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86)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81)화(186/207)
그러는 사이 인터뷰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클랑 백작이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브.”
“이브?”
“아기 왔어?”
나는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요란하게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의 틈바귀에서 나는 옷자락을 눌러 잡고 속삭였다.
“고마워…….”
기자는 나를 마주친 게 달갑다는 듯이 면담을 요청했으나, 호위 기사가 단호한 태도로 쫓아내 버렸다. 그러곤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알현은 일절 거부한다고 알렸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아, 아니, 괜찮…….”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젓다가 문득 깨달았다.
“저기, 나를 만나겠다는 사람이 많나요?”
“그야 물론, 성녀님과 만나는 영예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성녀님께선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 아니.”
황실 사람들은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확고히 아무도 만날 필요 없다고 달래주는 듯하지만…….
“거절하지 말고 나, 나한테 먼저 알려주면 안 될까.”
“예?”
잠깐 눈을 깜빡이던 기사는 갑자기 감격한 얼굴을 했다. 그러곤 주먹을 쥐며 선언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성녀님께서 내주신 용기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 고맙…….”
나를 생각해줘서 진심으로 고맙지만… 가끔은 응원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헷갈린다.
‘머무는 동안 고위 사제들을 만나서 정세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한 것뿐인데.’
곧 할스테리어에서 대사제 선출이 있다.
소피아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새로운 대사제는 리하센 공작, 디아나님이다.
하지만 지금 할스테리어 전역에 의도적으로 퍼지고 있는 내 소식이 혹시나 영향을 미치게 될까 봐 불안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성녀님, 교황 성하께서 도착하셨어요.”
시녀의 말에 따라 집무실로 향하는 길에, 반대편에서 기사들을 대동하고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성하.”
나는 입 속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제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들으셨는지, 아빠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나를 발견하는 순간 햇살을 맞은 꽃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브.”
아빠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훌쩍 안아 들었다.
“방에서 쉬지 않고.”
“성하가 보고 싶어서요.”
“…그랬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정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게 보였다.
‘나샤에 있을 때보다 기분이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나는 내심 안도하며 아빠의 품을 파고들었다.
“오늘 이브도 성하랑 있으면 안 돼요?”
우리가 할스테리어에 머무는 이유에는 아이들의 처우 개선이나 다친 몸의 회복도 있지만, 이 지역이 나샤 마젤란과 가까운 위치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우스를 수색하며 관련 사항들을 빠르게 보고받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여기 머물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도 여기에서 귀동냥이나 해야지.’
“귀찮게 안 하구 얌전히 있을게요…….”
나는 아빠의 옷소매를 붙잡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내 공손한 간청에 아빠의 초점이 잠깐 흐릿해지는 게 보였다.
“그래, 그렇게 해라.”
아빠가 나를 안고 집무실 테이블 앞에 앉자, 방금까지 교황과 더없이 진중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제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성하…?”
“뭐가 문제지.”
“아, 아닙니다.”
아빠의 날카로운 눈빛에 사제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성기사들이 하우스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대체로 상태가 멀쩡한 기록물을 추린 것 같았다. 기사들은 마지막으로 아빠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꺼운 고서 한 권을 놓으며 말했다.
“이 책이 하우스에서 습득한 물건 중 가장 이상한 물건이었습니다.”
아빠는 책을 내려다보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경전이로군.”
신성연합국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그 책을 보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서책의 겉면에는 빛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빛과 겨울은 테헤라 성신의 상징이었다.
“예, 하우스에서 얻은 경전입니다.”
“이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하우스가 테헤라 정교에서 나왔다는 건가?”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하우스의 마스터는 테헤라 정교의 고위 사제일지도 몰랐다. 그 사실이 밝혀지는 걸까?
‘여기선 내가 도움을 줘야겠어.’
“서, 성하.”
나는 아빠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마스터는 금발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중년 남자였어요. 키는 저 기사님이랑 비슷하고요. 머리는 이렇게 생겼구….”
나는 손을 휘저어가며 마스터의 외모를 상세히 설명했다. 내 말을 경청하던 아빠가 미간을 좁혔다.
“그 마스터라는 자의 외모는 마르난 젠트스와 닮았구나.”
“…젠트스라고요?”
“전 대사제 게릴 젠트스의 조카지.”
생각지도 못했던 연관성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전 회의에 할스테리어 왕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지.”
“와, 왕 대리인?”
나는 무심코 아빠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럼 엄청난 거물인 거 아니야?’
“이 부분은 왕실에 질의할 필요가 있겠군.”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이브.”
“네, 네…….”
마스터가 전 대사제의 친척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보라색 눈을 가졌었구나.
‘그리고 이델리도…….’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이는 사이, 아빠가 기사에게 물었다.
“이 일이 고위 사제와 연관되어 있다면… 테헤라 정교의 일부가 타락했다는 건가?”
‘역시 우리 아빠.’
내심 뿌듯해하고 있는데, 사제가 입을 열었다.
“이 책은 테헤라 정교의 경전 같아 보이지만, 사실 다릅니다.”
‘어?’
“…뭐가 다르다는 거지? 현대의 경전과는 디자인이 다르지만, 빛은 성신의 상징이지 않나.”
‘마, 맞아.’
“저희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가 아빠의 앞에 책을 펼쳤다.
“하지만 언어를 해독해 보니 이 경전의 신은 테헤라가 아니었습니다. 사어라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만, 이 이름은…….”
사제가 책을 다시금 목독하고는 말을 이었다.
“헤일로.”
불시에 툭 던져진 이름에 나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내가 굳어 있는 동안에도 사제는 선선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읽습니다. 아마 나샤에 남은 민간 신앙인 듯합니다.”
민간 신앙.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나는 그가 펼치는 경전을 내려다보았다.
“이 책의 교리도 테헤라 정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기사가 페이지를 넘기자 읽기 힘든 글자와 빛바랜 삽화가 나왔다.
그림 속에서는 환하게 웃는 여자가 불 속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테헤라 정교에서 금기로 여기는 인신 공양을 교리로 삼았습니다.”
인신 공양,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
“하우스에서 습득한 다른 기록에서는 인신 공양을 하는 절차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을 받아들인 신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신이 제물을 거두어간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신도, 헤일로에게 홀린 이들이 보인 징후와 일치한다.
‘그게 인신 공양이었다고…….’
아빠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었다.
“마수가 쏟아져나오고 나샤가 몰락하며, 대륙의 여덟 나라는 불살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테헤라 정교를 국교로 삼아 신성연합국이라는 통일국가를 만들었다.”
연합국의 탄생 과정을 되짚으며 아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과정에서 사장된 종교들도 많았지. 아마 헤일로는, 그때 사장된 종교의 신인가 보군.”
‘사장된 종교의 신.’
아빠와 다른 기사들이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지만,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헤일로의 모습만이 선명해졌다.
죽은 엄마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향해 칼을 휘두르던 귀기 어린 모습.
그때 칼날이 드리웠던 머리끝부터 한기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게 악마가 아니라, 신이었다고…….’
***
나샤, 마젤란.
성기사들이 하우스의 수색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시간, 마법사들은 조용히 일어나 일대를 누비고 있었다.
“하아…….”
그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마법사들의 왕은 절벽 끝에 서서 분홍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담뱃대를 뻑뻑 태워댔다.
옹기종기 모인 마법사들이 삽으로 땅을 파헤치며 린제나를 흘끔거렸다.
“마탑주님 또 왜 저러시냐?”
[옛 남친을 만나서 마음이 흔들리나?]“에이 설마, 우리 언니가?”
“이브를 만나서 그러시는 거겠지.”
“내가 가서 물어볼까?”
“어우야, 하지 마.”
린제나에게 다가가려는 파와 말리려는 파가 엉켜서 아웅다웅하는 사이, 린제나가 휙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엉겁결에 다 함께 린제나의 앞에 서게 된 마법사들이 당황해서 허리를 쭉 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반디가 번지의 옆구리를 퍽하고 치며 방긋 웃었다.
“그냥 언니가 싱숭생숭해 보여서요. 이브를 만나서 그러세요?”
린제나는 담뱃대를 아공간에 던져넣은 후, 마법사들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그 아이가 떠나기 전에 내게 해준 이야기가 있어.”
“무슨 이야기요?”
“너희, 헤일로라는 이름 기억해?”
뜬금없는 이야기에 마법사들이 의아한 얼굴로 눈빛을 교환했다.
“마탑 지하에 있는 마수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실 단순한 마수가 아니야.”
“단순한 마수가 아니라면, 복잡한 마수인가?”
반디의 말에 린제나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반디는 방긋방긋 웃었다가 린제나가 도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헤일로에 대해서 왜 자세히 알면 안 되는지 기억해?”
“사비나 언니가 믿음의 양식을 먹고 자라는 마수다,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그래, 믿음을 양식으로 삼아서 강해지는 존재가 또 뭐가 있는지 떠올려봐.”
“믿음을 먹고 강해지는 존재요? 어어, 정치인, 장사치, 사기꾼, 홀로 토끼 같은 아이들을 키우시는 어머니…….”
[흐음, 신?]“정답.”
마법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코를 돌아봤다. 에코가 눈을 굴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옛날에는 꽤 큰 종교였나 봐. 연합국이 테헤라 정교로 국교를 통일하며 기록을 다 없애버렸지만, 옛날에는 헤일로를 모시는 신전도 꽤 있었다고 해.”
린제나는 마법사들이 파헤치던 땅에 박힌 삽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으로 퍼진 마력이 흙과 돌을 우수수 걷어냈다.
그러자 땅에 묻힌 석상이 나타났다. 빛의 고리를 머리 주변에 둥글게 두르고 인자한 미소를 띤 석상은, 머리 아래가 없었다.
린제나는 삽으로 드러난 석상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런데 그 신전을…… 마법사들이 모조리 파묻어 버렸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