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7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75)화(17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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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르겐의 옆자리에 앉아 에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니르겐이 찾아온 것도 놀라웠는데 마법사들과 황실 기사단, 거기에 아빠까지 나를 찾으러 왔다고 한다.
마스터는 에코에게 흠씬 맞다가 도주했고, 마법사들과 기사단은 흩어진 하우스의 잔당을 처리하며 내게로 오고 있었다.
‘모든 게 좋게 풀리는 것 같아…….’
무엇보다 고작 나를 되찾기 위해서 이 나샤의 척박한 바위산까지 모두가 몰려왔다는 사실이 감동을 주었다.
얼른 모두를 만나고 싶다. 아빠와 기사단도 반가웠지만, 마법사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다들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는데도 나는 그들을 매몰차게 끊어내 버렸다. 그럼에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차가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들 여기까지 와주었다. 이 사건을 핑계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께가 아릿해졌다.
그때 니르겐이 마차를 몰며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옵니다. 일단 그쪽으로 가죠.”
“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들이 올 텐데요.”
“마을로 내려가서 만나면 되지 않습니까?”
니르겐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를 멈춰주지 않았다. 우리를 구하러 온 기사단이 도착했다고 말했는데 왜 자꾸 이동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최근에 기사단에 계속 쫓겨 다녀서 경계하는 걸까 싶어,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마, 마스터도 도망쳤다니까 이제 추격도 없을 거예요.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되나요?”
내 간절한 청에 니르겐이 살짝 머뭇거리는 얼굴을 했다.
“이브, 사실은 이 일대에…….”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 타이밍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어라, 저 사람은?”
길목 중앙에 검은 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에코가 반갑게 말했다.
[오, 우리 마법사들 만났어? 설마 기사단이 먼저 온 건 아니겠지.]“둘 다 아니야. 하우스의 일원 같은데…….”
하우스에서 이송될 때 봤던 기억이 언뜻 났다.
마스터는 목에 테헤라의 성물을 걸고 있었다. 저 사제 또한, 산에서 굴러서 내려오기라도 했는지 심하게 더러워진 정복 위로 빛 문양이 새겨진 게 보였다.
보통 테헤라 정교의 사제복 문양은 눈 결정 문양이었지만, 빛 또한 테헤라의 상징 중 하나이니 그 역시 테헤라의 사제일 터였다.
내 옆에 있던 니르겐 또한 사제를 발견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들과 여기 계십시오.”
“혼자 괜찮겠어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니르겐은 마부석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검 두 자루를 들고 일어났다.
뒷좌석에서 클랑 백작이 니르겐을 돕겠다고 뛰쳐나왔다. 니르겐은 뒤따라온 클랑 백작을 보더니 픽 웃으며 들고 있던 검 중에서 한 자루를 던져주었다.
“용사님은 여기서 마차를 지켜주시죠.”
그러곤 그런 말과 함께 클랑 백작을 두고 사제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런데 니르겐이 검술을 할 줄 알던가?’
할스테리어에 있는 동안 꽤 자주 붙어 다녔음에도 니르겐이 검을 든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소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니르겐의 검이 사제에게 닿는 순간.
‘어, 잘 싸우잖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고 위력 있는 공격이 사제를 압도하고 있었다. 사제 또한 민첩한 동작으로 검을 막아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검이 부딪힐 때마다 힘에 밀리며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는 게 보였다.
일방적으로 니르겐이 사제를 몰아붙이는 모양새였다.
“우와아…….”
“이브네 사촌 오빠 진짜 멋있다!”
“걱정했는데, 잘 싸워서 다행이야!”
뒷좌석에 있는 아이들도 고개를 내밀며 재잘거렸다.
“그러게. 다행, 이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의구심을 느꼈다.
온갖 고위 귀족에게 빚을 만들어 평민이면서도 귀족 사회의 유명 인사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여러 가짜 신분으로 대륙 최고의 정보 길드를 운영하더니, 이제는 검술까지.
사람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니르겐은 못 하는 일이 없는 걸까?
사제 또한 뛰어난 검술을 보였으나 니르겐의 움직임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검술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었지만, 황실 기사단의 연무는 자주 보아서 쓸데없이 눈은 높아져 있었다. 그런 내 눈에도 그의 검술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물 흐르듯 유려하고 치명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바위산에서 내려가는 길목마다 이런 기사를 세워두었다니…….’
나는 걱정하는 에코에게 니르겐이 있으니 괜찮다고 안심시켜주면서도 내심 진저리를 쳤다.
하우스가 아이들을 납치하고 반인륜적인 실험을 자행했던 것은 마탑주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하우스의 계획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고 비열했다.
‘폭력과 세뇌를 동원해서 아이들을 마법사로 키운 후 마탑에 자객으로 보낸다니…….’
마스터는 내게 10살이 되기 전에 마탑에 숨어들어서 마탑주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마탑이 ‘액면가 9세 미만의 마법사는 발견 즉시 마탑의 일원으로 들인다.’라는 규칙을 가지고 있는 걸 이미 파악하고 그런 계획을 짠 것일 테다.
엄마에게 마탑은 집이었다.
집 안에서 경계를 풀고 있을 때, 식구로 들인 어린아이가 목숨을 노린다면 대부분은 당해버리고 말 것이다.
엄마가 이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마탑이 액면가 9세 미만의 마법사는 검증 없이 마탑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너그러운 규칙을 만든 이유는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하는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규칙을 이용하여 엄마를 죽이려 하다니. 발상과 악의가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고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마의 목숨을 노리는 집단이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무수한 계획과 시도 끝에 결국은 성공하고 말았지.
그들의 악의에 등줄기가 오싹해지면서, 동시에 뱃속이 끓었다.
챙그랑!
그때, 요란하게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쇳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쉽게 보였던 승부가 묘하게 결판나지 않고 있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브 사촌 오빠 힘내요……!”
“저,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아이들 또한 이상함을 느꼈는지 뒷자리에서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니르겐과 사제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세는 뒤집히지 않았다. 여전히 승부를 압도하는 것은 니르겐의 검술이었고, 사제는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벅차 보였다.
“……어라.”
그들의 모습을 살피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새 니르겐의 검이 사제의 팔과 다리를 몇 번 베어냈는지, 그는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얗던 정복이 붉게 물들어 서 있는 게 고작인 듯 보였다. 급소만은 보호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자칫 긴장을 늦췄다간 목숨을 잃게 될 위기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제의 시선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니르겐을 보고 있지 않았다.
검을 보고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슬아슬하게 검을 막으면서도, 그의 부릅뜬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떻, 게……?”
입 속으로 더듬거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제의 육신이 훅 밀려 나와 니르겐을 ‘통과했다’.
말 그대로, 정말 통과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물처럼, 연기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사냥 직전의 피라냐처럼 이를 드러내며 마차 앞으로 밀려왔다.
“이브!”
내 옆을 지키고 있던 클랑 백작이 다급히 일어나 니르겐에게 받은 검을 빼 들었다.
쩡!
그러나 사제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클랑 백작의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반으로 부서졌다. 검이 부딪힌 충격에 클랑 백작이 마부석 위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클랑 백작을 무력화시킨 사제는 그대로 검을 들어 그의 목을 노려왔다.
“안 돼!”
나는 소리를 지르며 클랑 백작의 앞으로 몸을 던졌다.
한 줌 남은 마력이라도 끌어모아서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할 만큼 급박한 순간.
갑작스럽게 비상한 힘을 보이는 저 사제가, 엄마의 모습으로 보였다.
생명력이 가득 넘치는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이 시대의 엄마가 아닌, 시체처럼 파리하게 말라붙은 미래의 엄마.
지푸라기처럼 뻣뻣한 머리칼 사이로 밧줄에 짓눌려 붉은 자국이 남은 목이 보이는, 할스테리어에서 몇 번이나 만났던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으로.
“…헤일로.”
이를 악문 내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죽은 황후의 모습을 흉내 내는 악마가 나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이브!”
니르겐의 애타는 비명을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각오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키이이이이이이이!
죽음을 대신하여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없을 법한 비명이 고막을 덮쳤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사제의 검에서 쏟아지는 새까만 빛이 시야를 삼키고 있었다. 나는 반쯤 휘발된 시력으로 앞을 식별하려 애썼다.
그리고 코앞에서 번뜩이는 칼날을 발견했다.
‘왜?’
검은 조금만 팔을 내리면 죽일 수 있는 거리에서 멈춘 멈춰 있었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자비를 베풀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앞두고 공포에 질린 나의 얼굴을 보며 조롱하려는 의도인지 궁금해하면서.
“끄으으윽……!”
하지만 검을 잡은 손은 힘이 잔뜩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치 어떤 힘에 가로막혀서 검을 내려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나를 향해 검을 드리운 엄마, 아니 사제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체를 유지하기 힘든 것처럼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사제의 모습과 마구 교차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잠깐 동안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원래의 색을 잃은 희끄무레한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짧은 찰나,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허억!”
그리고 다음 순간, 검은빛이 번쩍 나타났다.
다시 눈을 뜨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제가 내 앞에서 스르르 검을 내렸다. 나를 보던 눈이 뒤집히더니 마부석에서 고꾸라지며 마차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흙바닥에 쓰러진 사제는 처음 나타날 때 보았던 검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헉, 헉…….”
나는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쓰러진 사제를 눈으로 살피며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브, 괜찮습니까?!”
어느새 달려온 니르겐이 마부석으로 성큼 올라왔다.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다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괘, 괜찮…….”
그런데 니르겐이 다급하게 주변을 살피더니 외쳤다.
“뒷좌석으로 가세요!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하, 하지만 사제는 쓰러졌는데요.”
“일단……!”
갑작스럽게 우리를 다그치던 니르겐은, 멈칫하더니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미 늦었군.”
뭐가요?
그렇게 묻기도 전에,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서 의자를 짚고 눈을 질끈 감았다.
쿠구구구구구구!
한참 동안 이어진 지진이 잦아들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났다.
거칠게 흔들리는 산, 아이들의 비명, 사면을 따라 쏟아지는 흙과 바윗돌,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브.”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과와 함께 니르겐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 직후, 무너진 산이 마차를 덮치며 새까만 암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