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59)화(163/207)
히룬과 요한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폭로 사건 이후로, 소피아는 정양하며 얌전히 지내는 듯했다. 나는 마력 코어에 마력을 모으면서 ‘쥐와 새의 귀’로 소피아를 감시했다.
요한과 히룬이 소피아의 이면을 까발려준 덕에, 그간 내가 그녀의 연기에 휘둘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얼핏 해맑은 어린아이 같아 보이던 모든 행동에는 나의 평판을 떨어뜨리면서 자신의 장악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분명 황궁에 온 것에도 목적이 있을 거야.’
하지만 며칠을 염탐해도 소피아의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쾌활하고 수다스럽던 그 소피아의 방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아빠에게 쓴 편지를 비올라 고모에게 맡겨두었다. 내가 아는 모든 미래의 역사를 기록한 노트, <901년까지의 기록>의 위치를 표시한 편지였다. 직접 전달해주면 되지 않냐는 고모의 당연한 반문에 변명하느라 꽤 진을 뺐다.
의심과 긴장 속에서 한동안 묘한 평화가 이어졌다.
소피아는 차츰 움직임을 재개했다. 태도는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으나, 예전처럼 태양궁에 놀러 오거나 산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모든 요구에 긍정으로 답했다.
우리 태양궁 식구들은 내가 순해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사실 소피아를 좋아하고 있는데 부끄러움을 타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눈치였다. 실상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저 단지 열성적인 감시자일 뿐.
그러던 어느 날, 소피아가 내게 요청했다.
“이부, 나 이부 방 구경해두 대?”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일부러 시녀들을 방에서 내보내고 책 읽는 척을 하며 소피아를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나 소피아는 아무런 수작을 부리지 않고 저녁 무렵 명랑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짜 자! 이부!”
“응, 잘 자…….”
그녀가 돌아간 이후, 나는 어리둥절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왜 아무것도 안 하지?”
어쩐지 수상한데…….
하지만 그날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 날, 산책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간식을 먹는데 바닥에 은색 머리카락이 한 가닥 떨어져 있었다.
‘……소피아의 머리카락?’
어제 방에 들렀을 때 떨어진 걸까, 하다가 태양궁의 식솔들이 평소에 내 방을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는지를 떠올려냈다.
괜히 불안감이 들어 염탐 마법으로 저녁 내내 소피아를 감시했다. 그러나 소피아의 방에서는 오늘도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조용하긴 한데… 드문드문 들리는 이 짤랑이 소리는 뭐지?’
나는 괜히 부스럭거리며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꼽아보았다.
방 구석구석을 살피던 내 눈에 침대 머리 판에 달린 성물이 비쳤다. 어릴 적 비밀통로를 타다가 실수로 파리엘의 방에 갔던 자체 납치 사건 이후로 아빠가 하사했던 보호의 성물이었다.
‘어, 혹시…?’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음.”
손으로 시트를 짚고 성물을 마주 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성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본체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신성을 천천히 불어넣어 보았다.
빠지직!
“헉.”
그러자 어느 순간 투명하게 빛나던 결정면에 금이 갔다. 성물은 신성을 불어넣어서 능력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성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다는 건…….
‘이건 가짜야.’
아주 질이 높은 크리스털은 성물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성물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털이범들은 성물을 크리스털과 바꿔치기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멍하니 금이 간 크리스털을 내려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
성물이 도난당했다!
신이 내린 선물, 성물은 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보물이었다.
태양궁의 주인이 사라진 사이 이런 변고가 생기다니!
그러잖아도 몇 주 전 막내 황녀님의 방에 괴한이 침입한 사건 때문에 경계 태세에 있던 황궁은, 연이어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발칵 뒤집어졌다.
“도난당한 물건이 심지어 보호의 성물이래요! 아인 전하께서 아기 성녀님을 지켜주기 위해 하사하신 뜻깊은 선물을 훔쳐 가다니. 어떻게 그런 무도한…!”
“아아, 전쟁터에서 천신만고를 헤치고 돌아오실 성하를 뵐 면목이 없어요.”
“범인은 대체 어떤 간땡이 부은 사람이래요?!”
“감도 안 잡혀요. 태양궁은 믿음직스러운 사제분과 식솔들만 오가는 곳이잖아요?”
“그날 태양궁을 방문한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더군요. 그런데….”
태양궁에서 가장 입이 가벼운 하녀, 사라 크러벗이 목소리를 낮추자 하인들도 덩달아 자세를 낮추었다. 흥미로운 시선 속에서 사라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 가운데, 그분도 있대요.”
“그분이라니요?”
“왜, 요즘 장안의 화제인…….”
사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새로운 성녀, 소피아님이요.”
***
흰 대리석 바닥에 깔린 펄이 반짝이는 러그 위로 은색 군화가 일사불란하게 엇갈렸다. 샹들리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빛 아래에서 눈 결정 장식들, 커다란 솜인형과 장난감이 기사들의 손에 들렸다가 놓이기를 반복했다.
방을 샅샅이 뒤지던 기사 몇이 기사단장에게 돌아와 보고했다.
“방 안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성물 같은 물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목소리는 방의 주인, 소피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타니까아?”
소피아는 소파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그러고는 이 수사의 원흉인 나를 휙 돌아보았다.
“어떠케 소피룰 의심하눈지…….”
“…….”
“이부가 소피아를 미어하는 건 알게찌만… 소피는 딘따 억울해.”
소피아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아…….”
“금방 끝날 거예요, 소피아님.”
“저희는 소피아님을 믿으니까, 함께 힘내 봐요.”
소피아를 모시는 만월궁의 유모와 시녀들이 걱정스럽게 소피아를 감쌌다. 그 모습을 딱한 눈으로 지켜보던 리벨 삼촌은 견디기 힘들다는 듯 외쳤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그러고는 앞머리를 쓸어올려 가려진 눈을 드러냈다. 그의 오른쪽 눈꺼풀 위에 늘 있던 흉터가 사라지고 없었다.
“몇 주 전, 성녀님께서 내 오래된 상처를 없애주셨지.”
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미래에서도 소피아는 권능을 사용해 리벨 삼촌이 아빠에게 얻었던 흉터를 없애주었다. 그리고 그 일은 소피아가 삼촌의 마음을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리벨 삼촌은 짐짓 한숨을 내쉬며 토로했다.
“험지에서 와서 기적을 행하고 계신 분일세. 그런데 어떻게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의 용의자로 성녀님을 지목할 수가 있는가. 범인이 아니라고 밝혀진 이후에, 여린 성녀님이 받으신 충격은 어떻게 책임질 거지? 다들 제정신이 아니로군!”
“저희는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하는 것뿐입니다.”
기사단장이 대답했다. 그의 뒤로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용의자로 소피아를 거론한 것은 나였다. 리벨 삼촌 또한 그 사실이 생각났는지 뒤늦게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감정적으로 내뱉기 마련이고, 판단은 어른들의 몫이지. 설마 근래에 일어난 일 때문에 태양궁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가? 나도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소피아님을 범인으로 모는 것은 도를 넘은 횡포네! 애들끼리 놀다가 부딪힐 수도 있지.”
리벨리우스 삼촌의 말에 린다 유모가 순간 그를 홱 노려보았다. 나는 움찔 놀랐다.
‘유모, 화나면 표정 관리 못하는구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그만 철수하는 것을 추천하지.”
리벨 삼촌이 또다시 엄포를 놓았다. 나는 인상을 쓰며 방 안을 훑어봤다.
‘힌트는, 소피아의 방에서 들은 그 소리.’
나는 엊저녁에 염탐 마법으로 들은 짤랑거리는 소리를 떠올렸다. 작은 금속들이 부딪히는 듯한…….
기사들의 손을 탔던 무수한 물건들, 테이블에 놓인 유리구슬, 화장대 속의 장신구들, 금속 촛대와 유리 장식장. 쇠붙이가 부딪쳐 울리는 소리가 날 법한 재질이라면 뭐든지. 이미 여러 번 시선을 거친 것들을 재차 곱씹으면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인하지 못한 건, 없나…….’
그때, 내 시선이 문득 위를 향했다. 서로 색이 다른 오드아이에 반짝이는 빛이 반사되는 순간,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샹들리에는 찾아봤나요?”
“예?”
내 말에 기사들이 의아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위를 가리키며 재차 말했다.
“샹들리에요.”
“어…….”
높은 층고 탓에, 샹들리에는 상당히 위에 달려 있었다. 어린아이는커녕 어른도 닿을 수 없는 높이였다.
“허.”
리벨 삼촌이 헛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