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64)화(168/207)
7. 나샤에서 있었던 일
‘그분을 만난 건 결혼식이었습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린제나님이 웨딩로드를 밟고 걸어오시는 순간, 모든 이들이 숨을 멈추었죠. 그날부터였습니다. 제가 선대 황제 폐하를 질시하게 된 건.’
최초의 신성 황제이자 마지막 성자이던 아빠는, 살아생전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 또한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태양의 딸이라 불리며 추앙받았다. 개중에는 소피아가 나타난 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은 사람도 몇 있었다. 내 편이 되어주었다가 죽거나 끔찍한 꼴을 당한 사람은 대부분 그런 이들이었다.
하지만 클랑 백작은 특이하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흠모했다는 이유로 나를 찾았다.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고 나를 두둔한 사람은 그뿐이었기에 내게는 무척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마녀라는 증거가 하나둘 나와서 내가 한창 미쳐가던 때에는, 그가 비밀스럽게 접선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사실 제가 린제나님을 처음 만난 것은 결혼식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은커녕 제국도, 신성연합국도 아니었죠. 그곳은 나샤였거든요.’
‘저는 성흔도 없는 주제에 장남이라, 어릴 적에는 가족들에게 매우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저를 고까워한 가족들이 기어코 저를 나샤의 범죄 조직에 팔아넘겼죠. 하필 아주 질 나쁜 놈들에게 걸려서, 저는 모든 걸 체념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세주처럼 나타나신 린제나님께서 저와 두 아이를 구해주셨지요.’
‘린제나님이 마녀이실지는 몰라도, 나쁜 분은 아닙니다. 제 명예를 걸고 보장하죠.’
내 곁에서 어머니가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때는 그가 기운 없는 나를 위로하려고 말을 지어낸 게 아닐까 의심했었다. 클랑 백작은 자주 명예를 걸고 보장했다가 실패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과거에 클랑 백작을 납치한 조직이 여기구나!’
그가 말해준 우리 엄마의 영웅담이 진짜였던 것이다.
“저, 저, 저기.”
“어어, 조심해.”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여서 허둥지둥 일어나려다 다리를 삐끗했다. 그런데 클랑 백작이 휘청이는 내 손을 잡아 바로 세워주었다.
나는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따뜻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도 은혜를 갚겠다며 나와 함께 많은 수모를 겪어준 사람이다. 그에게서 다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흡…….”
“어어, 왜 울어. 아직 아파?”
클랑 백작이 당황해서 나를 살폈다. 주변의 아이들도 다가와 나를 달랬다.
“내내 끙끙거리더니 일어나자마자 짜네.”
그런데 한쪽에서 냉소적인 비아냥이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네 명의 소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적의를 가진 눈빛에 주춤거리자 클랑 백작이 나를 보호하듯 앞을 막아섰다.
“방금 깨어난 애한테 시비 걸지 마, 진.”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깨어난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난리야? 비실비실한 꼴을 보니 뱀굴에 안 넣어도 곧 죽겠는데.”
진이라고 불린 빨간 머리 소년이 툭 뱉었다.
‘뱀굴?’
그러고 보니 잠결에 비슷한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진과 함께 다가온 다른 소년이 나를 보더니 어, 하며 손가락질했다.
“근데 쟤 눈이 왜 저래?”
그러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잠깐 굳어있던 나는 퍼뜩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모든 아이가 내 눈을 본 후였다.
“짝눈?”
“저거, 지금 난리 난 마녀랑 똑같은 색 아니야?”
“아, 코튼 캔디.”
코튼 캔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아, 역시 얘들도 다 아는구나.’
하긴 제국까지 수배서가 돌 정도니까. 할스테리어에서 잡혀 온 애들이라면 모를 리 없었다.
진이 내 눈을 빤히 보더니 픽 웃었다.
“딱 보니 알겠네. 저 녀석은 눈 때문에 버려진 거군.”
“어린애한테 말 함부로 하지 마.”
클랑 백작이 나를 보호하듯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하, 하고 혀를 찼다.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 아직도 자기가 귀족 같아?”
진의 날카로운 말에 클랑 백작의 눈이 흔들렸다. 진이 클랑 백작을 지나쳐서 내 앞에 왔다.
“야, 네가 답해 봐. 너 혹시 그 마녀 딸이냐?”
“나, 나는.”
네가 말하는 그 마녀 딸이 아니라, 본인인데.
“나, 나는. 뭐, 어쩔 건데. 마녀 딸인 것도 모자라 말더듬이인 거야?”
진은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따졌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소녀들이 끼어들었다.
“지, 진. 아기한테 그러지 마.”
“맞아, 우리 같이 갇힌 신세인데….”
그러자 진이 와작 인상을 구겼다.
“뭐가 같다는 거야. 마녀와 함께 납치됐다고 어떻게 마녀랑 같은 취급이 돼? 아니면 설마, 너희도 마녀이기라도 해?”
진의 말에 소녀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흘긋 시선을 돌렸다.
두 소녀에게서는 약한 마력이 느껴졌다. 진은 일반인이라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소녀들은 허를 찔린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린애한테 화풀이할 거면 차라리 나랑 싸워.”
그때 클랑 백작이 진의 어깨를 잡았다.
“…하!”
진은 그 모든 게 짜증스럽다는 듯 내 어깨를 팍 밀쳤다. 내가 뒤로 밀려나자 소녀들이 깜짝 놀라서 내 팔을 잡아주었다. 클랑 백작은 놀란 얼굴로 진을 돌아봤다.
“진, 이게 무슨….”
“다 죽을 마당에 저딴 걸 왜 감싸? 마녀 딸이면 저것도 마녀일 거 아니야. 너희야말로 정신 차려. 이런 데 갇혔다고 마녀한테 홀리지 말고!”
진은 클랑 백작의 팔을 쳐내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소년들과 함께 화가 난 발걸음으로 원래 자리로 향했다.
진이 돌아가자, 클랑 백작과 소녀들이 나를 달랬다.
“괜찮아?”
“이렇게 착한 애한테 코튼 캔디의 딸이냐니. 말이 심했어….”
“맞아, 그런 끔찍한 범죄자를… 저런 나쁜 말은 신경 쓰지 마, 아기야.”
아이들의 말에 양심이 쿡쿡 찔렀다.
‘딸 아니고 당사자야…….’
아빠를 속일 때도 양심이 안 아팠는데.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쩐지 양심의 가책이…….
“고, 고마워.”
나는 아이들의 따스한 위로에 일단 감사를 표하고 물었다.
“저기, 그런데… 어차피 다 죽는다는 건 무슨 뜻이야?”
“아, 그건…….”
내 질문에 아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
“사실은 말이야, 저기 뱀이 있어.”
“릴리.”
클랑 백작이 저지하듯 이름을 부르자, 릴리라고 불린 아이가 힘없이 그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이제 밤이야. 숨겨 봤자 곧 이 애도 알게 될걸.”
“그건…….”
릴리의 말에 클랑 백작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가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알고 싶어?”
“으, 응.”
내가 의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클랑 백작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를 여기에 데려온 납치범들은, 무서운 사람들이야.”
“미친놈들이지.”
“그래, 그들은 밤마다 와서 납치한 아이들을… 하나씩 뱀굴에 집어 던져.”
뭐?
“왜, 왜 그런 짓을…?”
“모르겠어. 그들의 말로는, 우리를 전사로 만들어서 신성한 의무를 행하는 거래.”
애들을 납치해서 우리 안에 가둬놓고, 밤마다 뱀한테 던지는 게 신성한 의무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클랑 백작이 덧붙였다.
“아마 이단이 아닐까 싶어.”
“이단?”
“성신 테헤라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사교도라고도 부르지. 음, 어린애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개념이려나.”
“사, 교도…?”
대륙에 사교도라고 할 만한 세력이 있었던가?
급격히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니, 납치범이 아이들을 잔뜩 위협해 놓은 듯했다. 클랑 백작도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나는 조심스럽게 클랑 백작의 손을 잡았다.
“저기,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는 괜찮을 거야.”
“…….”
내 말에 클랑 백작의 눈이 약간 커졌다. 지켜보던 소녀들도 잠깐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곧 작게 웃었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아기네.”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내 말을 전혀 안 믿는 것 같네.
“그래, 네가 괜찮으면 됐어.”
클랑 백작도 내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이게 아닌데…….’
그냥 막연히 하는 위로가 아니었다.
내가 앓는 사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결국 안전하게 살아 돌아왔다는 걸 아니까.
‘기다리면 곧 엄마가 구하러 오실 테니까.’
내가 기억하는 클랑 백작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란 모습이었다. 그는 엄마가 납치된 그를 구해주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고 말했다. 이미 일어났던 일이니, 이번에도 같은 순서로 일어날 것이다.
그래, 이번에도 엄마가 구하러 오실 거야. 엄마가 구하러 오시면…….
‘…무슨 낯으로 엄마 얼굴을 보면 좋지.’
이 바보, 마지막에 그렇게 못된 말들로 대못을 박아놓고 만난다고 설레할 때가 아니잖아.
시간도 많이 지났고 엄마 주변에는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는데, 나같이 괘씸한 애 따윈 잊어버리셨을 수도.
‘그, 그래도, 엄마에게도 헤일로에 대해서 경고해놓는 게 좋을 거고…….’
그렇지. 녀석이 어떻게, 무슨 의도로 미래의 엄마 형상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마 같은 존재가 엄마를 따라 하고 다닌다는 걸 경고해드려야 했다. 혹시 악마나 헤일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 단순히 내가 보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맞아, 그러니까 일단 엄마가 구하러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오, 온다.”
아이들이 갑자기 내 등 뒤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 쇠창살 너머로 붉은 불빛이 어룽거리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벽에 달린 횃불을 켠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자, 갑자기 클랑 백작이 나를 붙잡았다.
그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더니 한구석에 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가만히 누워 있어. 넌 아직 못 깨어났다고 말할 테니까.”
“으응? 왜…….”
“쉿, 너는 저런 데 나가기엔 너무 어려. 여기서 조용히 있어.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눈을 떠선 안 돼. 할 수 있지?”
클랑 백작은 나를 바닥에 눕히고 단호한 투로 말했다. 나는 엉겁결에 누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집합!”
곧 쇠창살 너머에서 엄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마치 훈련받은 병사처럼 다급히 달려갔다. 나는 클랑 백작의 말에 따라 가만히 자는 척을 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곧 남자 셋이 문을 열고 쇠창살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앞에 선 안경 낀 남자가 찬찬히 아이들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팔을 들어 가운데를 손가락질했다.
“너.”
“저, 저요…?”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아까 내게 시비를 걸었던 진이라는 소년이었다.
남자가 진을 향해 턱짓했다.
“그래, 오늘은 네가 나와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