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8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83)화(188/207)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 슬쩍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슈아겐 로만의 얼굴에는 짙은 당황이 서려 있었다.
공작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놀라움은 긍정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기분 좋은 반전을 맞이한 것처럼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로만과의 대화에서 내 마음을 잘 읽어준 듯했다.
‘나는 마녀에게 죽을 뻔했지만, 마녀를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마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답니다.’
심지어 마녀 그 자체다.
나는 방 안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꼈다.
“하, 지만… 마녀가 쓰는 마법은 악마에게서 얻어낸 위험한 힘입니다. 지금도 코튼 캔디는 대사제를 죽이고도 죄 없는 이들 속에 감쪽같이 숨어들어 악행을 행할 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무시무시한…….”
‘그런 거 안 기다려요.’
내가 무어라 반박할지 고민하며 입을 열 때였다.
“그렇게 감쪽같이 숨을 수 있으니까, 마녀를 다 잡아들이라고 했다간 괜히 죄 없는 사람이 끌려가지 않을까요?”
나는 휙 하고 고개를 들었다. 당당한 얼굴로 로만에게 질문을 던진 디아나님이, 나와 눈을 맞추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코튼 캔디는 방화범이 아닙니다. 사건 당시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이델리가 실종되었고, 리하센 공작저에서 신원 불명의 사체가 발견된 이야기를 들으셨지 않습니까.”
디아나님의 말에 로만이 얼굴을 구겼다.
“그건, 당신들이…….”
이후로 한창 테이블에서 공방이 오갔다.
로만은 꽤 공격적으로 디아나님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디아나님은 공작저의 난리를 겪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각성한 듯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대꾸하는 디아나님의 모습에 나까지 호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주먹을 쥐며 생각했다.
‘미래는 바뀐다.’
리하센 공작이 새로운 대사제가 되어서.
***
신나서 먼저 축배를 들긴 했지만, 현재 할스테리어에서는 로만이 디아나님보다 인기가 높았다.
로만은 마녀법 개정 찬성파의 수장이었고, 살해당한 전 대사제 게릴의 애제자였으며, 게릴이 선파사로 나샤에 갈 때도 함께했다.
선파사는 어디에서나 살아 있는 헌신과 봉사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할스테리어의 선파사 사랑은 유별났다. 역대 대사제들이 모두 선파사 출신이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선파사로 파견된 경력이 없는 공작 부부는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아니,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큰 결격 사유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로만을 끌어내리고 디아나님을 밀어줄 카드가 있어.’
나는 그날 밤, 코튼 캔디로 변해서 공작 부부를 찾아갔다.
2층 침실 창문을 톡톡 노크하자 부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차, 너무 유령 같았다.’
창문을 한 번 더 두드리자 뒤늦게 나를 발견한 그들의 눈이 커졌다. 일순 창백해졌던 얼굴도 반가움으로 환해졌다.
“캔디 양, 무사했군요!”
디아나님이 창문을 열어서 나를 다급히 안으로 들였다. 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따뜻한 품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걱정이 많았는데…….”
“거,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아니야, 이렇게 무사히 있으니 됐지.”
“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캔디 양.”
나는 부부가 연신 쏟아내는 다정한 온기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볼을 붉혔다.
“아, 알려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나는 그들에게 가져온 메모를 주었다.
“밤부스의 숲에 가서 여기 적힌 기록물들을 달라고 하세요. 슈아겐 로만의 선파사 기록과 이델리의 연관성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
“…슈아겐 로만이 이델리와 관계가 있다고요?”
“이델리는 게릴 젠트스가 선파사일 때 생긴 사생아예요.”
“뭐라고?”
나는 그들에게 이델리에게 들은 내막을 설명해주었다. 게릴이 모녀를 버리고 자국으로 돌아온 일부터, 이후 이델리가 누명을 쓰고 갇힌 사이 그녀의 엄마가 사망한 일까지.
내 말에 공작 부부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 슈아겐 로만은 내막을 알면서도 묵인해주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럴 수가…….”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는 그들의 손에 가져온 메모를 쥐여주었다.
“저, 정말 고마워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음,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나는 초조하게 시계를 살피며 말했다. 대신전을 몰래 비우고 왔는데, 그새 그 많은 시녀 중 하나가 깰까 봐 걱정되었다. 창문가로 다가가려 하자 디아나님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또 만날 수 있는 거겠죠?”
그녀는 아쉬운 듯 녹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마녀가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나는 그 말에 멍하니 디아나님을 바라보았다.
나도 꿔본 적 없는 꿈을 꾸는 나의 친구를.
“디아나님, 저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은 괴로움만 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확답하는 대신 그녀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적어도 이 저택에선, 늘 자유로웠어요…….”
***
공작 부부는 내 조언을 생각 이상으로 잘 이용한 것 같았다.
내가 공작저를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로전이 시작되었다. 전 대사제 게릴과 함께 파견되었었던 사제, 이델리를 감시했던 간수, 대사제의 옛 보좌관 등이 게릴의 행적을 고발하고 나섰다.
‘대단한 분이야.’
그 사람들을 찾는 것까지는 내가 넘긴 정보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나서게 만드는 건 리하센 공작의 역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일을 벌이다니.
할스테리어가 다시금 게릴 젠트스의 이름으로 뒤덮였다.
“전 대사제가 자국에 약혼녀를 두고 선파사로 가서 나샤의 마을 처녀를 꾀어내 첩처럼 삼았다는 게 정말이야? 게다가 아이를 뱄는데 버리고 혼자 돌아와 버렸다고?”
“그때 함께 갔던 로만님은 스승의 불륜을 보고도 묵인했대. 희생과 봉사의 상징이라며 찬양했더니, 그따위 짓을 하고 있었어!”
“마녀 이델리가 전 대사제님의 사생아였다니…….”
“처음에는 마녀도 아니었다더군. 친부를 찾아왔다가 마녀 누명을 쓴 거라지.”
“감옥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국경 밖에서 사망했다니……. 얼마나 한이 서렸을까…….”
물론 그 증언을 믿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다들 미쳤어? 게릴님이 그러셨을 리 없잖아!”
“리하센 공작이 사제들에게 거짓 증언을 시키는 것이다, 쯧쯧.”
“대사제가 되려고 죽은 스승을 욕보이다니, 저게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할 일이냔 말이야!”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는데?”
게릴과 함께 선파사로 갔던 사제가 게릴의 일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는 이델리의 엄마, 레이나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일기의 필적은 게릴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게다가 사제가 그 모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줄곧 난민촌에서 봉사를 해왔던 사람이라 신빙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지금 할스테리어는 폭로를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로 나뉘어 대립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모든 증인의 말이 일치하고 증거품까지 나온 상황이지만, 그들이 믿기 어려워하는 이 상황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대사제씩이나 되었던 사람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걸 믿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나샤 출신 꼬마들 말로는, 나샤에선 딱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난 오히려 사람들이 놀라서 더 놀랐어.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선파사들이 난민으로 받아주겠다면서 앞에서는 자비를 베풀고 뒤에서는 폭군처럼 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걸.”
어쩌면 이델리의 엄마가 원해서 대사제의 첩이 된 게 아닐 수도 있는 뜻이었다.
“나샤는 마수가 우글거리는 동네니까. 나샤민에게 선파사는 목숨줄을 쥔 사람이나 다름없거든.”
“우리 부모님도 나를 할스테리어로 들이려고 온갖 짓을 다 했어.”
아이들의 덤덤한 말에 입 안이 씁쓸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죽음의 원한은 피로 갚았으니까.”
“…뭐라고?”
“나샤의 미신 같은 거야. ‘죽음의 원한은 피로만 갚을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묘비 위에 원수의 피로 채운 술잔을 부어주면 악령이 되지 않는대.”
나는 작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으스스한 풍속이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을 등쳐먹다니.’
이번에 조금이라도 병폐가 알려져서 다행이었다.
물론 아직 전 대사제를 믿는 사람도 많았고 오히려 폭로에 나선 사제를 테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겐 카드가 하나 더 있지.’
***
나는 리하센 공작의 손을 잡고 대사제 선출식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한 번 더 뒤집어졌다.
“신의 아이를 뵙습니다.”
“시, 신의 아이를 뵙게 되어, 영광…….”
마녀법 개정 찬성파 쪽이든, 반대파 쪽이든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나는 슈아겐 로만이 있는 방향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고 디아나님께만 꼭 붙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슈아겐 로만의 인사도 다 거절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저 사람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데 이 행동이 생각지도 못하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출식에서 드러난 성녀의 선택!>
<슈아겐 로만의 굴욕>
<신의 아이는 무엇을 보았는가>
행진 내내 모든 국민에게 손을 흔들어준, 순하고 다정한 아기 성녀.
그런 인상으로 박힌 4살짜리 성녀가 로만의 인사를 무시했다는 게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나 보다.
대륙에서 아기 성녀의 명성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시기.
내 선택은 마치 신의 선택처럼 부풀려졌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들이 전 대사제의 폭로전을 믿으며 슈아겐 로만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신의 아이가 선택한 대사제, 디아나 리하센>
언론이며 사교계에서도 성녀의 선택이 차기 대사제 선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내 선택이 증인들의 말과 증거품보다 큰 효력을 발휘했다고…….’
어느 정도는 의도한 상황이지만, 이 정도로 일이 커지니 당황스럽다.
대신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다 같이 내 이름을 연호할 때는 그저 무서웠는데.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게 이렇게 큰 권력이 되는구나.
유명 인사라는 건 이런 장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믿음을 먹으며 강해지는 존재.’
헤일로와 그 추종자들이 이 권력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증인과 증거, 혹은 진실 그 자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믿음.
그것을 악신의 손에 쥐여줘서는 절대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