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85)화(190/207)
혹시나 남작님이 불안해하고 있다면 니르의 유언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또…….
나는 슬쩍 아빠의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혹시 남작님께 가면, 뭔가 드릴 수 있을까요?”
“음?”
“가, 감사 인사로…….”
니르겐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러니까 나도 그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예전에 부길드장 레온에게 외아들인 니르겐이 아픈 아버지와 휘청거리던 가문을 위해 많은 돈을 써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사라진 니르겐을 걱정하고 있을 펠멋 남작가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막상 부탁하려니 입이 안 떨어졌다.
그때 아빠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 그래야지.”
“저, 정말요?”
“그래, 음….”
아빠는 단단한 턱을 쓸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여 공작위를 내리고 금으로 만든 동상을 세우게 하면 될까.”
“네…?”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교황 권한으로 타국의 귀족에게 작위를 내리라고 시키는 건 구국의 영웅이 났을 때나 가능한 거 아닌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빠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성녀를 구했으니 나라를 구한 것이나 다름없지.”
아니요.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것과는.
‘침착한 얼굴로 말씀하시니 진심 같아 보이잖아요.’
니르겐이 돌아온다면, 저런 식으로 화제가 된 걸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 그러지 말구요…….”
나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정상적인 대답을 끌어냈다.
“흐음, 그렇다면 성물을 주는 건 어떨까.”
아빠는 품에 지니고 있던 성물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교황이 소유한 성물은 순도 높은 신성까지 품고 있어, 귀한 성물 중에서도 상등품밖에 없었다. 그런 보물을 흔쾌히 내준다는 말씀에 나는 입을 벙긋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감사, 합니다…….”
스스로 일군 재산도 없는 어린애 처지에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니르겐을 만날 수 없으니 그의 가족에게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내 대답을 들은 아빠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준비시키도록 하지.”
아빠는 뒤따라오던 기사에게 지시를 내린 후, 마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나는 펠멋 남작가에 가는 동안 마음을 다졌다.
‘남작님을 만나서 니르겐에 대해서 여쭤보자. 남작님도 궁금한 게 많으실 테니 제대로 알려드리고, 니르겐이 남긴 말을 전해주고, 감사를 표시하는 거야.’
나는 의지를 다지며 마차에서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펠멋 가문의 집사와 식솔들이 부리나케 우리를 맞았다.
“제국의 태양과 신의 아이를 뵙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살짝 긴장한 채 인사를 마치자, 집사의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말했다.
“집사, 교황 성하와 성녀님은 내가 모실 테니 먼저 가서 아버지를 도와주겠어?”
그러자 집사가 깍듯이 대답했다.
“네, 도련님.”
도련님?
내가 의아하게 살피자 그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제 이름은 사이론 펠멋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네에, 사이론…….”
‘펠멋이면, 니르겐의 형제인가? 아니, 그는 외아들이라고 들었는데. 친척?’
약간의 의문을 가진 채,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사이론의 안내에 따라 저택에 발을 들였다.
“제국의 태양과 신의 아이를 뵙습니다.”
펠멋 남작은 집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지병이 있다는 남작은 깡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인상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얼굴색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전에 방문했을 때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니르겐은 어머니를 닮았던 것 같네.’
펠멋 남작은 니르겐과 눈 색이 같을 뿐 닮은 곳이 별로 없었다. 색이 같은 눈조차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니르겐의 붉은 눈동자는 새까만 밤의 어둠 속에서도 값비싼 루비처럼 빛을 발하곤 했는데, 남작의 눈은 조명 아래에서도 총기가 없어 보였다.
니르겐의 일로 많이 힘든 것인지, 그의 몸에는 알코올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 또한 탁하게 갈라진 채였다.
나는 아빠와 남작이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사이론을 눈짓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분은…….”
“아, 제가 새로 들인 아들입니다.”
“……?”
아들을 새로 들였다는 게 무슨 소리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입양, 하신 건가요?”
“예, 친척 아이였는데 양자로 들였습니다. 니르겐이 세상을 떠났으니 저를 도와 가문을 관리해줄 아들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물려줄 작위는 없지만, 재산은 꽤 있거든요.”
“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괜히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찻잔을 드는 손이 잘게 떨렸다.
‘펠멋 남작은 니르겐이 죽었다고 생각하시는구나.’
사실 나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곧바로 후계자가 될 아들을 입양하다니. 마치 가구라도 교체하는 것 같은…….
‘아, 아니야. 어쩌면 그가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일 수도 있지.’
나는 퍼뜩 고개를 저었다.
추도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감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재단하겠는가.
공연히 앞에 놓인 허브차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한 후 다시 펠멋 남작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시지.’
나는 니르겐의 마지막을 본 목격자였다. 그러니 가족들을 만나면 질문 공세가 쏟아지리라고 생각해 잔뜩 긴장한 채로 방문했다. 그런데 펠멋 남작은 입을 뗄 기미가 없어 보였다.
혹시 어린 나를 배려해주시는 건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궁금하신 건 없나요?”
“성녀님에 대해서요?”
펠멋 남작이 눈을 끔뻑였다.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에 나는 약간 당황해서 덧붙였다.
“아, 아뇨, 니르, 겐에 대해서요…….”
“아, 안타깝게 되었지요. 그래도 성녀님의 곁에서 삶을 마감했으니 그 아이에게는 잘된 일입니다.”
그러고는 담백하게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
어쩐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나는 괜히 다과를 집어 먹어가며 속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니르겐은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요?”
“음, 저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네?”
의아하게 되묻자 남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니르겐이 여기에 온 건 겨우 6년 전이거든요. 성녀님도 그가 제 친아들이라고 생각하셨군요.”
“그, 그랬구나.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눈 색이 같아서인가. 니르겐도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고…….”
남작의 얼굴에 잠깐 불쾌한 기색이 스친 듯했지만, 지금은 그런 데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니르겐이 입양아였다고요? 그, 그럼 어디서 왔는지는 아시나요?”
“으음, 글쎄요.”
‘아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고?’
나도 모르게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지 펠멋 남작이 변명했다.
“녀석이 원체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아서…….”
“숨긴 것을 보면 나샤 출신 난민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양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었는지, 사이론이 덧붙였다. 그들의 겸연쩍어하는 표정을 보고 있자 기분이 이상했다.
니르겐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도 핑계로만 들렸다. 그가 평소에도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긴 했지만,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 캐물어도 출생지 하나 말 안 해줬을까.
나는 솟아나는 부정적인 추론을 떨치려고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남작에게 니르겐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니르겐을 어쩌다가 입양하시게 된 거예요?”
“아, 그건…….”
출신도 모르는 사내애를 입양했다는 게 이상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는지, 남작은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사실, 집안이 힘들 때 녀석이 도와준 대가로…….”
니르겐이 펠멋 가문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었다. 그럼 남작가의 빚을 갚아주고 그 대가로 펠멋 남작의 아들이 되었던 걸까.
하지만 남작이 니르겐을 입양했다던 6년 전이면 니르겐도 14살 전후였을 텐데, 그때 무슨 능력으로 가문 하나를 일으킨 건지는 차치해 두더라도.
‘일반적인 부자가 아니라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였구나.’
상상도 못 한 진실에 말문을 잃은 사이, 남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작위와 부를 거래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니르겐이 평민 신분으로 귀족사회에 입성할 수 있었던 건, 펠멋 가문이라는 배경이 있었던 덕이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셈이죠.”
상속도 안 되는 준남작위를 말하는 것일까.
곁에 앉아 있던 아빠가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성녀의 나이는 고작 네 살이다. 말을 가려서 해줬으면 좋겠군.”
“아, 죄송합니다.”
잠깐 응접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억지로 화제를 돌릴 기분도 들지 않아, 나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니르겐의 방에 가봐도 돼요?”
“아, 물론이죠.”
‘니르겐이 쓰던 방에 가면 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양해를 구한 뒤 집사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니르겐의 방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
미로같이 이어진 복도 안쪽의 길드장실 테이블 앞에 생각을 읽기 힘든 얼굴로 앉아 있는 니르겐을 떠올리는 건 아주 쉬웠다. 하지만 왜인지 환한 빛이 쏟아지는 방에서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니르겐의 모습은 어떨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집사가 문을 열자, 나는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마음을 안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
그런데 도착한 방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