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20)화(20/207)
“에.”
어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건가……. 난 잠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파리엘은 무서운 기세로 눈을 부라렸다.
“네가, 내 방에 왔던 날.”
그는 범인을 몰아세우듯 내게 손가락질했다.
“네가 기지도 못하는 척해서 다들 나더러 널 데려왔다고 했지만, 이것 봐! 역시 걸을 수 있는데 못 걷는 척 연기한 거였잖아.”
“호옵.”
난 놀라서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정신이 없어서 잠깐…….
내 반응에 파리엘의 눈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듯하네.”
파리엘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취조하듯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봐, 너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난 흠칫 놀라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첫 만남에 파리엘을 재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의 일은 순전히 사고였다. 파리엘을 납치범으로 몰아서 한동안 태양궁에 발도 못 들이게 만들려던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파리엘은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역시, 말도 다 알아듣네.”
“……!”
난 흠칫 놀랐다. 유도신문이었나?
역시 만만찮은 상대다. 한순간에 내가 걸을 수 있고 언어 소통이 가능하단 사실까지 전부 간파되고 말았다. 파리엘의 노련한 수법에 난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렸다. 그때, 파리엘이 내 어깨를 턱 붙잡았다. 그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귓가에 읊조렸다.
“여우.”
‘여, 여우.’
정신이 띵했다. 코너에 몰려 허우적거리는 나를, 파리엘은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나는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이번엔 딴청을 부리는 것만으로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겠단 직감이 왔다. 그래도 다행인 걸 보면, 그가 리벨 삼촌에게서 날 빼돌려준 걸 보면 아주 악의가 있는 것 같진 않단 거였다. 그렇다면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어떻게든 그를 회유하기 위해서, 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하테, 머, 머를…….”
“너한테 뭘 원하냐고?”
난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파리엘이 팔짱을 끼며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난 늑대 앞의 양처럼 파들파들 떨면서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파리엘이 천천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맞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뭐해?”
응?
파리엘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뜬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손을 발견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의아하게 눈을 굴리자 파리엘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왜 숨기는 건진 모르겠지만, 비밀로 해줄게.”
“……어?”
“너는 나한테 성흔을 줬고, 난 네 비밀 지켜줄 테니까. 한 번씩 주고받은 거다?”
내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만 있자, 파리엘은 고개를 갸웃하며 관심 끌듯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재촉에 못 이겨서 난 어영부영 그의 손을 맞잡았다.
“좋아, 이제 우린 한 팀이야.”
파리엘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첫 만남에 들었던 싸늘한 말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내 눈에는 파리엘의 얼굴이 아빠만큼 빛나 보였다.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좋은 사람, 파리엘 좋은 사람이야.
“흐에엥…….”
나도 모르게 잇새로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껏 개운한 기색으로 등을 돌리던 파리엘도 내 울음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 어?”
“흐으으으…….”
“뭐, 뭐야, 갑자기 왜 울어?!”
많이 당황했는지 파리엘의 목소리가 휙 꺾였다.
갑자기 왜 우는지 물어봤자, 나도 모르겠다. 리벨 삼촌의 방에서 파리엘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는데. 잔뜩 겁먹었다가 긴장이 풀리니까 눈물샘에도 덩달아 힘이 풀린 것 같다. 눈물이 줄줄 쏟아지고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황자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때, 목소리가 새 나갔는지 문밖에서 기사가 물었다. 파리엘은 기겁하며 내게 달려와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 일도 아니니까 들어오지 마!”
조용히 해, 파리엘은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내게 속삭였다.
“배고파서 그래? 먹을 거 줄까?”
“……욱.”
“아니면 내, 내가 무섭게 했어? 미안해. 제발 울지 말아 주라.”
누가 들을까 봐 걱정되는 걸까. 하지만 내 울음소리보다 파리엘 목소리가 훨씬 클 거 같은데……. 난 파리엘에게 입이 막힌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파리엘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손을 뗐다.
난 눈물범벅이 된 채 씨근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아주서 고마어.”
훌쩍임이 섞인 목소리에 파리엘의 눈이 커졌다.
“어…… 어?”
파리엘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등을 돌리고 방구석으로 가버렸다.
“……?”
난 어리둥절하게 파리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허둥거리면서 뭔가를 찾다가 내게 돌아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 애가 가져온 건 상아색 천에 금색 수가 놓인 깨끗한 손수건이었다.
“다, 닦아.”
파리엘은 어쩐지 내 쪽이 아니라 다른 데를 보면서 말했다.
얼결에 손수건을 건네받아 젖은 얼굴에 댔다. 한창 그러고 있으니까, 파리엘의 표정이 점점 불만스럽게 변하더니 못 견디겠다는 듯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 못 해? 이리 줘.”
내게서 손수건을 뺏어간 파리엘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췄다. 그러곤 내 얼굴을 붙잡고 꼼꼼히 닦아주면서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갑자기 왜 운 거야? 좀 다른 줄 알았더니, 너도 완전 아기네? 눈가가 다 부었잖아.”
“미야내…….”
“사과는 왜 해?”
그러라고 화내는 거 아니었나?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파리엘의 눈치를 봤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곤 작게 한숨을 쉬더니 화제를 돌렸다.
“근데, 걷고 말할 줄 아는 건 왜 숨겨? 너희 유모가 너 성장이 느린 것 같다고 걱정하던데.”
“어?”
전혀 몰랐다. 린다 유모까지 그런 일로 날 걱정하고 있었다니.
아기 성장 속도에 맞춰서 적당히 말하고 걷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니, 애초에 내가 평범한 아기들 성장 속도 같은 걸 어떻게 알겠어? 생각해보니 나는 아기를 실제로 본 적도 몇 번 없었다.
‘이러다 영재 아기는커녕 부진아 아기가 되겠군.’
“에효…….”
타임리프를 한 이후론 계획이 자꾸만 틀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내 한숨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파리엘은 응원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내, 아기님아. 아니, 이제는 우리엘이라고 불러야 하나?”
“……우리에?”
뜬금없는 호칭에 난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파리엘이 작게 웃었다.
“뭐야, 처음 들어? 하긴 다들 입에 붙어서 ‘아기님’ ‘성녀님’ 하니까…….”
“우리에가 먼데?”
“우리에가 아니라 우리엘, 네 이름. 작은형이 지었다던데.”
에엑, 내, 내 이름이라고? 그게 누구야, 내 이름은 이브엔나인데! 난 내 이름, 좋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내 귓가에 아빠가 생전에 전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이브엔나, 네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거야.’
“헉.”
이브엔나는 엄마가 붙여준 이름이니까, 엄마를 만나기 전의 아빠는 다른 이름을 붙여줄 수밖에 없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난 혼란스럽게 머리를 붙잡았다. 엄마가 남겨준 몇 안 되는 유산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게 생겼다.
혼자서 당황했다가 놀랐다가 괴로워하길 반복하는 나를, 파리엘은 멀뚱히 바라봤다.
“왜 그래,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그, 그거, 보다는…….”
“마음에 안 들면 바꿔 달라고 하면 되지 뭐. 어차피 아직 고민 중인 것 같더라고. 내가 말 전해줄까?”
“뎡말?!”
내가 번쩍 고개를 들자, 파리엘이 작게 웃었다.
“응, 원하는 이름이라도 있어?”
“웅, 나……!”
답하려는 순간, 훅하고 뇌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난 툭하고 내뱉었다.
“소피아.”
“소피아?”
내 말에 호응하듯 되묻는 파리엘의 목소리에, 난 화들짝 놀랐다.
“어, 어?”
“뭐야, 왜 그래?”
“안, 아니아니아니, 내가.”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정정했다.
“이부에나.”
“응?”
“이부에나, 내 이르미야.”
“왜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야.”
파리엘은 내가 그냥 변덕을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난 조용히 붉어진 뺨을 문질렀다. 소피아의 존재를 모르는 파리엘은,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래, 형한테는 이부에나라고 지어달라고 전해줄게.”
“어? 아니, 이부에나야.”
“그래, 이부에나.”
“아니, 이부에나!”
“……? 그렇게 말했잖아.”
난 열심히 말했지만 파리엘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내 발음이 그렇게 별론가? 난 하는 수 없이 펜과 종이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브엔나>
“자, 이거야.”
“와, 너 글씨도 쓸 줄 알아?”
파리엘은 지렁이가 춤추는 듯한 내 글씨를 보고 감탄했다. 난 진땀을 흘리며 펜을 움켜쥔 손을 내렸다. 사실 손으로는 쓰는 척만 하고 마력으로 움직였지만. 아직 손에 근육이 붙지 않아서 글씨를 쓸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마력을 쓰는 건 오랜만이라 좀 긴장했다.
“이브엔나.”
“응.”
“예쁜 이름이네.”
파리엘이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난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좋아, 이걸로 하자고 말해 볼게.”
“느저찌 아느까?”
“늦었지 않냐고? 괜찮을 거야. 네 이름 정하는 게 좀 늦어지고 있거든. 둘째 형이 좀 무리한 걸 요구해서…….”
이름에 무리한 걸 요구한다는 게 무슨 말이지? 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파리엘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어떻게 돌아갈 거야? 이렇게 오래 나와 있었으니 성이 한바탕 난리일 텐데…… 난 또 혼나기 싫어.”
“갠타나, 그거는 내가 아라서…….”
알아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나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저, 저거.”
“어?”
<현명한 문지기와 별의 모험>
‘리벨 삼촌의 방에서 발견한 그 책이잖아!’
저 책 속에 일렁이는 마력의 흔적, 틀림없었다.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파리엘이 챙겨온 건가? 그러고 보니 책을 빌려달라는 대화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횡재였다. 난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빠니! 나 저거 빌려주 쑤 이써!”