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1)화(197/207)
아인과 린제나는 동시에 침묵했다. 지하에 갑자기 펼쳐진 드넓은 공동과 그 한복판을 차지한 거대 꼬리.
“저런 거, 본 적 있어?”
린제나의 물음에 아인이 고개를 저었다. 주기적으로 토벌전에 나서는 아인조차 본 적 없는 마수.
혼란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린제나의 머릿속에 문득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갈라진 땅 아래로 그녀의 몸이 추락하던 그 순간.
벼락처럼 내려치는 감각 너머로 일순간 비친 괴물의 얼굴.
“헉…….”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었다.
까마득한 무저갱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
정신을 차리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착각이라 치부했었는데.
“그때 느꼈던 힘의 정체가 게 저거였나?”
“…저걸 느꼈다고?”
린제나는 아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꼬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이상했지만, 저 거대한 마수에게서 지금은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이상했다.
“린제나.”
아인이 만류하듯 이름을 불렀지만, 린제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아인이 한숨을 삼키며 그녀를 뒤따랐다.
괴물의 꼬리 쪽으로 다가간 린제나는 위압감에 호흡마저 멈췄다.
멀리서도 알았지만, 앞에 서자 꼬리의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본체의 정체를 가늠할 수도 없게 하는 거대한 꼬리의 표면은 수천 개의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버릴 새카만 비늘들은 갓 바다에서 잡아 올린 조개껍데기처럼 윤기가 흘렀다.
“와…….”
린제나는 정신없이 세세한 특징점을 눈에 담으며 마법으로 만든 빛의 구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치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검은 비늘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차르르 움직였다. 빛을 반사하며 물결치듯 일어서는 비늘 하나하나가 검은 오닉스 보석처럼 반짝였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린제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비늘을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눈에 익었다. 이 공간도, 유선형의 아름다운 꼬리도, 이 비늘까지.
“설마.”
탄식 같은 목소리에 아인이 린제나를 돌아보았다.
분홍빛 눈동자에 경악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드래곤?”
“…드래곤이라면, 전설 속 신수 말이야?”
아인이 황당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때 마수의 꼬리가 크게 움찔했다.
“린지!”
린제나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인이 그녀를 덮쳤다. 두 사람의 몸이 한데 엉켜 바닥을 구른 직후.
쿠웅!
꼬리가 벽을 후려치며 공동이 커다랗게 울렸다.
지축이 다 흔들리는 충격 속에서, 주변이 훅하고 어두워졌다. 방금 그 공격으로 린제나가 만들어낸 빛의 구가 깨진 듯했다.
아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부러 네 빛을 노린 건가?”
“아마도.”
린제나의 선선한 대답에 아인은 몸을 일으켰다. 예리한 청회색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장소가 불리하군.”
꼬리를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벌써 천장에서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마수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이만한 크기의 짐승이 움직인다면 산이 크게 뒤흔들릴 것이다. 안 그래도 간헐적으로 산사태가 일어나서 지반이 약해져 있는데…….
“아니, 혹시 산사태도 이 마수 탓이었던 건가?”
“…그럴듯하네.”
린제나의 동조에 아인은 숨을 내쉬었다.
“일단 여기에서 나가는 게 최우선이겠어.”
아인이 성검을 빼 들었다. 벽을 부술 때 줄곧 그랬던 것처럼 그가 검에 권능을 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일순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위압감에 아인이 행동을 멈추었다.
“…….”
“…너도 느꼈어?”
린제나의 물음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확신했다.
“분명해, 방금 저 괴물이 공격 태세를 취했었어.”
“그렇다면…….”
마법으로 만든 빛을 가까이 댔을 때 한 번, 그리고 성검에 권능을 두르려고 했을 때 한 번.
“설마, 마법과 권능을 감지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원래 마수가 그런 능력이 있나?”
“마수는 그렇지 않지.”
린제나의 대답에 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린제나는 저게 일반적인 마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드래곤, 테헤라 신이 숨결을 불어 만들었다는 신수.
신성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 전설 속 생물이라면, 권능을 감지한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존재하는 거였나?”
“눈앞에 있으니까, 그렇겠지.”
“…저게 드래곤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
아인이 의심스럽게 린제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저 꼬리를 들여다보자마자 드래곤이라고 말했다. 마치 그것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당연한 의구심에 린제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드래곤이 살았던 세계에 가본 적이 있거든.”
“드래곤이 살았던 세계?”
“그래, 믿기 힘들겠지만…….”
린제나는 제가 처음으로 중간계에 떨어졌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요한 이세계에 남은 외계 생명체의 흔적들. 그들이 살았던 도시와 그곳의 벽화들에 남은 그들의 모습을.
인간과 비슷한 외형에 뾰족한 귀를 가진 종족, 혹은 손바닥만 한 몸체에 날개를 가진 종족들.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전설의 신수, 드래곤의 흔적까지도.
“드래곤 레어. 드래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이곳과 비슷했어. 내가 본 건 전투로 많이 파괴된 모습이었지만 말이야.”
생명체가 살았던 세계라는 것을 확인하고 마탑의 이주 계획을 세웠던 과정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서 린제나가 피식 웃었다.
믿지도 않을 이야기를 열심히 털어놓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이라도 남은 것처럼.
그런데 아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중간계에 갈 거라고? 여길 완전히 떠난다는 건가?”
린제나는 눈을 깜빡였다. 설마, 믿는 걸까.
“그래, 너희 테헤라 신도들이 싫어하는 마녀들은 다 떠날 테니 이제 걱정하지 마.”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슬쩍 덧붙였다.
“기쁘지?”
무심코 시험하듯 묻고서 린제나는 즉시 후회했다. 아까부터 우스운 말만 골라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인의 눈에 린제나의 태도는 마냥 유연하고 장난스러워 보였다. 당연히 긍정하리라는 듯 턱을 치켜드는 예쁜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기쁠 리가 없잖아.’
그러나 떠오른 생각을 곧장 입 밖으로 꺼내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아인은 심호흡과 함께 린제나의 질문을 무시하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수라면 권능을 감지하는 것도 납득이 되는군.”
“마법과 권능에 반응한다면 우리 둘 다 발이 묶이는 셈인데, 어쩌면 좋을까.”
전투 중에 무너진 암석들이 그들이 걸어온 길목을 막고 있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지금까지처럼 성실하게 벽을 뚫는 방식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겠군.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아인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힘을 회복한 후, 일격으로 천장을 무너뜨리는 거야. 드래곤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단숨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거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그러면 결국 드래곤을 자극하게 될 거야. 여기서 빠져나가자마자 화난 드래곤이 쫓아올지도 모르는데, 잘 도망칠 수 있겠어?”
“…….”
아인이 잠시 말없이 린제나를 눈에 담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무채색 눈동자에 린제나가 묘한 꺼림칙함을 느끼고 입을 열려는 찰나.
“그래, 넌 내가 놈을 상대하는 틈을 타서 도망쳐라.”
아인의 선언에 린제나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저 드래곤과 혼자 맞서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마수는 언젠가 인간을 공격한다.”
아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이미 지진과 산사태를 일으켜서 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뻔했어. 신수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전설의 내용일 뿐, 내 눈에 보이는 건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마수다. 그러니까 여기서 처리하겠다는 거야. 이건 파괴의 권능을 타고난 교황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린제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입만 벙긋거렸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정말 혼자 싸우겠다고? 토벌전을 벌일 거면 기사단이라도 끌고 오든가. 바로 아랫마을에 있잖아?”
“됐어, 기사단은 있어 봤자 어차피…….”
아인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차분해져 있었다.
“성신을 뜻을 받드는 것이니 그분께서 나를 수호해주실 거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쉬지 그래.”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적당한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는 것이었다.
린제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생각했다. 성신은 얼어 죽을.
“성신은 얼어 죽을.”
그리고 린제나는 생각한 것을 고스란히 입으로 뱉어냈다.
“얘는 교황씩이나 되었다는 놈이 왜 이렇게 자기 몸을 가볍게 던지고 난리지? 그 사이비 종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디? 무시무시한 마수를 보면 혈혈단신으로 뛰어들고 봐라? 그게 전쟁 영웅이야? 그냥 광신도지.”
“못 들어주겠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원색적인 비난에 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그 입버릇은 전혀 변하지 않았네. 나를 모욕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성신 테헤라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지켜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결코 가볍게 몸을 던지는 게 아니야. 내게는 신성 제국의 황자이자 종교 최고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하, 그래서 개죽음을 자처하겠다고? 참 고결한 사명감 나셨네!”
린제나는 있는 대로 비꼬면서도 자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미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놓고 신경을 긁는 린제나의 목소리에 아인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그래, 당연히 고결해야지. 단지 사명감만으로 목숨을 던지는 일에, 그것마저 없으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던 아인이 흠칫 멈췄다.
린제나도 잠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야, 됐어.”
짧은 침묵 뒤에, 아인이 입을 열었다.
“그냥… 피차 피곤할 테니까, 이만 쉬어. 더 이상 너와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아인이 손으로 얼굴을 덮기 직전, 린제나는 손 틈 사이로 아인의 표정을 보았다.
지친 듯 흐려진 얼굴에는 공들여 세웠으나 밀물이 차면 쉬이 녹아내릴 모래성의 위태로움이 드러나 있었고…….
테헤라 정교의 교황이나 신검(神劒)의 주인인 성 에퀴테스가 아니라,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앳됨이 보였다.
그녀의 가벼운 장난에도 일일이 얼어붙던 요령 없는 남자.
‘아인,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결실도 없을 거야.’
그리고 그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입술을 맞춰오던 간절하고 맹목적인 시선. 그 어느 날, 아인츠베른의 눈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