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7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70)화(174/207)
나는 모든 아이를 이끌고 철창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긴장하고 겁먹은 기색이었지만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여기에서 험한 꼴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다들 필사적이었다.
물론 모두가 협조적인 건 아니었다.
“실패할 거야…….”
나는 흘끔 클랑 백작에게 업힌 진을 돌아보았다. 진의 마력 코어는 아직 미성숙했다. 그래서인지 해독이 완전히 되지 않아 클랑 백작이 그를 업고 있었다.
“만약 탈출하더라도 나샤에서 죽겠지.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런 어린애들끼리 지나겠다는 거야? 다들 뭐에 씐 게 틀림없어. 저런 마녀의 말을 믿다니… 저 눈을 보면 모르겠어?”
탈출을 시작한 때부터 진은 계속 저렇게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저 불길한 오드아이, 대사제 가아릴을 죽인 대마녀 캔디와 똑같잖아. 그 마녀의 딸일 거야. 둘이 한패라고.”
여러 번 들은 말이라 그냥 흘려넘기려던 나는,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멈춰 섰다.
‘그래서 내가 가아릴을 죽이려고 한 것이었어.’
가아릴, 이델리도 게릴을 그렇게 불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 혹시…… 나샤 출신이야?”
내 물음에 진의 눈이 커졌다. 대답하지 않는 진을 대신하여 옆에 있던 소년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어떻게 알았어?”
“론, 그 녀석 말에 대답해주지 마!”
진의 외쳤지만 론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이름을 발음하는 게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눈치가 빠르구나. 맞아, 나랑 진은 나샤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할스테리어 국경을 넘은 난민이야. 그러니까 진이 거짓말은 하는 건 아니야… 나샤는 정말로 위험해.”
나는 클랑 백작에게 업힌 진을 흘금 돌아봤다. 그는 ‘마젤란의 악마’가 우리를 죽일 거라고 드문드문 중얼거렸다.
“마젤란의 악마는 뭐야?”
“나샤는 마수도 많지만, 마녀와 범죄자도 많아. 그런 나샤에서 한때 제일 악명 높았던 게 마젤란의 악마였어. 소문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사제를 죽였대.”
“그렇구나…….”
마수에 이어 범죄자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나샤를 거쳐서 할스테리어까지 가려면 대장정이 될 것이다. 최대한 힘을 아껴놔야지.
뱀굴에 가까워지자 아이들이 자연히 목소리를 낮췄다. 묵묵히 걷다 보니 저 멀리 거대한 뱀이 보였다.
다행히 뱀은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었다.
크기가 문짝만 한 뱀의 몸이 일정한 호흡과 함께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거대한 뱀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든 모습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성 같았다.
“허억.”
“힉…….”
뱀을 발견한 아이들이 차례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내가 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반응은 더욱 커졌다. 따라가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주저앉는 아이도 있고, 눈물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출구 아래까지 걸어가 손짓했다.
“조금만 더 와봐, 여기에 출구가 있어.”
“…저게 출구야?”
아득히 먼 천장 위로 희미하게 달빛이 새어 나오는 구멍.
그것을 발견한 아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뭐랬어.”
진이 땀을 뚝뚝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속고 있는 거라고 했지.”
“아, 아니야, 나갈 수 있어… 봐, 여기 밧줄도 있잖아.”
나는 다급히 출구로 이어지는 밧줄을 들어 보였다.
“저, 정말이네. 왜 그런 곳에 밧줄이 있지.”
내가 미리 반대쪽 길에서 챙겨와 출구 밖의 나무에 묶어둔 것이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 전부를 내 힘으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내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분신이 황성에서 모아둔 마력까지 흡수했음에도 평소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마법을 발동하는 것까진 해볼 만하지만, 순수하게 마력만을 소모하는 운반 작업은 힘들었다.
진과 론의 말대로 바깥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유일한 전투 요원인 나의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탈출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떨어질 것 같은 순간에는 도와주겠지만, 이 중 몇 명이라도 자기 힘으로 탈출해준다면 큰 힘이 될 거다.
“절대 못 해.”
하지만 진은 몸서리를 쳤다.
말을 안 할 뿐이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이걸 보고도 쟤 말을 계속 들을 거야? 우리 중에 제일 어리고 멍청한 애야. 그러니까 밧줄 하나로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오지!”
“아, 아니야. 내가 하는 걸 봐봐.”
나는 돌 위에 올라서서 밧줄을 허리에 묶고, 진의 겉옷을 빌려서 양손에 감아 손바닥을 보호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밧줄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들기는 했다. 까마득한 허공, 아래에는 똬리를 튼 뱀. 긴장감과 흥분으로 턱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끝은 왔다.
마침내 내 손이 구멍을 통과해 흙바닥을 짚었다. 팔에 힘을 줘서 상체를 빼내고 몸 전체를 끌어 올렸다. 밤하늘에 걸린 하얀 달과 차가운 새벽 공기가 나를 반겼다.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탈출구로 고개를 빼냈다. 땀에 젖어 새빨개진 얼굴로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 진 오빠 말이 맞아. 나는 여기서 제일 어리고 멍청해. 그런 내가 해냈으니까, 언니 오빠들도 할 수 있어!”
내 외침을 들은 아이들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대화할 때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곧잘 말을 더듬는 건 내 오랜 버릇이었다. 늘 움츠러들어 있는 내 태도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올라가야 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던 사람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에.
“나도 갈래.”
릴리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뱀을 지나쳐 밧줄을 붙잡았다.
“릴리!”
“괜찮아. 잘하고 있어!”
몸을 휘청이면서도 릴리는 올라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줄이 흔들리거나 손이 미끄러질 것 같을 때마다 티 나지 않게 마력으로 보조해주었다.
나에 이어서 릴리까지 성공하자, 그 이후로는 아주 쉬웠다. 모든 아이가 순서대로 빠져나오고, 마지막에 남은 건 클랑 백작과 진뿐이었다.
“그럼 올라갈게.”
진은 아직 회복이 덜 되어 몸을 잘 못 가누는 상태였다. 계속 비협조적이었던 진을 혼자 두기도 불안해서, 클랑 백작은 진과 제 몸을 함께 밧줄에 묶었다.
혼자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힘들 텐데도 클랑 백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여기서 나가면 안 돼.”
“……!”
나는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오는 길 내내 땀을 흘리고 악담을 퍼붓던 진이 급기야 클랑 백작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끄윽! 이, 이거 놔.”
“탈출해도 나샤라면 어차피 죽을 운명이야. 차라리 마녀의 수하를 처치하고 자랑스러운 성신의 자녀로 전사하는 게 나아!”
클랑 백작은 왼손으로 진의 손을 잡고 떨쳐내려고 했다. 밧줄이 매달린 나무의 뿌리가 뽑힐 것처럼 우드득 소리를 냈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
나는 놀라서 마력을 쏘아 보냈다. 내 다급한 마음에 감응한 마력이 두 사람을 재빨리 위로 끌고 왔다.
“여기!”
클랑 백작이 탈출구를 빠져나오고, 진이 그 뒤를 이었다. 발버둥 치는 진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 아이는 내민 손 대신 내 머리채를 잡았다.
“꺄으!”
“이 마녀!”
머리카락이 뽑히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문득 묘한 소리를 들었다.
스슷, 스슷.
익숙한 소리에 천천히 시선을 내린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소란이 너무 심했던 탓일까. 진의 등 뒤로 커다랗게 떠진 뱀의 녹색 눈동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 안 돼.”
나는 진을 받친 마력을 유지한 채 그 애의 손을 잡으려고 애썼다. 이해할 수 없는 진의 이상 행동이 무서웠으나 지금은 모든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바람이 더 간절했다.
‘어, 저건….’
그때 나를 노려보는 진에게서 저주의 흔적이 느껴졌다. 진의 마력에 덮여 있어 눈치채지 못했던 희미한 기운이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아채는 순간.
솨아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며, 한순간 어른거렸던 저주가 사라졌다.
진의 붉은 눈이 커다랗게 열리고, 그 안에 내 모습이 가득 채워졌다.
“흐읍!”
마력을 담은 힘으로 진을 힘껏 끌어당기자, 그 반동으로 진이 쏟아지듯 튀어나왔다.
쿵!
진을 쫓아온 괴물 뱀이 머리를 뻗었지만, 다행히 구멍이 좁아 따라 나오지는 못했다.
“사, 살았….”
“이브, 괜찮아?”
엉덩방아를 찧은 나를 아이들이 황급히 부축했다. 함께 넘어진 진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너 이 자식……!”
그때, 클랑 백작이 진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는 진의 멱살을 잡고 피 묻은 주먹을 얼굴에 날렸다.
빠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의 얼굴이 돌아갔다.
“크, 클랑 백작!”
“진!”
“놔, 같이 가려면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우리는 다급히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진은 방금 얻어맞았음에도 분하거나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미, 미안.”
“…방금 뭐라고?”
예상 못한 사과에 나와 클랑 백작 또한 당황했다.
진은 멍하니 어딘가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연히 그 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메마른 땅에 나무 한 그루, 바람에 날려오는 마른 나뭇잎 뭉치, 새까만 하늘과 별 몇 점.
괴물 뱀이 잠든 때를 틈타 목숨을 걸고 밧줄을 타고 올라온 아이들에게는 초라하고 조촐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굴을 빠져나와서 밤하늘을 마주했을 때 무언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 아이들 또한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흐허엉….”
“어쨌든 다 나왔어.”
“이브가 우리를 살렸어!”
바깥이 더 위험하다.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이보다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도, 며칠간 햇빛 하나 비치지 않던 철창을 빠져나와 처음 맞는 바깥 공기의 해방감을 덜 수는 없었다.
그때, 털썩 무릎 꿇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뒤를 돌아보자 진이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자, 자꾸 돌아가신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 근데 네가 날 만지는 순간 머릿속이 개운해졌어.”
“뭐? 어, 언제부터 그랬어?”
“무슨 책 만질 때부터 그랬는데…….”
진은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더듬거렸다.
“사교도의 경전이 아니었어?”
“아니었어. 도, 동화책 같은 제목이었는데…… 아.”
그 애는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현명한 문지기와 별의… 뭐였더라.”
어라.
뭐라고? 그 책은…….
‘마도구? 삼촌의 방에 왜 그런 물건이 있는 거지?’
‘빠니! 나 저거 빌려주 쑤 이써!’
내가 이 시대에 온 직후, 리벨 삼촌의 집무실에서 발견했던 <현명한 문지기와 별의 모험>. 온갖 난리를 피우다가 파리엘의 도움으로 간신히 얻었으나 펼치는 순간 마력의 흔적이 사라져버렸던, 바로 그 책이다.
이후에 반디에게도 물어봤다가 리벨 삼촌이 저주받았다는 걸 알아냈고, 그 이후에는 소득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만든 물건이었나?’
“우, 우리 엄마는 독실한 테헤라 신자였고… 아빠를 만나서 국경을 넘을 돈을 모으다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의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엄한 분이었던 것 같다. 왜 진이 그렇게 공포에 질렸었는지 이해가 갔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저주…….”
아주 악질적인 저주였다. 혹시 오멘 후작 부인도 그 책을 받았던 걸까? 리벨 삼촌이 같은 저주에 걸렸다면, 황성에 돌아간 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이 무릎을 꿇은 채 눈물로 젖은 눈을 꾹 감았다.
“머리 당겨서 미안해, 이브.”
“괘, 괜찮아, 그만 일어나.”
내가 진을 달래는 사이, 릴리가 안도한 듯 웃었다.
“저주에 걸렸던 거구나. 평소에도 성질이 더러워서 이상해진 걸 전혀 몰랐어.”
“……뭐?”
“하하하.”
그때 등 뒤로 빛이 드리웠다.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아침 해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