 현실감 있게 재현되는 이야기에 수군거리던 시녀들이 경탄을 내뱉었다.
반면,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기적의 성녀.’
잊고 있던 미래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몰아쳤다. 마지막 성자였던 아빠가 죽고, 실의에 빠져 있던 황성에 갑자기 나타나 온 대륙을 뒤흔들었던 신의 아이. 그녀가 처음 황궁에 나타났던 날.
그날이 기점이었다. 존재감 없는 꼭두각시 황제로 살아가던 내가, 성녀의 자리를 빼앗은 마녀가 되어 제국민의 증오를 사기 시작한 건.
“하지만 이상하지 않아? 분명 신탁에서 말한 신의 아이는 분명… 헉.”
이야기를 나누던 시녀들이 문득 나를 발견했다. 나는 흠칫 놀라 등을 돌려 달아났다.
“아기님!”
유모의 목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방을 향해 뛰었다.
‘소피아가, 왔다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소피아가 제국에 온 건 내가 9살 때였다. 똑똑히 기억한다. 제국력 894년, 소피아는 5살이었다.
지금은 883년. 그 아이가 태어났을 시대가 아닌데. 어떻게.
그때, 호위 기사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멈춰 선 나를 안아 든 유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혼자 움직이시면 위험해요, 아기님.”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미래에서 온 거야.’
소문이 돌기 시작한 그날 저녁, 대신전이 성녀 소피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교황이 전쟁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책임자가 된 것은 황제의 장자이자 대신전의 고위급 사제인 리벨리우스 황자였다.
***
리벨 삼촌은 연회를 열었다. 제국 황궁에 온 성녀 소피아를 위한 작은 환영 연회를.
삼촌은 나도 참석하기를 원했다. 황궁에 온 소피아를, ‘또 다른 성녀’인 나에게 소개해 친하게 지내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처음 소피아가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너무 당황한 티를 내버렸던 탓인지, 유모는 걱정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꼭 참석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리벨리우스 황자님께는 아기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고 전해 드릴게요.”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유모. 참석하고 싶어.”
나는 반드시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연회에서 소피아를 만나, 그녀의 의중을 알아내야 한다.
‘소피아가 정말 미래에서 온 거라면, 그 뒤에 마법사가 있다는 거야.’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 중간계로 떠났을 텐데. 누가?
‘아니, 그렇게 따지면 엄마도 중간계로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지.’
엄마 외에도 제국에 남은 마법사가 있었던 걸까.
마법사가 있다면, 무슨 목적으로 이 시대에 사람들을 보내고 있는 거지?
‘히룬은 분명 나를 죽이려고 왔었어.’
하지만 소피아는 치유의 성녀다. 암살은 그녀의 특기와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에 있었다.
‘성녀인 소피아가, 나를 해할 목적으로 오지는 않았을 텐데.’
게다가 시간선도 맞지 않다. 히룬이 내가 있던 미래에서 30년 더 지난 미래에서 온 것 같았다면, 소피아는 그보다 7년 전 과거에서 온 것 같았으니까.
중년의 히룬과 5살의 소피아. 이 조합은 어떻게 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선을 넘으며 나이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어.’
타임리프를 했다가 아기가 되어버린, 나라는 사례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 변수까지 포함하다 보면 그들이 온 연도를 전혀 유추할 수 없어진다.
생각하다 보니 골이 아파서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우우…….”
“아기님, 괜찮으세요? 역시 연회는 다음에 가는 것이.”
“아, 아니야. 괜찮아. 기대, 기대돼서 그래.”
나는 걱정하는 유모에게 황급히 웃어 보이고 연회가 열리고 있는 만월궁을 바라봤다.
좋지 않은 머리로 혼자 고민해봤자 답은 안 나오고 괜히 머리만 아프다. 남은 수단은…….
‘소피아를 만나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
그 아이가 정말 시간선을 넘으며 어려진 미래의 소피아라면, 내게 적대감을 느끼고 진실을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동요라도 읽을 수 있다면, 실마리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적의 성녀 소피아가 대체 무엇을 위해 사특한 마법까지 써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를.
“성녀, 이브엔나 르페 라인하르트님이 드십니다!”
화려한 눈 결정 장식이 달린 문을 열고 연회장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브엔나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시는군요.”
“바, 반갑습니다…….”
바넷 황녀, 파리엘 황자, 비올라 황녀와 그녀의 파트너인 일랑 공자, 린드벨 공작과 벤 추기경, 그의 제자인 요한. 나는 하나하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유모의 손을 잡고 내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황실 식구들과 대신전의 고위 사제들. 대부분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주인공인 소피아가 아직 어린아이이니, 연회라기보다는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소규모 만찬회 같은 형식이 된 듯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미래에서도 리벨리우스 삼촌은 소피아를 데리고 이런 연회를 자주 개최하곤 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소피아가 고위 귀족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쌓아온 친분은, 그녀가 자란 뒤 사교계나 정계에서 자유롭게 힘을 행사할 양분이 되어주었다.
“와주셨군요, 성녀님.”
내 자리는 리벨 삼촌의 옆이었다. 자리로 다가가자 리벨 삼촌이 일어나 손수 의자를 끌어주었다. 그 친절한 모습에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있으시니, 기사 같으십니다.”
“어허, 황자 또한 제국의 기사라네.”
리벨 삼촌이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자,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나는 농과 함께 이어지는 웃음소리 속에서 리벨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삼촌은 무슨 생각이신 걸까.’
미래에서 삼촌은 소피아를 정치적인 딸로 키우기 위하여 연회를 열었다. 지금도 그런 의도인 걸까?
“모두 모인 것 같군.”
연회장의 사람들을 둘러본 리벨 삼촌이 사인을 주자, 시종들이 잽싸게 연회장 뒤로 움직였다.
곧 연회장 뒤편에서 총총거리며 걸어 나오는 조그만 인영에,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어머…….”
“오, 세상에.”
소복이 쌓인 눈처럼 깨끗한 은발과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
머리 색에 맞춘 듯 입은 옷은 반짝이는 펄을 잔뜩 넣은 풍성하고 하얀 드레스였고, 은발은 양 갈래로 묶어서 눈 결정 모양의 머리 장식을 얹은 채였다.
빛과 눈. 성신의 상징물을 온몸에 휘감은 모습은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천사이신가?”
“눈밭에서 태어난 듯 고우셔.”
소피아는 수줍은 얼굴로 리벨 삼촌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졔 이루믄 소피아임미다.”
아이의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연회장에 모인 손님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두문불출하게 된 이후로, 이들이 이렇게 행복에 겨운 얼굴을 하는 건 아주 오랜만에 보았다. 소피아는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끈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연회장에 재차 녹아내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귀여우시군요.”
“험한 길을 오셨다기에 걱정했는데, 어쩜 이렇게 티 한 점 없이 사랑스러우실까요?”
“성녀님이시지 않습니까. 신께서 소피아님을 지켜주신 것이겠지요.”
그 후로 소피아는 보고 들은 일을 하나씩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떠오른 신의 목소리, 배우지 않아도 말하고 듣고 쓸 수 있었던 것, 나샤를 떠나 신성 제국의 수도에 도착하는 데까지 길고 힘겨웠던 고행의 나날들을.
“신께서는 소피를 데국으로 인도하셔떠요.”
어려서 발음은 다소 어눌했지만, 아이의 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탄과 환희가 차례로 쌓여갔다.
그리고 종내에는 이런 말까지 튀어나왔다.
“정말 신의 아이 그 자체로군요.”
한 신관의 홀린 듯한 목소리 뒤로, 회장에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벤 추기경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하자, 말을 뱉은 신관이 허둥대다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잘한 일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저 애는 대체 뭐지?’
소피아가 내뱉고 있는 모든 말을,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바로 저 말투로.
내가 연회에 참석할 때 기대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직접 소피아를 보면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이는 유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설사 연기를 한다고 해도. 어른이 아이 흉내를 내면 겸연쩍음이나 쑥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따르게 되어 있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피아에게는 그런 어색함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멍했다.
정말 소피아가 처음 황궁에 왔던 그날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소피아가 이야기를 마치자 연회장의 사람들도 하나씩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내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부 운니?”
“하하, 소피아님이 한 살 많으십니다.”
리벨 삼촌이 웃으면서 설명했다.
“이브님은 4살, 소피아님은 5살이시거든요.”
“아앙….”
소피아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살폈다. 눈을 맞출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쏟아지는 시선을 견뎠다.
“소피두 마니 머그면 이부처럼 쑷쑷 클 쑤 있을까아?”
오른팔을 치켜든 소피아가 머리 위로 손을 팔랑팔랑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