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6)화(160/207)
흘러내린 소매로 보이는 아이의 손목은 마르고 가냘팠다. 방금 나샤에서 역경을 딛고 온 소피아의 일대기를 들은 사람들은 자연히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아, 이 여린 분이 나샤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지…….”
“황궁에서 많이 먹고 편히 주무시면 금방 이브엔나님처럼 자라실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소피아를 향해 위로와 응원의 말을 던졌다. 소피아는 배시시 웃으며 꼬마오, 힘내께요, 하고 화답했다.
소피아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연회장에 따뜻한 웃음이 가득 흘렀다. 그녀를 향한 경탄의 말이 오가는 와중에 유모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손님들이 보고 있으니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워.’
아무리 봐도 소피아가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5살의 소피아를 고스란히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것만 같았다.
“성녀님!”
불쑥 들린 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네.”
“녜에?”
동시에 대답한 나와 소피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연회장에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상황을 무마하려는 웃음이 터졌다.
“하하! 성녀님이 두 분이라니, 제국의 큰 복입니다.”
그러나 덮쳐드는 낭패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핏기가 가셨다.
“아아.”
소피아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부도 성녀구나아.”
그 애가 성신의 상징 같은 긴 은발을 한 손으로 꼬며 말했다.
“나눈, 신님께 그런 이야기 드른 적 업눈데 말이지이?”
그리고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참, 싱기하네.”
“아…….”
순간적으로 얼굴에 훅하고 열이 올랐다.
“읏차.”
소피아는 자리를 털고 총총거리며 다가와 내게 손을 뻗었다.
“샌각도 못해서, 징짜 방가어.”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짜 지내보자! 이부!”
나는 소피아의 티 없는 미소와 그 애가 내민 조그만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머, 소피아님이 우리 이브님과 친구가 되고 싶으신가 봐요.”
“귀엽기도 하시지.”
손님들의 들뜬 목소리 뒤로, 리벨 삼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성녀님이 자매처럼 의지하며 지내신다면, 그 또한 제국의 복이 될 겁니다.”
나는 따끔거리는 시선 속에서 주춤거리며 손을 뻗었다.
“으, 응, 잘 부탁…….”
소피아의 손을 잡는 순간, 이 악수 또한 과거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옆에서 리벨 삼촌이 말을 얹었다.
“하하, 이브님이 황궁에 더 오래 있었으니 소피아님께 의지가 되어주시면 좋겠군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굴려 소피아의 얼굴을 살폈다.
손가락을 감싸는 보드라운 손,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말갛고 까만 눈동자, 리벨 삼촌의 웃음소리. 그것들의 틈바귀에서 내 기억은 과거의 어느 날로 튕겨 나갔다.
‘소피아도 나샤에서 가족을 잃었다고 하는구나. 네가 더 나이가 많으니 소피아를 잘 돌보아주며 사이좋게 지내거라. 자매처럼 지내면서 의지가 되어주면 서로에게 좋을 테니.’
“이브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의아하게 나를 살피는 리벨 삼촌의 얼굴이 보였다.
“아.”
빨리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모나게 행동해서 이목을 끌지 않게. 아빠가 안 계실 땐, 삼촌이 황궁에서 가장 윗사람이니까…….
“네 살밖에 안 된 우리 아기님이 어떻게 소피아님을 끌어주실 수 있겠어요.”
그때 유모의 팔이 내 어깨를 감쌌다.
“소피아님을 보필하는 건 우리 황궁 식솔들의 몫이겠지요. 다들 성녀님을 모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모의 부드럽고 단호한 말투에 리벨 삼촌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럼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성녀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니, 저까지 부러워지는군요.”
“후후, 그 말씀이 맞습니다.”
린드벨 공작과 벤 추기경까지 한마디씩 얹자, 화제는 매끄럽게 넘어갔다. 리벨 삼촌은 잠깐 멋쩍은 듯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으나 더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유모…….’
내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유모를 돌아보자 그녀가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울렁거리는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가, 우리를 보는 리벨 삼촌과 눈이 딱하고 마주쳤다.
서늘한 청회색 눈동자를 대면하는 순간, 나는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 말대로, 태양궁 식솔들이 성녀님을 참 곱게 키우시는 것 같군.”
그때 무언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리던 리벨 삼촌이 넌지시 제안했다.
“태양궁에서 성녀님 두 분이 함께 지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
“에, 이부랑?”
소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봤다.
“헤에…….”
그녀가 나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따라 웃었다.
“소피아님은 찬성이신 것 같은데요.”
“이브님이 마음에 쏙 드셨나 봐요.”
“두 성녀님이 한 지붕 아래에서 식구가 된다면, 제국에 오랫동안 자랑할 역사가 생기겠군요.”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몸을 떨었다.
태양궁은 아빠의 성이었다.
‘병들어가는 땅에 태양이 임하신다.’ 그 웅장한 신탁을 받으며 태어난 둘째 황자를 위해,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황실에서 가장 일조량이 높은 지대에 지어진 태양의 성. 아빠가 자라고, 살아가며, 돌아가신 곳.
동시에 그곳은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는 함부로 발 디딜 수도 없게 된 성이었다. 먼 미래에, 그곳은 리벨리우스 삼촌의 명에 따라 소피아의 소유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곳에서, 소피아와 함께 살라고…….
“그, 건…….”
싫어.
하지만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신탁의 성자가 나고 자란 성이라면, 신탁의 성녀에게 하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걸. 무능력한 황제에게는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안 되죠.”
그때 비올라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양궁은 교황 성하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신성한 곳이니까요.”
늘 얌전하던 막내 황녀의 참견에 리벨 삼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에 이어 몇몇 사람들 또한 말을 얹었다.
“으음, 황녀님의 말씀이 원칙적으로 옳군요.”
“황자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논의는 태양궁의 주인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하는 게 좋겠어요.”
리벨 삼촌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기 위해 물컵을 들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두 성녀가 자매처럼 지내기를 바라서 한 말일 뿐인데.”
“황자님의 뜻은 저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이브님이 원체 낯을 많이 가리시니까요.”
한 신관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두 분 다 사랑스럽고 마음씨가 고우시니 사이좋게 지내시겠지만, 두 분의 성향 또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리벨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브님도 소피아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밝아질 수 있으면 좋겠군요.”
‘소피아의 반만 돼도 좋을 텐데.’
나는 겹쳐지는 과거의 목소리에 한쪽 귀를 막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면…….”
리벨 삼촌의 시선이 내 등을 쓰다듬는 유모의 손에 닿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소피아님의 유모를 구할 때까지, 린다 유모가 잠시 소피아님을 맡아주면 어떨까.”
“네?”
지목당한 유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이브님의…….”
그녀가 드물게 말을 더듬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몰아치는 기억에 말없이 이를 악물었다.
무력하게 모든 것을 빼앗겼던 머나먼 과거가 재연되는 것 같았다.
‘유모와 헤어지기 싫어.’
유모를 잃지 않으려면 지금 붙잡아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도 무언가를 붙잡는 데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성신을 모시는 자는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는 법입니다.’
‘자, 잘못했어요, 이제 욕심내지 않을게요!’
움켜쥐려고 발버둥 칠수록, 단죄받았던 기억만 가득했다.
고개 숙인 내 머리 위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무엇을 해도 상황이 악화될 것 같은 불안함에, 나는 꼬챙이에 꿰인 물고기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대에 와서 내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두 착각이었던 걸까. 소중한 것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저는 이브님의 유모예요.”
그때 유모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어, 유모가…….’
유모는 내가 늘 보던 얼굴과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불쾌하고 엄격한 얼굴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 직분은 아인 전하께서 내려 주신 것입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주시지요.”
“명이라니, 그저 가벼운 제안일 뿐이었네. 제안.”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리벨 삼촌은 난처한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치니 머쓱해지는군.”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유모가 짧게 답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유모를 올려다보았다.
‘아, 여기는…….’
그녀의 몇 마디에 과거에 얽매여 있던 머리 위로 현실감이 끼얹어졌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구나.’
이제야 주변이 보였다. 어쩐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어른들의 얼굴이.
“아기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응? 앗, 응.”
“맞아요,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드시잖아요. 우리 성녀님 배고프시겠다.”
“그, 그 정도는. 아, 감사합니다.”
내 접시에 이것저것 밀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새끼 새처럼 주는 족족 받아먹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독차지한 내 옆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소피아의 시선이 느껴졌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