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8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82)화(187/207)
“마법사들이 신전을 파묻었다니… 왜 그랬지?”
[그러게, 질 나쁜 종교였나?]“고작 그런 이유로 마법사들이 손수 움직였겠어? 저거 봐.”
반디가 옆에 있던 번지를 가리켰다.
번지는 괴물 뱀에게서 얻은 비늘을 혼자 돋보기로 관찰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시선을 느끼고 비늘을 등 뒤로 잽싸게 숨겼다. 그리고 방어적으로 말했다.
“넘보지 마, 이건 내 거야.”
에코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서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놈들이 대다수였다.
[흠, 신전 쪽에서 먼저 시비 걸었나 봐. 아마 마탑에 숨어들어서 뱀 비늘이라도 훔친 게 아닐까.]“하아, 신이라면서. 몇백 년 전 일로 꽁해서 마탑주님 얼굴을 하고 다니는 거야?”
[좀생이 신이네.]반디와 에코의 이야기를 듣던 린제나가 발로 신상을 툭 쳤다.
“단지 복수 때문이라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은데…….”
잘린 신상을 내려다보는 린제나의 옆으로 반디가 다가왔다. 그녀는 친근하게 린제나의 팔을 감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런 걸 왜 생각해요. 어차피 이 세계를 떠나면 그만인데. 이런 건 기사단에게 떠넘기고 우린 얼른 가버려요, 응?”
잠깐 멈칫했던 린제나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녀의 시선이 잘린 신상의 목에 닿았으나, 머지않아 마법사들과 함께 등을 돌렸다.
***
헤일로의 교리는 무척 기묘했다.
‘신도가 신을 받아들이면 뜻을 이루게 되고, 신에게 자신을 공양하면 온 가족이 뜻을 이루게 된다고…….’
테헤라 정교가 국교가 되면서 헤일로의 종교는 사장되었다. 헤일로가 테헤라의 고위 사제들을 제물로 만들고 다니는 건, 그때의 원한 때문인 걸까?
‘헤일로가 신이었다니…….’
악마라고 생각했을 때와 상황 자체는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도 신이라고 하니 공연히 두려워져 잠을 설쳤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시녀가 내게 말했다.
“성녀님, 성녀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청한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빨리?
알현 요청을 거절하지 말고 목록을 받아두라고 말한 게 고작 어제 일인데.
“누, 누구신데요?”
내가 질문하기 무섭게 시녀가 리스트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한참 낯선 이름들을 부르던 시녀의 입에서 마침내 귀에 익은 이름이 나왔다.
“리하센 공작, 오멘 후작…….”
오멘 후작 부부!
‘아니, 이제 리하센 공작 부부라고 불러야 할까?’
대신전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통해 그들의 소식은 간간이 듣고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디아나님의 성격이 굉장하다는 얘기였다. 이전 회의에서 코튼 캔디를 즉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교와 정면충돌해서 부사제장님을 긴장하게 만드셨다지.
내가 기억하는 디아나님은 늘 기운 없이 공포에 질린 모습이라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원래는 당찬 성격이셨던 걸까. 어쩌면 공작저에서 큰일을 겪으면서 성격이 변하신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하는 사이 시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슈아겐 로만 경께서도 성녀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
‘그 남자도 왔구나.’
슈아겐 로만.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시대, 대사제였던 남자.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 세 사람, 다 불러주세요.”
***
먼저 온 것은 오멘 후작과 디아나님이었다.
“신의 아이를 뵙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얼떨떨하게 인사하며 두 사람을 살폈다.
잿빛 머리칼에 맑은 연회색 눈동자, 목에 새하얀 성물을 건 훤칠한 남자. 그 옆으로 짙은 갈색 머리에 예쁜 에메랄드 색 눈을 가진 당당한 인상의 귀부인이 보였다.
‘두 분 다 전에 비해 인상이 훨씬 밝아지셨네.’
혹시 나랑 엮여서 손해를 보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건강한 모습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미리 리하센 공작 부부의 평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공작 부부는 평소에 빈민 구제 활동 등의 선행을 꾸준히 쌓아왔고, 젊은 나이와 호감형인 외모, 긴밀한 부부 관계 등등으로 국민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디아나님이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초상화보다 실물이 훨씬 사랑스러우시네요.”
“…부인도요.”
“어머나.”
내 말에 디아나님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린 성녀가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한 태도다.
그들은 고위 귀족 사이에선 보기 드물게 수더분하고 친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지.’
화기애애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각 잡힌 새하얀 정복, 밝은 금발에 짙은 갈색 눈동자. 고고한 외양에 미소 띤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살폈다.
“성신의 아이를 뵙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슈아겐 로만.
‘무서워.’
얼핏 보면 서글서글한 인상이었으나, 고작 4살밖에 안 된 어린이를 앞에 두고 가늠하듯 살피는 시선부터가 날카로웠다.
로만은 떨리는 내 손을 잡고 기쁜 듯 웃었다.
“성신께서 내려 주신 깨끗하고 고귀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귀한 성녀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녀 아니고 마녀인데요…….’
하여간 이로써 할스테리어의 유력한 차기 대사제 후보가 모두 모인 셈이었다.
“대신전 앞이 정말 북적거리네요. 성녀님이 오신 이후로 할스테리어가 하루하루 살아나는 것 같아요. 부디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만 해주세요.”
디아나님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정말 신께서 보내신 귀인이 아닐 수 없군요. 할스테리어 전역이 신의 은혜로 가득 찬 기분입니다. 성녀님께 할스테리어를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데, 혹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로만 또한 친절히 미소 지었다.
“…무사히 살아 돌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멘 후작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내게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나를 찾아온 공통된 목적이 있었다. 마침 로만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다가올 대사제 선출식에 저와 함께 참석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대사제 선출식에, 성녀와 함께 참석하는 것.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난 지금 대륙에서 인기 최고조인 성녀지.’
나와 함께 선출식에 등장한다면 성녀의 선택을 받은 차기 대사제로 보일 것이다. 다들 그걸 노리는 거겠지.
“와아… 여기서 다음 대사제님이 나오시는 거예요?”
내가 신기하다는 듯 묻자, 슈아겐 로만이 눈을 빛냈다.
“후후. 그렇습니다, 성녀님. 만약 제가 대사제가 되면! 무시무시한 마녀들을 다 잡아들여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어우.’
슈아겐 로만은 마녀법 개정 찬성파의 수장이었다. 옛날부터 유구하게 마녀를 배척하는 정책을 밀어왔지.
나는 슬쩍 리하센 공작 부부 쪽을 돌아봤다.
리하센 공작 부부는 마녀법 개정 반대파의 수장이었다. 게다가.
‘나와의 인연도 있지.’
대신전 사람들에게 전해 듣기로, 두 사람은 코튼 캔디가 대사제 살인이나 리하센 공작저 방화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동은…….
‘여전히 나를 친구로 여기고 계셨구나.’
그 사실을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나는 리하센 공작 부부가 무슨 반박을 할지 기대하며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디아나님의 시선이 나와 딱하고 부딪혔다.
그녀는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크흠, 음.”
“……?”
그녀는 헛기침만 하고, 어색한 미소와 함께 침묵을 지켰다.
“…….”
“…….”
……어라.
‘왜 반박 안 해요?!’
디아나님을 바라보는 내 눈이 흔들렸다.
‘서, 설마 공작 부부도 슈아겐 로만의 말에 동의하시는 건가?’
최근 세상은 아기 성녀의 생환으로 떠들썩했다. 이 커다란 사건에 휘말려, 생각이 뒤바뀐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마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성녀가 살아 돌아온 사건…….’
그렇지 않아도 대사제 살인 사건으로 바닥을 치던 마녀에 대한 호감도를, 내가 확인 사살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의 이름값만큼이나 마녀들에 대한 혐오감도 드높아져 있었다.
‘그래서 할스테리어의 분위기가 급변하는 동안, 공작 부부의 생각도 변한 걸까.’
생각지 못한 상황에 내 몸이 작게 떨렸다.
산과 땅도 움직이는 와중에, 사람의 생각쯤이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할스테리어에서 내가 했던 일은… 정세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거구나.’
미래에 리하센 공작이 대사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미래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아나님이 태도를 바꿨다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조금 허탈하다…….’
목이 타서 물컵을 들었다가, 문득 다시 디아나님과 눈이 마주쳤다.
‘자주 시선이 마주치는 것 같네.’
별생각 없이 물을 들이켜다가, 나는 뒤늦게 흠칫했다. 아, 설마.
‘내 눈치를 보고 계신 건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가능성에 물컵을 내리고 디아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땀을 흘리며 내 쪽을 흘긋거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보니까 나, 최근에 마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피해자였구나……!’
게다가 아직 4살밖에 안 된 어린애였다.
‘내 앞이라 함부로 말을 못 하신 거구나.’
두 분은 어린 아들을 키우는 부모기까지 하니, 지금만큼은 정치적인 입장보다 내 기분을 살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나한테 심리 상담사까지 붙여줬으니까.’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 상담사가 붙었고, 나에게도 붙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빠는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해주지 않았다.
‘으음, 그러면…….’
조금만 등을 떠밀어줄까.
“마녀를 왜 전부 잡아들여요?”
“……네?”
내 말에 슈아겐 로만이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저를 공격한 마녀, 감옥에 있대요. 이제 잡을 필요 없어.”
“어…….”
내가 반박할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로만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또 다른 마녀가 성녀님을 공격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치만, 안 할지도 모르는걸요.”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이브는 다른 마녀 만나본 적 없어요.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