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88)화(194/207)
이름을 부른 직후, 린제나가 휙하고 등을 돌렸다.
순간 아인은 ‘설마.’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린제나는 짜맞추기라도 한 듯 그의 우려대로 행동했다.
그녀가 그대로 반대편 길로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슴푸레한 달빛만이 발밑을 밝혀주는 밤, 린제나는 울퉁불퉁한 바위 더미를 고양이처럼 훌쩍훌쩍 넘었다.
하지만 대륙 유일의 성 에퀴테스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아인은 바위산 위를 평지처럼 뛰어와, 어느새 린제나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린제나!”
“…….”
“잠깐 이야기 좀 해.”
거리를 좁힌 아인은 최대한 간곡한 목소리로 린제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멈춰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린제나는 걸음을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빨라지기만 했다.
마치 빚쟁이라도 마주친 사람처럼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에 아인은 헛숨을 내뱉었다.
‘또 이런 식으로 도망치겠다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린제나.’
‘다른 분과 헷갈리신 것 같아요.’
지난번에 마젤란에서 린제나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아인을 처음 만난 양 굴며 자연스럽게 도주했다. 아인은 눈앞에서 그녀를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목이 쏠리면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결국 마녀인 린제나였기 때문에.
“하.”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모두 내려보내고 단둘인 상황이다. 이런 때조차 안면몰수하고 도주하는 뒷모습을 보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이야기만 조금 나누자는 것뿐인데.”
“교황 성하와 나눌 이야기는 없는데요.”
드디어 돌아온 대답조차 냉랭하기만 했다. 딱딱한 말투와 격식 있는 호칭. 마치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정하는 것처럼.
“정말 너무하는군.”
절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아인은 다시 한번 린제나를 만난다면 그녀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진중하게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만을 쏟아내지 않고, 침착하게.
그러나 막상 대화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도망치는 꼴을 보니 슬슬 열이 올랐다.
“둘만 있을 때조차 교황이라 부를 필요는 없을 텐데.”
“…….”
거의 달리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걷는 린제나의 뒤를 쫓으며 아인이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칠 건가?”
“당신이 그만 쫓아올 때까지.”
하, 아인이 작게 웃음을 뱉었다.
“나와 체력 싸움을 하잔 건가? 나쁘지 않지.”
“…….”
“이 바위산을 몇 바퀴나 그렇게 달릴 수 있을지 궁금한데.”
도발하는 듯한 목소리에, 드디어 린제나가 우뚝 멈춰 섰다.
아인을 돌아보는 분홍색 눈동자는 화가 난 듯 날카로웠지만, 맑고 아름다웠다.
“장난은 그만해, 아인츠베른.”
“장난이라.”
“니르겐 펠멋을 수색하러 온 거 아니었어? 할 일이나 마치고 얼른 제국으로 돌아가. 수많은 신도와 딸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잠깐 그 예쁜 눈동자에 현혹되었던 아인은, 린제나의 뻔뻔한 목소리에 전의를 되찾았다. 아인은 피로한 얼굴로 조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망만 안겨주는군. 이렇게 비겁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내가 비겁하다고.”
“그래, 지금까지 내게 한 말 중에 지킨 게 있기는 한가?”
“네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고?”
“하, 그래.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지. 하지만 난 네가 적어도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길 바랐다.”
“하.”
린제나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렸다.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
대체 무엇을 지키고 있는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게다가 저 뻔뻔한 물음은 뭔가.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나누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인은 끝내 목소리에 묻어나는 야속함을 숨기지 못했다. 침착하려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 말없이 너를 떠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약속하는 거겠지.’
‘그래, 만약 떠나더라도 인사 정도는 하고 갈게.’
그렇게 말해놓고서 불쑥 사라져버린 사람이 누군가.
약속했던 인사는 없었다. 흔한 작별 인사 하나 없는 이별은 혼자 버터야 했기에 더 혹독했다.
그런데 간신히 다시 만난 린제나는 뻔뻔한 태도로 물었다.
“고작 그거 때문에 그래?”
“고작 그거라고?”
아인의 얼굴에 노기가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빈 자리를 채운 것은 허탈함이었다.
“그래, 너에겐 나와 보낸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었나 보군.”
“너야말로 한때의 치기로 일을 그르치지 마.”
“치기라.”
아인은 린제나가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 아무런 말이나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쓴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런데 린제나는 대답은 진지했다.
“그래, 너. 약혼녀도 있잖아.”
약혼녀는 무슨 약혼녀?
아인은 어이가 없어서 곧바로 반박하지도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런데 린제나는 자신이 허를 찔렀다고 생각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등을 돌렸다.
“린제…….”
쿠구구구구!
그때, 갑자기 발밑이 흔들렸다. 처음이라면 당황스러웠겠지만, 이 일대에서는 이미 세 번째로 겪은 일이었다.
‘지진.’
“젠장, 또 지진이야?!”
린제나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던 아인의 눈이 커졌다. 린제나의 등 뒤로 바위산이 또다시 토석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 또한 저번과 같은 양상이었다.
산사태.
“린지!”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아인이 린제나를 끌어안았다.
그 직후, 바닥이 무너졌다.
***
먼 곳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는 물소리, 숨소리.
젖은 돌 냄새와 살냄새. 전신을 받치는 따뜻하고 단단한 촉감.
“으음…….”
린제나는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어둠에 적응된 눈이 어렵지 않게 컴컴한 주변을 식별해냈다. 그러나 멀쩡한 시력이 무색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온통 돌뿐이었다.
‘거의 바위산에 파묻히다시피 끼었는데. 하마터면 생매장될뻔했군.’
다행히 머리 주변은 공간이 남아서 압사하지 않은 게 용한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린제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가, 돌이 아닌 존재를 발견했다.
“…….”
“…….”
아인츠베른이 침착하고 고요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눈이 기묘할 정도로 가깝다는 게 문제였다.
약 5cm 전방 정도로.
‘뭐지?’
린제나는 흠칫 놀라 몸을 빼려고 했으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등 뒤는 돌이었다.
그녀의 몸은 바위산에 반쯤 파묻히다시피 끼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바위산이 아니라 아인의 품 안에 갇힌 모양새였다.
두 사람은 바위틈에서 마치 완벽한 퍼즐 한 쌍처럼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주, 주변을 막은 돌을 부숴야…….’
린제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아인이 팔을 들었다. 그는 허리춤에 찬 칼을 빼내기 위해 손을 더듬었다.
“으앗!”
하지만 같은 위치에 린제나의 허리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자, 잠깐만, 읏.”
“…….”
“아니, 움직이지 좀 마!”
린제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얼굴에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당황한 그녀가 아인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바르작거리자,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야말로 가만히 있어라.”
린제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청회색 눈동자와 경직된 저음으로 내뱉는 명령어의 조합은 위압감을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협적으로 느끼기에는 아인의 얼굴이 너무나 달아올라 있었다.
‘저러다 울겠다.’
린제나는 방금까지 분명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동요한 사람을 앞에 두니 상대적으로 침착해지는 기분이었다.
“알겠어… 가만히 있을 테니 진정해.”
그래서 린제나는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인은 잠시간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린제나가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자, 의심을 거두고 검을 든 손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파묻힌 바위 틈새로 칼날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린제나는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 놓인 아인의 얼굴이 한 곳에 집중하듯 차분해졌다.
린제나는 의외로 푹신하던 아인의 가슴이 단단해지고, 맞닿은 몸의 근육들이 일제히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아인이 반대쪽 팔을 뻗어 린제나의 뒷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보호하듯 감싸 안았다. 린제나는 순순히 아인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기다렸다.
쿠구구구!
곧 강렬한 빛과 함께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돌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린제나는 전신을 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떨어져도 괜찮아.”
“휘유.”
린제나는 살짝 어색한 동작으로 아인의 품에서 벗어났다.
팔랑팔랑 손부채를 흔들며 밭은 숨을 몰아쉬는 옆얼굴이 살짝 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