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3)화(199/207)
입술이 겹쳐진다.
맞부딪히는 살결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인은 자신을 절제력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은 아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고 그는 모든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무언가를 강렬히 욕망해본 적은 없었다.
욕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인의 손이 린제나의 뒷머리를 감쌌다. 두 사람의 호흡이 섞였다. 아인은 린제나를 통해서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처럼 가쁘게 그녀를 갈구했다. 설탕을 처음 맛본 아이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한 번 눈 뜬 이상 멈출 수가 없다. 이 체온을, 이 촉감을 얼마나 그리고 그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닿아 있는 순간에도 바닥 모를 허기는 덜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랜 갈증 끝에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꿈을 꾸는 듯했다. 아무리 삼켜도 채워지기는커녕 배 속까지 바싹바싹 말라간다. 아인은 다급한 손으로 린제나의 어깨를 밀어냈다.
“왜.”
아인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잠깐 말을 골랐다. 손등으로 입술을 누르면서 화가 난 듯 린제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생각으로 한 거야?”
“아인.”
“말없이 나를 떠나 놓고서.”
씨근거리면서 내뱉은 물음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는 답을 원하는 것처럼 린제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답을 주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뭐라고?”
키스한 직후에 들을 수 있는 최악의 발언이었다.
아인은 순간 울컥해서 물었다.
“너한테는 이런 게 가벼운 일인가 보지?”
“아인, 나는….”
“린제나, 이제는 너를 모르겠어.”
“…….”
“내 앞에 있는 게 대체 누군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대체 왜 이렇게 내게……!”
고함을 치려던 아인은 주먹을 말아 쥐고 이를 악물었다. 감정을 삭이면서 제가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려고 애썼다. 충동적으로 입맞춤에 응한 직후에 또 충동에 넘어가 상황을 그르칠 순 없다는 일념으로.
한참 후 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 약병을 여태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지.”
한참 후 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내게 증표 같은 거였어. 린제나 그레인저가 최소한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마녀는 아니라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 말이야.”
“그건…….”
“그래, 비록 통일절 연회에서 네가 나를 중독시키긴 했지. 하지만… 나를 죽이지는 않으려고 해독제를 가져왔어. 내가 테헤라 정교의 차기 교황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도.”
린제나 그레인저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아인을 속이고 독을 썼지만,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어린아이인 성녀를 학대한다고 오해했을 때는 화가 나서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렌제나가 마녀라는 걸 알았을 때는 놀랐지만, 그녀는 좋은 사람 같았다. 다혈질이지만 의리 있고, 유쾌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인은 마녀에 대해서 알려진 모든 정보가 오해와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너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점도 없었지만, 아인은 린제나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럴 거면 말없이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대체 왜 했던 거지?”
“사정이, 있었어.”
“…이브엔나, 그 아이도 말을 못 하더군. 충격을 받은 아이를 더 다그칠 수도 없었어. 하지만 포기가 되지 않아서 계속 사람을 시켜 너를 찾았다. 네 위치는 알아내지 못하고 괜히 무서운 악명만 듣게 되었지만.”
“…….”
“사실은 너를 만나면 헛소문이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는데 말이야. 터무니없는 누명이라고.”
아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젠 내가 너에 대해 뭘 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군.”
“…….”
“왜 그랬던 거야? 그들이 네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아인이 쏟아내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린제나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어떤 이유든, 살인은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그래, 그랬지.”
아인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다 열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듣고 싶다.”
“…….”
“이유라도 들려줄 수 없겠어?”
린제나는 말없이 아인을 바라보았다.
세계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겁 없이 진실에 손을 뻗으려는 귀하신 분을.
그는 제국의 태양이라는 신탁과 함께 태어나 정해진 의무를 성실히 따르며 평생을 고귀하게 살아온 제국의 황자, 테헤라 종교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샤민으로 태어난 마녀의 이야기 따위를 그가 저렇게 간곡히 요청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린제나는 어쩔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래, 이건 어디서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지만…….”
가장 오래된 친구인 사비나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마탑 식구들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늘 내게 경고했지.”
***
“린지, 엄마랑 약속하는 거야, 절대 마법을 쓰지 않기로.”
린제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소 띤 얼굴에서 눈에 익은 두려움이 읽혔다. 린제나는 아랫입술을 씰룩했다.
조심스럽게 뻗어오는 손을, 짝 소리 나게 쳐냈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친엄마도 아니면서.”
“…그게 무슨 말이니?”
당황한 듯 되묻는 목소리에 린제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로토가 그랬어. 신관은 마녀를 낳을 수 없으니까 친엄마 아니라고!”
“…설마 그것 때문에 로토에게 마법을 쓴 거니?”
린제나가 입술을 꾹 닫았다. 그러자 다급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린지는 엄마가 배 아파서 낳은 딸이야.”
“…….”
“이 눈을 봐, 똑같이 생겼잖아. 응?”
여자가 린제나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린제나는 슬쩍 눈을 굴렸다. 그녀와 똑같은 분홍색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신관이 어떻게 마녀를 낳아?”
“글쎄, 잘 모르겠지만 아빠를 닮은 게 아닐까.”
“자꾸 이상한 소리 해. 남자가 어떻게 마녀야?”
“그런가.”
그 여자가 당황한 얼굴로 린제나를 다독거렸다.
“조상님 중에 마녀가 있었나 봐. 엄마가 좀 더 정성껏 기도를 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됐어, 네 말은 안 들어!”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마법을 써선 안 돼. 그건 정말 무서운 힘이고….”
린제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지긋지긋한 말이었다. 뒤따라올 말도 벌써 예상할 수 있었다.
“린지는 나중에 성신의 국민이 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꼭 린지를 신성연합국으로 보내줄…….”
“안 가, 그딴 곳!”
린제나는 등을 도닥이는 팔을 손으로 쳐냈다.
“너 없잖아! 맨날 집에 없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마법 쓰지 말래!”
“린지!”
린제나는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갔다.
이제 막 여섯 살 된 어린아이.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세상의 이치를 대부분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 세상은 답이 없어.’
자신은 그 답 없는 세상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로 태어났다.
린제나가 태어난 나샤는 힘의 논리만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법도나 윤리 같은 단어는 몇 번 들어본 적도 없었다.
린제나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소매치기나 앵벌이,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청소년들은 도둑질, 퍽치기, 공갈 협박으로 먹고사는 게 보통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보통 목숨을 잃지만, 운 좋게 살아남아 성인이 된다 해도 범죄 조직 내지는 마수를 사냥하는 용병이 되어 저 멀리 신성연합국의 개노릇이나 하는 게 기껏이었다.
땅이 척박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마수가 몰려오니 농사나 상업 같은 발전적인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단지 누군가가 운 좋게 재물을 얻으면 그것을 갈취하여 당장을 버텨낼 생각만 했다.
하루하루가 버거운 파리 목숨들.
‘하지만 나는 달라.’
그녀는 강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녀는 비상식적으로 지능이 높고 강한 마녀로 태어났다.
나샤에서 살아남는 방법 두 가지 중 하나를 이미 달성한 셈이었다.
나샤에서 마녀는 배척받는 존재보다는 두려운 존재에 가까웠다. 강한 사람에게는 다들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어떤 마을에서는 강한 마녀 하나가 왕처럼 군림하기도 했다. 마녀의 보호를 받기 위해 스스로 마녀의 종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린제나의 눈에는 그런 마녀들도 연두부처럼 약해 보였다.
원한다면 그녀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 엄마가 그렇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나중에 신성연합국에 갈 거야. 그곳에서 성신의 국민이 될 거란다.’
나샤에서 살아남는 방법 두 가지 중 나머지 한 가지.
신성연합국으로 가는 것.
그 여자는 언제나 그것을 꿈꾸고 있었다.
신성연합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위 사제의 허가서가 필요했다. 파견 온 선파사들이 어린이와 여자를 쉽게 난민으로 받아 들여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대가를 요구했다. 나샤, 마젤란 근처에 자리 잡은 선파사가 요구한 것은 금화 세 개.
어린아이도 똑같이 금화 세 개가 필요했다.
어디 부유한 귀족 나리들은 고작 유흥에 턱턱 쓰는 돈이라지만,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금화 6닢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멍청이.”
그 여자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다.
마녀인 딸을 데리고 하필 신성연합국으로 가서 살겠다니.
‘친엄마가 아니니까 너를 버린 거야.’
그 여자가 용병 일을 하러 갈 때마다 로토가 매번 하는 조롱에 휘둘리는 건, 그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였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 세상인데, 어린 딸 같은 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야, 마녀!”
때마침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린제나는 휙 뒤를 돌아봤다.
어제 그녀를 놀렸다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로토가 보였다.
적의를 감지한 마력이 저절로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린제나가 다가가자 잔잔하던 공기가 스산하게 움직인다.
“히익……!”
로토가 겁에 질려 주춤거렸다. 린제나는 로토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마법을 써선 안 돼.’
그 순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경고가 떠올랐다. 넘실거리던 마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콩.
마력을 싣지 않은 손가락이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로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쫄 거면 시비는 왜 걸어?”
“…너, 너, 우리 집에 얹혀살면서 맨날 그런 식으로…!”
“밥 먹으라고 부른 거지. 알았어.”
가볍게 등을 돌린 린제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금화 여섯 개를 모아 성신의 나라로 가겠다는 건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마음에는 안 들어도, 엄마였으니까.
내심은 응원해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